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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 이제 <공간왜곡>에게 남은 시간은 5분 밖에 없습니다! ]

       

        전광판의 타이머가 줄어든다.

       

        ‘승천전’의 룰, 장외 처리까지 남은 시간은 5분에 불과했다.

       

        ‘놈도 잘 알고 있겠지.’

       

        <공간왜곡>김인만이 승천전에 뜬금 없이 참여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나. 그저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놈의 목표는 애당초 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원소술사>를 누르고 Z급의 1위로 올라서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하지만.

       

        [ 랭커로서의 귀감이 보이지 않는 전투입니다. 여러모로 <공간왜곡>에게 실망을 할 수밖에 없는 경기력입니다. ]

       

        해설자의 말마따나, 그의 결투는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당장 관중석에서 자리에 없는 <공간왜곡>을 향해 야유를 쏟아붓는 이들이 가득하다.

       

        “우우! 쓰레기!”

        “본선 관람 티켓 값이 아깝다! 젠장!”

        “실격 아닌가? ‘암살’을 시도했는데!”

        “…….”

       

        관중들의 아우성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암살이 금지된 수단은 아니다. 그저 일반적인 히어로 세계의 ‘기사도’에서 크게 어긋난 짓일 뿐이지.

       

        예를 들면 무협지에 나오는 ‘나려타곤’ 같은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추하지 않나. 정정당당한 승부를 위한 승천전 결투장에서 원거리 암습을 가한다는 게.

       

        “진짜 기사는 <원소술사>지.”

       

        혼잣말을 중얼거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소술사>이성혁. 그는 진정한 히어로이자 스페셜리스트 기사다.

       

        당장 대쪽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건 둘째치고, 전투 후에는 적과 아군 모두에게 존경을 사는 진국인 사람이니까.

       

        반면 김인만은?

       

        “한심한 놈이지 뭐.”

       

        혼잣말을 중얼거린 나는 고개를 들어 스타디움 중앙의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장외까지 남은 시간은 3분 정도. 아마 내 예상이 맞는다면 녀석도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팟!

       

        “젠장!”

       

        안전한 곳에서 시간을 확인하고 있던 걸까?

       

        핸드폰을 손에 든 김인만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결투장 중앙에 나타났다.

       

        입가가 잔뜩 부었는데, 옅은 피까지 묻어있다. 내가 놈에게 가한 ‘갱생펀치’가 나름 효과가 있던 모양이다.

       

        “야.”

        “뭐, 뭐냐!”

        “이거 완전 <신속>과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한숨을 뱉으며 말하자 김인만이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무슨 소리긴. 둘다 망나니 같은게 똑 닮았다는 소리다.”

       

        나는 녀석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능력과 능력…… 그러니까 <현상거절>과 <공간왜곡>의 상성은 이미 몇번의 충돌로 알 수 있었다.

       

        ‘놈이 날 헤칠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 걱정했던 부분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나름 랭커의 능력을 내가 가진 힘이 씹어먹을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탁!

       

        김인만의 지척에서 나는 손을 튕겼다.

       

        놈의 안구가 열심히 굴러다녔기 때문이다. 무언가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는 것 같았는데, 애석한 사실은 내가 그런 기습을 허용할 만큼 속이 좋은 놈이 아니란 사실이다.

       

        사아악!

       

        어둠이 내려깔린다.

       

        이전에 한유리와 처음 만났던 때 썼던 능력, ‘영역전개-공허’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실의 방으로.”

        “이, 이게 무슨……!”

       

        삽시간에 벌어진 현상에 김인만이 당황스러운 음성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팡! 팡!

       

        그의 몸 주변으로 새하얀 서리 같은 것이 내려앉았다.

       

        “오, 진짜 설정 그대로네.”

       

        명확히 ‘텔레포트’ 능력의 이론을 아는 건 아니었지만, 대강의 설정을 알고있던 나는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공간왜곡>을 비롯한 텔레포터들은 자신만의 ‘게이트’를 창조하고, 소멸시키는 힘을 가졌다. 또 해당 과정에서 새하얀 서리 같은 것이 내려앉는다는 게 <히사있>에서의 대강의 설정.

       

        저건 그 게이트를 열려고 했다는 증명이었다.

       

        “이게 뭐냐고! 느, 능력을 쓸 수가 없잖아!”

        “내가 현실세계를 거절하며 만들어 낸 공간이다. 별칭은 공허.”

        “그게 가능하다고? 너! 현실세계의 벽이 얼마나 강한 줄 모르는 거냐?!”

       

        김인만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소리쳤다.

       

        “응. 몰라.”

       

        나는 솔직한 답변을 녀석에게 내놓았다. 그냥 능력을 연구하고 쓰다보니 되는 걸 발견했다. 이론과 원리따위 내가 알게 뭐람.

       

        “미, 미친녀석…….”

       

        내 즉답에 <공간왜곡>이 경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애당초 영역이 펼쳐질 때와 사라질 때의 무방비한 리스크가 싫어 잘 쓰지 않는 방식인데.

       

        “그래도 상황은 파악했다.”

        “음?”

       

        방금까지 불안에 떨던 김인만이 비릿하게 웃었다.

       

        뭘 잘못 처먹었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였다.

       

        “내가 근접전에 약할 거라고 생각했나? 서로의 능력을 봉인하고 싸우면 그물에 잡힌 물고기라고 생각했나?”

       

        스윽.

