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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차석과 제2황자가 결투를 벌인다는 소식은 곧 교내로 퍼져나갔다.

         

       “그게 사실이야?”

       “진짜라니까. 조금 있으면 시작한대!”

       “우리도 보러 가자.”

         

       예로부터 제일 재밌는 게 남의 싸움 구경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대운동장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몇몇은 먹을 걸 싸 들고 왔다.

         

       대운동장으로 향하는 인파. 그 인파를 거스르는 작은 소녀가 있었다.

         

       프레이였다. 그녀는 헥헥거리며 교내식당으로 달려갔다.

         

       식당 한쪽에는 양껏 군것질을 할 수 있는 스낵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프레이는 냅다 동화를 꺼내 스낵코너를 보고 있는 알바생에게 내밀었다.

         

       “허니버터캐러멜멜팝콘 라지 사이즈로! 빨리이이이잇─!!”

         

       원래 자리로 돌아온 프레이는 팝콘을 우걱우걱 씹어먹으면서 로테의 곁에 앉았다.

         

       “이 상황에서 먹을 게 넘어가니?”

       “웅.”

       “황자가 마법을 못 쓰게 했잖아. 난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괜찮아. 어차피 이번엔 노랭이가 이길 테니까!”

         

       마도사가 아닌 인간이 마도사를 상대로 이긴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비록 클리온 황자는 마수 한 마리 잡아본 적 없는 견습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특별반에 들어올 만큼 뛰어난 인재였다. 아무리 못해도 마력량만큼은 일반인을 뛰어넘으리라.

         

       로테는 그 점이 걱정됐다. 금안족인 에테르가 클리온을 상대로 마력초 없이 이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이 상황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이르카였다.

         

       이르카 엘리예프 자작 영애. 그녀는 얼떨결에 자신의 운명을 한 금안족 소녀에게 맡긴 꼴이 되었다. 처음엔 무어라 항변하려 했지만….

         

       ─ 괜찮다. 쟤라면 어떻게든 이길 테니까.

         

       수석 입학생인 버멜이 그리 말했으니까. 실기에서 압도적인 실력차로 자신을 이겼던 버멜이라면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이르카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과 황자 사이의 실력은 비등비등했다. 결투를 벌인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승기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반면에 그녀는 에테르의 전투 스타일을 몰랐다. 그러니 불안해하면서도 내심 기대를 가졌다.

         

       과연, 금안족이 어떻게 싸울지.

         

       “자, 규칙을 알려줄게. 제한시간은 10분으로 잡을 거야. 그동안에 어느 한쪽이 항복선언을 하거나 전투불능에 빠지지 않는다면 무승부로 처리된단다. 물론 다른 학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링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렴.”

         

       교정결투는 법망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다. 선생님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전투마도사가 결투를 지켜보고 심판을 내린다. 필요하다면 결투 도중에 개입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누가 죽어선 안 될 테니까.

         

       그렇지만.

         

       “혹시나 다쳐도 걱정할 필욘 없어. 학교 비용으로 웬만한 상해는 보험 처리를 해 줄 테니까.”

         

       헤를라인 선생님이라면 어지간해선 개입하지 않으리라.

         

       결투라고는 해도 실전은 아니었다. 피해 경감 마법을 받은 두 사람이 링 안에 섰다.

         

       “무책임하기 그지없군. 이 한 번의 결투에 엘리예프 자작 영애의 운명까지 담보로 잡을 줄이야. 금안족들은 원래 그런가?”

       “몰라, 새끼야.”

       “그 얼굴을 금방 벌겋게 물들여주지. 만반의 준비를 해라.”

         

       아공간에서 스태프를 꺼내든 클리온이 에테르를 향해 영점을 맞췄다. 에테르 또한 미리 준비해 둔 스태프를 휘두르며 무게감을 점검했다.

         

       에테르는 떨지 않았다. 마력초를 피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몸을 풀었다.

         

       사실 그녀는 이제 마력초를 피우지 않고도 마력을 다룰 수 있었다.

         

       ─ 판타지 세계를 여행하는 물리학자를 위한 마도안내서(중급)

         

       소녀가 지니고 있던 그 마도서에는 ‘불가시 모드’가 켜져 있다.

