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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이전에 기사단의 사람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할 때랑 비교하면 거의 산책하듯이 움직인 거였는데 그래도 빡셌나?

   

   포셀과 함께 하는 던전 공략은 장난이 아니었다.

   

   에반스의 던전이 아무리 중소규모라고는 해도 5층짜리인데 그걸 2시간 만에 주파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전투를 할 때 빼고는 죽어라고 달려야 했었지.

   

   <기사놈들이랑 이 녀석들을 비교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으냐?>

   ‘저랑 비교해도 한참은 모자란데요.’

   

   그 근거로 지금 나는 혼자 전위를 맡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숨 하나 차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땀도 거의 흐르지 않았다.

   

   <내가 사람을 보는 기준이 꽤 높은 편이다만 이 경우에 이상한 건 너지 저들이 아니다.>

   ‘그런가요?’

   

   할배의 말은 내게 잘 와 닿지 않았다.

   

   내가 지난 세 달 동안 기사들도 대단하다 이야기할 만큼 힘든 훈련을 거듭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봐야 세 달이다.

   

   아무리 내게 게임 속의 지식이 있고 그를 이용해 최대한 효율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을 리가.

   

   아. 내가 저 두 사람보다 레벨이 높아서 그런 건가?

   

   그렇겠다. 조이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던전에 들어간 적 없는 사람이니까.

   

   제이콥도 움직이는 게 조이보다 얼빵한 걸 보면 던전이 생소한 것 같고.

   

   레벨1과 레벨 10의 차이는 크지.

   

   알른 가문의 기사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내가 레벨이 더 높을 수 있겠단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좀 쉬다 가야겠죠?’

   <그럼 이대로 강행을 할 생각이었느냐? 보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는데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기록을 더 줄일 거 아닙니까.

   

   어차피 전위에서 구르는 건 나 혼자니까 다른 두 사람은 뒤에서 지원만 해주면 되잖아요.

   

   숨이 좀 벅차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지 않나요?

   

   <적어도 숨을 고를 시간 정도는 줘라. 내가 던전을 공략할 적에도 이런 식으로 하진 않았다.>

   

   게임이 현실이 되니까 이런 부분이 불편하긴 하네.

   

   게임 속의 캐릭터들은 아무리 굴려대도 불평 한 번 한 적이 없었는데.

   

   “조금 쉬다 가죠.”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조이와 제이콥이 무너지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평소 공작영애다운 몸가짐을 하고 다니는 조이가 품위고 기품이고 다 내다 버리고 드러눕는 것을 보면 많이 힘들긴 했나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제이콥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수통을 꺼내 물을 몇 모금 마신 후 내 쪽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알른 영애께서는 어찌 그리 체력이 좋으십니까?”

   

   ‘단련했으니까요.’

   “너 같은 허접 조무래기랑은 다르게 열심히 단련을 했거든. 너처럼 게을러빠진 허접보다 못할 리가 없잖아?”

   

   “저도 나름대로 단련을 해왔습니다만…”

   

   던전에 들어가서 레벨링을 했어야지.

   

   아무리 열심히 단련을 해도 레벨이 낮으면 한계가 있으니까.

   

   “대체 어떤 식으로 단련을 한 건지 궁금하네요. 망나니 영애.”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건지 조이가 벽에 기댄 채로 말을 꺼냈다.

   

   어떤 식으로 단련을 했냐고?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딱히 숨길만한 내용도 아니고.

   

   내가 평소에 하는 훈련의 루틴을 읊어주자 처음엔 평범하던 두 사람의 표정이 점차 질려가는 게 보였다.

   

   “진짜 그런 식으로 한다고요?”

   

   ‘네. 거짓말 아니에요.’

   “얼빵영애. 당신의 허접한 체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해서 의심하면 곤란해요.”

   

   “진짜로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다 훈련만 했다고요?!”

   

   그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가문의 기사들에 비하면 난 편하게 사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꼴에 백작영애인지라 포셀이 많이 배려를 해줬거든.

   

   기사들이 훈련하는 건 내가 보기에도 살벌한 수준이었다.

   

   신체의 능력이 인외 수준이라면 인외 수준의 훈련을 하면 되지 않겠냐는 말을 포셀은 현실로 만들어 냈으니까.

   

   “그래서 이만큼이나 강해질 수 있었던 거군요.”

   

   조이는 질린다는 듯이 나를 보다가 자신의 스태프를 지팡이 삼아서 몸을 일으켰다.

   

   ‘체력은 회복되셨나요?’

   “이제 걸음마는 뗄 수 있나요? 얼빵영애?”

   

   “그래요.”

