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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이미 성국을 몇 차례 들린 적 있던 나와는 달리 마리아는 이곳이 처음이었다.

       

       “대단하네요.”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렇게 말할 만 했다. 성국의 수도 오소독스는 제국의 수도인 팔츠와 맞먹을 정도의 화려함을 자랑했다. 아니, 단순히 때려 부은 돈과 보석, 장식만을 따지면 오히려 이곳이 더 화려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팔츠조차 기껏해야 제국에 더해 제국과 교류하는 지역의 부가 모일 뿐이지만 오소독스는 대륙 전체의 부가 모이는 곳이었다. 거기에 종교적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화려한 문화가 합쳐지니, 이곳이야말로 대륙 문화예술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었다.

       

       “확실히 번쩍번쩍하긴 하지.”

       

       나도 동감했다.

       

       종교가 어째서 이렇게 사치를 부리냐는 지적은 무의미했다. 그야, 대륙 종교계를 평정한 성국의 종교는 황금십자교였다.

       

       이름에서부터 ‘황금’이 들어가는데, 대체 누가 사치를 지적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이들은 교리에서부터 청부 사상을 명시하고 있었다. 깨끗하게만 벌면 뭘 어떻게 하든 개인의 자유라는 말이었다.

       

       물론 돈벌이라는 게 항상 그렇고 상인이라는 사람들이 언제나 그렇듯 말 안 듣는 놈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이들도 나름의 해결책이 있었다.

       

       ‘이 불경한 자가!’

       

       내 머릿속에 황금십자교에 광신에 가까운 믿음을 가진 어느 이단심문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금화가 가득 담긴 돈주머니로 불법 고리대금업자의 머리통을 부수던 모습은 나조차 좀 무서웠다.

       

       하여튼, 대륙 전역에 퍼진 종교인 커뮤니티를 통해 불법적인 돈벌이를 하는 이들을 감시하고 이단심문관을 파견해 그들을 처분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종교적 의미에서의 이야기였다. 종교가 세속법을 잘 따라줬다면 제국과 성국이 기 싸움을 할 리가 있나.

       

       뭐, 처음에는 나도 이거 완전 부패한 종교계의 대명사 아닌가 싶었지만, 보다 보니 이것도 나름대로 잘 돌아갔다. 일단 대륙 금융계를 대표하는 상인 길드가 이들의 보증으로 굴러갔고, 상인의 전횡이란 녀석도 종교적 명분으로 꽤 칼같이 단속했다.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며 법의 사각지대를 노리는 일은 종교에는 국경이 없다는 논리로 날려버리니 이게 또 단속이 되더라고.

       

       “잠시 정지해주시겠습니까?”

       

       “음, 알겠다.”

       

       마침내 오소독스의 성문에 도착하자 경비가 우리를 막아섰다.

       

       “…기사?”

       

       마리아의 말에 경비가 반응했다.

       

       “아, 마력을 볼 수 있으신 분이시로군요. 예, 맞습니다.”

       

       그는 자랑스럽게 제 가슴팍을 툭툭 두드렸다. 마리아는 신기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나도 처음엔 신기했다. 세상에 기사를 성문 경비로 쓰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하다못해 세상에서 기사가 제일 많다는 제국도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성국은 가능했다.

       

       “성국은 모든 병력이 기사라서. 굳이 따지자면 경비에도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네?”

       

       마리아는 오히려 그 말이 더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그게 과장이 아니라 진짜였어요?”

       

       “응.”

       

       마리아도 소문 자체는 들어본 것 같았다. 하지만 성국에 대한 소문을 들은 이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도 그걸 진짜라고 믿진 않았던 모양이다. 나도 정말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했었으니 이해 못할 건 없었다.

       

       물론, 지금은 한가롭게 떠드는 티타임 시간이 아니었기에 더 떠들진 않았다.

       

       “검문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혹시 신분을 증명하실만한 것 있으십니까?”

       

       그에게 품에 넣어두었던 대주교의 추천장을 건네주었다.

       

       “헉.”

       

       그는 곧장 옆으로 비켜서며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오, 오소독스는 대주교님의 손님을 환영합니다!”

       

       역시, 이래서 인맥이 좋은 거다.

