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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EP.39 EP.39

EP.39

       아이언 울프의 사체는 건질 게 많았다.

       

       안 그래도 두꺼운데 금속성 털로 뒤덮인 가죽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빨과 발톱은 연금술 재료로, 심장은 마탑에서 매입한다고 하니까.

       

       마석까지 합치면 얼추 80쿠퍼는 들어온다나?

       

       “완전 개꿀이네요.”

       

       “보통은 파티를 이뤄서 잡아. 인원수대로 나누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데…요나는 그걸 혼자 잡았잖아. 그러니까 많은 거야.”

       

       “키야! 제가 네? 이렇게 네? 능력 있는 남자다 이 말이에요.”

       

       아이언 울프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어깨춤을 추고 있자니 리디아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풉.”

       

       “아! 지금 비웃은 건가요 리디아 님?”

       

       “아냐.”

       

       “똑똑히 들었거든요? 방금 웃음소리를 내셨잖아요.”

       

       “웃은 건 맞는데 비웃은 건 아냐. 그냥….”

       

       “그냥?”

       

       “조금 전의 모습이 사냥에 성공한 고블린 같았어.”

       

       “뭐뭣! 저 같은 개쩌는 미소년에게 고블린이라뇨! 오늘은 신전에 들러서 눈이라도 치료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리디아 님?”

       

       “키가 비슷하잖아.”

       

       “…….”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지.

       

       남역 세계인 만큼 어린 나이와 작은 키는 여러모로 유용하지만…그래도 고블린만 한 키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몬가몬가다.

       

       괜히 투덜거리며 갈무리용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이언 울프의 사체를 향해 들이밀다 말고 멈칫했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왜?”

       

       “가죽은 어떻게 벗겨요?”

       

       지금까지는 부산물이라고 해도 뿔이나 손목 같은 것이었다. 대충 썰거나, 두드려서 챙기면 끝나는 것들.

       

       하지만 가죽은 따로 벗기는 법이 있는 것 아닌가.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내 질문에 리디아 살짝 턱을 치켜들고 자랑스런 어조로 대답했다.

       

       “나도 몰라.”

       

       “? 아이언 울프는 가죽이 제일 비싸다면서요.”

       

       “응. 근데 벗길 줄 몰라서 그냥 이빨이랑 발톱만 챙겼어.”

       

       “다른 계층에도 가죽이 귀한 몬스터가 있지 않나요?”

       

       “있지. 하지만 내가 아니라 베니가 벗겼어.”

       

       “…베니는 또 누구인가요.”

       

       “내 파티원?”

       

       맞다. 그러고 보니 리디아는 지금 원래 파티원이 개인 사정으로 잠깐 쉬는 동안 나를 봐주는 거였지.

       

       생각해 보니 리디아가 지갑을 추적해 왔을 때 베니에게 부탁했었다는 말을 했었다. 동료였던 거구만.

       

       어쨌든 리디아가 가죽 벗길 줄 모르는 이유는 알겠지만…그래도 이게 제일 비싸다는데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다.

       

       “옆에서 본 거라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괜찮은데…요나는 못 할걸? 베니의 방법은 베니만 할 수 있는 거니까.”

       

       “아니, 뭐 마법으로 벗기기라도 해요?”

       

       “응. 통째로 몬스터를 삼키고 부산물만 쏙 뱉어내. 조금 나중에 마석도 채취하고.”

       

       “…….”

       

       진짜 마법으로 벗길 줄은 몰랐는데.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상하더라도 일단 뜯어내는 수밖에.”

       

       “흐흫.”

       

       “…왜 또 이상하게 웃고 그래요?”

       

       “아무것도 아냐.”

       

       수상쩍게 웃은 리디아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자연스레 팔 위에 얹은 가슴이 강조되는 건 좋았지만, 저 기대심 가득한 표정이 신경 쓰인단 말이지.

