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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10년 전, 큰 이슈를 모았던 천재 아역.

       주서연.

       

       ‘확실히 연기력은 있어. 하지만, 무대를 서는 건 다른 문제야.’

       

       연출의 조도율은 앞으로 나온 서연을 보며 펜을 들었다.

       그의 앞에는 평가를 위한 노트가 놓여있었다.

       

       1차 오디션, 자유연기를 찍은 영상.

       영상으로만 보면, 확실히 그녀가 배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카메라를 보고 그에 맞는 연기를 펼친다.

       

       영상을 통해 본, ‘홍정희’는 나름대로 배우의 해석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지 않게, 그리고 적절히 녹아있었다.

       

       그러니, 불안 요소가 여럿 있음에도 1차 오디션을 통과시킨 것이다.

       

       ‘대본은?’

       ‘전부 외웠나 보네요.’

       ‘흐음.’

       

       서연의 대본은 의자 위에 놓여있었다.

       대사를 전부 외우면 좋지만, 필수적인 건 아니다.

       

       오디션에서도 대본을 들고 연기하는 배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 인상은 좋아도, 가점의 영역은 아니다.

       

       오히려 대본 없이 연기하다 실수하는 게 오히려 문제였다.

       

       ‘자, 어떤 걸 보여줄까.’

       

       대본에 주어진 홍정희의 씬은, 그 음습함이 강렬히 드러나는 3막 6장.

       풋풋한 썸을 타는 배성학과 송민서의 연애 장면.

       

       그것을 은밀히 지켜보는 홍정희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3막의 마무리이자, 4막의 위기를 알리는 전조.

       

       그만큼 중요한 장면이었고, 이곳에서 홍정희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다음 막에서 홍정희의 캐릭터가 죽어버린다.

       

       ‘잘할까?’

       ‘하지만, 10년이나 쉬었는데.’

       ‘드라마랑 연극은 다르잖아?’

       

       거기에 서연은 단순히 10년을 쉬었다는 걸 떠나, 제대로 연기한 경험이 태양을 숨긴 달 하나가 유일하다.

       경험적인 면에서,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우라가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 아우라.

       천부적인 재능.

       

       그 편린을 모두가 마주한 가운데.

       

       「흐.」

       

       서연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거짓말.」

       

       내리깐 웃음, 이어지는 한마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조도율은 소름돋았다.

       연기를 잘해서?

       

       아니, 목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전달돼서.

       

       ‘뭐야.’

       

       연극 처음이라 하지 않았나?

       앞을 보면, 천재아역 주서연은 이미 없었다.

       

       등이 굽었다.

       긴 머리카락이 앞으로 흘러내려 음침한 느낌을 주었다.

       그 어여쁘던 얼굴에서 아름다움이 사라졌다.

       

       「어째서, 어째서 저런 년 따위에게 웃어? 저런 모습, 보여준 적 없잖아.」

       

       연극의 연기와, 드라마의 연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건 표현의 방식이다.

       

       드라마는 보다 감정적이며, 세밀한 연기가 중요하다.

       배우의 얼굴을 확대하고, 감정을 잡아내는 게 가능했다.

       

       흔히 말하는 자연스러운 연기.

       일상의 표현에 감정을 담아, 그것을 표현하는 게 드라마의 연기다.

       

       하지만 극은 어떠한가.

       

       「설마, 흐, 설마 그럴 리 없어. 소, 속고 있는 게 아닐까? 저년이, 분명, 수, 순진한 오빠를 꼬시는 게 분명해. 그래!」

       

       서연은 과장되게 가슴을 움켜쥐고, 발을 갈지(之)자로 비척비척.

       어두운 골목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여인처럼 움직였다.

       

       대사를 내뱉으며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연극의 연기.

       그것은 신체의 표현에 있다.

       

       과장된 동작, 그것과 같으면서 다르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무대에서 보여주는 배우의 감정은 얼굴보다 그 신체로서 전달된다.

       

       손과 팔.

       다리, 그리고 들썩이는 몸짓.

       

       그와 함께 홍정희의 대사를 토한다.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리지만, 발음이 뭉개지지 않는다.

       

       발성을 제대로 배웠다는 증거다.

       목소리도 뭔가 처음 들었을 때와 달랐다.

       

       갈라지고, 음습한 여인의 목소리.

       

       ‘이런, 미친.’

       

       서연과 함께 들어온 배우들은 그런 서연의 연기를 보고 팔뚝을 쓸었다.

       저 과장된 동작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실제 연극을 보듯, 누구라도 눈앞에 있는 이가 ‘홍정희’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몰래 가볼까? 흐, 이렇게, 교복을 입으면. 오빠도 모질게 내치지 못할 텐데.」

       

       이 부분은 대본에 없던 부분이다.

       하지만 대사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있었다.

       

       현재 서연의 복장은 교복.

       반면 홍정희는 스물이 넘는 대학생이다.

       당연히 복장은 미스였으나, 그것을 자연스럽게 나타냈다.

