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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존나 머네 진짜. 미친 거 아니냐? 무슨 나라 횡단도 아니고, 섬서 안에서만 움직이는데 뭔 놈의 시간이 이렇게 걸려?”

    

    서준이 투덜대는 소리에 춘봉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니가 이상한 짓만 안 했어도 시간이 절반은 줄었겠다.”

    “이상한 짓이라니! 내가 뭘!”

    “몰라서 물어보는 거냐? 하루 내내 얘기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너도 즐겼잖아!”

    “재밌긴 했지.”

   

    다른 이상한 짓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들르는 도시마다 다닌 먹거리 탐방은 아주 즐거웠다.

   

    쩝…, 춘봉이 입맛을 다셨다.

   

    “맛있었지. 빙탕호로. 찹쌀떡으로 빙탕호로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그 사람은 천재일 거야.”

    “그게 맛있냐 진짜? 난 너무 달아서 못 먹겠던데.”

    “맛도 모르는 놈.”

   

    어이가 없네 진짜.

   

    서준이 이마를 탁 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사람 진짜 많네.”

    “시기가 시기잖아. 애초에 화음현은 원래 사람이 많기도 하고.”

    “화 나는데?”

    “왜 또 이 미친놈아.”

    “사람이 너무 많아.”

   

    바글바글한 인파에 한숨을 내쉰 서준이 춘봉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가랏! 이기어춘봉!”

    “으앗!?”

   

    슈융-, 내던져진 춘봉이 하늘을 날았다.

   

    곧장 따라 뛴 서준이 공중에서 춘봉을 잡아채 건물 지붕에 내려앉았다.

   

    “길은 내가 만드는 것.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또 지랄병이지, 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춘봉이 이마에 손을 대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나저나 이거 묵을 데가 없는 건 아니겠지?”

    “없으면 노숙이지.”

    “켁. 싫어.”

   

    대충 객잔 비스무리한 건물을 발견한 춘봉이 눈을 빛냈다.

   

    “야! 저기로 가보자!”

   

    그렇게 지붕 위에서 경공을 쓰며 객잔으로 향하는데, 문득 사내 하나가 거리에서 부웅 뛰어올라 그들을 막아섰다.

   

    “여러분, 평상시에 경공으로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행위는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푸른 도복을 입은 사내였다. 기다란 소매에 작게 새겨진 매화 무늬를 본 서준이 춘봉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화산?”

    “어.”

   

    작게 대답한 춘봉이 어색하게 웃으며 포권했다.

   

    “미안해요. 잠시 깜빡했네요.”

    “괜찮습니다. 큰일도 아닌 것을요.”

   

    빙긋 미소 지은 사내는 이내 홀연히 떠나갔다.

   

    사내의 발놀림을 유심히 보던 서준이 작게 감탄했다.

   

    “족고수네.”

    “너 씨발 설마…. 아니다.”

    “왜! 뭐!”

    “경공 잘 쓴다고 족足고수라 한 거 아니지?”

    “그건 진짜 아닌데? 아무리 나라도 그건 좀….”

   

    서준이 질색하자 춘봉이 머쓱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괜히 툴툴거리며 지붕 위에서 뛰어내려 가도로 내려섰다.

   

    “너 때문에 혼났잖아.”

    “궤에엥.”

    “에휴.”

   

    춘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이 낄낄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빨리 가보자. 자리 뺏길라.”

   

   

    *

   

   

    다행히 방이 부족하진 않았다.

   

    객잔 주인이 서준과 춘봉을 훑어보며 물었다.

   

    “방은 하나? 둘?”

    “음…. 어쩔래?”

   

    서준이 춘봉을 바라보자 그녀가 주인에게 답했다.

   

    “하나.”

    “이 인실에…, 식사는?”

    “필요없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춘봉이 값을 치르고 열쇠를 받아들었다.

   

    “짐 두고 빨리 나가자. 나 배고파.”

    “너 그러다 돼지 된다?”

    “시끄러. 언제는 많이 먹으라며?”

    “깨달았어. 넌 먹어도 볼살은 죽어도 안 찌더라.”

    “지랄.”

   

    방에 짐을 두고 적당한 식당에서 식사까지 마친 두 사람은 거리를 걸으며 빙탕호로를 하나씩 입에 물었다.

   

    “금 씨, 비무 대회 접수는 언제래?”

    “다음주.”

    “우리 그럼 그때까지 뭐 해?”

    “나도 모르는데? 구경이나 하지, 뭐.”

    “구경?”

   

    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경할 만한 게 있으려나?