       

       ―――

       

       의뢰를 받아 오소독스로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일에 착수할 필요는 없었다. 대주교에게 듣기로, 어차피 이 의뢰를 받은 사람은 나 말고는 없다고 했고, 교단도 이미 몇 년을 질질 끌어온 문제라 당장 해결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우린 우선 오소독스를 구경하기로 했다.

       

       나야 몇 번 와봐서 익숙하다지만, 제국을 처음 떠나보는 마리아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흠, 그렇군요. 이 정도인가요.”

       

       정정하겠다. 그랬던 때도 있었다.

       

       그녀는 며칠 지났다고 바로 도시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녀가 주변에 무관심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건 일종의 역치의 문제였다.

       

       “제국 졸부들보다는 그래도 심미안이 좀 있는 편이네요.”

       

       찻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을 하며 마리아는 무심한 눈빛으로 도심을 내려다봤다.

       

       나처럼 변방에 살다 온 이들이나 평민들은 오소독스의 화려함에 압도됐지만, 문제는 마리아는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녀의 출생지는 제국에서 제일가는 화려함을 자랑하는 팔츠였고, 신분은 가장 고귀한 황족이었다.

       

       그래도 평소에는 사람들 눈치가 보이기에 사치에 제한을 둔다지만, 행사나 경사가 있는 날에는 이쪽도 만만찮게 화려하게 놀았다.

       

       특히 일반 대중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별장의 경우, 이게 정말 이 시대에 사람 손으로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돈과 정성이 잔뜩 들어가는 건물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러니까, 마리아에게는 오소독스의 화려함도 그녀가 조금 허리 좀 졸라매면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는 수준의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였다.

       

       “…아, 예. 그러십니까.”

       

       그래서 살짝 내가 민망해졌다. 그녀에게 오소독스가 엄청 대단하다고 아주 오만 호들갑을 다 떨어뒀는데 반응이 이러니 원.

       

       가만, 생각해보니 이거 내가 나 촌 동네 사람이라고 아주 요란법석하게 티를 낸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며 마리아에게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살짝 입꼬리를 틀어 올리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푸훗.”

       

       웃었냐? 너 지금 웃었어?

       

       …물론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긴 한데.

       

       뭐, 됐다. 어쨌든 지난 며칠만이라도 마리아가 오소독스를 즐겼으면 상관없다. 이제 흥미가 다 빠졌다는 거지, 아직 흥미가 있는 동안은 마리아도 오소독스의 거리를 마음껏 즐겼으니까.

       

       마리아가 이세계식 탕후루와 이세계식 뿌링클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언제 한번 재료 구해서 마라탕이랑 떡볶이도 해볼까.

       

       “아무튼, 그래서, 뭐 더 해보고 싶은 거 있어?”

       

       너무 느긋한 거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내 여정이란 게 다 이런 식이었다.

       

       효율 같은 비 낭만적인 건 지구에서나 찾아라. 여긴 시간 약속도 대충 때려맞추는 중세라고. 원래 도랑 치는 김에 가재도 잡는 거고 뽕 따는 김에 임 얼굴도 보는 게 당연한 거다. 이런 멋진 곳에 와서 관광도 안 하고 임무나 열심히 수행할 거면 왜 귀찮게 돌아다녀?

       

       다만, 마리아의 생각은 나와는 좀 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성국의 군대는 오직 기사뿐이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여기까지 와서 그걸 더 궁금해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인 것 같다.”

       

       “저 말고 다른 누군가와 여길 와본 적 있다는 뜻인가요?”

       

       순식간에 표독해지는 마리아의 시선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같이 의뢰 수행하던 파티원들에게 소개해준 적 있을 뿐입니다!”

       

       “파티원이라. 거기 여자도 있었나요?”

       

       그녀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그떄 파티에 여자가 있었던가? 워낙 이런 일을 많이 해서 잘 기억이 안 나네.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으니 마리아가 미소를 지었다.

       

       “아뇨. 됐어요. 충분히 답이 된 것 같네요.”

       

       “응?”

       

       뭐라 말을 한 것도 없는데 얘는 또 무슨 소리라니.

