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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삐리리리릭—!!

         

         “으으….”

         

         귓가를 무자비하게 쪼아대는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순간 몽롱한 정신이 상황파악도 못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소파에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는 오토바이 헬멧을 보고 퍼뜩 각성했다.

         

         질질 새려는 의식을 한데로 그러모아 수험생 모드로 빚어낸다.

         

         오늘은 바로 전투경찰 엔지니어 직군 면접일.

         …영락없이 내가 자신과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한 걸로 이해한 헬레나는 매일 함께 출퇴근하면 되겠다면서 다짜고짜 내 몫의 헬멧부터 선물로 챙겨주었다.

         

         분명 그런 목적과 동기로 지원한 게 사실이긴 한데…! 걱정하는 사람 속도 모른 채, 발걸음도 가볍게 새벽마다 출근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몇 번이나 입술 안쪽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야 했다.

         

         내 걱정이 아니라 본인 주변환경부터 좀 면밀히 살펴보라고…! 나야말로 불안해 죽겠으니까!

         

         “으그그극…!”

         

         두 팔과 두 다리를 쭉 뻗어 개운하게 기지개를 편다.

         요즘 죽어라 운동한 효과가 나타나는지 신체 각 부위에서 돌아오는 반응이 한층 날카로워진 것 같다.

         

         ……아침보다는 점심에 훨씬 가까운 시간에 일어난 주제에, 진짜 아침형 인간이랑 사는 주제에 같잖은 걸로 유세부린다고는 부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헬레나랑 함께 일한다는 건 곧 그 무지막지한 일정표에 불쌍한 몸을 억지로라도 끼워 맞춘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걸 나도 뒤늦게서야 깨달았으니까….

         

         덜컹….

         

         입고 있던 잠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마음 편해지는 컴뱃 슈트를 착용한다.

         그러면서도 빈 손은 냉장고를 열어 텅 빈 속을 채워줄 뭔가가 있나 살펴봤지만… 배달과 포장이 주 식사원이나 다름없는 이 절망적인 집구석에 있는 건 음료수와 술뿐이었다.

         

         …아니, 마침 잘 됐다.

         언제까지고 재능과 불확실한 미래정보 좀 쥐고 있다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불안한 내 위치와 존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고민도 이제 그만. 적어도 닥친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의 나는 도시에 널린 소시민과 똑같다.

         

         그러니까… 면접장까지 가는 길에 있는 식당이나 노점에서 대충 사 먹도록 하자.

         …이미 내 입은 온갖 정체불명의 화학조미료와 식재료에 노출된 지 오래다.

         

         철컥 하고 마지막으로 영혼의 단짝인 권총까지 패용한 뒤, 문이 제대로 잠긴 걸 확인한 나는 빌라를 빠져나왔다.

         

         도로를 질주하는 무수한 차량들과 만만치 않게 보이는 행인들을 힐끔거리며 나도 바삐 움직인다.

         

         현재 목적지는… 우선 면접장 근처까지 이 몸을 옮겨줄 하베스트 플래닛의 내부 순환열차 정거장.

         

         한 세기가 흘러도 대부분의 인류는 여전히 튼튼한 두 다리와 발달된 대중교통을 통해 이동한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자원은 모자랄지언정 기술은 충분할텐데도 왜 아직도 이런 풍경이 유지되는걸까 나름대로 고민을 해보는데….

         

         빠아앙—!

         

         “운전 똑바로 안 하냐!! 이 빡대가리 새끼야?!”

         “자동 항법 운행 중인 차에다가 꼬라박을 뻔한 게 더 병신이 아닐까요, 이 병신아?!”

         

         “아하….”

         

         아슬아슬한 접촉사고 회피 직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갓길에 멈춘 두 운전자가 서로의 멱살을 부여잡은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안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 바뀐 듯하면서도 비슷하다면… 납득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조금 씁쓸하면서도 웃겼을 뿐이지.