       

       스물이 넘은 여인이, 십대를 연기하여 아이돌에게 접근한다.

       그것 만으로 홍정희의 음습함을 나타내기엔 충분했으니까.

       

       ‘노린 건가?’

       

       아니면 즉흥인가.

       연극은 처음.

       

       그것을 증명하는 건 블로킹이었다.

       블로킹은 연기를 펼치며 움직이는 동선을 뜻한다.

       

       실제 무대에 서본 경험이 없는 서연은 당연히 그 블로킹이 부족했다.

       하지만 본인도 그것을 인지했다. 

       머릿속에서 그린 동선, 골목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고 비척비척 발걸음을 움직이는 홍정희.

       

       블로킹이라기엔 어색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와닿는 연기다.

       홍정희의 불안정한 심리를 나타내는 것처럼 속였다.

       

       거기에 시선은 어떠한가.

       관객은 배우의 신체로 감정을 읽지만, 얼굴을 보고자 한다.

       그것을 인지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서연의 시야는 늘 일부 심사위원 쪽으로 향해있었다.

       

       「조금, 아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오빠. 제, 제가 반드시…….」

       

       몸을 움츠리고, 보폭이 짧은 발걸음으로 돌아선다.

       무대의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서연의 ‘홍정희’ 연기가 끝났다.

       

       “…….”

       

       묘한 적막이 있었다.

       조도율은 반성했다. 드라마를 해봐서 경험이 부족하다고?

       그래, 경험은 부족하겠지. 하지만 그걸 넘는 기술과 재능이 번쩍였다.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천재의 연기였다.

       부족한 블로킹, 약간 흔들렸던 시선 처리.

       

       이런 건 알려주면 금방 익히겠지.

       

       “서연 배우님, 지금 나이가…….”

       “열일곱이에요.”

       “고등학교 1학년?”

       “네.”

       

       차분한 대답이다.

       방금 홍정희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퇴색됐던 빛이 다시 돌아왔다.

       

       “흐음.”

       

       조도율은 펜을 쥔 손과, 채점을 위한 종이를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끄적인 글이 적혀있었다.

       

       ‘우선…….’

       ‘이건, 끝난 거 같죠?’

       

       그런 시선이 오갔다.

       오늘 본 어떤 배우보다 홍정희에 어울렸다.

       그녀의 후순번으로 대기하던 배우들의 얼굴이 답을 알려주었다.

       

       다른 배우의 연기에 눌려버린 배우는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없다.

       

       딱, 딱.

       

       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조도율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본래는 좀 더 몇 가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만.”

       

       이미 묻고 싶은 걸 연기로 전부 보여주었다.

       홍정희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교복을 입고 온 이유.

       

       “도저히 열일곱이라 볼 수 없는 연기네요. 혹시 쉬는 동안 계속 연기했나요?”

       “연기 학원에 계속 다녔어요.”

       “연기 학원이요? 아, 혹시 어딘지…….”

       

       그렇게 다른 심사위원들이 질문했고, 서연은 차분히 답했다.

       마치 감정이 없는 것 같은 아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방금 보여준 연기를 보면 절대 그럴 리 없었다.

       뭣보다 주서연이라는 배우는 ‘감정 연기’를 강점으로 삼았던 아역 아니던가.

       

       “자, 그럼…….”

       

       모든 질문이 끝나고, 서연은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 호명된 배우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가운데.

       

       ‘……아쉽네.’

       

       서연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연기는 잘 했다, 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들의 반응도 좋았으니까.

       보다 감정을 토해내는 게 좋았을까?

       

       막상 첫 연극 연기는, 몇 번이고 연습하며 강사나 다른 배우들의 말을 들었음에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직접 관객의 앞에서 해본 적 없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뭣보다 연극은 전생에서도 본 적이 없으니까.

       

       ‘최대한 동선을 속이기는 했는데.’

       

       모두가 감탄하는 연기였지만, 서연은 이번 연기의 실수를 몇 가지 떠올렸다.

       그리고 감정을 좀 더 담고 싶었다.

       하지만, 보다 감정을 깊게 담거나,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면 그 실수가 배는 많아졌을 것이다.

       

       감정 모사로, 가면을 쓴 것만으로 극의 연기는 충분.

       그걸 알면서도 아쉬워하는 자신이 있었다.

       

       ‘과연, 어떨까.’

       

       서연은 긴장했다.

       모두가 감탄한 서연의 연기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킨 여자를 보았다.

       표지우.

       

       그녀는 줄곧 배성학을 보고 있었다.

       모두가 시선을 빼앗길 연기를 하고자 했지만, 끝내 표지우는 서연의 연기에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표지우의 시선이 서연에게 향했다.

       

       ‘……웃어?’

       

       비릿한, 묘한 감정이 담긴 음험한 미소.

       표지우는 그리 웃으며 서연을 보았다.

       

       절대, 절대로 이 배역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 눈에서 느껴졌다.

