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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39. 놀이터=전쟁터

       

       

       오랜만에 사수의 호출이 있었다.

       한지수는 나를 협회 지하 훈련장에 불렀다.

       그리고, 무턱대고 내게 트럭 타이어 크기의 원판을 낀 바벨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한 번 들어봐.”

       “갑자기 불러서 바벨을 들라고? 선배, 이거 부조리 아니야?”

       “시급 2만원짜리 훈련인데.”

       “그런 건 진작 말하지.”

       

       번쩍-

       나는 한지수의 말대로 바벨을 두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한지수는 그 모습을 보고 태블릿 PC에 기록했다.

       

       “500kg은 가뿐하게 성공. 확실히 다른 D급 영웅이랑 달리 몸이 좋아.”

       “내가 몸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

       “그럼, 여기에서 꼬깔콘까지 20번 왕복 달리기를 해봐.”

       “아주 쉽지.”

       

       오다다다-

       나는 한지수의 말대로 왕복 달리기를 했다.

       대체 왜 이런 테스트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돈도 준다고 하기에,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신체 능력은 확실히 뛰어나.”

       “다음에는 뭐 하면 돼?”

       “직접 확인해야겠어. 잠깐 기다려봐.”

       

       꾹꾹-

       한지수는 그리 말하고는 내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근육들을 만지며, 내 몸의 강직도를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몸이 굳은 채 속으로 생각했다.

       

       ‘뭐, 뭐야 왜 이러는 거야? 이, 이거 이래도 되는 거야?’

       

       사내 성추행의 당사자가 될 줄은 몰랐는데.

       기분은 나쁘지 않으니까 신고할 생각은 없지만.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며, 이상한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려던 순간.

       한지수가 몸 더듬기를 그만두며 말했다.

       

       “너는 확실히 달라. 특별한 몸을 가지고 있어.”

       “그거야 뭐, 나도 알고 있긴 한데…”

       “하지만, 그저 몸이 단단할 뿐이야.”

       

       한지수는 그리 말하며 손가락으로 내 몸을 쿡- 찔렀다.

       

       “아악-!”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왜 나를 갑자기 찌른 걸까.

       그녀는 나를 찌른 손가락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무리 단단한 몸을 가졌다고 해도. 표면적이 적은 날카로운 무기에는 약할 수밖에 없어. 이번에 빌런의 테러를 막았다고 했지?”

       “어, 내가 미친놈처럼 활약했지. 한 명도 안 다치게 했어.”

       “그거에 대해서는 칭찬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너 언제까지 주먹만 쓸 생각이야?”

       “어?”

       “다른 무기를 쓸 생각은 없는 거야?”

       “흠…”

       

       다른 무기라.

       쓸 생각은 당연히 있다.

       무기를 사용하는 편이 맨주먹 보다 효율적이니까.

       빌런이나 마수를 상대할 때 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먹 말고 다른 무기 사용법을 모르는데?”

       

       검은 어떻게 휘두르고.

       총은 어떻게 쏘고.

       창은 어떻게 찌르지?

       

       “난 평생 맨주먹으로 살아왔는데?”

       “…”

       

       한지수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대부분의 각성자는 13세부터 각자의 능력에 맞는 무기를 수련해. 그래서 너도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 한지수도 헷갈린 모양이다.

       내 사수는 가끔 보면 허당끼가 있는 것 같다.

       한지수는 나를 답도 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C급 승급 시험을 통과하려면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있는 편이 좋은데.”

       “맨주먹은 안 돼?”

       “힘들어. 부상을 입을 확률도 있고.”

       

       고민이 많아 보이는 표정.

       그래도 내게 C급 승급 시험을 얘기하는 걸 보면, C급으로 승급하기 위한 성과는 다 채운 모양이다.

       문 따개로 열심히 돌아다닌 보람이 있었다.

       

       ‘…무기라.’

       

       흠.

       고민을 좀 해봐야겠네.

       나는 내 몸에 가장 적합한 무기가 무엇일지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가서 드래곤 녀석들과 함께.

