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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39 – 가짜와 진짜의 차이>

     

    ‘이건 진짜 무조건 팬티스타킹이 압승인데.’

     

    우리 변방진영 사람들이 팬티스타킹을 입는다고 상상을 하면 또 얼마나 아름다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

     

    옆트임 차이나드레스를 입은 아카디아의 자신감 넘치는 허벅지가.

    모험가 생활로 단련된 이사벨의 건강한 종아리와 다리라인이.

    두꺼운 바지에 가려진 북부대공녀 아이린의 수줍은 발목이.

    얇은 스커트 한 장 아래로 팬티스타킹과 함께 드러난다. 그런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라면 동료들과의 의리는 잠시 접어둘 수 있지 않을까?

     

    “오크노디. 설마 제국귀족들의 간식을 탐내고 있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제국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와인컬렉션이나 칵테일 명가들의 영약주 따위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구요!”

    “…그렇게 마시고 싶으면 쟤네 편들어도 돼.”

    “와 정말요?”

    “대신 내 요리는 못 먹겠지만.”

    “힝.”

    “아카디아한테도 이를 거야. 다시는 다과회에 초대받지도 못하겠지.”

     

    이건 강하다.

    흔들리던 마음이 크게 기울었다.

     

    ‘그래도 변방은 진짜 에반데.’

     

    섹시어필이 가능한 속살이 보이는 10 데니어의 얇은 스타킹부터 한겨울의 맹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150 데니어의 두꺼운 스타킹까지.

    팬티스타킹은 철마다 굵기를 달리하며 다양한 어필을 할 수 있다.

    반면에 돌핀팬츠만 보고 변방을 지지한 이들은 겨울만 되면 배신감에 각혈하며 울분을 금치 못하고, 이를 향한 놀림이 끊이질 않았다.

     

    -아니 돌핀팬츠 어디갔어 ㅅㅂ 바지가 왜 나와

    -변방놈들 두꺼운 털옷으로 온 몸을 꽁꽁 다 감쌌죠? 지조 있는 겨울의 팬티스타킹 문화에 범접할 수가 없죠? 야만인들은 믿으면 배신당하죠?

    -ㅉㅉ 이게 다 제국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한 꼴알못들의 최후임

     

    게임포럼사이트의 반응만 해도 그런데 고인물인 내 심정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겨울이면 배신당할 것을 알면서도 돌핀팬츠를 지지해야 하다니!

     

    “우리 애들 괴롭히지 말아요!”

    “오크노디!”

    “A그룹 상급반 수석이 제국귀족들에게 맞섰어!”

     

    그런데도 눈물을 머금고 변방의 돌핀팬츠 파벌의 편을 들어준 이유.

    그것은 동료인 지젤과 손오천, 이사벨이 모두 변방출신이고, 다과회를 열어주는 아카디아의 간식을 앞으로도 먹고 싶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과 계속 같이 다니고 싶어.

    요리도감을 날로 채우고 싶어.

    인간은 그런 욕망 앞에서는 팬티스타킹에 스커트를 버릴 수 있는 존재다.

    아카데미 교복이 팬티스타킹에 스커트인데 막상 직접 입으니까 부끄러워서 냉혹한 모험가복장 기본세트로 돌아가고 싶어서 사복을 지지하는 건 아니야!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마치고 가벼운 차림을 하는 것이 뭐가 어때서 그래요? 땀 흘린 채 들어오면 모를까 전부 씻고 오셨는데.”

     

    B그룹 여학생들이 갑자기 자신만만해진 A그룹 여학생들을 보며 위축되었다.

    물론 기가 꺾이기도 잠시.

    여기서 한 번 기세가 밀리면 제국귀족의 체면이 상한다고 여기는지 표독스레 눈을 치떴다.

     

    “어머, 얘 좀 봐. 눈 동그랗게 뜨고… 지금 언니들한테 말대꾸 하니?”

    “중앙에서는 여자가 낮에 팔다리의 맨살을 보이는 것을 야만적이라고 부른단다. 5살이면 부모님께 교육을 받을 기초상식이지.”

