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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저녁놀이 어스레한 빛을 뿌리며 지평선 너머로 잠기고 있었다.

       마을 중앙에 높게 쌓인 짚단.

       그곳에 불이 붙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신호로 축제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아코디언의 음률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북소리에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췄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올 한 해도 수고한 허수아비의 모가지가 꺾여 떨어졌다.

         

       수확제의 열기에 마을 사람 모두가 한껏 취했을 때.

       마을 뒤편의 언덕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고함에 사람들은 그의 손가락을 쫓아 위를 올려다봤다.

         

       거대한 섬이 어둑한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섬 위에서 폭죽이 쉴 새 없이 터지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끝도 없이 들려왔다.

       신나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위에서 보일 리도 없건만, 사람들은 하늘도시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즐거운 만큼 당신들도 즐겁기를!

         

       마을 구석에서 썩은 호박을 파먹던 까마귀 한 마리가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을 떠다니는 섬.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

         

       거기서 나오는 불빛과 소리가 그를 유혹했다.

       까마귀는 그곳을 향해 날개를 펼쳤다.

         

       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까마귀.

         

       구름 사이로 건물들이 드러났다.

       하늘에 떠다니는 도시의 모습은 한낱 짐승에 불과한 까마귀에게도 경이감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도시 여기저기에 걸린 화려한 장식들이 그를 흥분시켰다.

         

       뭔가 대단한 게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군!

         

       그렇게 기대감에 젖어 도시로 가까이 다가가는 까마귀.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

       그것은 저 아래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과 달랐다.

         

       공포와 고통에 가득 차 있었다.

         

       -으아악! 오지마! 오지 마!

       -흐이익!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 컥! 커억!

         

       거리마다 고함과 비명이 이어졌다.

       골목마다 피와 살이 흘러넘쳤다.

       도시 곳곳에서 살육이 벌어지고 있었다.

         

       죽이는 쪽은 주로 화려한 색깔로 분장을 한 광대와 곡예사들이었다.

       그들은 보통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늘어나는 팔과 날카로운 이빨, 긴 혓바닥과 등에서 내뿜는 가시 등으로 사람들을 잡아 베고, 쑤시고, 찢고, 할퀴었다.

       그 꼴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힛힛힛! 보시라! 내 재주를!

       -마신에게 제물을!

       -여러분! 쇼를 보고 가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어떤 희열이나 고양감이 담겨 있었다.

         

       까마귀는 더욱 빨리 날개를 퍼덕였다.

       깃털이 모두 떨어져 나갈 만큼 놀랐다.

       미쳤다. 여기 있는 모든 게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도시 전체에서 느껴지는 광기.

       자칫 잘못하다간 그도 말려 들어갈 것 같았다.

         

       펑 하고 불길이 치솟았다.

       휙 하고 폭죽이 그의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간간이 총소리가 터졌고, 화약 연기가 메케하게 시야를 가렸다.

         

       그렇게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해서 날다 보니 어느새 도시 중앙부에 다다랐다.

       거기서 까마귀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이 혼란스러운 지옥도 한가운데서, 아주 평온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어깨까지 닿는 금발에, 검은색 실크해트를 쓰고, 검은색 정장을 입고, 검은색 망토를 두른 남자였다.

       첨탑의 꼭대기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그의 미소는 아주 아름다웠다.

         

       까마귀는 천천히 그의 앞에 내려섰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는 적대감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반가워했다.

         

       까마귀는 안심했다.

       그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인간이었다.

         

       그가 다가왔다.

       그의 손이 까마귀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입이 벌어졌다.

       크게.

       더 크게.

       볼을 넘어 목 뒤까지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 안에는 톱날같이 날카로운 이빨과 가시가 돋친 수십 개의 혀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경악으로 물든 까마귀의 눈.

       그러나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을 쥔 남자의 손이 어느새 짐승의 앞발처럼 손톱이 갈고리처럼 변해 그의 몸을 으스러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까마귀의 머리는 남자의 아가리 속으로 사라졌다.

       으적.

       으적.

       으적.

         

       살점이 씹히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게임의 제목이 떠올랐다.

         

       트릴 트릴로.

         

       카메라는 까마귀가 떠나온 길을 다시 되짚어갔다.

       카메라 역시 그 웃는 남자에게서 빨리 멀어보고 싶은지 시야가 점점 빨라졌다.

       살육이 벌어지는 골목 곳곳을 비추면서 회사, 감독, 투자자, 개발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렇게 날아가던 카메라는 도시 끝에서 멈췄다.

         

       괴물들을 향해 창을 내지르는 병사들 틈에서 유난히 덩치가 큰 남자가 방패와 칼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그 남자에게 고정되었다.

         

       여기서부터 게임이 시작됐다.

       플레이어들은 기사 이반을 조종하는 법을 익히며 괴물들을 무찌르고 사람들을 구출했다.

       기사의 힘을 활용해서 장애물을 치우고, 밀치기로 약한 벽을 돌파해가며 전진했다.

       마침내 그는 사람들이 괴물들에게 사냥당하고 있는 현장에 도착했다.

         

       한 무리의 괴물들이 박쥐의 날개 같은 것을 퍼덕이며 공중에서 침을 뱉어댔다.

       침에 맞은 사람들은 피부가 타들어 가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아쉽게도 기사 이반에게는 공중의 적을 공격할 수단이 없었다.

       그때, 또 한 번 시야가 전환됐다.

         

       건물 지붕에서 후드를 뒤집어쓰고 상황을 살피고 있던 여자.