       녀석들이라면 내게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집에 돌아와서.

       나는 드래곤 녀석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아빠는 무슨 무기를 사용하면 좋을까?”

       

       그에 화련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당연히 주먹이지! 맨몸으로 싸우는 게 진짜 싸움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

       “무기는 약한 사람만 사용하는 거니까!”

       

       약한 사람이 자신의 약함을 숨기기 위해 무기를 사용한다.

       화련이는 내게 그리 말하며 맨몸으로 싸우라 말했다.

       화련이 답게 터프한 대답이었다.

       

       “어차피 아빠는 무기 들어도 쓸 줄 모르잖아! 그냥 맨몸으로 싸워! 튼튼하잖아!”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

       

       RPG를 하다 보면 스텟을 잘못 찍어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나처럼 체력 스텟이 찍혀있는 사람이 갑자기 민첩을 요구하는 단검을 들기 위해 민첩 스텟을 찍기 시작하면?

       그냥 쓰레기 개잡망캐가 되어버리겠지. 

       나는 생각보다 똑똑한 대답을 내놓은 화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화련아, 너 많이 똑똑해졌구나?”

       “흥, 나는 원래 똑똑했어! 그리고 내 머리 만지지 마!”

       

       크아앙-!

       화련이가 손을 치우며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쳐낸 내 손을 잡아 다시 머리 위에 올렸다.

       

       “흥.”

       “…”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옆에 가만히 보고 있던 수련이에게 물었다.

       

       “수련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번만큼은 화련 언니의 말이 맞아. 아빠는 무기를 배우기에 너무 늦었어. 어릴 때 배워야 했어. 어른이 되면 배우는 속도가 늦는다고 했으니까.”

       “…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아빠 그 정도 맞아.”

       

       서운하네.

       수련이가 어른의 학습 속도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평생 어른이 안 되는 줄 아나 보다.

       

       ‘어른 되기만 해.’

       

       오늘 일은 잊지 않겠다.

       나는 조용히 마음에 담아뒀다.

       그러고 있자, 초련이가 내 소매를 조심스레 당기며 물었다.

       

       “아버지, 오늘은 밖에 안 나가요?”

       “아, 그거?”

       

       저번에 밖을 나가고 나서.

       나는 드래곤 녀석들과 약속했다.

       

       하루에 30분.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인식 저해 마법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 함께 밖에 나가기로 했다.

       그 말은 즉, 나는 하루에 30분씩 녀석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야 한다는 소리이다.

       

       “무슨 개 산책시키는 것도 아니고.”

       “아빠, 지금 나보고 개라고 한 거야?!”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개 아니야! 드래곤이야!”

       

       쾅-!

       화련이는 그리 말하고는 내게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요즘 따라 몸이 근질근질한지 자꾸 내게 몸 장난을 걸었다.

       활발한 어린 나이에 집에만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다들 나갈 준비나 하자. 내가 얘기했던 내용 안 잊었지?”

       

       내 물음에 녀석들이 개구리 합창단처럼 외쳤다.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대답하지 마라!”

       “모르는 사람이 따라오면 도망쳐라.”

       “모르는 사람이 만지려고 하면,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외쳐야 해요!”

       

       안전 교육은 중요하니까.

       나는 녀석들이 잘 알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녀석들과 함께 놀이터로 향했다.

       녀석들은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나를 따라왔다.

       마치 부모를 따라가는 새끼 오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

       

       

       레드 드래곤 이화련.

       그녀는 미끄럼틀이나 원심분리기 같이 도파민이 잔뜩 도는 놀이기구를 선호했다.

       

       “이걸 이렇게 돌리고! 이렇게 타면! 와아아!!”

       

       빙빙-

       빙빙 돌아가는 원심분리기.

       화련이는 손을 하늘 위로 올리며 소리쳤다.

       

       “으하하! 이거 재밌다!”

       

       화련이는 놀이터를 올 때마다 즐거웠다.