       

       “흥. 됐어요. 저 혼자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리디아는 거기서 지켜보기나 하세요.”

       

       “그럴게.”

       

       정말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리디아. 결국 혼자 서서 아이언 울프의 뱃가죽을 노려보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보통 이런 큰 동물은 배부터 가르고, 천천히 등이나 다리 쪽으로 벗겨가야 한다는걸 전생에 티비에서 봤던 것 같다. 일단 따라 해 봐야지..

       

       적당한 위치를 조준하고…그대로 갈무리용 단검을 내리찍었다.

       

       퍽.

       

       “???”

       

       칼이 아닌 주먹이라도 내리친 것 같은 둔탁한 소리. 실제로 가죽이 뚫리기는커녕 살만 조금 출렁였다.

       

       “아니, 잠깐.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섬세하게 쓰기 좋은 갈무리용 단검 대신, 좀 더 날카롭고 튼튼한 전투용 단검을 들었다.

       

       퍼억!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힘이 더 들어간 만큼 살이 크게 출렁이긴 했지만, 가죽은 뚫리지 않았으니까.

       

       “…리디아 님. 이거 칼이 안 들어가는데요.”

       

       “응. 그러니까 비싼 거야. 괜히 1층 몬스터 한 마리에 80쿠퍼나 나오겠어?”

       

       “이렇게 질기면 대체 누가 가죽을 벗겨가요…?”

       

       “2층으로 올라갈 자격은 얻었지만 1층에 머무르는 모험자들. 혹은 미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강했던 사람들, 길드에서 비싸게 파는 고급 갈무리용 단검을 구입한 사람들. 그리고 1층을 돌면서 오러를 각성한 천재들 정도?”

       

       “얼굴 천재지만 오러는 못 쓰는 저는 뭘 할 수 있죠?”

       

       “허접 요나는 이빨이랑 발톱이나 뽑아. 마석이랑 가죽은 포기하고.”

       

       “…그 2개만 내다 팔면 얼마쯤 하나요.”

       

       “몰라. 푼돈이라는 것만 기억나.”

       

       푼돈 소리 들을 만큼 얼마 안 되는 금액이라는 소리인가.

       

       1분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됐다. 우울한 심정으로 아이언 울프의 잇몸과 발톱 뿌리 쪽을 단검으로 쑤셨다.

       

       이건 그래도 쉽게 빠지더라. 그러니까 얼마 안 하는 거겠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으로 마석도 회수하지 못해 비교적 온전한 아이언 울프의 시체를 바라보던 것도 잠시.

       

       뒤에서 리디아의 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나. 그거 알아? 난 오러 쓸 줄 알아.”

       

       “…네?”

       

       “심지어 꽤 강해. 엣헴.”

       

       무표정한 얼굴로 콧김을 뿜는 리디아. 눈썹과 입꼬리의 각도가 5도 정도 틀어진 걸 보아 실실 웃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야 ‘고결한’ 리디아 님이시니까 당연하죠. 뭘 그리 당연한 일로 자랑을……어?”

       

       그러고보니 방금 리디아가 뭐라고 했지? 오러를 다룰 줄 알거나, 1층 수준을 뛰어넘은 모험가라면 가죽을 가를 수 있다고 했던가?

       

       “리디아 님.”

       

       “응.”

       

       “…뭐가 목적이죠?”

       

       도와줄 거라면 진작에 도와줬겠지. 저렇게 나무에 기대서 이쪽을 구경하고 있진 않았으리라.

       

       내 예상이 맞은 걸까. 리디아의 얼굴에 흡족함이 떠올랐다.

       

       “눈치 빠른 꼬맹이는 좋아해.”

       

       “큿!”

       

       원판이 원판인 데다가,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는 상태라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묘하게 얄밉다.

       

       분해하는 내 앞에서 거만하게 고개만 까딱이는 리디아.

       

       “나를 설득해 봐.”

       

       “네?”

