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

상대방의 수준을 알기 위해선 그에 마땅한 경지에 다다를 필요가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 힘이 너무나도 거대하면, 하물며 당사자가 알아봐 주기를 원한다면.

““···.””

일반인과 무인이라는 경계는 허물어지고. 모든 이가 눈으로, 피부로 깨닫는다.

저건. 저 눈앞의 생물은.

‘이길 수 없다.’

소버린은 자부하기를, 나름의 최상위 모험가. 번듯한 무인이었다.

제도의 모험가 길드 마스터, 총지부장. 이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은 위기는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 그는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최대의 위협을 마주하였다.

콰아아아아아-!!

가볍게 내지른 검로에서 재앙과도 같은 화마가 들이닥쳤다.

파콰앙-!!

“큭···!”

이를 주먹으로 맞받아친 소버린이 한탄 섞인 신음을 질렀다.

분명 방금의 일격은 성공적으로 돌파해 냈다. 마법은 해제되었고, HP도 깎이지 않은 것이 그 증거.

허나 소버린의 오른손은 떨고 있었다. 정신적 데미지가 육체를 좀먹고 지배하게 된 것이라.

이로써 명백해졌다. 경기 직전까지 모두가 확립했을 도전자와 도전받는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이제는 그 사실을, 아직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관중들 역시 알 차례였다.

“어? 저, 저길 봐!!”

“저게 뭐야?”

“말이 되나 저게···?”

“오류라도 난 거 아냐?”

계획을 곧장 실행으로 옮긴바. 관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본능이 시켜, 소버린 또한 한 사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

[HP:1](100%)

결투자의 생체 정보를 인식하여 남은 HP를 나타내는 전광판. 이것이 알려주는 아이의 잔여 HP는 1.

소버린은 순간 자신의 이름을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볐다. 저게 100%, 즉 최대 체력이라 표시된 건 따질 겨를도 없이.

[HP:6,974](100%)

[HP:19,721,121](100%)

[HP:1,557](100%)

[HP:√-1](100%)

그러자 이에 반응하듯, 마치 놀리는 양. 수치가 더욱 급격하게 변하였다.

이 이상 들여다보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았기에. 전광판에 고정됐던 수많은 눈길은 하나둘 전장의 마검사에게로 집중됐다.

“저는 스탯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거든요.”

“스탯을, 마음대로 조정···?”

“네. 쉽게 말해서 동일하게 분배하거나, 나머지를 1만 남기고 한 곳에 올인하는 것도 가능하죠.”

“허···”

믿기 힘든 선언. 이러한 의심을 원천 봉쇄하는 실시간 스탯 변환 쇼.

소버린은 미지에서 오는 공포를 느꼈다. 이런 능력, 모험가 생활은 물론 마계 전선에서도 들어본 적조차 없다.

‘도대체 정체가···’

황망한 시선은 목표물을 잃고 떠돌다, 이내 신나서 방방 뛰는 어느 붉은 머리 여인을 포착했다.

샐리. 아이에 대한 찬양으로 일장 연설을 늘어놓지를 않나, 일개 접수원 신분으로 총지부장에게 댁이 질 거라 장담하던 그녀.

솔직히 무언가에 빠진 젊은이 특유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만 여겼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부딪혀 보니 들은 말보다 더하지 뭔가.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고 질 수는 없다.’

이쯤 되면 진다고 해서 깔보는 이는 없겠지만.

인식이 반대였을 때도 저쪽은 최소한 무언가는 보여주겠지란 믿음을 자아낸 마당이다. 자신도 마땅히 그래야만 할 터.

무엇보다도 이는 사나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Magic to mana – 스킬을 꿰뚫는 주먹]

결의를 다진 소버린이 앞으로 질주했다. 어쨌거나 상대의 주력은 마법. 그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저 검에 직격당하지만 않으면 괜찮다. 자유자재로 위치를 넘나드는 스탯도, 한 곳에 치중됨은 곧 다른 쪽이 부실해진다는 뜻이다.

