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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검술학부 평민 출신 생도들.

       현재는 새싹이, 새싹조 등으로 불리는 그들은 처음부터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귀족 생도들과 달리 첫 만남부터 이한에게 큰 반항심이 없었다.

       이는 그가 본인들보다 처지가 나쁜 하층민 출신인 것도 있지만, 그가 가진 ‘강함’에 매료된 탓도 있다.

         

       저를 모욕한 검투(劍鬪) 명가 가문의 부기사단장과 싸워 압도적으로 승리를 차지하던 그 모습이 유난히 뇌리에 새겨진 것이다.

       강하다.

       그들보다 못한 출신으로 저토록 강해질 수 있다는 게 경이롭다.

         

       그리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만난 이후 알게 됐지만, 그는 ‘투기법’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투기법이란 건 만5세부터 시작해도 늦었다고 듣는 것이니까.

         

       뭐, 하층민에겐 당연히 익히지 못할 부류이기도 했다.

       처음 투기법을 익힐 때, 생명력, 혹은 투기력(鬪氣力)이라고도 불리는 힘을 익히기 위해선 투기력을 이끌어줄 스승의 존재유무와 수련자의 어린 몸이 상할 것을 대비하여 몸값이 엄청난 사제의 도움도 필요하다.

       수련하고자 해도 하층민 출신이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바.

         

       …어떤 이는 투기법을 어른이 된 이후 안정적으로 수련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일세를 풍미할 천재나 영웅적 운명을 타고난 이라면 또 모를 터이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천재나 영웅이 아니다.

       그저 하루 빌어먹고 살기 힘든 하루살이에 불과하지.

         

       하여 그들은 교관을 존경한다.

       투기법을 익히지도 않았고, 그들보다 더욱 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음에도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강하다.

         

       강함, 누구나 동경하기 마지않는 보물을 오로지 노력으로 쌓은 그를 보며 어느 누가 그를 동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들은 최선을 다해 교관의 명령을 수행할 셈이었고, 어떠한 가혹한 일정이 있다 하여도 버티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2번 훈련생 열외.”

         

       ……그랬었다.

         

       “여, 열외!!”

         

       “목소리가 작습니다! 다른 훈련생들이 더 고생해야 정신 차릴 겁니까?”

         

       “아, 아닙니다!!”

         

       “대답은 ‘악’으로만 하라고 했습니다. 훈련생은 교관의 말이 우습습니까?”

         

       “아, 악!!”

         

       “왜 대답을 안 합니까? 교관의 말이 우습습니까?”

         

       “……악!”

         

       “두 박자 늦게 대답했습니다. 훈련생들은 PT 8번 30회를 실시합니다!”

         

       -3, 30회!!

         

       “목소리가 작다! PT 8번 100회!”

         

       -100회!!!

         

       “좋습니다, 온몸 비틀기 50회 실시합니다.”

         

       교관, 아니 악마가 그들에게 명령하며 호루라기를 불기 시작했다.

       저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일정한 리듬에 동작을 해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트집이 잡힐 터.

         

       “으아아아악!!”

         

       “끄으으으윽-!”

         

       “어, 어무니…!”

         

       비명이 난무한다.

       분명 고통스러운 동작이긴 했지만, 신체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생도들이 아파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허나 지금은 평소의 컨디션이 아니다.

       그도 그럴게.

         

       “아직 ‘7시간’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더 힘내십시오!”

         

       -아, 아아악!!

         

       ……7시간, 그들은 이 짓을 벌써 7시간 동안 하고 있기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

       *

       *

       

       이틀 전 새벽녘.

       아침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어둠이 만연한 연무장에는 검술학부 생도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가 모인 것은 아니다.

         

       전날 이한이 소집명령을 내민 건 새싹 생도들밖에 없었으니까.

         

       …굳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모인 건.

         

       “쿤타, 재밌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도 온 걸 보면 도련님도 욕심이 참 많아. 당신도 그렇고.”

       “이놈! 주군에게 무슨 무례한…!”

       “당신이 아닌 로엔이라 불러라.”

       “!!?”

         

       이한이 격이 다르다고 여긴 네 사람을 비롯해, 기사보단 암살자가 어울리는 놈 하나.

       그리고….

         

       “나, 난 왜….”

         

       서류작업을 끝내고 꿀맛 같은 숙면을 취하던 조교는 강제로 여기 끌려 나온 것이 심히 억울하여 울상을 지었다.

         

       “모두 모였군.”

         

       그러한 상황에서 드디어 이 모든 이들을 모은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흠, 도망간 인원은 없는 것 같고, 응? 너희도 나온 거냐?”

         

       로엔을 비롯한 이들.

       도련님들과 병아리들은 굳이 안 나와도 된다고 했는데, 왜 나온 걸까?