       

        김인만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방금까지 두려워하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놈은 섬뜩한 시선으로 나를 찬찬히 훑고 있었다.

       

        “보여주마. 내 힘은 텔레포트가 전부가 아니란 것을!”

       

        마치 중2병 말기 환자처럼 김인만이 손을 쭉 위로 뻗었다.

       

        “내가 텔레포트 능력을 각성하기 전, 원래는 근접전투계열 히어로 지망생이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

       

        여유 가득한 면상의 김인만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다. 목적은 뻔했다. 얌전히 놈이 하는 꼴을 관람하던 나였다.

       

        그리고는.

       

        “크하아압!”

       

        주먹을 크게 말아쥔 김인만이 포효와 함께 달려들었다. 육체계 수련도 게을리한 건 아닌 모양인지, 그 속도와 자세가 어느정도 틀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 뭔 개소리야?”

       

        이 공간을 묻는 녀석에게 친절히 ‘공허’라는 공간이라는 걸 일러준 나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이 공간 안에서 내가 능력을 쓰지 못한다고 한 적은 없었는데?

       

        “현상거절.”

       

        흠칫!

       

        주먹을 말아쥐며 달려오던 김인만의 다리가 우뚝, 멈췄다.

       

        [ 나의 ‘신체적 능력 한계’를 거절한다. ]

       

        “어, 어이… 능력을 쓸 수 없는게 아니었냐고.”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은 김인만이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현상거절.”

       

        [ <공간왜곡>이 갖는 육체 능력을 거절한다. 그는 평소 절반의 힘밖에 내지 못한다. ]

       

        덜덜!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능력을 개방하고 진언을 읊는다. 내 목소리를 똑똑히 듣던 김인만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만아.”

       

        이상할 정도로 착착 달라붙는 어감의 이름이다.

       

        스윽.

       

        오히려 녀석에게 다가간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승리를 장담한 게 언제인줄 아나?”

        “……모, 모르겠다. 그건 왜!”

        “네가 결투 시작과 동시에 꽁지 빠지게 도망칠 때야.”

       

        씨익.

       

        웃음이 절로 나왔다. 녀석을 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즐거울 수가 있을까.

       

        “그, 그게 내 최선이었다고!”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는 건 인정해줄게.”

       

        한심한 대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멍청한 놈.

       

        저놈은 진짜 <신속> MK.2다. 물론 작중 초반부를 넘어 중반부, 후반부로 접어들면 상황이 좀 나아지긴 하지만…….

       

        “하지만 승리할 수 없는 길이지.”

        “어, 어떻게 널 이긴다는 건데?! 당장 그 빌어먹을 능력 덕에 공방은 물론, 기습에도 면역이잖아!”

       

        김인만 역시 속이 답답하던 건 매한가지인지. 녀석은 억울함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결투장 위에서 김인만이 나와 접근전을 펼치려 들면, 먼저 내 진언이 놈을 속박했겠지.

       

        그러니까 애당초 답은 하나다.

       

        놈의 텔레포트는 시간과 공간, 인원에 제약받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진언을 읊기 전, 놈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머나먼 이국으로 전이 후 혼자서 스타디움으로 복귀하면 간단한 문제였던 것이다.

       

        승천전의 ‘장외패’는 10분 내로 결투장에 복귀하지 않으면 내려지는 판결이니까.

       

        어쨌든.

       

        내가 그런 사실을 말해줄 이유는 없었다.

       

        스윽.

       

        “뭐, 뭐냐?”

         

        주먹을 말아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김인만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곧장 녀석이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 족치려고.”

        “아, 아니! 잠깐! 지금 분위기는 훈훈하게 내가 기권하는 흐름 아니었나?!”

        “그것도 맞지. 그런데 나는 받은 원한을 잊지 않는 주의거든.”

        “……!”

       

        김인만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뭘 그리 놀라나. 치유계 능력자와 방어계 능력자가 있어 죽지는 않았겠지만, 놈의 바람대로 칼이 심장에 박혔으면 큰 부상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런 말이 있거든.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주먹을 슥 뒤로 당긴 내가 중얼거렸다.

       

        “미안!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할 테니까……!”

       

        빠아악!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타격음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타격감 좋네.”

       

        검은 공간의 바닥에 철푸덕 쓰러진 김인만 앞에 선 나는 작게 말했다.

       

        왜일까? 버릇 없이 짖어대던 망나니를 참교육하는 것이 이리 즐거운 것은.

       

        뻐억! 퍽! 파바박!

       

        “꾸에에에엑!”

       

        내 발길질과 주먹질이 화려하게 허공을 수놓자 김인만이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놈의 반응에 일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현상거절.”

       

        능력을 개방한 나는, 이내 고민조차 없이 진언을 읊었다.

       

        [ <공간왜곡>김인만이 입는 부상을 반감시킨다. 하지만, 고통이 두배로 늘어난다. ]

       

        즉석에서 생각한 것 치고는 나름 신선한 진언이다.

       

        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나를 올려다보던 <공간왜곡>의 눈에 절망이 깃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푸욱! 빠아악!

       

        이어서, 신나게 작업을 계속했다.

       

        “살려줘억!”

       

        김인만이 내게 애원했지만 가뿐히 무시했다.

       

        저 바깥의 관중들과, 해설진 모두가 <공간왜곡>의 참패를 고대하고있다.

       

        “나도 하기 싫어.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하잖아?”

       

        생긋 웃은 나는 주먹을 치켜들었다. 김인만의 얼굴이 금새 흙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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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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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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