   

   ‘제이콥은요?’

   “거기 조무래기는?”

   

   “저도 괜찮습니다.”

   

   ‘그럼 갑시다. 보스룸으로.’

   “그럼 가죠. 골동품들의 보스도 똑같이 낡아빠졌을 테니 빠르게 처리하자고요.”

   

   보스룸의 문을 여니 텅 비어 있는 방의 한 가운데에 거대한 인간형의 골렘 하나가 서 있었다.

   

   그 덩치는 가히 포셀에 비견이 될 정도였으며 이전에 만났던 골렘들과는 다르게 낡았지만 제대로 된 갑옷도 입고 있었다.

   

   손에 들린 것은 검이라기보다는 둔기라 부르는 게 옳을 정도로 묵직한 질량을 지닌 대검.

   

   저 골렘이 어느 정도 힘을 지녔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무작정 방패로 받아냈다간 방패채로 박살이 날 것 같네.

   

   골렘은 동상 마냥 한 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다 우리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붉게 물들이면서 검을 치켜들었다.

   

   ‘먼저 갈게요.’

   “먼저 갈 테니까 알아서 지원해요.”

   

   아직까지 나는 전투를 수행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지시를 해줄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눈앞의 적이 허접하다면 여유를 부릴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전력을 다해야하는 상대일 때는 적에게 집중하는 것이 한계다.

   

   그래도 이전의 전투에서 조이가 눈치껏 지원을 해주었던 걸 보면 이번에도 알아서 잘 해주겠지.

   

   “거기 낡아빠진 기사♡ 왜 안 덤비는 거야? 설마 이런 자그마한 여자애한테 겁을 먹은 거야?♡ 겁 많은 골렘이라니♡ 웃기네♡”

   

   도발을 걸자마자 골렘의 투구 속에서 붉은 빛의 안광이 새나오더니 골렘의 육중한 몸이 내게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을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대지를 진동시키는 것이 저 골렘이 지닌 힘을 알려주는 듯 했지만 난 그를 보면서도 여유로웠다.

   

   포셀과 비슷한 덩치인데 그 속도는 포셀과 비교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다.

   

   저 정도라면 도망을 치며 움직임만으로도 가지고 놀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승리보단 빠른 승리가 필요한 순간.

   

   나는 방패를 치켜든 채 골렘 쪽으로 뛰어 들었다.

   

   나의 움직임을 본 골렘이 검을 위로 치켜든다.

   

   <막지마라. 피해라.>

   ‘저도 알거든요. 할아버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저런 느려터진 공격을 받아 주겠는가.

   

   이는 포셀에게도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였다.

   

   피할 수 있는 공격이라면 방패를 들 이유가 없다고.

   

   방패로 막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것이니 회피함으로써 주도권을 쥐라고.

   

   대검이 내리 찍히는 순간 옆으로 뛰듯이 움직이며 검을 피했다.

   

   콰앙!

   

   거대한 질량이 땅을 내리 찍으며 바닥을 부수고 먼지를 일으켰다.

   

   위력은 나쁘지 않네. 그래봐야 포셀하고 비교하면 잔챙이 수준이지만.

   

   저 느려터진 놈의 어디부터 박살을 내볼까 고민하던 중 화염이 날아와 골렘의 머리에 착탄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조이의 지원인가.

   

   빠르고 정확하다.

   

   거기에 더해 골렘이 움직임을 멈춘 순간을 노린 것도 좋았다.

   

   역시 성능캐인가. 체력은 좀 떨어져도 마법의 재능은 확실하네.

   

   그렇지만 아직은 서툴러.

   

   지금은 화염계 마법이 아니라 다른 걸 준비했어야지.

   

   이 골렘이 아무리 낡았다지만 그래도 화염구가 먹힐 상대는 아니잖아.

   

   폭발의 여파로 일어난 연기가 걷히자 약간 그을렸을 뿐 멀쩡한 골렘의 투구가 드러났다.

   

   ‘조이님! 화염 마법은 쓰면 안 돼요!’

   “얼빵영애! 머리가 안 굴러가요?! 마법 시험을 다 찍은 저보다 멍청하면 어쩌잔 거에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하던 대로 해주세요!’

   “아까 하던 것처럼 얼음 마법으로 이 골동품의 움직임이나 막아요!”

   

   안 그래도 느려터진 골렘이다.

   

   여기에 조이의 마법으로 디버프가 걸린다면 이 녀석은 생긴 것만 그럴 듯한 샌드백이 되어버릴 터.

   

   공격은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

   

   “알겠어요! 잠시 기다려 주세요!”