         

         그렇게 신나는 드잡이질을 시작한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이번에는 걸어가는 사람들을 살펴봤지만… 역시나라면 역시나.

         

         자기애와 자존감이 흘러 넘치는 사람도. 반대로 음침하고 수상쩍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으나, 변치 않은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다 앞을 보되 다른 걸 쳐다보느라 바빴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면 그나마 이 동네 사람들은 자기 망막에 맺힌 사이버웨어를 쳐다보느라 정신없었다는 것 정도가 사소한 차이겠지만.

         

         “…시간 참 알뜰하게들 쓰시네.”

         

         삐릭….

         

         

         

         [ 중층부 그린 섹터 46번 거주구 정거장 이용을 환영합니다! ]

         

         외부로 빠져나가는 기차와는 달리, 센서가 부착된 정거장 입구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자 따로 뭔가를 할 필요도 없이 메시지가 나타났다.

         

         한낱 대중교통 주제에 기대보다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환영인사에 눈이 뺏긴 사이 구석에 조그만한 글씨로 결제된 크레딧이 표시되는 걸 보니… 그냥 치졸한 상술 같기도 하고…?

         

         특별히 타인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없긴 했지만, 일단은 승하차 시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몸싸움을 피하기 위해 구석진 벽에 등을 기댄 채 주변인들의 눈치를 봤다.

         

         “…. 콜록…!”

         

         코끝을 간질이는 매캐한 탄내음에 기침이 저절로 나왔다.

         

         아직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죽은 눈으로 묵묵히 담배를 태우는, 초췌한 예비승객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뭐, 그 중에는 분명 일반적인 연초는 절대 아닌 것 같은 무언가를 태우는 인간이 반은 족히 되어 보이기도 했으니 구태여 관련될 이유는 없으리라.

         

         “이크…!”

         

         약에 취한 상태에서도 시선에는 민감한지 자신을 주시하던 사람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인간에게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색하게나마 딴청 부릴 목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번쩍거리는 정거장 전광판에는 배차 간격과 기업공인 상품 광고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데 반해, 햇빛도 조명도 제대로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벽면에는 대출, 정보거래, ‘기업은 절대 안 팔아주는 끝내주는 약’ 등등의 낡아빠진 포스터가….

         

         ……많이 미심쩍지만 정보상이라고 적힌 번호는 메모했다.

         이런 곳의 도움을 빌리느니 내가 직접 네트워크를 조사하는 게 훨씬 정확하겠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

         

         쿠궁… 쿠궁…! 쿠구구궁!!

         

         “와…… 와악?!”

         

         거센 바람과 함께 앞머리가 위로 확 솟구친다.

         

         익숙한 듯이 입에 문 담뱃불과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을 본받아 나도 눈가를 한 손으로 덮은 채 들어오는 열차를 구경했다.

         

         예스러운 멋이 느껴지는 디자인은 전혀 아니었지만, 공기저항에 쓸 연료조차 아깝다는 듯이 생긴 유려하고 매끈한 표면은 꽤… 괜찮았다. 내가 아는 건 네오 헤이븐의 네모난 지하철뿐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모여든 인파 뒤로 따라붙은 나도 순환열차에 탑승했다.

         

         …빈 자리? 그런 건 나약한 녀석들이나 앉는 것이다. 운동경력 이 주 차의 이 몸은 다리를 단련하기 위해 서서 버틸 것…!

         

         쿠궁… 쿠궁…!

         쿠궁…….

         …….

         

         “…이런 멍청아…!!”

         

         오랜만의 따스한 햇빛에 취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린 십분 전의 나를 쥐어 패고 싶었다.

         

         이 순환열차… 시간이 문제인지, 정거장이 애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타기만 하고 도통 내리질 않는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끝에 탑승한 칸 구석에 쪼그린 내 신세가 처량해 죽겠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곧 내려야하는 정거장이 점점 다가오니 빨리 이 뒤주에서 탈출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압사당하지 않을 대책이라도 떠올려야….