‘닿지 않는가···’

그리고 현실은 냉혹하다. 힘겹게 쌓아 올린 투지는 이토록 쉬이도 무너져 내렸다.

공격은 빗나가고, 대비를 해놓은 게 무안하리만치 마법은 깜깜무소식.

농락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 같은데도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자신도 모르게 지어진 표정은 필시 쓴웃음일 것이었다.

[일심동체]

재차 관객석이 술렁였다. 소버린의 고개도 반자동으로 돌아갔다.

“이건···”

소버린의 HP가 절반 가까이 줄어 있었다.

그런데도 전광판은 이를 꿋꿋이 100%라 칭했다.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더불어 아이의 HP가 소버린과 같은 수치였기에.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눈치챘다.

‘HP를···조정당했다.’

현재는 명맥을 잃어 소실됐다고 전해지는 고대의 스킬, 일심동체.

꼭 이것이 아니더라도 모종의 방법으로 각자 HP를 공유하게 됐음이 자명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알아챘다면 아마도 대부분 한마디 말이 뇌리를 스쳤으리라.

-“저는 스탯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거든요.”

“···!”

아이의 HP가 또다시 1이 되었다.

이후 벌어질 일을 예상하지 못하는 이는 더는 이 자리에 없었다.

[일심동체]

‘막아야 한다···!’

벌렸던 거리를 좁히며, 소버린은 생각했다. 설마 자기 입으로 능력을 발설한 이유가 그래서였단 말인가.

뒷일을 알아서 예측하고, 기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 무대를 일종의 화려한 공연으로 써먹고자.

소버린의 쓴웃음은 짙어져만 갔다. 본인도 이미 그러했던 터라 나무랄 명분도 없었다.

‘얼마나 남았지···?’

벌써 본래의 1할 미만. 스탯 조정도 그렇고, 저 스킬은 무슨 쿨타임도 거의 없는 모양이다.

그보다 놀라운 건 실시간으로 HP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아무런 지장 없이 움직이는 몸.

다른 상황이었으면 끝까지 자각이나 했을까. 뒤로 갈수록 아니었으리란 확신만 커져 갔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시적인 거라, 나중에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까.”

소버린은 움직임을 멈췄다. 마침내 그의 HP도 1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모험가의 수장인 양반한테 너무 심했나도 싶지만.

따지고 보면 엄연히 내가 대선배잖아? 고로 이건 먼저 까분 것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다.

“벌써 포기하시나요?”

전력으로 나서겠다 하지 않았냐며. 은근히 놀리는 투로 쏘아붙인다.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보네만.”

이에 소버린이 전광판을 향해 턱짓했다.

이 지경인데 뭘 더 해야 족하겠냐는, 흡사 따지는 것에 가까운 자조.

슬슬 묘하게 짠하여, 아직 체력이 만땅이지 않냐는 말은 애써 삼켰다.

저벅-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괴롭히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자.

여기서 더 뭐를 해봤자 환호보다는 인성 논란만 거론될 것이다.

“후우.”

소버린의 코앞에 서서. 약간의 힘을 주어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소버린]

[HP:0](0%)

그것으로 승패는 결정 난다.

털썩- 아까만 해도 만전의 상태던 소버린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 * *

마지막 경기가 불러일으킨 열기는 또 한 번의 이례적인 상황을 야기하였다.

본디 승급 시험의 결과는 대략 사흘 후, 긴밀한 심사를 통해 내려지고 발표되나.

마무리까지 이 열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즉석에서 나와 마리아, 아스트레아의 승급이 공표되었다.

“각자 하나씩 맡아서 장이나 봐올까?”

승급 당사자인 우리가 파티 분위기인 건 당연한 수순.

여펨아을로 귀환할 때까지 셋이서 손잡고 폴짝이며 왔다.

“응. 마리아가 술을 맡을게.”

“마리아는 간식을 부탁해. 술 사 오면 전부 아스트레아 머리에 깨버릴 거야.”