       

       “요나가 엘리 선배에게 자주 하는 거 있잖아. 살살 구슬려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부탁하는 거. 나한테도 해봐.”

       

       “흐응…아닌 척하면서도 리디아 님 그런 거 좋아하셨군요?”

       

       “단, 야한 건 제외하고.”

       

       “……?”

       

       “아무리 엘리 선배 한정이라지만, 요나는 너무 야한 어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맞는 말이다. 예전부터 엘리 상대로 야한 농담은 자주 했고, 요즘 들어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으니까. 다만.

       

       “이건 솔직히 엘리 잘못 아닌가요?? 그렇게 반응이 재밌으면 놀리고 싶어지잖아요!”

       

       “7살 여자애도 아니고 그게 무슨….”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어이없어하는 리디아. 좋아하니까 괴롭힌다는 감각으로 놀려대던 게 맞으니 반박할 수 없었다.

       

       “아무튼. 내 말은 그거야. 요나는 너무 불건전한 방식의 소통에 집착하고 있어. 다른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면 나를 상대로 연습해 보라는 뜻.”

       

       “아하?”

       

       대충 알겠네.

       

       지금껏 리디아와 함께 다니며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리디아는 모험가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거친 일을 하다 보니 모험가들에게서 고상함을 찾기는 힘든 편이다. 당장 엘리조차 사람은 정말 좋지만 그래서 고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니까.

       

       하지만 리디아는 다르다. 일단 자세부터가 다르다.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는 활짝 펼쳤으며, 걸음걸이에는 당당함이 서려 있다. 키가 작음에도 왜소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건 그래서이리라.

       

       시선에 거리낌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조금 말이 짧긴 하지만 어휘가 상스럽지 않고, 흥분해도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좀처럼 없다.

       

       즉, 사람이 품위가 있다.

       

       이브 같은 진짜배기만큼은 아니지만, 모험가들 사이에선 군계일학이라 부르기에 충분할 터.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 몸에 밴 습관까지 모범적이니 고결한 같은 이명이 붙은 것이겠지.

       

       물론, 리디아 입장에서는 그냥 어린 시절에 배운 대로, 혹은 기사라면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움직였을 뿐이겠지만.

       

       어쨌든 요는 그거다. 리디아가 완전 바른 생활 처녀라는 것.

       

       “…리디아 님. 처녀 맞죠?”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거야.”

       

       볼을 부풀린 채, 지적하는 리디아. 분명 이 알 수 없는 조건도 그래서 생긴 것이리라. 리디아 입장에서 나는 발랑 까진 핑챙 고아일 테니까. 

       

       아마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배우지 못해 이리된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실제로 종종 이런저런 상식을 알려준다거나,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인다거나, 평범한 행복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으니까.

       

       …왜 나한테만 이렇게 신경 써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히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아요. 건전한 방법으로 리디아 님을 꼬셔보라는 소리잖아요?”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표현이지만 얼추 그런 느낌.”

       

       “그거라면 제 전문이죠!”

       

       “…자랑이 아닌데.”

       

       어이없어하는 리디아. 그녀의 앞에서 보란 듯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리디아를 설득하는 방법이야 여럿 있다. 약간의 수치심을 각오하고 평범한 애교를 부린다거나, 아이언 울프의 가죽을 챙기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상관없겠지.

       

       중요한 건 상식적인 방법으로 리디아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거니까.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리디아에게 가장 잘 먹힐 방법이라면 하나뿐이다.

       

       척추에 검을 박아 넣은 것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턱은 살짝 치켜들어 도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빛. 거만하지는 않도록, 하지만 그렇게 보일 정도로 오연한 시선으로 리디아를 올려다보았다.

       

       평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이미지하는 것은 귀족 영식이었다.

       

       “리디아 경.”

       

       “……!”

       

       리디아의 반쯤 감긴 눈이 부릅떠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거 아시나요. 사실 저 오리너구리는 씨랜드 공국의 남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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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EP.39





       아이언 울프의 사체는 건질 게 많았다.