         

       대답은 가란드에게서 나왔다.

         

       “이번 ‘특별 집중훈련’에서 교관 나리가 [경]을 제대로 가르쳐준다고 했지 않수, 그러니 무조건 나와야지.”

       “…너흰 그냥 나중에 배워도 될 텐데?”

         

       너희 재능이면 언제든 배울 수 있는 것을 굳이 이렇게?

       그러한 의문 섞인 표정이었으나 그들은 진지했다.

         

       “배울 수는 있겠죠. 다만 특별취급당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들은 마냥 재능이 있다고 하여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럴 거였으면 가문이나 스승이 있는 고향에 돌아갔지.

         

       제법 의지가 굳건한 그들이었고, 이한은 고개를 긁적였다.

         

       “…흠, 안 그래도 일손이 필요하긴 했는데, 다행이네.”

         

       절로 굴러온 일손은 철저히 써먹어야하지 않겠는가.

       이한이 내심 만족감을 느끼고 있을 때.

         

       “자, 잠깐만요! 저, 저희도 왔어요!”

       “…아, 안녕하세요, 교관님.”

         

       “……너희는 또 왜?”

         

       왜 오지 말라는 인원이 더 오는 걸까?

         

       아이린 윈들러와 1번 병아리, 아니 레비 폴트가 가벼운 운동복을 입은 채 생도들 사이에 섞였고. 이한은 눈을 끔뻑거렸다.

         

       “으음, 먼저 2번 병아리한테 묻겠다만, 왜 온 거지?”

       “…어쨌든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아서요.”

       “흠, 기특하긴 하군.”

         

       아이린 윈들러의 발언은 타당했다.

       본의는 아니지만,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본의가 아니더라도 그녀 때문이 맞았으니까.

       역시 로판 빙의자.

       가만히 있어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요주의 인물답다.

         

       그러나 책임감은 있기에 그녀는 ‘나올 사람은 나와도 된다. 다만 잘못되면 1년 정도 정양해야 할 수도 있으니 가능하면 오지 마라’라는 이한의 살벌한 경고마저 이겨내고 나온 것이다.

         

       아이린 윈들러는 각오를 굳힌 얼굴로…!

         

       “그래서, 본심은?”

       “본인이 28세라고 주장하는 마법사 교수님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요. 좀 운동이나 할까 하는데, 아무래도 혼자서 하면 의욕이 안 생겨서, …헤헤.”

       “…솔직해서 좋다.”

         

       역시 마냥 기특한 건 아니구먼.

         

       [아린아, 난 너의 그런 초지일관한 면이 이제 창피하지도 않아.]

         

       ‘…나도 이제 내 뻔뻔함이 무섭긴 해.’

         

       오묘한 표정을 짓는 아이린에게 시선을 치우고 이한의 시선은 물결 빛 머리칼이 잘 어울리는 소녀 레비 폴트에게 옮겨갔다.

         

       “1번 병아리는 왜 여기 있는 거지? 2번 병아리한테 끌려 왔나?”

         

       솔직히 아이린 윈들러가 온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지만, 저 애는 왜 여기까지 온 걸까.

         

       “그, 그게 아이린 영애의 권유가 있었다는 걸 부정하진 못하겠지만…. 저, 저도 관심이 있어서….”

       “…흠.”

         

       이제 생각하는 건데, 레비 폴트란 귀족 영애는 다른 영애들 중에서도 가장 열정이 많았던 것 같다.

       성장하고자 하는 열정이 말이다.

         

       ‘이런 경우도 있군.’

         

       이한은 어쩌면 레비 폴트가 아이린 윈들러와 무슨 관계가 있던 여인이 아닐까 싶었다.

       이 세상이 정말 로맨스 판타지나 회귀물 같은 장르라고 쳤을 때, 주연 말고도 주조연도 있었을 터.

       그리고 주조연이란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개성과 사정, 목표 등이 확고하기 마련.

       그녀도 혹시 그런 것이 아닐까….

         

       ‘…헛생각이지.’

         

       이한은 고개를 털었다.

       괜한 생각이고, 오해다.

       가르침을 받고 싶은 생도가, 아니 제자가 있다.

       그러면 그걸 가르쳐줘야 하는 게 본디 스승의 의무란 것.

         

       그녀가 주조연이건 뭐건 관계없다.

       지금은 그저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은 제자에 불과하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에게 있어 이 세상이 ‘현실’이고, 조연 따윈 없으니까.

         

       하니.

         

       “성장고자 하는 사람을 본 교관은 항상 환영한다, 병아리 1번, 아니 레비 폴트.”

       “아!”

       “다만 특별 취급은 해줄 수 없다. 그러니 각오는 단단히 하도록.”

       “네, 네에!”

         

       레비 폴트가 기쁜 얼굴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고, 이한은 흐뭇해하며.