“왜 아해도 아니고 이 몸 머리에 깬다는 것이더냐?”

“그래야 마리아가 널 매수할 우려가 없지.”

“흐응.”

“아해야. 솔깃하다는 표정 짓지 말 거라. 이 몸도 술병으로 머리 깰 줄 아는 것이니라.”

그렇게 기본적인 음식은 내가, 아스트레아가 마실 것, 마리아가 간식을 맡아 서로 갈라졌다.

그냥 같이 다니면서 하나씩 사는 것도 좋았을 테지만. 하도 인파가 쏠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는 길에도 인적 드문 곳을 통한 참이다.

‘이리 술술 풀릴 줄이야.’

일행들의 입맛을 고려해 음식을 고르며. 순조로움 일색인 나날을 뿌듯하게 회고하였다.

나를 믿었으면서도, 조잡한 허수아비인 자신을 보면 내심 막막하기 그지없었는데. 결국에 다 잘 풀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전부 마리아의 덕택이다.

마리아 덕분에 시자쿠마우르를 벗어나 당당히 도시에 입성할 수 있었다. 내게 보금자리와 신분도 마련해 주었고. 황녀 호위 임무에서 나를 지켜준 것도, 튜토리얼 존을 습득하게 된 것도 다 그녀의 덕이다.

‘달달한 것 좀 더 챙겨야겠다.’

앞으로는 도움만 받는 게 아니라. 점차 내가 보살펴주는 관계로 진전될 거다.

전적으로 기대지 않아도 될 직위가 내게도 생겼고, 이를 통해 내 스펙을 끌어올릴 길이 본격적으로 열렸으니까.

‘마리아가 좋아해 주겠지?’

부푼 마음과 먹거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열쇠 꺼내는 법을 또 까먹은 듯한 아스트레아가 정문 앞에서 보였다.

“빨리 왔네?”

“음. 그냥 보이는 대로 싹 긁어 왔느니라.”

아스트레아가 자랑하듯 양손 가득 봉투를 내밀었다.

고민이 깊어지는 건 다 힘 아니면 돈이 부족하기 때문. 과연 천마다운 행동양식이다.

“술은 안 사 왔지?”

“그야 물론이니라.”

“그럼 저건 뭐냐.”

“흠. 이 몸도 모르게 섞여 든 모양이구나. 앞서 말했다시피 보이는 대로 쓸어왔기에···”

“이거 진열대에 없어서 점원한테 말해야 살 수 있는 거잖아.”

“···이 몸이 마시려고 샀느니라. 어허! 얌전히 술병 내리지 못하겠느냐, 무엄하도다!”

그래 뭐, 본인이 마시려고 했다면야.

일단 아스트레아의 머리통엔 유예를 줬다. 흩어지기 전에 마리아랑 귓속말한 거, 그리고 나한테 숨기려고 했다는 점이 심히 의심스러웠지만.

“우리는 먼저 들어가서 요리하고 있자. 마리아는 어차피 간식 담당이고, 금방 올 테니까.”

“알겠느니라.”

“열쇠는 저기 틈새에 네 마나 흘려 넣으면 나와.”

“이, 이 몸도 알고 있느니라···!”

“그거 말고 저쪽.”

아스트레아와 티격태격하며 저택 안으로 들어가 여러 음식을 준비했다.

코스 요리 컨셉으로 전체부터 해서 메인, 수프, 샐러드. 과정 자체가 신이 나서 자꾸 뭐를 더 만들게 됐다.

“마리아, 늦네···”

테이블에 세팅까지 마치고. 마리아만 오면 딱 완벽할 시점.

턱을 괸 채 벽에 걸린 시계와 창밖을 연신 번갈아 봤다. 식으면 맛없는데.

마리아는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치킨은 식은 후에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나오는 그 특유의 맛이 있어요. 언젠가 한번 치킨 시키고 일부러 식게 한 다음에 전자레인지 돌려서 한 마리를 해치워보고 싶네요.
다음화는 09월 02일 21시 업데이트 됩니다.


           


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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