       


       안 그래도 두꺼운데 금속성 털로 뒤덮인 가죽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빨과 발톱은 연금술 재료로, 심장은 마탑에서 매입한다고 하니까.


       


       마석까지 합치면 얼추 80쿠퍼는 들어온다나?


       


       “완전 개꿀이네요.”


       


       “보통은 파티를 이뤄서 잡아. 인원수대로 나누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데…요나는 그걸 혼자 잡았잖아. 그러니까 많은 거야.”


       


       “키야! 제가 네? 이렇게 네? 능력 있는 남자다 이 말이에요.”


       


       아이언 울프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어깨춤을 추고 있자니 리디아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풉.”


       


       “아! 지금 비웃은 건가요 리디아 님?”


       


       “아냐.”


       


       “똑똑히 들었거든요? 방금 웃음소리를 내셨잖아요.”


       


       “웃은 건 맞는데 비웃은 건 아냐. 그냥….”


       


       “그냥?”


       


       “조금 전의 모습이 사냥에 성공한 고블린 같았어.”


       


       “뭐뭣! 저 같은 개쩌는 미소년에게 고블린이라뇨! 오늘은 신전에 들러서 눈이라도 치료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리디아 님?”


       


       “키가 비슷하잖아.”


       


       “…….”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지.


       


       남역 세계인 만큼 어린 나이와 작은 키는 여러모로 유용하지만…그래도 고블린만 한 키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몬가몬가다.


       


       괜히 투덜거리며 갈무리용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이언 울프의 사체를 향해 들이밀다 말고 멈칫했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왜?”


       


       “가죽은 어떻게 벗겨요?”


       


       지금까지는 부산물이라고 해도 뿔이나 손목 같은 것이었다. 대충 썰거나, 두드려서 챙기면 끝나는 것들.


       


       하지만 가죽은 따로 벗기는 법이 있는 것 아닌가.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내 질문에 리디아 살짝 턱을 치켜들고 자랑스런 어조로 대답했다.


       


       “나도 몰라.”


       


       “? 아이언 울프는 가죽이 제일 비싸다면서요.”


       


       “응. 근데 벗길 줄 몰라서 그냥 이빨이랑 발톱만 챙겼어.”


       


       “다른 계층에도 가죽이 귀한 몬스터가 있지 않나요?”


       


       “있지. 하지만 내가 아니라 베니가 벗겼어.”


       


       “…베니는 또 누구인가요.”


       


       “내 파티원?”


       


       맞다. 그러고 보니 리디아는 지금 원래 파티원이 개인 사정으로 잠깐 쉬는 동안 나를 봐주는 거였지.


       


       생각해 보니 리디아가 지갑을 추적해 왔을 때 베니에게 부탁했었다는 말을 했었다. 동료였던 거구만.


       


       어쨌든 리디아가 가죽 벗길 줄 모르는 이유는 알겠지만…그래도 이게 제일 비싸다는데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다.


       


       “옆에서 본 거라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괜찮은데…요나는 못 할걸? 베니의 방법은 베니만 할 수 있는 거니까.”


       


       “아니, 뭐 마법으로 벗기기라도 해요?”


       


       “응. 통째로 몬스터를 삼키고 부산물만 쏙 뱉어내. 조금 나중에 마석도 채취하고.”


       


       “…….”


       


       진짜 마법으로 벗길 줄은 몰랐는데.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상하더라도 일단 뜯어내는 수밖에.”


       


       “흐흫.”


       


       “…왜 또 이상하게 웃고 그래요?”


       


       “아무것도 아냐.”


       


       수상쩍게 웃은 리디아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자연스레 팔 위에 얹은 가슴이 강조되는 건 좋았지만, 저 기대심 가득한 표정이 신경 쓰인단 말이지.