       비좁은 방은 뛰어다닐만한 공간이 없었지만, 놀이터에서는 마음껏 뛰어도 좋고, 모래가 푹신해서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있어 재빠른 속도감을 즐기기에 아주 좋았다.

       

       “드래곤이 인정해! 인간의 놀이터는 재미있어!”

       

       화련이는 아직도 멈추지 않는 원심분리기를 향해 따봉을 날렸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은 뭘 하고 노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수련이는 완전 느린 그네를 타고 있구! 초련이는 또 아빠랑 같이 놀고 있네!”

       

       흥.

       드래곤이 혼자 있지 않고 아빠랑 놀다니.

       완전 별로야.

       누구는 같이 노는 방법을 모르는 줄 아나.

       

       “흥, 초련이는 약해빠졌어! 나는 강하니까 혼자 놀 거야!”

       

       화련이는 복어처럼 볼을 부풀리고는 다시 원심분리기로 향했다.

       그런데, 회전하고 있어야 하는 원심분리기가 떡하니 멈춰있었다.

       화련이는 그에 이상함을 느꼈다.

       

       “내 힘으로 돌아가게 뒀는데? 이게 왜 멈췄지?”

       

       이상해!

       화련이는 원심분리기가 고장 났나 싶어 기구를 자세히 확인했다.

       봐도 뭐가 뭔지 몰랐지만, 일단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기분 탓인가 봐!”

       

       다시 타야지.

       화련이는 원심분리기의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놀이터의 입구 쪽에 가만히 서 있는 다섯 아이의 인기척을 느꼈다.

       원심분리기를 몰래 멈추게 만든 건, 녀석들의 소행이었다.

       너무 약해서 화련이는 인기척도 못 느꼈다.

       

       “뭐야, 모래에 발자국도 찍혀 있었잖아! 쟤네는 뭔데 내 놀이터에 있는 거야!?”

       

       마음에 안 들어.

       감히 내 놀이터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화련이는 원심분리기에서 내려와 아이들을 향해 걸어갔다.

       아이들은 순간 겁을 먹긴 했지만, 도망치지 않고 화련이를 마주 봤다.

       

       “너희 뭐야! 너 누구인데 내 놀이터에 있어? 당장 나가!”

       “…주변에서 못 보던 애인데. 너 어디 소속이야? 나는 봉 유치원 소속인데.”

       “훗, 내 소속을 묻는 거야?”

       

       으쓱-

       화련이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 소속을 들으면 깜짝 놀랄 거야! 나는 드래곤이야! 내 소속은 드래곤이야!”

       

       어때, 나 우월하지?

       화련이는 자랑스럽게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아이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 그런 설정…?”

       “머리도 빨개. 다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봐…”

       “이 씨, 나 드래곤 맞다구! 아빠도 그렇고, 너희도 그렇고! 진짜 주글래!?”

       

       에잇-

       화련이는 분노를 터뜨리며 아이들의 리더로 보이는 짧은 머리를 기름으로 세운 남자 아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억-!

       

       “아악-!”

       

       그에 주먹을 맞고 쓰러진 남자아이가 코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화련이는 그 아이를 내려다보며 당당하게 외쳤다.

       

       “드래곤을 무시하지 마! 그리고, 여기는 내 구역이야! 당장 나가!”

       

       그에 리더를 잃은 나머지 아이들이 동요하며 외쳤다.

       

       “야, 민구가 맞았잖아!”

       “대, 대장의 복수를 하자!”

       “여기가 왜 니 구역이야! 맞서 싸우자!”

       “오직 전쟁이야!”

       

       와아아아-!

       아이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화련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에 화련이는 머리에 도파민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덤벼 인간들아!”

       

       주먹을 쥐고 응수하는 화련이.

       녀석은 주먹은 아주 훌륭한 대화 수단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들의 놀이터는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질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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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Dragon Egg

I Picked up a Dragon Egg

드래곤의 알을 주웠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picked up an Egg from the Dragon’s Nest. “Shakk!!!!” “Should I just sell?” I should have picked some other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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