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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은폐 기술에 대한 유구한 격언이다. (아니다.)

         

         따라서, 숲으로 침투하는 절멸부대는 나뭇잎을 이용한 함정 설치의 달인이 된다. 계절에 따라 설치법이 달라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크라실로프엔 여름과 겨울밖에 없으므로 한결 수월하다.

         

         

        -티잉—

         

         “엑!!”

         

         

         이자벨은 실이 끊어지는 날카로운 소리를 듣자마자 머리를 감싸며 몸을 굴렸다. 곧, 콰앙. 익숙한 폭음과 함께 이자벨이 서 있던 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진짜! 이건 사람 죽을 정도 잖아!”

         “실전처럼 가르쳐 달라 한 건 네가 아니었나.”

         “그게 정도란 게! 있는! 거죠!”

         

         

         이자벨은 발딱 일어서며 곧장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칼을 휘둘렀다.

         

         

        -카앙!

         

         “감정을 죽여라.”

         “아저씨를 죽이고 싶어지는데!”

         

         

         통산 전적 17전 0승 17패. 이자벨은 이를 아득아득 깨물며 검을 휘둘러 쳤다.

         

         캉, 카앙. 불똥이 튀며 그림자 속에서 도끼날이 번뜩인다. 이쯤되면 이젠 일종의 루틴이다.

         

         총격 직후 회피 방향에 부비트랩, 트랩을 피하면 그 회피 방향으로 급습.

         

         이반의 패턴은 악랄하기 그지 없었다. 피하는 방향마저 함정의 연속으로 유도하는 깔끔한 실력이다.

         

         아차하는 순간 죽거나 중상이 예정된 수준의 함정들이다.

         

         그렇게 닷새가 지나자, 이자벨은 이제 눈을 감고도 공격 타이밍을 잡을 수 있을 수준이 되었다.

         

         

         “훌륭하군.”

         

         

         이반은 픽 웃으며 도끼를 거두고 물러섰다. 숲 속 시원한 바람이 이자벨의 앞머리를 간질였다.

         

         

         “역시 사람은 두드릴수록 강인해지지.”

         “내가 아는 사람이랑 아저씨가 아는 사람이 약간 개념이 다른 것 같아요.”

         “적어도 너는 아니지. 잘 따라왔다.”

         

         

         이반은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용사 파티를 직접 마주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기준이 턱 없이 높아져 있다는 뜻이지만, 오히려 그 탓에 ‘훈련생’을 다루는 기준은 극도로 낮았다.

         

         어떻게 해도 용사처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진짜 강자를 제외하면 모두 거기서 거기니까.

         

         개 중에서 조금이라도 뛰어나면 충분하다. 애초에 영웅을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병사를 가르치는 방식에 더 익숙한 탓이다.

         

         군사란 평균적인 성능만 발휘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작전 수행에 지장이 가지 않는 수준만 된다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제부턴 아니다. 이반은 도끼를 들며 자세를 잡았다.

         

         암습 대응에 필요한 기초적인 테크닉은 모두 가르쳤다. 이제부턴 감각과 숙달의 문제.

         

         그러니까 남은 시간은.

         

         

         “검을 들어라.”

         

         

         초인의 영역을 가르친다.

         

         이반의 눈이 깊어졌다. 마력이 휘몰아치며 수염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진짜 강자들, 초인의 전장에 발을 딛는 강자들은 ‘격’이 다르니까.

         

         이자벨이 언젠가 닿아야만 하는 그 곳으로, 지금부터 머릿속에 때려 박아서라도 가르친다.

         

         

         ‘아카데미는 위험하다.’

         

         

         대학이 위험해봐야 얼마나 위험할까 싶지만, 적어도 ‘아카데미’는 아니다. 아카데미는 말 그대로 최전방 전선과 다를 바 없으니까.

         

         그건 ‘상식’이다.

         

         

         “칼을 뻗어봐라.”

         “네? 아, 네.”

         

         

         이자벨은 검을 곧게 뻗었다. 흠잡을 곳 없는 자세다. 검을 쥔 자세부터 디딤발, 복압과 어깨에서 손목까지의 균형이 완벽에 가깝다.