       


       “흥. 됐어요. 저 혼자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리디아는 거기서 지켜보기나 하세요.”


       


       “그럴게.”


       


       정말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리디아. 결국 혼자 서서 아이언 울프의 뱃가죽을 노려보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보통 이런 큰 동물은 배부터 가르고, 천천히 등이나 다리 쪽으로 벗겨가야 한다는걸 전생에 티비에서 봤던 것 같다. 일단 따라 해 봐야지..


       


       적당한 위치를 조준하고…그대로 갈무리용 단검을 내리찍었다.


       


       퍽.


       


       “???”


       


       칼이 아닌 주먹이라도 내리친 것 같은 둔탁한 소리. 실제로 가죽이 뚫리기는커녕 살만 조금 출렁였다.


       


       “아니, 잠깐.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섬세하게 쓰기 좋은 갈무리용 단검 대신, 좀 더 날카롭고 튼튼한 전투용 단검을 들었다.


       


       퍼억!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힘이 더 들어간 만큼 살이 크게 출렁이긴 했지만, 가죽은 뚫리지 않았으니까.


       


       “…리디아 님. 이거 칼이 안 들어가는데요.”


       


       “응. 그러니까 비싼 거야. 괜히 1층 몬스터 한 마리에 80쿠퍼나 나오겠어?”


       


       “이렇게 질기면 대체 누가 가죽을 벗겨가요…?”


       


       “2층으로 올라갈 자격은 얻었지만 1층에 머무르는 모험자들. 혹은 미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강했던 사람들, 길드에서 비싸게 파는 고급 갈무리용 단검을 구입한 사람들. 그리고 1층을 돌면서 오러를 각성한 천재들 정도?”


       


       “얼굴 천재지만 오러는 못 쓰는 저는 뭘 할 수 있죠?”


       


       “허접 요나는 이빨이랑 발톱이나 뽑아. 마석이랑 가죽은 포기하고.”


       


       “…그 2개만 내다 팔면 얼마쯤 하나요.”


       


       “몰라. 푼돈이라는 것만 기억나.”


       


       푼돈 소리 들을 만큼 얼마 안 되는 금액이라는 소리인가.


       


       1분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됐다. 우울한 심정으로 아이언 울프의 잇몸과 발톱 뿌리 쪽을 단검으로 쑤셨다.


       


       이건 그래도 쉽게 빠지더라. 그러니까 얼마 안 하는 거겠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으로 마석도 회수하지 못해 비교적 온전한 아이언 울프의 시체를 바라보던 것도 잠시.


       


       뒤에서 리디아의 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나. 그거 알아? 난 오러 쓸 줄 알아.”


       


       “…네?”


       


       “심지어 꽤 강해. 엣헴.”


       


       무표정한 얼굴로 콧김을 뿜는 리디아. 눈썹과 입꼬리의 각도가 5도 정도 틀어진 걸 보아 실실 웃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야 ‘고결한’ 리디아 님이시니까 당연하죠. 뭘 그리 당연한 일로 자랑을……어?”


       


       그러고보니 방금 리디아가 뭐라고 했지? 오러를 다룰 줄 알거나, 1층 수준을 뛰어넘은 모험가라면 가죽을 가를 수 있다고 했던가?


       


       “리디아 님.”


       


       “응.”


       


       “…뭐가 목적이죠?”


       


       도와줄 거라면 진작에 도와줬겠지. 저렇게 나무에 기대서 이쪽을 구경하고 있진 않았으리라.


       


       내 예상이 맞은 걸까. 리디아의 얼굴에 흡족함이 떠올랐다.


       


       “눈치 빠른 꼬맹이는 좋아해.”


       


       “큿!”


       


       원판이 원판인 데다가,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는 상태라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묘하게 얄밉다.


       


       분해하는 내 앞에서 거만하게 고개만 까딱이는 리디아.


       


       “나를 설득해 봐.”


       


       “네?”