       그녀는 갑자기 등장한 기사 이반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그녀의 뒤로 칼을 든 괴물 곡예사가 살금살금 접근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등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화살을 뒤로 핑 날렸다.

       괴물은 그대로 이마가 꿰뚫려서 건물 아래로 떨어졌다.

       날개 달린 괴물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도적은 쳇 하며 지붕 위에 서서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이제 플레이어들은 도적 키아라로 플레이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도적은 화살을 쏴서 날개 달린 괴물들을 처치하며, 괴물들의 산성 물질 뱉기로 지붕이 무너지면, 2단 점프를 활용해 옆 건물로 피해야 했다.

       화살이 떨어지면 죽은 병사 시체에서 보충했다.

         

       그렇게 괴물들을 정리하고 나면, 기사 이반이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함께 움직이는 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마다 기사와 도적을 적절히 사용해가며 전진했다.

         

       그러나 건너편 섬으로 건너가는 다리는 이미 불타서 무너져 내려, 길이 끊겨 있었다.

       점점 부유력이 사라지면서 추락하는 섬.

         

       기사와 도적은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게 바로 선착장으로 가서 비행선을 타고 탈출했어야 했다는 도적과 다른 섬에도 도와야 할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기사.

         

       그때, 둘의 옆에 있는 우물 속으로 카메라가 이동했다.

         

       그 안에는 하얀 머리의 마법사가 눈을 감고 있었다.

       기사와 도적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그녀가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그녀는 뒤통수를 만지고는 피가 묻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괴물들의 습격을 피해 달리다 보니 우물 속으로 떨어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플레이어는 마법사를 플레이할 수 있다.

         

       마법사의 특기인 ‘방벽’은 단단한 다면체를 만드는 것이다.

       커서를 이용해 점을 찍고 모서리를 이으면 방벽이 형성됐다.

         

       그렇게 우물 내부에 블록을 쌓아 계단을 만들어 밖으로 나가면 기사와 도적과 만날 수 있었다.

         

       마법사의 방벽으로 기다란 판자 형태의 다면체를 만들어 다리로 활용하면 건너편 섬으로 갈 수 있었다.

         

       그들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반대편 섬은 지상으로 추락했다.

         

       기사, 도적, 마법사.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시의 중심가를 돌아봤다.

         

       하늘도시가 불과 비명에 휩싸여 질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TT1의 프롤로그 스테이지가 끝나고, 본편의 막이 올랐다.

         

       나는 하얀 머리의 소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겉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마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냉정하고 기품이 있었던 미래의 모습과 비교해 어딘가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물론 이는 마야를 시리즈 내내 봐온 나만이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이 그녀를 보고, 그녀의 표정에서 어떤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야는 항상 얼음같이 냉정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렌과 조’의 영입조건에도 기사와 도적의 웃음만이 유효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웃음 감정 표현을 시켜봤자, 아주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갈 뿐이었다.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인형 같은 소녀였다.

         

       나이는 아마 엘라와 같을 것이다.

       TT1 시점에서 그녀는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됐다고 나왔으니까.

         

       마야는 서커스단의 직원으로 그랑프리에 참여했다가 TT1의 사건에 휘말렸다.

       원래 그녀는 카스티유의 유명한 마법사 가문 출신이었다.

       그런 그녀가 서커스단에 들어간 것은 마법의 수련을 위해서였다.

       그녀가 소속된 서커스단의 이름은 ‘은막의 서커스단’이라고, 환상 마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었다.

         

       하늘도시의 경비로 차출되었다는 기사나 훔칠 거리를 찾아 왔다는 도적의 사정에 비해 그녀는 서커스 그랑프리와 직접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3명의 용사 중 그녀가 가장 마주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빨리 그녀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예선전은 전 세계 여섯 곳에서 동시에 치러졌다.

       본선에 오르기 위해서는 2년 동안 여섯 곳을 들러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모든 서커스단이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알아서 이동하는 상황에서 설마 마주칠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첫 도시인 루즈에서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심지어 그녀는 현재 은막의 서커스단 소속도 아니었다.

         

       2주 뒤면 개막식이 열리는데…….

       분명 게임상 그녀는 서커스단 사람들을 2년 반 동안 함께 한 동료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은막의 서커스단에 채용되는 것일까?

         

       갑자기 욕심이 났다.

       여기서 내가 그녀를 데려가면 어떨까?

       환상 마법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과연 우리 서커스단에 들어오려고 할까?

       지난 며칠간 놓쳐버렸던 수십 명의 곡예사가 떠올랐다.

         

       아마 그녀의 반응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녀의 손에서 빛이 났다.

       그녀의 하얀 피부와 머리카락이 환상 마법이 내뿜는 색깔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빛났다.

       그녀의 외모가 주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설정상 가문에서도 촉망받는 역대 최고의 천재였다.

       그녀의 마법은 분명 엄청난 것임이 틀림없었다.

         

       게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각형을 쌓는 식으로 표현됐지만, 과연 여기서는 어떨까.

         

       수식 계산이 끝났는지 빛이 번쩍 터져 나오며 마법이 구체적인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갈색의 둥근 몸.

       갈색의 둥근 다리.

       갈색의 둥근……아니, 이게 뭐야?

         

       그것으로 말하자면 갈색 점토로 대충 뭔가를 만들려다 때려 쳐버린 유치원생의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정말 못 만든 빵 덩어리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그것은 소리를 냄으로써 우리에게 답을 가르쳐주었다.

         

       “야옹.”

         

       이게……고양이?

         

       나만이 눈치챌 수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분명 부끄러움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이면 다시 오후 시간대로 연재 시간을 당길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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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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