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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감정을 그렇게나 쏟아 내면 적어도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덴하르츠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파혼 자리에 마주한 그녀는 자신을 보고 그리 말했다.

   당시의 그 말을 듣고, 크라슈는 어이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게 뭔 개소리야? 차라리 이딴 감정 없는 게 낫지. 있으면 얼마나 개떡 같은 줄 알아?」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출할 수 있으면 뭘 하나.

   이 세상이 거지 같다고 욕하는 것 말고는 써먹을 때가 없는데 말이다.

     

   「그런가요.」

   「그런가요는 개뿔이.」

     

   크라슈는 혀를 찼다.

   그러곤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앙카를 바라보았다.

     

   「너야말로 편하지 않냐? 이번 파혼 자리, 내가 봐도 부당해. 네 가문에서의 사건은 너 때문도 아닌데 말이야. 나라면 화딱지 나서 뒤졌다.」

     

   얼마 전 하덴하르츠에서 있었던 사건.

   그 사건은 하덴하르츠의 가주 더글라칸 하덴하르츠가 미쳐 버린 사건이었다.

     

   그는 갑자기 미쳐 버려 가문의 식솔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인 후.

   가문의 장남과 둘째인 제니카까지 제 손으로 죽였다.

     

   그 속에서 생존자는 비앙카 단 한 명.

   그녀가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누이인 제니카가 그녀를 지하에 숨겨준 뒤 시선을 끈 덕분이었다.

     

   그런 일을 겪고, 이어진 것은 파혼.

   발하임 입장에서는 망가진 하덴하르츠의 비앙카를 받아 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썩을 놈의 가문 놈들. 약혼이다 뭐다 세상 연은 다 쌓은 것처럼 해놓고 일 터지면 이 꼴이지.」

     

   그 일은 크라슈가 보기에도 짜증 났다.

   애초에 더글라칸이 미쳐 버렸다는 것도 미심쩍은 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발하임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하덴하르츠가 망했으니 비앙카를 잘라낸 것이었다.

   비앙카는 뜨거운 홍차가 든 찻잔을 천천히 매만졌다.

     

   「마시고 싶으면 마셔.」

     

   비앙카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뜨거운 건 못 마셔서요. 고양이 혀거든요.」

     

   그랬나.

   비앙카에게 원체 관심 없었던 크라슈는 그러려니 했다.

     

   「……그렇다면 어떤가요. 제가 감정을 얻고, 직접 체감해 보면 뭐가 더 괴로운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순간 비앙카가 역으로 제안을 해왔다.

   어이없는 제안이었다.

     

   「너 거기서 감정 되찾으면 화딱지 나서 혀 깨물고 죽어.」

     

   그러니 크라슈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경고했다.

   딱히 그녀와 정이 있는 것은 아녔지만, 옛 약혼자로서 최소한의 경고였다.

     

   하지만 비앙카는 고개를 기울였다.

     

   「크라슈 님은 제가 죽든 말든 상관없으시잖아요. 이제 남이신걸요.」

     

   순간 팍 짜증이 일어났다.

   비앙카가 일부러 도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저도 그저 궁금한 거예요. 무엇이 더 괴로운 것인지.」

     

   비앙카는 그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무표정했다.

     

   「쯧.」

     

   그 말을 듣고 크라슈는 손을 들었다.

     

   「구태여 알아보겠다면 느껴봐라.」

     

   본인이 직접 느껴보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크라슈는 블랙 후드로 비앙카의 눈인형을 훔쳤다.

     

   그녀가 건네주겠다고 한 만큼 다이얼 없이 손쉽게 그녀의 저주를 훔칠 수 있었다.

   정작 크라슈에게 넘어온 눈인형 저주는 다른 저주에 상쇄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눈인형 정도의 중하위 저주는 크라슈가 지닌 수많은 최상위 저주에 잡아 먹힐 뿐이었다.

     

   「좀 어떠냐.」

   「…….」

     

   크라슈는 그날을 아직까지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 그녀를 붙잡아야만 했다는 것도 말이다.

     

   「세상은 참혹한 법이네요.」

     

   그날이 바로 그녀가 백귀가 된 날이었으니까.

     

   그녀가 백귀가 되고 3년 후.

   그녀의 손에 천하십강 중 하나인 독왕(毒王)이 죽임당했다.

     

   그 소식은 세계 전역으로 퍼졌고, 뒤늦게 하덴하르츠의 사건의 전 말이 밝혀졌다.

   그것은 제국의 하덴하르츠 말살 계획이었다.

     

   「하, 미친 이 바보가…….」

     

   이 소식을 들은 크라슈는 자기 얼굴을 감쌌다.

     

   이유는 참으로 간단했다.

     

   하덴하르츠에 망명한 2황자 시폰 에파니아가 내뱉은 한 정보가 제국 근간을 뒤흔들 만큼 치명적인 정보였다.

   그 결과 제국은 하덴하르츠와 2황자의 입을 막기 위해 재빨리 한 명의 인원을 투입했다.

     

   모든 독을 다룰 수 있는 자.

     

   천하십강(天下十強)

   독왕(毒王)

     

   그가 하덴하르츠의 가주 더글라칸에게 투입한 독은 그가 직접 개량한 광천독이었다.

   광천독은 그의 눈에 식솔과 가족들을 괴물로 비추게 했다.

   그 괴물이 두려웠던 더글라칸은 비앙카를 제외한 모든 식솔과 가족을 제 손으로 죽였다.

     

   그리고 독의 효과가 깔끔히 끝났을 때.

   그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견디지 못하고, 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그것이 하덴하르츠에서 일어난 사건의 비극적인 전 말이었다.

     

   뒤늦게 그 일이 밝혀지고 제국과 스타론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 제국의 폭거에 참다못한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러한 전쟁 속.