         

         – 이번 정거장은 중층부 퍼블릭 섹터(Public Sector : 공공시설 지구) 전투경찰 2번 지부 앞 정거장입니다. 오늘도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보람찬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

         

         “…어?”

         

         승객들이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고 구석으로 가해지던 압박감이 돌연 사라졌다.

         

         절대적으로 많은 공간을 차지하던 덩치, 삐쩍 마른 거수자 가릴 것 없이 안내방송에 반응해서 내릴 준비를 한다.

         공기 새는 소리와 함께 열차 문이 열리자 흡사 썰물 빠지듯이 하차하는 사람들을 따라 어영부영 내리는데 성공했다.

         

         “…….”

         

         귀신에 홀린 것처럼 정거장을 나가, 이 인파가 향하는 곳을 눈으로 쫓는다.

         

         …경찰서 2번 지부, 오늘의 목적지이자 안내받은 면접장소. 경찰서 안은 아니고 지부와 연결된 별관이라고 되어있긴 한데 어쨌든.

         

         설마 저들이 전부 날도 따듯한 김에 신이 나서 자수하러 가는 범죄자들일리는 없으니… 어쩌면 내가 크나큰 착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서옵쇼, 아가씨…! 주문은 뭘로?”

         

         “……볶음국수(Fried noodles)로 주세요.”

         

         멍한 정신을 부여잡고 일단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푸드트럭에 터덜터덜 다가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괜찮다. 통보된 시각까지는 30분이나 남아있으니까, 고민해볼 시간은 차고 넘친다.

         

         치이이익…!

         

         “…….”

         

         카트리지 재료투입부터 철판조리, 끝내는 포장까지.

         완벽하게 자동화된 기계 요리사님의 공정에 따라 허공을 누비는 내 점심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마침 현지인이 코앞에 있다는 걸 깨닫고 입을 열었다.

         

         “저기… 사장님? 뭐 한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조리 시작한 음식은 환불 안 된다네.”

         

         “아니 아니?! 그 경찰 면접이 원래 저렇게 인기가 많나 궁금해서요! …다들 경찰이라면 치를 떠는 줄 알았는데요.”

         

         수염 덥수룩한 푸드트럭 사장님이 지금도 경찰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한 번, 혼란스러운 나를 한 번 쳐다보시더니 별 바보 같은 질문을 다 들었다는 것처럼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흐핫!! 경찰이랑 기업을 누가 좋아하겠나? 하지만 크레딧 타먹으면서 먹고 살기엔 그야말로 최고의 직장 아니겠나?”

         

         “아…?”

         

         내밀어진 종이박스(To Go Box)를 입을 벌린 채로 받아들었다.  

         

         …그래, 언제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욕 한다고 거기서 일하는 것도 싫어하는 걸 봤나?

         그렇지만… 이것까지 꼭 옛날이랑 비슷해야 했냐?!

         

         선물 받은 헬멧이 실은 응원의 부적 비슷한 거였다는 걸 면접 시작 직전이 되어서야 깨닫다니… 장하다 진짜.

         

         “…잘 먹었습니다.”

         

         “…? 흐핫!! 떨어져도 너무 낙심하지 말게, 아가씨!”

         

         “하….”

         

         익숙하고 그리운 간장맛을 음미하긴커녕 목구멍에 대충 들이붓고, 힘없이 향하는 내 목적지를 본 사장님이 상황을 눈치채고는 참 재수없는 격려를 해주셨다.

         

         그래도… 그래도 사이버 엔지니어링 실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마친 나는 지부 안으로 입장했고.

         

         

         

         “…06시부터 14시까지, 관문경비대 사이버 엔지니어 부문. 주간 근무 시프트에 지원한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맞습니까? 사이버 엔지니어 면접은 파라다이스와 엘리시움 코퍼레이션에서 직접 파견 나온 면접관분들과 독방에서 진행되니 언행에 각별한 주의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제출하신 총기는 면접이 끝난 후, 창구로 와서 찾아가시고…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대기해 주십시오.”