   

    하긴. 이만한 도시에 뭐가 없지는 않겠지.

   

    “아, 혹시 화산파도 구경할 수 있나?”

    “개방된 구역은 외부인도 들어갈 수 있어.”

    “오, 그럼 내일 화산파 구경이나 갈까?”

    “음….”

   

    고민하던 춘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면사라도 쓰고 가면 문제 없겠지.”

    “면사? 아.”

   

    생각해보니 그 화산파 아닌가. 춘봉이 아닌 금희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다. 화산파야 뭐 나중에 또 가볼 일이 있겠지.”

    “진짜 괜찮다니까? 어차피 우리 집 사람들은 알아도 날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집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어서.”

    “뭣. 이 자식, 집순이였구만?”

    “우리 아빠가 과보호였던 거지.”

   

    춘봉이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축 가라앉는 듯한 표정에, 냅다 춘봉이를 안아든 서준이 우다다 거리를 달렸다.

   

    “가자, 금춘봉! 오늘 면사 오천 개 사줄게!”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 등신아.”

    “야호!”

    “아 좀! 다 쳐다보잖아!”

   

    면사는 두 개만 샀다.

   

   

    *

   

   

    객잔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홀린 듯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배를 채우고 온 터라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이 분위기에서 뭐라도 하나 먹고 싶었다.

   

    “뭐 간단하게 먹을 거 없나? 술이랑 같이 먹으면 죽이겠네.”

    “술? 마셔.”

    “에이, 안 되지. 너는 다 클 때까지 음주 금지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어허! 이 오빠는 허락 못 해요!”

   

    식탁을 내리치자 춘봉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때마침 점소이가 옆을 지나가길래 서준이 그를 불러세웠다.

   

    “점소이! 여기 까르보나라 하나!”

    “예…? 까르…? 그런 음식은 없습니다만….”

    “허어, 근본이 없네.”

   

    고민하던 서준이 춘봉에게 물었다.

   

    “소면으로 괜찮아?”

    “엉. 하나 시켜서 나눠먹자.”

    “그래도 되나?”

   

    슬쩍 점소이를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 없습니다요.”

    “그럼 그렇게 주세요.”

    “예입.”

   

    점소이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고, 서준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무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치고, 그 다음에는 어떡하지?’

   

    품에 손을 넣자 작은 나무패가 만져진다. 홍월루의 매월이 준 그 패다.

   

    하오문에서 영약이 있을 만한 곳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돌연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이 나를 무시해!?”

    “무시는 그쪽이 했겠지! 창이 뭐 어쩌고 어째?”

    “허! 당연한 말 아닌가? 만병지왕은 검! 다른 무기들은 검보다 못한 것이 당연하지!”

    “오냐 좋다! 이 자리에서 증명해봐라!”

   

    한 사내가 대뜸 벽에 기대어놓은 창을 집어들었다. 그 사내와 다투던 이 역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무인이 아닌 이들은 급히 자리를 피했지만, 비무 대회가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자리에 남은 무인들이 꽤 많았다.

   

    그들 중 하나가 창을 든 사내를 알아보았다.

   

    “어어? 저거 쾌진창快進槍 남수혁 아니오?”

    “다른 쪽은 독안무정검獨眼無情劍 엄가도로군.”

   

    아무래도 나름 이름이 있는 무인들인 것 같았다.

   

    서준이 신기한 듯 그쪽을 바라보며 툭툭 식탁을 두드렸다.

   

    “이야, 근데 저러고 있으면 우리 소면이 나오긴 하려나?”

    “나오겠냐? 점소이가 고수면 나오긴 하겠네.”

    “그럴 리는 없겠지?”

    “혹시 모르잖아. 반박귀진을 이룬 고수일지 어떻게 알아.”

    “춘봉아.”

    “응?”

    “너도 솔직히 헛소리라 생각하지.”

    “응.”

   

    고개를 끄덕이는 춘봉이. 서준이 한숨을 내쉬며 무기를 부딪히는 두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오 저 개새끼들.”

   

    혀를 찬 서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갔다 올게.”

    “다치지 말고.”

    “쟤네한테? 내가?”

   

    서준이 낄낄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검과 창이 살벌하게 부딪히며 불똥을 토해낸다.

   

    나름 자중은 하는지 내공을 적극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서준이 보기에는 그것도 곧이었다.

   

    “이놈이…!”

   

    독안무정검의 한 쪽밖에 없는 눈에서 푸른 광망이 흘러나왔다.

   

    쾌진창에게 실력으로 밀리자 검기를 꺼내든 것이다.

    

    “정신이 나갔구나!”