   당연히 크라슈도 그런 전쟁 속에 휘말렸다.

     

   제국과 스타론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창공의 세대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창공의 세대는 제국의 편도 스타론의 편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창공의 세대가 그 둘을 억누르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하며 충돌이 시작되었다.

     

   세계 침식과 맞서야 할 창공의 세대가 사람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하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창공의 세대 또한 전쟁에서 마냥 안전할 수 없었다.

     

   「썩을, 머저리들아! 최소한 뒷 보급을 지켜야 할 놈들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창공의 세대의 보급 담당을 맡고 있던 크라슈가 소리를 내지르며 눈 내린 숲을 질주했다.

   그는 상처투성이인 채로 불타버린 하덴하르츠를 지나고 있었다.

     

   하덴하르츠는 제국과 가장 거리가 가까웠던 만큼 완전한 전선이었다.

     

   특히, 독왕은 비앙카의 손에 죽었다.

   비앙카는 독왕을 죽인 뒤, 하덴하르츠의 본관인 북해빙관에 머물렀다.

   그 탓에 제국은 스타론은 물론 북해빙관 또한 집요하게 공격했다.

     

   「북해빙관…….」

     

   그런 크라슈의 눈에 반쯤 무너져 내린 북해빙관이 보였다.

     

   「저기 있다!」

   「저놈도 창공의 세대 일원이다! 방심하지 말고 죽여라!」

     

   그 순간 뒤따르던 제국의 기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라슈는 이를 아득 깨물곤 북해빙관으로 달렸다.

     

   꽝꽝 얼어붙은 북해빙관의 문 앞에 도착한 크라슈는 다 까진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야! 비앙카! 안에 있냐!」

     

   크라슈의 소리침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썩을, 인제 와서 염치도 없이 무슨 짓인지.

     

   크라슈는 주먹을 꽉 쥐곤 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빨랐다.

     

   그들은 어느샌가 크라슈의 뒤에 바짝 쫓아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독이 단단히 오른 것이 살기를 주체 못 하는 꼴이었다.

     

   저래서는 누가 인간이고, 세계 침식자인지 구별이 안 된다.

   크라슈는 혀 차는 소리를 내며 소매를 걷었다.

     

   어쩔 수 없다.

   저주를 사용해서라도 일단 빠져나가야 할 듯싶었다.

     

   뒤는 성녀에게 어떻게든 부탁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끼이이익!

     

   북해빙관의 문이 열림과 함께 크라슈의 등 뒤에서 얼음의 송곳들이 쏟아나왔다.

     

   퍼버버버벅!

     

   「끄아아아악?!」

   「커헉, 컥!」

     

   날아든 송곳들은 순식간에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오러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음에도 막지 못했다.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크라슈의 눈에 열린 북해빙관의 문이 들어왔다.

   일단 그 안으로 들어선 크라슈는 문을 밀어 닫아 두었다.

     

   그러곤 주위를 둘러보자 거기에는 모든 게 얼어붙은 북해빙관의 내부가 보였다.

   크라슈는 몸에 스며드는 냉기를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비앙카.」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크라슈는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기로 했다.

     

   그렇게 북해빙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을까, 크라슈는 잠시 후 어느 방 앞에서 멈춰 섰다.

   부서져 버린 방문 안.

     

   자신의 얼어붙은 두 다리와 함께 심장에 검이 박혀 있는 여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뚝-

     

   검을 타고 핏물이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본 크라슈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비앙카.」

     

   그건 다름 아닌 비앙카였다.

     

   「……오랜만이네요. 크라슈님.」

     

   그 순간 비앙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힘이 없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크라슈는 그녀의 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 꼴이 될 때까지 날뛰었으면서 왜 이 꼴이냐.」

     

   그녀의 가슴에 박힌 검은 크라슈도 아는 것이었다.

   검에서 진하게 묻어 나오는 독.

     

   그건 독왕의 딸인 독봉(毒鳳)의 독이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자, 그녀가 제국에서 이곳까지 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검이 박힌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것이 분명했다.

   몸 이곳저곳에 독이 깊숙하게 퍼져 이제는 성녀라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네요. 왜 이 꼴일까요.」

     

   그녀는 분명 감정을 되찾았을 텐데도 무척이나 무표정했다.

   마치, 표정을 짓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이다.

     

   크라슈는 그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비앙카와의 파혼 이후 크라슈는 한참 뒤에야 그녀의 사정을 알았다.

     

   그렇기에 답답한 기분을 느낀 크라슈가 그녀를 향해 괜히 외쳤다.

     

   「차라리 말하지, 그랬냐. 독왕과 제국이 저지른 짓이라고, 네 가문은 아무런 잘못 없다고.」

     

   비앙카는 분명 파혼 때도 제국과 독왕의 짓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크라슈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말한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그리고 그 말에 크라슈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말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자신은 기껏해야 창공의 세대에 저주나 훔쳐주며 빌붙어 있는 녀석일 뿐이니까.

   크라슈에게 비앙카의 인생을 바꿔줄 힘은 없었다.

     

   비앙카는 천천히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곤 그녀의 눈이 옛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희는 감정이 없을 때와 감정이 있을 때, 무엇이 더 괴로운지 이야기했었네요.」

     

   비앙카는 입에서 핏물을 쏟아 내며 3년 전 파혼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크라슈가 그녀의 생기가 거의 다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어떤가요. 이참에 제 의견을 한번 들어보시지 않겠어요.」

     

   마지막이다.

   지금이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 대화일 것이다.

     

   「……해봐.」

     

   비앙카는 자신의 목숨을 한번 살려줬다.

   의견을 들어주는 것이야 어려운 것도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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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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