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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EP.39

     

   그런 말이 있다.

     

   그 어떤 재능도 젊음도 꾸준함을 이길 수는 없다.

     

   물론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더 나아가 또 그 빌어먹을 헛소리를 하냐며 투덜거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매일 같이 검을 정진해 온 화영은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지재유경 志在有逕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매사진선 每事盡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 말에 따라 화영은 비무대회에서 만난 그 누구도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

     

   채애앵!

   상대의 검을 깨트리며 1승.

     

   스릉!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내며 1승.

   그렇게 파죽지세로 이어진 연전연승.

     

   적당히 학관의 수업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검을 배우던 그들은 마음에 뜻을 품은 노력파 화영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다.

     

   때문에 ‘갑甲’조의 비무는 다른 조들에 비해 빠르게 끝이 났다.

   화영의 전적은 전승 무패. 5번의 비무를 끝마친 화영은 자연스레 자신이 검을 가르쳐 주었던 김시인의 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과연 어떻게 하고 있을까?’

     

   화영이 지켜봤던 김시인은 자신이 봤던 그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난 검수였다.

     

   그는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았다. 둘을 가르치면 넷을 알았고 그쯤 되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깨달음을 얻기까지 했다.

     

   그래서 화영은 그의 비무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천월문의 월광검법을 보여 줄 것인지, 그리고 다른 문파의 검법과 대응하기 위해 또 어떤 기지를 발휘할 것인지 말이다.

     

   툭.

     

   그런데 화영이 ‘경庚’조의 비무대를 찾으려는 때, 자신의 어깨에서 가벼운 충돌이 일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아, 부딪쳐서 미안하오.”

     

   청색 무복을 입은 두 사람이 자신에게 짧게 사과를 한 뒤, 어딘가로 뛰어간다.

   화영의 머릿속에 작은 의아함이 감돈다. 그들의 복장을 보니 그들 또한 비무대회에 참가한 무인들.

     

   그런 무인들이 자신의 조에서 펼쳐지는 비무가 아닌 다른 조의 비무를 보러 간다는 건 그곳에 나름 볼 만한 비무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경조에 꽤 쟁쟁한 무인들이 많더군. 대부분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소속이라는데 그걸 놓치면 너무 아깝지!”

   “소림의 진휘도 경조에 있다는 모양이야.”

   “응? 진휘? 약관의 나이에 차기 소림 방장으로 거론된다는 그 진휘 말인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흥미로운 대화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소림의 진휘에 대한 소문은 그녀도 익히 들은 적이 있었다.

   최근 소림에서 배출된 불세출의 천재이자 현 소림 방장이 직접 가르침을 내린다는 소문이 도는 뛰어난 무승武僧.

     

   하지만 지금 화영의 귀에 박힌 이름은 진휘라는 두 글자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가 소림의 진휘를 보러 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 별호가 뭐라고 했지?”

   “파면권破面拳일세.”

   “그래, 파면권! 내가 살다 살다 정파에서 낯짝을 깨트리는 주먹이라는 별호를 들을 날이 있을 줄이야. 권각법이 대단하다지?”

   “각법 보단 권법이 뛰어난 모양이야. 그래서 지금 다들 진휘와 파면권의 비무를 보러 가는 것 아니겠나?”

     

   파면권……

   대단히 기괴하면서도 위협적인 별호였다.

     

   ‘시인 소협은… 어쩌면 본선 진출이 어려울지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제자들은 둘째치더라도 진휘 하나만으로도 본선 진출에 대한 의심이 피어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파면권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별호를 가진 고수까지 경조에 있었다니…… 화영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는 건 금방이었다.

     

   ‘아직 비무가 끝나지 않았다면 내가 시인 소협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김시인은 안목이 뛰어나고 눈썰미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무공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상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파악을 해야 하는 상황.

   게다가 화영은 과거에 소림의 승려와 비무를 했던 경험이 있었으니 그녀의 무공 지식은 김시인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터였다.

     

   타타탓.

     

   경조로 향하는 화영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와아아-!

   와아아-!

     

   다른 비무장과는 구경꾼의 수가 확연히 대비되는 장소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경조는 생각보다 갑조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비무를 펼치는 사람을 확인한 화영은 낭패 어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미 늦었나?’

     

   김시인과 진휘의 비무는 화영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막 시작된 찰나였다.

     

   “자네는 누가 이길 것 같나?”

   “아무래도 소림의 진휘가 아니겠는가?”

     

   비무장을 둘러싼 구경꾼들이 내뱉는 말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화영의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파면권은?”

   “음… 지금까지 비무를 미루어 보아 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허나 상대가 소림인데 권각법으로 파면권이 진휘를 이기긴 힘들 걸세.”

   “맞는 말이군. 자그마치 소림이니 말이야.”

     

   파면권.

     

   화영의 귀에 ‘소림’이라는 두 글자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두 사람 외에도 다양한 대화들이 그녀의 귓가를 오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대화의 중심에는 김시인이 있었다.

   현재 눈앞의 비무대에서 소림의 무승과 비무를 펼치고 있는 그가.

     

   ***

     

   퍼억!

   콰아앙!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비무대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비무의 승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김시인 시주… 도대체 무슨 수련을 하신 겁니까?”

     

   나의 말도 안 되게 튼튼한 몸뚱이를 상대하던 승려의 입에서 슬슬 우는소리가 나왔다.