         

       “-짐 싸.”

       “…네에?”

       “행군부터 해야 하거든. 일단 가볍게 30km다.”

       “…….”

       “참고로 완전군장이다. 짐 무게가 10kg는 넘어야 한다. 그래도 넌 아직 체력이 적으니, 8kg로 봐주마.”

       “…….”

         

       …레비 폴트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 * *

         

       행군.

       단순히 말하자면 군인들이 무리지어 이동하는 행위지만, 군인이 내건 정의는 좀 남다르다.

         

       ‘전투력을 유지한 채로 걷는 행위’

       -이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 터.

         

       그렇기에 행군을 할 때 병력은 많은 짐을 들고 이동한다.

       식량과 무기, 의복과 기타 물량 등.

       그밖에 모든 걸 짊어진 채 군인들은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 이동 속도가 느리다. 지금부터 경보가 아니라 속보로 움직인다! 알겠나! 굼벵이처럼 걷지 말고 빠르게 걸으란 말이다!!”

         

       …빌어먹게 힘든 구보라 보면 되었다.

         

       “허, 허어어억! 허억…!”

         

       생도들 모두가 숨을 헐떡였다.

       묵직한 철검은 물론이요, 갑옷을 입은 채 움직이고 있다.

       거기다 추가적인 무장과 식량, 침낭 등을 가지고 움직이니 죽을 맛도 이런 죽을 맛이 없다.

         

       그나마 생도용 갑옷이 가벼워서 다행이지, 그런 게 아니었다면 진즉 정신을 놨으리라.

         

       분명 걸었을 때만 해도 깜깜한 새벽이었는데, 이제 해가 뜨기 시작하며 점차 열기가 오른다.

         

       수십 키로의 짐을 든 채 30km를 걷는 행위가 얼마나 괴로운지 실감하는 순간.

       그들은 죽을 맛이었다.

         

       “힘들면 쿤타가, 들어준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쿤타!”

       “많이 지쳐 보인다?”

       “…실제로 그렇군요. 그, 그보다 쿤타는 괜찮은 겁니까? 짐이 저희보다 더욱 많은데.”

       “아직 가볍다. 그래도 땀은 좀 난다.”

       “……하하.”

         

       그들보다 더욱 많은 짊을 진 쿤타였으나, 그는 여전히 멀쩡했다.

       쿤타의 배낭 위에는 거대한 상자 두 개가 쌓여 있었고, 그 상자 안에 대량의 식량이 들어있다는 걸 생각하면 다리가 오들오들 떨린다.

         

       신비종족 바바리안.

       그들이 가진 [신비]는 불굴의 체력과 정신력이라고 하더니.

         

       그걸 실제로 목도하니 아연실색해질 따름.

       존경심마저 든다.

         

       ‘나, 나도…!’

         

       그러나 저러한 신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게으름을 보인 적 없는 쿤타였다.

         

       새싹 생도는 자신도 힘을 내보자며 힘차게….

         

       쿵쿵!!

         

       “생도, 괜찮나? 호흡 조절을 잘 못하는군.”

       “…….”

       “응? 왜 그러지?”

       “…교관님, 지금 끌고 가시는 게 뭡니까?”

       “응? 옥수수가루와 감자 포대다만?”

       “그, 그걸 왜….”

       “생도들이 한 달 동안 먹어야 할 식량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쿤타 생도가 든 것 정도론 턱도 없지.”

       “…….”

         

       …지금 그걸 묻고 있는 게 아닌데요?

         

       생도는 기가 찼다.

         

       수십 키로 배낭도 배낭이지만, 옥수수가루와 감자가 수십 포대 쌓인 수레를 혼자 운반하는 교관을 보고 있자니 아찔한 것이다.

         

       뭐지 저거?

       

       …무서워.

         

       “…교관님, 새삼스럽게 묻는 거지만, 진짜 인간이십니까?”

       “하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만 걱정 마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다. 그리고 생도도 이번 유격, 아니 특별 집중 훈련이 끝나면 나처럼 될 수 있을 거다.”

       “…….”

         

       ……안 될 것 같은데.

         

       생도는 이러한 속내를 삼켰다.

         

       그때.

         

       “아, 드디어 보이는군.”

       “네에?”

       “저기만 오르면 이제 훈련장에 도착한다.”

       “어딜 말씀하시는 건지….”

       “저기 말이다. 눈이 좀 덜 녹은 산봉우리 보이지? 저길 오르면 된다.”

       “……네에?”

       “하하, 간만에 가벼운 등산 좀 한다고 생각해라.”

       “…….”

         

       교관이 해발고도 1,384m의 산을 가리켰고, 그들은 침묵했다.

         

       …지금이라도 자퇴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은 진지한 고민과 함께.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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