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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

        비무?

        ​

        비이이이이무?

        ​

        이것들은 비무 못 하면 뒈지는 병에 걸렸나.

        ​

        왜 귀찮게 공개적으로 비무 신청을 하고 난리야. 거절하기 곤란하게. 

        ​

        이거 아마 노린 거겠지?

        ​

        나는 나만큼은 아니어도 꽤 덩치가 큰 언 뭐시기와 눈을 마주쳤다. 

        ​

        호승심에 가득 찬 눈.

        ​

        필시 나와 싸우고 싶어 몸이 달아오른 것이리라.

        ​

        남자가 질척 대는 건 취향이 아닌데.

        ​

        서역 출신 무인이라는 게 그렇게 구미가 당기는 건가. 

        ​

       

        “비무라…”

        ​

        “무릇 무인이란 검객끼리 만나면 검을 맞대고, 권사끼리 만나면 주먹을 맞대어 친교를 나누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

       

        처음 듣는 소린데.

        ​

       

        “그러니 서역의 권과 중원의 권을 맞대어 견식 하고자 합니다.”

        ​

       

        하지만 상황상 거절하기는 곤란하니, 내 선택지는 하나뿐인가.

        ​

        나는 포권을 하고 입을 열었다.

        ​

       

        “나 윌리엄 마셜, 비무를 받아주겠다. 비무 장소는 어디로 할 테냐?”

        ​

        “감사하오. 이 객잔 옆 공터가 괜찮아 보이더군.”

        ​

       

        이렇게 된 김에 중원의 권이라는 게 어떤지 한번 볼까.

        ​

        나는 먼저 몸을 돌려 객잔 바깥으로 나가는 언철산의 뒤를 따라 나섰다.

        ​

        ————————-

        ​

       

        ‘서역의 권법. 과연 어떨지…’

        ​

       

        가볍게 손목과 발목을 돌려가며 몸을 푼다. 내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무림인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준비였지만, 그래도 그는 이런 식으로 몸을 풀어주곤 했다.

        ​

       

        “이거 재밌는 구경을 하게 되는구만.”

        ​

        “철풍권 대협과 청안사자의 대결이라니. 한동안 공짜 술 얻어먹기 딱 좋은 이야기로군.”

        ​

        “이 사람아, 또 얻어먹을 생각만 하는가?”

        ​

        “하지만 남이 사주는 술만큼 맛있는 게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

        “그건 맞지.”

        ​

       

        구경꾼들과 해남검문의 사람들이 공터를 둘러쌌다. 객잔의 주인도 비무가 벌어진다는 소식에 꼭대기 층 창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

        다른 객잔이라면 말리러 들어가거나 한숨을 쉬었을 테지만, 그는 이 장사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장사꾼이었다.

        ​

        상업의 도시지만 무림인들도 많이 돌아다니는 만큼, 차라리 비무할 장소를 제공해서 적당히 볼거리를 만드는 게 이득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그는 공터를 작은 비무장으로 만들었다.

        ​

        어차피 객잔에서 싸움이란 자연스럽게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요소였으므로.

        ​

       

        “왕삼아. 화주 좀 가져오거라.”

        ​

        “예, 대인.”

        ​

        “서역인과 중원인의 대결이라…”

        ​

       

        흥미가 가득 담긴 눈길이 윌리엄에게 쏟아진다. 

        ​

       

        ‘전장에서 결투했던 때가 생각나는데.’

        ​

       

        윌리엄은 이제는 색이 빠져 붉은색만이 선명한 기억을 떠올렸다.

        ​

        투구의 눈구멍 사이로 보이는 터번, 구릿빛 피부. 그리고…살의로 가득 찬 눈.

        ​

        눈을 두어번 깜빡인다.

        ​

        어느새 그의 상대는 언젠가 보았던 중국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무복을 입은 근육질의 남성으로 바뀌어있었다.

        ​

        살의 대신 호승심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

        ​

        윌리엄의 입가에 실소가 지어졌다.

        ​

       

        ‘아직도 영 어색한데.’

        ​

        “본인은 진주언가 가주 언철악의 차남이자 무림 동도들에게는 철풍권이라 불리는 언철산이오! 이 비무에서는 언가권을 사용하겠소!”