    “얘 좀 봐. 애가 5살도 안 됐으면 어쩌려고?”

    “저 키에 5살이 아니면 그게 더 징그럽지 않나?”

    “깔깔깔!”

    “호호호!”

     

    이사벨과 함께 대치하던 돌핀팬츠 파벌 여학생이 나섰다.

     

    “애한테까지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복장이 거슬렸다면 사과할게. 그러니까 애는 괴롭히지 마.”

     

    이 사람이 기껏 편 들어줬더니 왜 사과를 해?

    힘 빠지네 진짜.

     

    “뭘 사과하고 있어요? 이런 걸로 사과하지 마요. 열심히 수련하면서 지내다보면 이 정도는 다들 이해할 거예요. 게으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꼬마야. 지금 우리 들으라고 한 소리니?”

    “머리 감기도 싫어서 향수나 칙칙 뿌리고 다니면서 냄새로 괴롭히는 그런 몰상식한 사람들한테 들으라고 한 소린데요. 혹시 여러분이 그런 사람은 아니죠?”

     

    주변에서도 기싸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A그룹 신입생들이 한 마디씩 했다.

     

    “향수냄새 진짜 구려.”

    “좀 씻고 다녀.”

    “더러워.”

     

    수치를 배로 돌려받은 B그룹 신입생들이 얼굴이 붉어지더니 성난 걸음으로 식당을 나갔다.

     

    [그룹경쟁(1) 이벤트를 달성했습니다.]

    [A그룹에 소속감을 느끼는 학생들의 호감도가 일제히 상승합니다.]

    [B그룹에 소속감을 느끼는 학생들의 호감도가 일제히 하락합니다.]

     

    저질러버렸다.

     

    “하…”

     

    탄식이 절로 나온다.

    팬티스타킹 입은 이사벨 언니, 아카디아 언니, 아이린까지.

    정말 보고 싶었는데…

     

    “잘 참았어, 오크노디.”

    “먹을 거 때문이 아니라니깐요…”

    “정말? 오크노디가 애썼으니 오늘 저녁엔 식당에서 재료를 빌려서 특별요리라도 해주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어요. 당연히 먹을 거 때문이죠.”

     

    어쩔 수 없지.

    변방 여학생들의 제국스킨은 포기한 이상, 먹을 걸로 정신적인 허기짐을 극복하는 수밖에!

     

     

    * *

     

     

    다음 날, 스탯석을 주우려고 교정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깜짝 놀랐다.

     

    “안녕, 오크노디!”

    “좋은 아침, 오크노디!”

    “오크노디. 언니가 사탕 줄까?”

     

    맨 다리를 드러낸 채로 새벽부터 구보를 하는 여학생들이 날 발견할 때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거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탁 탁 제자리 뛰기를 하며 움직이는 맨 다리와 아슬아슬한 돌핀팬츠의 라인이 두 눈을 현혹했다.

     

    예쁜 언니들, 돌핀팬츠, 무수한 사탕의 행렬.

    나 지금 행복하니?

     

     

    * *

     

     

    명호스님은 교관들의 보고에 헛웃음을 지었다.

     

    “덕이 있으면 길운이 따르고, 정성이 신명의 감동에 이르게 하면 난을 범하는 흉이 물러나니. 고운 마음씨 덕에 좋은 인연이 늘어났구나.”

     

    최연소 상급반 수석이라는 타이틀이 아이를 향한 시기와 질투를 부르지 않을지는 걱정했건만, 뜻밖의 계기로 A그룹 여학생들의 지지가 몰렸다.

    중앙귀족과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모두가 높이 산 것이다.

    일각에서는 먹을 걸로 꼬셔서 넘어간 건 아니냐는 목격담도 있었지만 제국귀족의 위세가 먹을 것과 비교될 정도로 하찮은 수준은 아니라서 헛소문 취급되었다.

     

    “부디 입학식까지 무탈하게 보내면 좋겠구나.”

     

    이왕이면 나무 위의 새둥지까지 올라가서 빛나는 돌을 줍고 내려오는 기행도 저지르지도 않았으면 더욱 마음이 놓일 텐데.