       

       “그럼, 마지막으로 표지우 배우님.”

       “네.”

       

       하지만 그 가라앉은 분위기는 이어 조도율의 호명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비틀.

       이미 걸음걸이부터 ‘홍정희’를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다.

       

       “연기, 시작하겠습니다.”

       

       몇 가지 질문이 먼저 오간 뒤, 표지우는 연기를 시작했다.

       질문과 답은 딱히 모난 것 없이 평범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은 있어도,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녀의 이상성을 눈치채지 못했다.

       문제의 당사자인 민서호조차도.

       하지만 그중 단 한 명.

       서연은 표지우를 알고 있었다.

       

       연극이나, 영화. 

       그런 게 아닌 ‘뉴스’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으니까.

       

       「흐, ……거, 거짓말.」

       

       몸을 숙인다, 흘러내린 웨이브진 머리가.

       마치 물에 젖은 해초와 같이 그녀의 얼굴을 덮는다.

       그 사이에 드러난 눈동자에는 번들거리는 광기가 있었다.

       

       “!!!”

       

       순간, 배성학 역의 배우 민서호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또렷히 자신을 향했으니까.

       

       그가 배성학 역이기 때문일까?

       

       ‘메소드 연기!’

       

       조도율은 몸을 긴장시켰다.

       단번에 표지우의 분위기가 변했다.

       

       소름이 돋았다. 진득하게 번지는 어둠이 있었다.

       홍정희의 설정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

       

       그렇기에 더욱 불쾌하고, 더욱 음습한.

       거기에서 나오는 공포가 있었다.

       

       서연의 연기가 그 음습함에 초점을 맞추져있다면.

       표지우는 그 불쾌감이다.

       

       마치, 진짜 홍정희를 마주한 불쾌감.

       떨쳐내고 싶고 뿌리치고 싶은 공포.

       

       「방법, 방법을 찾아야 해. 저년을, 저, 가증스러운 년을, 제거할 방법.」

       

       서연은 표지우의 연기를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래, 이거구나.

       

       정말 홍정희가 눈앞에 있는 것 같다.

       메소드 연기?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연기가, 그녀를 영화판으로 인도한 연기.’

       

       만인이 찬사한 이 광기는.

       진짜다.

       

       표지우는, ‘배성학’ 역의 배우. 민서호의 스토커.

       심지어 걸리지도 않았고, 최후의 최후까지 그림자를 밟아간 진짜배기다.

       

       ‘동시에, 연기실력도…… 진짜.’

       

       시선의 처리, 연극의 동작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

       특히 블로킹은 서연보다 능숙했다.

       

       그도 그럴 게, 표지우는 이게 연극이 처음이 아니다.

       오직 민서호의 곁에서 연기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미 몇 개나 되는 극에 출연했다.

       

       물론, 다른 연극의 평가는 그냥 그랬다.

       애초에 진심으로 한 연기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홍정희는 표지우의 진심.

       여태까지가 연습과정이었다면, 이건 그녀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다.

       

       “……끝났습니다.”

       

       표지우의 연기가 끝났을 때.

       다른 의미로 주변은 얼어붙었다.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의 등장.

       방금 표지우가 보여준 광기에 가까운 연기.

       

       ‘흐.’

       

       표지우는 만족스런 속으로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심사위원들은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배역에는, 내가 더 어울릴 거야. 그렇잖아? 내가, 홍정희인데.’

       

       본인도 그 사실을 안다.

       이건 하늘이 내린 배역이다.

       

       민서호와 자신을 이어주기 위해 내려진 운명.

       그러니 설령 천재라 불린 아역이어도 막을 수 없다.

       그런 마음을 담아, 잘난 천재 아역을 보았다.

       

       “……!”

       

       주서연.

       보는 것만으로 눈이 황홀해지는 소녀를 보았을 때.

       순간, 표지우는 얼어버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서연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명 밖, 어두운 그늘.

       

       그곳에서 미세하게 빛나는 붉은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한 열망. 절대 지지 않겠다는 적의.

       그 맹렬한 감정에, 표지우는 몸을 굳혔다.

       

       “음, 이거.”

       

       돌아서던 표지우의 등 뒤에서 조도율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명은 씬 하나를 더 봐야겠는데요?”

       

       심사위원 간의 대화.

       작은 목소리였지만, 심사위원에 가까이 있던 표지우는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주서연을 보자.

       무표정하던 서연의 입매가 비틀려 있었다.

       조소.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자신을 향한 비웃음.

       아까 자신이 서연에게 보인 미소를 모방하여 그대로 돌려준다.

       

       그 미소에, 표지우는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어린 계집애 따위가.

       하늘이 점지한 자신의 배역을 빼앗으려는 악랄한 계집이다.

       

       당연히 이겼다고 생각했건만, 대체 왜!

       

       ‘그래에, 해보자는 거구나.’

       

       표지우와 서연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당연히, 어느 쪽도 배역을 양보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피디픽에 들어갔네요! 모두 독자님들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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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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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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