       


       “요나가 엘리 선배에게 자주 하는 거 있잖아. 살살 구슬려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부탁하는 거. 나한테도 해봐.”


       


       “흐응…아닌 척하면서도 리디아 님 그런 거 좋아하셨군요?”


       


       “단, 야한 건 제외하고.”


       


       “……?”


       


       “아무리 엘리 선배 한정이라지만, 요나는 너무 야한 어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맞는 말이다. 예전부터 엘리 상대로 야한 농담은 자주 했고, 요즘 들어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으니까. 다만.


       


       “이건 솔직히 엘리 잘못 아닌가요?? 그렇게 반응이 재밌으면 놀리고 싶어지잖아요!”


       


       “7살 여자애도 아니고 그게 무슨….”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어이없어하는 리디아. 좋아하니까 괴롭힌다는 감각으로 놀려대던 게 맞으니 반박할 수 없었다.


       


       “아무튼. 내 말은 그거야. 요나는 너무 불건전한 방식의 소통에 집착하고 있어. 다른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면 나를 상대로 연습해 보라는 뜻.”


       


       “아하?”


       


       대충 알겠네.


       


       지금껏 리디아와 함께 다니며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리디아는 모험가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거친 일을 하다 보니 모험가들에게서 고상함을 찾기는 힘든 편이다. 당장 엘리조차 사람은 정말 좋지만 그래서 고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니까.


       


       하지만 리디아는 다르다. 일단 자세부터가 다르다.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는 활짝 펼쳤으며, 걸음걸이에는 당당함이 서려 있다. 키가 작음에도 왜소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건 그래서이리라.


       


       시선에 거리낌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조금 말이 짧긴 하지만 어휘가 상스럽지 않고, 흥분해도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좀처럼 없다.


       


       즉, 사람이 품위가 있다.


       


       이브 같은 진짜배기만큼은 아니지만, 모험가들 사이에선 군계일학이라 부르기에 충분할 터.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 몸에 밴 습관까지 모범적이니 고결한 같은 이명이 붙은 것이겠지.


       


       물론, 리디아 입장에서는 그냥 어린 시절에 배운 대로, 혹은 기사라면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움직였을 뿐이겠지만.


       


       어쨌든 요는 그거다. 리디아가 완전 바른 생활 처녀라는 것.


       


       “…리디아 님. 처녀 맞죠?”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거야.”


       


       볼을 부풀린 채, 지적하는 리디아. 분명 이 알 수 없는 조건도 그래서 생긴 것이리라. 리디아 입장에서 나는 발랑 까진 핑챙 고아일 테니까. 


       


       아마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배우지 못해 이리된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실제로 종종 이런저런 상식을 알려준다거나,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인다거나, 평범한 행복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으니까.


       


       …왜 나한테만 이렇게 신경 써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히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아요. 건전한 방법으로 리디아 님을 꼬셔보라는 소리잖아요?”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표현이지만 얼추 그런 느낌.”


       


       “그거라면 제 전문이죠!”


       


       “…자랑이 아닌데.”


       


       어이없어하는 리디아. 그녀의 앞에서 보란 듯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리디아를 설득하는 방법이야 여럿 있다. 약간의 수치심을 각오하고 평범한 애교를 부린다거나, 아이언 울프의 가죽을 챙기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상관없겠지.


       


       중요한 건 상식적인 방법으로 리디아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거니까.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리디아에게 가장 잘 먹힐 방법이라면 하나뿐이다.


       


       척추에 검을 박아 넣은 것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턱은 살짝 치켜들어 도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빛. 거만하지는 않도록, 하지만 그렇게 보일 정도로 오연한 시선으로 리디아를 올려다보았다.


       


       평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이미지하는 것은 귀족 영식이었다.


       


       “리디아 경.”


       


       “……!”


       


       리디아의 반쯤 감긴 눈이 부릅떠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거 아시나요. 사실 저 오리너구리는 씨랜드 공국의 남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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