        ​

        “나는 서역에서 온 윌리엄 마셜. 가문은 없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청안사자라 불리고 있더군. 사용하는 아츠. 너희들의 말로는 무공이라고 해야되겠군. 여튼 로마 검투술을 사용하겠다.”

        ​

       

        오른발을 앞으로 숙이고, 상체도 살짝 숙인 채로 두 팔을 가슴 높이까지 올린다. 간단한 자세였지만, 특별한 무의 이치가 느껴지지 않는 묘한 자세.

        ​

       

        ‘소문에 따르면 사자가 노려보는 것 같은 안광을 가진 자라고 했거늘, 그렇게 보이지 않는구나.’

        ​

       

        세상 소문이란 게 부풀려지기 마련이라지만, 야성미보다는 이성적인 인상을 풍겼다.

        ​

        물론 그 거대한 체구에서 오는 압박감은 무시할 수 없었지만 듣던 것처럼 모두를 압도하는 기세가 아니었기에, 몇몇 구경꾼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둘의 비무를 지켜보았다.

       

        ​

        ‘유권인가 강권인가. 일단은 강권에 가까워 보이긴 하지만…’

        ​

       

        윌리엄은 앞으로 나서지 않은 채로 언철산을 관찰했다. 중원의 무공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은 그지만, 강권과 유권은 느낌부터 달랐기에 어지간히 기이한 무공이 아닌 이상 티가 날 터.

        ​

        ‘철풍권이라 했으니, 강권에 가까운 모양이군.’

        ​

        한쪽으로 쏠렸느냐, 아니면 중도에 가까운가.

        ​

        그런 고민을 당장 하는 것은 그리 효율이 높지 않을 터.

        ​

        이대로 가다간 계속 대치만 하게 될 터. 

        ​

        빠르게 끝내고 싶었던 윌리엄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선수는 양보하지.”

        ​

        “그럼 가겠소.”

        ​

       

        핫! 하고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언철산의 신형이 잔상을 그리며 윌리엄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당한 속도.

        ​

        윌리엄은 언철산의 주먹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몸을 왼쪽으로 기울였다. 풍압이 윌리엄의 옆머리를 뒤로 넘겼다.

        ​

       

        ‘확실히 강권이군.’

        ​

       

        주먹에 실린 기세를 보아하니 잘못 맞으면 뼈가 부러질 터. 윌리엄은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민첩한 움직임으로 언철산이 주먹을 회수하고 다시 내지르는 주먹을 손등으로 걷어냈다.

        ​

        그리고 앞으로 걷어낸 손으로 얼굴을 향해 내지른다.

        ​

        언철산은 이 정도는 쉽다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꺾어 공격을 피해냈다.

        ​

        둘은 서로의 공격이 실패하자 거리를 벌리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

        첫 교환은 서로 무위로 돌아간 상태. 하지만 둘은 서로의 첫수를 통해 상대를 파악했다.

        ​

       

        ‘동작이 간결하군. 하지만 특별한 무리가 들어가 있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

       

        대부분의 상승무공이 그러하듯, 특별한 무리를 담고 있지 않은 반격. 언뜻 보면 권법이라고 하기에도 미묘한, 주먹질에 가까웠지만 권사인 그는 알 수 있었다.

        ​

       

        ‘실전적인 권공이로군!’

        ​

       

        대개 상승무공일수록 평범한 무공에서는 보기 힘든 동작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

        상승무공이란 단순한 몸의 움직임이 아닌, 하나의 이치를 내공이라는 수단을 통해 현실에 재현시키는 것이기 때문.

        ​

        요컨대 고절한 내공과 원리를 활용하기에 기이한 동작을 사용해도 실전적인 무공과 능히 겨룰 수 있다는 뜻.

        ​

        하지만 윌리엄의 동작에선 그런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

       

        ‘일부러 숨기는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

       

        단지, 언철산은 그의 권법에서 무언가가 모자라다는 인상을 받았다.

        ​

        그게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했을 뿐.