   

   조이의 대답을 들으며 다시 한 번 내리쳐지는 검을 피하면서 골렘의 허벅지를 메이스로 후려 쳐 보았다.

   

   단단하긴 하지만 부수지 못할 건 아냐.

   

   내가 시선을 끄는 동안 골렘의 근처까지 달려 온 제이콥이 뒤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의 일격은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상성이 좋지 못했다.

   

   이런 딱딱한 녀석을 상대하는 데 검은 최악의 무기니까.

   

   제이콥의 검이 튕겨나감과 동시에 골렘의 시선이 돌아갔다.

   

   “야. 허접 기사. 어딜 보는 거야.”

   

   네 상대가 바로 앞에 있는데 다른 곳에 시선을 팔 틈이 있어?

   

   기사처럼 생겼으면서 실은 기사도도 모르는 바람둥이였던 거야?

   

   “설마 남자가 취향이었던 거야?♡ 이런. 미안해라♡ 나같은 꼬맹이가 상대라 실망스러웠겠네♡”

   

   다시금 골렘의 붉은 안광이 나를 향한다.

   

   그래. 날 봐야지.

   

   네 적은 바로 나라고.

   

   이후의 전투는 골렘의 체력을 깎는 노가다나 다름없었다.

   

   조이의 마법으로 디버프를 걸고, 내가 시선을 끌면서 공격을 하고 거기에 제이콥이 이쑤시개마냥 데미지를 더하는 식이었다.

   

   긴장감은 없었다.

   

   원래 긴장이라는 것은 위기가 있어야 생기는 것이거늘 기사의 형상을 한 골렘은 우리에게 아무런 위기조차 주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전투를 이어가던 중 내 메이스가 골렘의 허벅지를 박살냈고 그 후로는 발악하는 골렘을 제압하는 것이면 충분했다.

   

   “이걸로 끝인가요?”

   

   골렘의 핵이 박살이 나는 것을 본 조이가 의뭉스럽다는 듯 그리 물었다.

   

   ‘네. 그럴 걸요?’

   “그럴 거에요. 뭔가 이상한가요. 얼빵영애?”

   

   “아뇨. 보스전이라고 해서 긴장했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나서요.”

   

   허무하긴 했지.

   

   그렇지만 보스전에서는 허무한 게 좋다.

   

   이게 게임도 아니고 아슬아슬한 전투를 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

   

   현실의 전투는 노잼인 게 최고야.

   

   “이제 돌아가면 되는 거죠?”

   

   ‘네.’

   “그렇죠.”

   

   “근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요?”

   

   어디로라니?

   

   던전을 공략했으면 문이.

   

   왜 없지?

   

   이상한 일이다.

   

   분명 ‘연금술사가 머물던 곳’의 보스는 방금 전 기사 모양을 한 골렘이 맞다.

   

   그걸 처리하면 다른 던전처럼 바깥으로 나오는 문이 나오고 그걸로 시험이 끝나야 한다.

   

   내가 입학시험은 몰라도 다른 실기시험은 많이 쳐봤다고.

   

   시험은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됐는데 왜 문이 나타나질 않는 거지?

   

   ‘제이콥…’

   “이봐. 조무래기. 너 바깥이랑 연락할 수 있는 마도구 들고 있지?”

   

   “네. 면접관분께 받은 게 있는데요. 이게…”

   

   제이콥이 말 끝을 흐리는 게 불안했다.

   

   ‘빨리 말해요.’

   “짜증나니까 말 끝 흐리지 마.”

   

   “죄송합니다! 이게 고장이 난 건지 발동이 안 됩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제이콥의 손에 들린 마도구를 가로채듯이 가져와선 그를 발동시켜보려 했지만 안 됐다.

   

   완전히 먹통이었다.

   

   “알른 영애.”

   

   조이의 목소리의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이전에 면접관이 준 던전에서 탈출하기 위한 마도구를 들고 있었다.

   

   “이것도 안 돼요.”

   

   …우연. 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럴 리는 없다.

   

   소울 아카데미 측에서 저게 고장났는지 아닌지를 확인하지 않고 줄 리도 없고,

   

   설령 이 안에서 우연히 고장났다 해도 두 개가 같이 고장나는 건 이상하다.

   

   거기에 더해 던전 바깥으로 나가는 문까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인데 이게 우연이라고?

   

   그럴 리가 있나.

   

   하나는 우연일 지언정 우연이 겹치고 겹치면 필연이 된다.

   

   지금 이 상황은 필연이었다.

   

   점차 머리가 혼란스러워 지던 중 내 앞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아그라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

   

   씨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2천 돌파! 많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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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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