         

         과연 용사의 딸이다. 몸을 쓰는 재능이 본능적인 영역에서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필요한 건 단지 학습과 경험뿐.

         

         

         “버텨라.”

         “…네?”

         

         

         그거 참 굉장히 안심 되는 말이네요. 하고 웃으며 농담하려는 순간.

         

         

        -키잉—!

         

         

         이반의 팔이 흐릿해지나 싶더니 순간 칼날이 두동강 났다.

         

         도끼로 검을 쪼개버렸음에도 충격이 닿지도 않았다. 두부를 썰듯 도끼가 칼날을 베어냈다.

         

         

         “이건 또 무슨….”

         

         

         이자벨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녀는 반토막 난 칼을 멍하니 바라보며 피식거렸다.

         

         

         “이거 진짜 비싼… 아니, 대체….”

         “보았나?”

         “뭘요? 내 검이 검이었던 것으로 바뀌는 모습이요…?”

         “시간의 박리.”

         

         

         이반은 도끼를 빙글 돌려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사람의 청각 신경은 0.1초, 촉각신경은 0.25초. 단련의 한계가 명확한 영역이지.”

         

         

         그건 인체 구조상의 한계다. 신경 반응속도는 감각기관이 수용체를 거쳐 뇌로 전달하는 전기 자극이었으므로, 물리적인 속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근대 판타지 세상에선 아직 그 정도의 해부학이 발달해 있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이 세상엔 마력이란 것이 존재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이 만능 자원은, 인간의 신경계에 직접적으로 간섭해 전달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시간의 박리.

         

         

         “마력으로 신경을 강화하면 펼쳐지는 세상이 있다. 이자벨. 보는 것, 느끼는 것, 움직이는 것이 한계를 넘어서면 도달하는 영역이 있다.”

         

         

         그곳이 초인의 전장이다.

         

         그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 이들은 대단히 한정적이지만, 충분한 재능과 경험이 쌓인다면 언젠가 닿게 되는 종착지.

         

         ‘격’이 있는 자들의 투쟁이 시작되는 첫 단추다. 이곳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평생 일개 병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이자벨은 조연이 아니다. 그녀는 명백히 이 세계의 주연 중 하나다. 그러니까, 대비해야 했다. 이건 빠르게 도달할수록 유리한 경지니까.

         

         언제나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반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다. 등을 떠밀어주는 것.

         

         

         “그걸 갑자기 하라고 하셔도…..”

         “하게 될 거다.”

         “네, 물론 그, 가르쳐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지만요.”

         “할 때까지 겪으면 된다.”

         “엑?”

         

         

         이반은 도끼를 들어 거꾸로 쥐었다. 날이 아닌 등으로,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듯이. 무해한 표정을 지으며.

         

         

         “생존본능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니까.”

         “미친 소리를 되게 자연스럽게 하시는데….”

         

         

         이자벨은 이 미치광이에게 훈련을 부탁했던 과거의 자신을 저주하며 부러진 칼을 들어 올렸다.

         

         그것이 이자벨이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콰앙!

         

         

        *

        

        

        “벨라, 벨라? 벨라!!”

        “어?! 응?”

        

        

        이자벨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엔 에시디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듯한 봄날의 교정, 에시디스와 이자벨은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점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꿈이었구나. (아니다.)

        

        이자벨은 소름이 오스스 돋는 느낌에 팔뚝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들었다.

        

        

        “너 요새 이상해. 무슨 일 있어?”

        “일이라… 아하하. 시험 준비하느라 그렇지 뭐.”

        “무슨 공부를 그렇게… 으응… 기사학부라서 그런가? 되게 멍이 많아진 것 같은데.”

        

        

        용사의 딸이니만큼 이자벨은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틸레스 왕정에서 전속 배정한 사제라든지.

        

        매일 밤마다 거의 산산조각이 나서 돌아와도 다음날이면 멀쩡한 모습으로 등교할 수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슬프게도 부상과 피로는 점점 더 누적되어 간다. 이자벨의 눈 밑에 거뭇하게 내려 앉은 다크서클이 그 증거다.