   

    쾌진창 역시 창끝에 녹빛의 창기를 덧씌웠다. 

   

    안 그래도 주변 식탁들이 죄다 박살났는데, 이제는 아예 객잔이 무너지게 생겼다.

   

    “와, 좆밥싸움이다!”

   

    그런 그들의 사이에 끼어든 서준이 히죽 웃었다.

   

    “좀 더 해봐요. 왜. 나도 구경 좀 합시다.”

    “넌 뭐냐!”

   

    독안무정검이 이를 갈며 서준을 노려보았다. 서준도 지지 않고 독안무정검을 노려보았다.

   

    “혹시 눈이 하나라 잘 안 보여요? 내 소면이 씨발! 어? 그쪽들 때문에 나올 생각을 안 하잖아! 면 불면 책임질 거야!?”

    “이런 미친놈을 봤나!”

   

    화를 못 이긴 독안무정검이 달려들었다. 서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따앙-!

   

    지탄을 막아낸 독안무정검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고수…!”

    “넌 하수!”

   

    어느새 접근한 서준이 독안무정검의 명치를 후려쳤다.

   

    “우웨엑…!”

   

    독안무정검이 무릎을 꿇었다. 아주 좋은 각도다.

   

    “얌전해져라!”

   

    쿵-! 머리에 꿀밤이 떨어지자 독안무정검이 새근새근 잠들었다.

   

    “다음은 그쪽이죠?”

    “…난 싸울 마음 없소.”

    “내가 있는데요.”

   

    성큼성큼 다가간 서준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쾌진창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살살 부탁드리오.”

    “옙.”

   

    쿵-! 꿀밤을 맞은 쾌진창이 독안무정검의 옆에 사이좋게 누웠다.

   

    “갚았다. 내 소면의 원수.”

   

    서준이 주먹을 치켜들자 주변의 무인들이 박수를 쳤다.

   

    “훌륭하군!”

    “멋진 솜씨였소!”

   

    역시 무인이라는 족속들은 대부분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서준이 객잔 안쪽으로 소리쳤다.

   

    “이제 제 소면 나오는 거죠?”

    “예, 옙!”

   

    그러면 됐다.

   

    서준이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려 걸음을 옮겼다.

   

    “또 보는군요, 도우.”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에 서준의 걸음이 멎었다.

   

    객잔 입구, 아까 봤던 화산파의 무인이 서있었다.

   

    “아, 네. 무슨 일이에요?”

    “싸움이 일어났다기에 말리러 왔습니다. 화음현의 치안은 화산파의 관할이니 말이지요.”

    “아하.”

   

    그럼 이 친구들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여기서 싸움을 해댄 거지?

   

    문득 궁금해졌으나, 금세 납득했다.

   

    ‘그냥 멍청한 놈들이었나 보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사내가 다가왔다.

   

    “그러니 잠시 따라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별일은 없을 겁니다.”

    “넹? 저요? 저는 싸움 안 했는데요?”

   

    사내의 시선이 쓰러진 두 사람에게 향했다가 다시 서준에게로 돌아왔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했네.”

    “그러면….”

    “잠시만요.”

   

    그때, 무인들 틈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립을 푹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그녀가 여인임을 몰라볼 것 같진 않았다. 

   

    ‘오, 머리가 세 개네.’

   

    서준이 반사적으로 검에 손을 가져갔다.

   

    여인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을 이었다.

   

    “이분은 싸움을 말린 것 뿐이에요.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쯤 객잔이 죄다 부서졌을 걸요?”

    “아, 남….”

    “쉿. 제 신분은 비밀이래도요.”

   

    죽립 밑으로 드러난 그녀의 입가가 곱게 휘어졌다.

   

    “아무튼 제 얼굴을 봐서라도 조용히 넘어가주시겠어요?”

    “음…. 알겠습니다, 소저. 저분께서 싸움을 말리셨다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어색하게 웃은 사내가 서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뭘.”

    “너그럽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우.”

    “흠.”

    “왜 그러십니까?”

    “도우 도우 하니까 피자가 먹고 싶어져서요.”

    “아…. 화음현에서 피자는 구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만.”

    “아이고 이런.”

   

    이마를 탁 친 서준이 가슴이 머리통만 한 여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녜요. 아까부터 동생 분이 귀여워서 자꾸 눈이 가더라고요.”

    “오호. 뭘 좀 아는 분이시네. 우리 춘봉이가 또 세상에서 제일 귀엽긴 하죠.”

    “우후후, 그런ㄱ….”

    “아, 소면 나왔다. 가볼게요.”

   

    소면은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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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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