        ​

        한편, 윌리엄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언철산의 다음 공격을 기다렸다. 다른 게 아니라 그는 보법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괜스레 공격에 나서면 허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으니까.

        ​

        상대가 시정잡배라면 보법이고 뭐고 바닥에 얼굴을 갈아버렸겠지만 상대는 무림 세가의 자제.

       

       본인보다 경지가 낮아 보이더라도 결코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

       

        ‘굳게 단련한 하체로 중심을 잡고 강하게 내지르는 일 권이라.’

        ​

       

        무릇 모든 무술은 하체가 안정되어야만 한다. 

        ​

        인간은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존재이기에.

        ​

        그렇기에 윌리엄은 오른발을 앞으로 슬쩍 내민 채 무릎을 굽혔다.

        ​

        아무리 보법을 쓸 수 없다고 한들, 기초적인 움직임 자체는 배우는 법.

        ​

        윌리엄은 몸을 숙인 채로 땅을 박찼다.

        ​

        덩치 탓에 정말로 맹수가 달려오는 듯한 기세를 풍기며 윌리엄이 언철산에게 달려들자, 사람들의 시선이 언철산에게로 향했다.

        ​

        올곧지만 단순한 돌격.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

        당장이라도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는 윌리엄의 모습에 언철산이 뜨거운 눈으로 자세를 잡았다. 

        ​

        방심 따위는 없다.

        ​

        미지의 적에게 방심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므로.

        ​

        언철산의 다리 간격이 벌어지고, 손등에 힘줄이 돋았다.

        ​

        그리고 달려오는 윌리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변초 따위는 없는 정직한 주먹. 하지만 파공성이 들릴 정도로 빠른 일격.

        ​

        윌리엄의 눈이 그 주먹을 쫒았다.

        ​

        그리고는 오른발을 바깥쪽으로 벌리고 언철산의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그 순간 싸움이 결정되었을 터.

        ​

        하지만 언철산은 평범한 무림인이 아니었다.

        ​

       

        ‘발차기인가!’

        ​

       

        권법이라고 하지만, 결국 권법에는 각법 또한 포함이 되어있는 것. 윌리엄은 명치를 향해 날아오는 오른발을 확인하곤 공격 대신 왼팔로 발차기를 막아냈다.

        ​

        서로의 몸에 충격이 달린다. 

        ​

       

        ‘강철로 된 기둥을 차는 것 같군!’

        ​

       

        하지만 윌리엄은 팔에 느껴지는 고통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 주먹을 꽉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지근거리까지 달라붙은 상황이기에, 언철산은 그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철판교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

        그것이 정권이 아님을 모르고.

        ​

        순식간에 앞섶을 잡힌 언철산의 몸이 원을 그렸다.

        ​

        잘못하면 곧바로 땅에 메다 꽂힐법한 위기. 

        ​

        하지만 순순히 당해줄 언철산이 아니었다. 그는 곧장 다리를 굽혀 바닥에 발을 박아버리고는, 하체의 힘으로 메치기를 버텨냈다.

        ​

        윌리엄은 비틀린 자세로 언철산을 잡고 있다간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었기에 손을 놓고 몸을 돌려 언철산의 공격을 대비했다.

        ​

        하지만 언철산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를 공격하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

       

        “대단하군! 무당의 태극권에서나 볼법한 수를 펼치다니 말이오!”

        ​

       

        둘이 다시 한번 거리를 벌린다.

        ​

       

        “아쉽군. 방금 한 번에 끝낼 생각이었는데.”

        ​

        “하하! 그래도 이 몸이 비무 경험은 풍부하다오!”

        ​

       

        언철산이 호탕하게 웃으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

       

        “허초를 허초로 맞받아치다니, 이거 박빙이로구먼.”

        ​

        ‘생각보다 상대하기 번거롭군.’

        ​

       

        주 장기인 검을 든다면야 손쉽게 요리하겠지만, 맨주먹으로 상대하기에는 다소 귀찮은 상대.

        ​

       

        ‘튼튼한 놈인 것 같으니 한 번에 몰아치는 게 낫겠군.’

        ​

       

        윌리엄의 신형이 다시 한번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

        검투술은 공세에 들어설 때 진가를 발휘하는 아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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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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