        

        

        “그리고 너 요새 좀 수상해. 누구 만나?”

        “만나긴 무슨! 내가 누굴 만나!”

        

        

        틸레스 궁정 귀족이었던 출신 때문인지 이자벨의 옷과 액세서리들은 물론 최고급품들뿐이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더 힘을 준 것 같은데….

        

        에시디스는 기사학부에 괜찮은 남자가 있던가, 하고 생각하다가 삼촌이 떠올라 인상을 찌푸렸다.

        

        기사학부는 끔찍한 곳이다.

        

        

        “유리 양은 뭐 아는 거 없어요? 벨라가 친하게 지내는 남자애라던지.”

        “이자벨 양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긴 하죠. 으음. 요샌 글쎄요. 다들 시험 준비한다고 바빠서. 굳이 따지면 오스칼 씨 정도일까요?”

        “세상에! 오스칼!?”

        

        

        에시디스는 히죽거리며 이자벨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너어, 오스칼이랑 뭐 있어?”

        “에시. 사람이 농담을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는 거야. 솔직히 오스칼은 너무… 뭐랄까. 좀 느끼하잖아.”

        “왜? 걔 인기 많잖아.”

        “난 좀 듬직하고 과묵한… 음. 좀 곰 같은…? 그런? 믿음직한 그런 사람이 좋아. 걘 너무 여리여리하잖니.”

        

        

        여리여리…? 오스칼이 그랬던가? 에시디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게 신경 써 본 적은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기사 훈련을 받아온 앤데?

        

        혼란에 빠진 에시디스를 두고 이자벨은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난 그럼 훈련 좀 더 하러 간다!”

        “저한테서 장학금까지 뺏어가시려고!”

        “그럼 평생 너만 수석하게 둘까 봐!”

        

        

        이자벨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걸었다.

        

        

       *

        

        

        “아저씨!”

        “음.”

        “아하하… 언제쯤이면 아저씨가 저한테 ‘안녕!’ 할까요.”

        

        

        전지 가위를 든 이반은 멀리서 도도도 달려오는 이자벨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도 훈련하러 가죠! 내일이 시험인데!”

        “아니.”

        “엥?”

        

        

        이반은 이자벨을 위아래로 훑었다. 엿새 간의 훈련이 남긴 피로가 여실히 보였다. 애써 치료한 모양이었지만, 결코 만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태.

        

        

        “오늘은 쉬어라. 내일을 대비해야지.”

        “으음… 그러면… 음….”

        

        

        이자벨은 머리 끝을 슬슬 만지며 갈등했다. 그녀는 눈을 살짝 굴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 식사 하셨어요…? 음. 아니면…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바쁘다.”

        “엑.”

        

        

        이반은 효율적인 사람이었으므로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

        

        그는 멍하니 서 있는 이자벨을 일별하고는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내일은 현장 실습. 그것도 대학 외부에서 벌이는 시험이다. 당연히 미지의 적들이 적습을 시도할 예정이므로, 그 또한 사전에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아카데미 현장 실습에선 습격이 일어나는 것이 상식이었으므로.

        

        이반은 상식적인 사람이다. 적습을 예상했다면 이에 대비하여, 습격에 앞서 타겟을 제거하는 것이 절멸부대의 상식이었다.

        

        

        “나 정말 정신 나갈 것 같애….”

        

        

        이자벨은 떠나는 이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

        

        

        “대박….”

        

        

        유리와 에시디스는 먼 발치에서 그 광경을 보며 주륵, 커피를 흘렸다.

        

        

        “남자가… 정원사…?”

        “남자가… 미친 도끼 수염 존윅…?”

        “그건 누구에요?”

        “그런… 그런 사람이 있어요….”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러스! 전환! 했습니다!!

    이제 정말 후진이 업서… 전진 뿐이야…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해요!! 후원 메세지가 많이 쌓여 있어요! 제가 또 댓글 알람을 무서워서 못보고 있었는데! 금방 확인하고 바로 비명지르면서 감사 인사 드리러 올게요!!

    *

    납쁜아조씨…그러다가 ‘빙의’해 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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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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