         

         …면접은 꼭 실기시험이 아니라, 면접관과 대화하는 것도 포함된 거라는 걸 기억해냈다. …망할.

         

         오늘 하루만 같은 말을 수백번은 반복했을 별관 창구 담당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여유롭게 점심까지 먹고 등장한 벌로, 나는 또 대기실 구석에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깔끔하게 정장을 빼입은 사람도, 껄렁하게 후드나 뒤집어쓴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머리 언저리에 시술자국이나 기계부품으로 대체된 안구, 피부등을 가진 걸 보니… 해커 커뮤니티에서 미친 소리를 하던 인간들이 다 모인 건 아닌가 싶었다.

         

         – 나지르 엘 사다트, 안으로. –

         

         말끔한 행색의 까무잡잡한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안쪽으로 사라졌다가….

         

         “히이익?!”

         

         우당탕…!!

         

         몇 분 지나지 않아 하얗게 질린 채 굴러 떨어지듯 복도로 튕겨져 나왔다.

         그에 맞춰 저편으로부터 등장한 전투경찰 둘이 엎드린 그의 팔을 한 쪽씩 붙잡았다.

         

         “…나지르 엘 사다트. 도시 네트워크에 지속적인 파라다이스 비방 게시글 작성 및 해킹 혐의로 체포하겠다.”

         

         “”…….””

         

         최초 면접자가 질질 연행되어가는 걸 본 대기실 분위기가 아주 훈훈해졌다.

         그런데 도시 네트워크 해킹 혐의면… 나도 그냥 지금 떠나는 게 신상에 이로울지도…?

         

         – 마리나 세라노, 안으로. –

         

         “…후훗.”

         

         펑퍼짐한 아프로 머리 스타일이 인상적인 여성이 사뿐히 일어나더니, 그대로 별관 밖으로 전력 질주해서 도망쳤다.

         

        물론 곧바로 진압봉을 꼬나 쥔 경찰 한 명이 따라붙긴 했는데… 다다음 이름이 불릴 때까지도 비명소리가 안 들리는 걸 보니 신체능력도 상당하신 모양이다.

         

         …이게 면접장이야, 처형장이야.

         나도 여러모로 꽤 안일했다고 자책했는데 댁들은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요….

         

         – 필립 노벡, 안으로. –

         – 댄 힐티, 안으로. –

         

         그렇게 머리 아파지는 광경을 정말 한참 관람했다.

         순식간에 끝난 사람도 있었고, 20분이고 30분이고 조용한 차례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대기실 가득 들어차다 못해 복도까지 늘어섰던 지원자들도 추려지고 추려져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로만 남았다.

         

         한데… 낌새가 이상하다.

         

         나보다 늦게 온 지원자들도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왜 아직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는걸까.

         

         이제 남은 사람은 셋….

         

         – 시릴로 마시, 안으로. –

         

         ……둘.

         

         – 타하라 코헤이, 안으로. –

         

         ……시발.

         

         일본계 지원자 씨가 우울한 표정으로 퇴실했음에도, 어느새 창구 경찰과 내 숨소리만 별관에 맴도는데도 설치된 스피커는 내 이름은 토해내지 않았다.

         

         긴장과 초조, 노골적인 조작과 함정의 기색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찰나… 접수를 받아주었던 경찰이 말을 걸어왔다.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씨.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체포할거면 차라리 그냥 지금 하시죠?”

         

         “……?”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것처럼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수하게 궁금해 한다기보단… 마치 대하기 어려운 인물에게 엉뚱한 질문을 받은 것 마냥 삐걱거리는 쪽에 가까웠다.

         

         

         “…저 같은 말단 경찰은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미스터 드레이퓨스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샤 : (쫄)
    창구경찰 : (개쫄)

    내정자라는 단어는 어감만 들어도 치사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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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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