         

       즉 에테르 외에는 마도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이는 클리온 황자도 마찬가지였다. 황자를 포함해 대운동장의 어느 누구도 에테르가 치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현재 차징(Charging)되어있는 마력량은 102시버트입니다.]

         

       에테르의 양장본이 중급 기능에 들어서면서 생긴 기능. 그러한 기능 탓에 에테르는 하루에 1번에서 3번 정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것이 가능헀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내 시종으로 들어온다면 다칠 일도 없을 텐데 말이야.”

       “흐.”

         

       소녀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도발하는 클리온에게 대꾸했다.

         

       “생선 가시 바르듯이 쳐발라줄게.”

         

       **

         

       전운이 감돌았다.

         

       “양쪽 모두 준비해. 3초 뒤에 시작할게!”

         

       셋, 둘, 하나.

         

       “시작하렴!”

         

       파바박─!!

         

       헤를라인이 깃발을 내리자마자 소녀는 지축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단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10m가 좁혀졌다.

         

       클리온은 순간 당황했다. 예상과는 영 딴판이었다.

         

       “저게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력이야?”

         

       로테의 물음에 프레이가 대신 대답했다.

         

       “저건 체술이야.”

       “체술? 수인들이 쓰는 그 체술 말이야?”

       “응.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체술을 처음 개발한 건 금안족이야. 나중에 수인들이 그걸 빌려다가 쓴 거지.”

         

       마력이 없기에 몸이라도 단련하고자 했다. 금안족은 외양과는 다르게 높은 신체능력을 타고났다. 그야말로 문무겸비였다.

         

       하기야, 마법을 못 쓰는데 머리와 몸이라도 좋아야 밸런스가 맞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여신이 자신의 피조물을 차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애롭고 공정한 이 세상의 창조주께서 그런 편견을 지니실 리가 없다.

         

       뒷산에서 마수를 후리던 실력은 어디 안 간다. 투박한 움직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에테르는 아직 자신이 노예였을 시절을 되짚었다.

         

       ─ 알겠어? 대인전은 마수를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

         

       헤를라인 선생님의 조언이었다. 분명 로테와 전투를 치를 때와는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클리온을 상대로는 아니었다.

         

       자신에게 퇴학을 종용하여 첩으로 삼으려고 한 죄. 학급 친구에게 누명을 씌워 가족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죄. 성욕에 눈이 멀어 미래 자신을 보필할 인물들로부터 신망을 잃어버린 죄.

         

       에테르의 눈에는 눈앞의 황자가 사람 새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사람 새끼로 만들어야 한다.

         

       허리를 앞으로 굽히고, 몸을 방추형으로 만든다. 공기저항을 최소로 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에테르는 몸을 사선으로 틀며 철제 스태프를 곧장 휘둘렀다.

         

       “이 년이!”

         

       주문을 영창해야 했다. 클리온은 최대한 거리를 벌린 뒤 수탄(水彈)을 형성했다. 공기 중에 있던 걸 모아 물방울을 만들었다. 물방울은 곧 강력한 수압을 지닌 물줄기로 변했다.

         

       수십 갈래의 물줄기가 돌진해오는 소녀를 막기 위해 아우성쳤다. 해룡이 꿈틀거리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에테르는 그 모든 것을 피했다. 습기를 머금기 시작한 땅은 질퍽거렸다. 그럼에도 소녀의 이동속도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소녀가 날아오는 물줄기 하나를 스태프의 끝으로 쳐내 땅으로 휘게 만들었다.

         

       그 물줄기는 클리온의 발치 앞으로 떨어졌다. 불과 1m가 안 되는 거리였다. 수압을 맞고 튕겨나간 진흙이 산탄이 되어 클리온의 눈앞을 막았다.

         

       “으윽!”

         

       괜히 피할 수 있는 걸 쳐낸 게 아니었다. 계산된 움직임이었다.

         

       “팔정도(八正道).”

         

       그 다음 순간, 클리온은 형용할 수 없는 마력량의 변동을 느꼈다.