    딱한 아이를 남몰래 지켜보는 어른의 마음이란 이렇게나 조마조마했다.

     

     

    * *

     

     

    일전의 이벤트로 급한 불을 끈 뒤, 아카데미 내의 분위기는 한층 진정되었다.

    이대로 A그룹과 B그룹의 그룹경쟁도 잠잠해진 채로 입학식이 시작되면 좋겠건만. 복도에서 마주친 헤스티아의 표정이 어두웠다.

    같은 A그룹에 속한 헤스티아의 표정이 어두울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0.1%의 확률로 발생하는 억까가 떴나보네.’

     

    헤스티아는 챕터보스다.

    모든 챕터보스는 깽판을 치는 시기가 얼추 정해져있고,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그 시기를 준수한다.

    헤스티아의 경우는 중간고사기간.

    그런데 ‘특별한 이변’이 일어난다면?

    그 시기가 중간고사 몇 주 전으로 앞당겨진다.

     

    일명 헤스티아 조기각성 이벤트.

     

    B그룹 상급반 학생들이 A그룹 상급반 학생인 헤스티아에게 시비를 걸고 대결에 돌입, 불운한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이벤트다.

    여기서 단순히 중상을 입히는 선에서 그치면 조기각성은 이뤄지지 않지만, 일정확률로 상대를 사망하게 만들면 헤스티아의 인망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친다.

    같은 A그룹에게도 배척받는 가엾은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 헤스티아에게 남은 유일한 안식처가 옆방의 동급생인데, 그마저도 실은 <대답하는 문>이니.’

     

    사람이 미쳐서 눈 뒤집고 날뛰는 <광란의 헤스티아>가 되는 심정도 이해는 간다.

    불운한 사고와 괴담스러운 기믹, 집단따돌림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비극이다.

     

    ‘분명 지금쯤 상담하고 있을 시간인데.’

     

    오늘 누가 시비를 걸었는데 속땅해.

    오또케 하면 조아?

    대충 그런 얘기를 하고 있겠지.

     

    비극을 막으려면 어떻게든 개입을 해야지.

    그래서 벽에 대고 말했다.

     

    “헤스티아랑 나눈 대화를 알려줘.”

     

    밤에 나눈 대화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 낮에 헤스티아를 찾아가서 그녀를 달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하면 낮에도 친해져서 같이 다니면서 엄한 대결을 벌이지 못하도록 단속할 수 있지.

    고인물의 챕터보스 흑화 막기 프로젝트!

    내가 너무 잘난 것 같아서 히히 웃고 있으니 벽에 바짝 가져다댄 귀로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싫어.”

    “싫다고?!”

     

    근데 이건 예상 못했네.

    대답은 하는데 그게 질문자가 원하는 답이라는 보장이 없다.

    향후 나만의 작은 기출문제집, 개인과외도우미로 사용하려던 계획마저 근본부터 뒤흔들렸다.

    진짜 비상사태다.

     

    “왜?”

    “헤스티아가 더 자주 말 걸어.”

    “…….”

     

    <대답하는 문>에 호감도가 생겼다.

    그리고 밤마다 꿍얼꿍얼 말을 거는 불쌍한 헤스티아에 비하면 기출문제집 취급이나 하는 내 호감도는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친구 없이 밤마다 벽에게 말을 거는 아싸보다 더 자주, 더 간절하게 말을 걸어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딜레마가 있다.

    그렇게 <대답하는 문>의 호감도를 올려서 이번에는 얘가 헤스티아한테 대꾸를 제대로 안 하면.

    나는 헤스티아의 소중한 단 하나의 친구(아님)를 뺏는 나쁜 아이가 되지 않을까?

     

    ‘어쩌지? 진짜 어쩌지?!’

     

    설마 여학생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단 한 번도 직접 해본 적이 없던 루트에 이런 맹점이 있을 줄이야.

    정신 나갈 것 같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가짜피폐와 진짜피폐의 차이.
    패션아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문의 호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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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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