       

       ‘어차피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면 굳이 경계할 필요도 없겠네요.’ 라는 혼잣말은 들은 적 없는 걸로 치기로 했다.

       

       어쨰 요즘 사일런스 마법을 잘 안 쓰는 것 같은데, 이거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말 맞지? 아닌가?

       

       아리까리했지만, 크게 신경 쓸 이유는 없었기에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래서, 성국의 병력은 왜 기사단뿐이냐고 물었지?”

       

       “네.”

       

       그녀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성국이 별로 안 커서 그래.”

       

       “네?”

       

       마리아는 내 대답에 오히려 의뭉스러워했다.

       

       “성국은 나름 세력이 좀 있는 백작이나 후작 수준의 영지를 갖고 있지 않나요?”

       

       그녀의 말도 옳았다. 성국의 영토를 영지로 치환해보면, 분명 꽤 큰 영지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나름 몇 개의 제후령을 합한 수준의 영지를 갖고 있다고나 할까.

       

       그건 분명 어떤 영주든 탐낼만한 땅이었다.

       

       “하지만 황금십자교의 총본산을 담을 그릇이라고 치기엔 매우 작지.”

       

       하지만, 대륙에서 제국과 버금갈만한 세를 갖춘 집단이 다스리는 국가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영토였다. 하다못해 제국 동부 국경 너머의 왕국들과 비교해도 한참 모자랐다.

       

       “혹시 황금십자교 교단 소속의 기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공식적으로 발표된 성기사의 수만 따지자면―, 아.”

       

       마리아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도 그녀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겨우 이만한 영지를 가진 ‘영주’가 굴린다기엔, 지나치게 많은 숫자지?”

       

       기사는, 기본적으로 아무리 약해도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병사 수십은 거뜬히 상대가 가능한 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수천 명을 다루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다.

       

       단순 인건비만 챙긴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직 황금십자교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각종 혜택(주로 복지와 성력으로 인챈트된 무구 등)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면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것 말고도 교단은 돈 나갈 구석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돈 많이 버는 나라는 예산 많으니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유념해둬야 할 것은, 많은 세금을 걷는 나라는 그만큼 그 세금을 또 어딘가에 써야만 한다는 것이다.

       

       성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에서 헌금이 밀려오지만, 이들은 종교단체로써 해야 할 업무들을 수행하기 위해 다시 그 돈을 지출해야 했다.

       

       써야 할 돈을 다 제하고 나면, 그 헌금 중에서 남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성국은 영지에서 나는 수입을 온전히 기사단을 유지하는 데 쓰거든.”

       

       그래서, 황금십자교는 성국의 영토를 활용해 어떻게든 더 많은 돈벌이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교리를 지키는 일이었기에 사람들의 열정 또한 대단했다.

       

       “그런데, 성국 사람들을 함부로 군인으로 고용했다간 생산성이 떨어지잖아?”

       

       문제는, 군대는 오직 소모만 하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그 특성을 이용해 가끔 산업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전부 군대에 짬처리해버리는 독재자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감히 군대를 짬처리통으로 쓴 놈들은 짬타이거로 진화한 군대에 휘둘려 나라가 망했다.

       

       하여튼, 성국은 그들의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인력을 자국인이 아닌 이들로 채우기로 결정했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은, 그들이 바로 종교집단이라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대륙 최대의 종교인 만큼, 성국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은 이미 차고 넘쳤다. 이쪽 방면으로는 인력을 걱정할 필요가 애초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결과가 오만 곳에 기사가 들어가 일하는 기사의 도시, 오소독스였다.

       

       그 말을 들은 마리아는 진지한 표정을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짚고 진지한 고민에 들어갔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했다.

       

       “아서라, 아서. 물론 기사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또 만능은 아니더라.”

       

       “네? 아니, 기사가 그렇게 많은데 문제가 될 일이 뭐가 있나요?”

       

       “그게 또, 문제가 될 게 있긴 하더라고.”

       

       나도 처음 듣고는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기사들이 다들 워낙 편한 귀하게 자라와서 그런가, 다들 상상력이 좀 부족하더라고.”

       

       주로 인간이 어디까지 지독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이번 의뢰의 배경 역시 성국의 이런 단점에서 시작됐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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