     

   “왜 아파하지 않습니까? 제 주먹이 무른 겁니까? 제 수양이 부족했던 겁니까? 저는…저는……!”

     

   나는 녀석을 보며 조금 안타깝다는 기분이 들었다.

     

   2층의 세계관 기준으로 녀석은 충분히 강한 상대가 맞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내고도 아직까지 경기장에 서 있는 유일한 상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녀석은 딱 그 정도의 수준에서 그쳤다.

     

   “너 목숨 걸고 싸워 본 적 없지?”

   “……예?”

   “그 뭐랄까… 생사결이라고 해야 하나? 나를 죽이려고 진심으로 달려드는 무언가를 상대해 본 적 있냐. 이 말이야.”

     

   나의 말에 진휘의 입이 다물어졌다.

     

   각오의 차이. 사실 진휘가 나를 위협할 만한 상황은 충분히 생길 수 있었다.

   수도手刀로 목을 내려친다거나 팔을 잡았을 때 관절을 반대로 꺾어 버린다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너, 공격 방식이 너무 정직해.”

     

   뻔했다.

   공격의 경로가 뻔해도 너무 뻔했다. 오히려 나를 어떻게든 불구로 만들겠다며 길길이 날뛴 해남파의 종혁이 더 위협적일 지경.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살초를 쓰지 않는다면 녀석이 나를 잡을 방법은 없었다.

     

   “그렇군요…”

     

   나의 진심 어린 조언에 진휘의 표정이 한껏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풍겨 오는 날카로운 분위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겠군.’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화영과 수련을 할 때마다, 당휘소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마다 매 번 2층의 목적을 상기했었다.

     

   2층의 주제는 플레이어들의 성장을 돕는다.

   무려 개개인이 다른 세계에 떨어져 전투 방법을 익히고 강해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2층의 취지였다.

     

   그리고 무협 세계관에 도착해 화영을 만나고 내가 가장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었으니.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각이며,

   백각이 불여일행이라.

     

   백 번 듣는 것보다는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보는 것보다는 한 번 생각하는 것이,

   마지막으로 백 번 생각하는 것보다는 한 번 행하는 것이 깨달음에 훨씬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모든 무공을 보고 싶다.’

     

   나는 음의 무공인 천월신공을 배웠다. 그리고 양의 무공인 사천당가의 무공 또한 당휘소를 통해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배우고 느낀 점은 모든 무공이 결국 한 길로 귀결된다는 사실이었다.

     

   “흐으으읍!”

     

   진휘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며 오른손의 꽉 쥔 주먹이 앞으로 내밀어진다.

   자세에 맞춰 자연스럽게 왼발이 뒤로 빠졌고 왼손은 당장이라도 출수를 기다리듯 쫙 펴진 채, 허리춤으로 내려갔다.

     

   “다, 달마십팔수!?”

     

   언제부턴가 우리의 비무를 지켜보고 있던 녹색 무복의 사내가 경악을 내지르며 눈을 크게 떴다.

     

   “달마십팔수면 소림오권이라 불리는 그것 말이오?”:

     

   나는 진휘의 동작이 서서히 변하는 것을 지켜봤다.

   호랑이가 떠오르는 기묘한 분위기. 하지만 잠시 후, 조금 더 자세를 낮추며 주먹을 펴니 조금 더 날렵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저건 표범인가?’

     

   진휘는 동작을 바꿔가며 뱀의 형상을 띄우기도 했고 학의 형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자세를 세우고 나를 바라봤을 때, 나는 그의 뒤로 한 마리의 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멋지네.”

     

   스릉.

     

   나는 다시 한 번 검을 빼 들었다.

   상대가 저렇게까지 진심인데 나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예의가 아닌 것.

     

   “가겠습니다! 시주!”

     

   타아앙!

     

   진휘가 밟고 도약한 청금석 비무대에 금이 가며 크고 작은 파편이 튀었다.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나는 녀석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기대 이상의 강렬한 공격.

   빈틈이 있었지만 짐승 다섯을 동시에 상대하는 기분이라 그 빈틈을 노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후우……”

     

   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나의 검이 향한 곳은 진휘가 아닌 하늘.

   달은 뜨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달은 그저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었으니까.

     

   츠츠츠츠…

     

   달은 불변한다.

   내 앞의 저 변화무쌍한 무승의 공격과는 달리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밤하늘을 비출 뿐이다.

     

   허나 모순적이게도 달은 변화난측하다.

   때로는 보름달로, 때로는 초승으로 그믐으로.

   때로는 그 그림자를 통해 한낮의 태양을 가리기도 한다.

     

   “천월신공.”

     

   그리고 나의 검은 고작 짐승 다섯의 눈을 가리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검에서 나온 마력의 기류가 나에게 달려드는 짐승을 집어삼켰다.

     

   표범은 시야를 잃었다. 뱀은 기민함을 잃었고 호랑이는 기세를 잃었다.

   그리고 끝내 학과 용은 그 자유로움과 힘을 잃었다.

     

   서걱!

     

   나의 신형이 진휘의 몸과 교차했다.

   허공을 수놓는 한줄기 핏방울.

     

   모두가 우리의 격돌에 숨을 죽였다. 감히 이곳에서 숨을 쉬어서는 안 된다는 착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적막의 끝,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털썩.

     

   소림의 무승 진휘는 쓰러졌고 나는 검을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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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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