         

       자신의 몸이 아닌, 외부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의 벡터장. 마소의 흐름은 명백히 소녀가 있는 쪽으로부터 발산하고 있었다.

         

       마력초를 물었나?

         

       아니.

         

       오른손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오른손에 든 채로 마력을 끌어치고 있다.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낀 클리온은 서둘러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클리온의 클래스는 로테와 마찬가지로 캐스터(Caster)였다.

         

       주문을 많이 스톡해둘 수는 있지만, 상대가 근접전으로 다가온다면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오히려 근접 대처에도 능한 로테가 아웃라이어에 속했다. 보통의 캐스터는 접근을 허용하면 무력해진다.

         

       3분 경과. 이제 전초전을 벗어났다. 여태까지의 에테르는 클리온이 로테와 같은 대처법을 지니고 있는지 떠본 것에 불과했다. 그게 없다는 걸 안 소녀는 살기등등한 미소를 지으며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이런 미친!”

         

       아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에테르가 달려오는 궤적마다 땅이 움푹 파였다. 저 여린 몸에서는 나올 수 없는 다릿심이었다. 마치, 겉보기 질량과 실제 무게가 다른 듯했다.

         

       클리온은 몸에 담긴 마력을 모두 끌어모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마법을 전개했다.

         

       해일이 일어났다. 육지 한가운데에서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력에 이끌리듯 나타난 쓰나미는 대운동장을 모래사장으로 바꿔놓았다. 전해질 덩어리가 육지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며 소녀에게로 향했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피할 수 없는 해일이었다. 면 형태로 쓸고 들어오는 물바다를 피하려면 위로 올라가거나, 개구멍을 파고 숨어들어야 했다. 에테르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

         

       정면에서 맞는다면 뒤로 넘어질 것이다. 거품기 묻은 짠물과 함께 흙바닥에 구르게 될 것이다. 이제 막 약관을 넘긴 소녀의 몸뚱이로는 받아낼 수 없는 해일이었다.

         

       분명, 맞는다면 뇌진탕이다.

         

       로테와 이르카가 각자 입술을 짓씹었다. 이 상황에서도 프레이만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팝콘을 우적거렸다.

         

       헤를라인은 여기서 멈춰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즉사만 아니면 되겠지 뭐. 양호실엔 그 사람이 있으니까.’

         

       2층짜리 해일을 마주한 에테르는, 양손으로 스태프를 길게 내뺐다. 회전관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몸에 마력이 충만함을 느낀다.

         

       로테와의 전투에서는 필요치 않아 보여주지 않았던 다른 스킬 슬롯을 사용할 차례였다.

         

       소녀가 스태프를 휘두르며 외쳤다.

         

       팔정도 제2식.

         

       “아발란체(Avalanche Breakdown)─!!”

         

       소녀가 스태프를 휘두르자 2층 높이의 해일이 반으로 갈라졌다.

         

       절단이 난 해일은 운동 벡터를 바꿔 클리온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 해일에 전류가 감기기 시작했다. 에너지를 받은 해일의 물 분자는 빠른 속도로 달궈졌다. H2O를 구성하는 전자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고, 그것이 클리온의 앞까지 헤엄쳐 나아갔다.

         

       마소의 흐름은 아니었다.

         

       전자의 사태(沙汰)였다.

         

       전기를 머금은 물 사이에서, 소녀는 링의 끝단에서 끝단까지 헤엄쳐왔다.

         

       “으, 으아아아아악!!”

         

       마법이 듣질 않는다. 다른 마도를 쓸 수가 없었다. 쓸 때마다 클리온의 몸속의 회로가 타들어가는 듯했다.

         

       눈앞이 흐려졌다. 언젠가 한 번 겪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새벽, 분수대 앞에서 신원 미상의 날붙이로부터 복부가 꿰뚫렸을 때. 그때의 감각과 비슷하다.

         

       에테르가 무서운 기세로 자신을 향해 스태프를 내리쳤다.

         

       클리온은 자신이 좆됐음을 예감했다.

         

       “잠깐! 내, 내가 졌다!! 항……!!”

         

       빠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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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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