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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흐음. 아르테 이시스. 아르테 이시스란 말이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해서 뭐 해? 수상하기 그지없어.”

       

       “···역시 그렇죠?”

       

       “이걸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놈은 협회직 때려치워야지. 그런 무능한 놈이 있을 리가.”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가 적힌 자료를 바라보았다.

       

       개요는 어렵지 않았다.

       

       한바탕 뉴스에 나올 정도로 유명했던 사건이 원인이었으니까.

       

       웬 빌런 하나가 겁도 없이 아카데미에 잠입했고, 그걸 잡은 탐험 동아리 학생들이 포상금을 받아 외부 활동을 나섰다.

       

       그리고 그 외부 활동을 하기 위해 나선 산장이 우연히 빌런 조직 위버멘쉬의 은신처가 있던 산이었고, 습격을 받았다.

       

       대충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였던가.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뭐가 수상하냐고?

       

       

       “···우연이 너무 많잖아.”

       

       “우연히 빌런을 잡은 학생들이 그 산에 들어가고, 우연히 잡힌 빌런이 속한 조직의 은신처가 있었고, 우연히 그 타이밍에 맞춰 누군가에게 몰살당했다. ···좀 그렇죠?”

       

       “그것뿐만이 아니야. 여기, 이걸 봐.”

       

       

       아카데미에서 제공한 학생들의 가벼운 인적 사항.

       

       학생들의 능력을 표기한 부분을 가리켰다.

       

       

       “유시우, 직감. 아멜리아 린드버그, 가속. 도로시 스프링필드, 경량화. 이 학생들은 문제 되지 않지만···. 여기, 이 여학생.”

       

       “아르테 이시스, 실 조종. ···이건 자기가 범인이라고 시위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 누가 봐도 수상하지. 능력도 그렇고.”

       

       

       몰살당한 조직의 시체의 사망 원인으로 추정되는 실. 그리고 실을 다루는 능력자.

       

       마지막으로 대놓고 그려져 있던 거미 그림까지. 의심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면 왜 잡으러 가시지 않는 겁니까?”

       

       

       쯧.

       

       작게 혀를 차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정말 누가 봐도 범인이다. 그래서 수상했다.

       

       

       “너무 범인 같아서.”

       

       “예?”

       

       “어떤 멍청한 새끼가 일을 이렇게 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열 살짜리 아이가 봐도 아르테 이시스가 범인이다.

       

       그 사실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자기가 범인이라고 벽에 그림까지 그리는 빌런이, 이렇게 멍청하게 내가 범인이라고 다 흩뿌리고 다닌다고?”

       

       “···누명을 씌우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지. 자기과시가 목적인 빌런은 보통 수사에 혼란을 주면서 그걸 즐기는 타입이 많거든.”

       

       

       자기를 아라크네라고 지칭하며 장난스러운 글귀마저 남겨둔 녀석이다.

       

       그런 빌런이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했을 리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이런 타입은 머리가 좋은 놈들이 태반이었으니까.

       

       

       “비슷하게 사람을 썰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당장 나만 해도 능력 그런 거 없이 그 정도는 썰어 재낄 수 있어. 이백 가까이는···너무 오래 걸리지만.”

       

       “실 능력자로 위장하여 아르테 이시스를 범인이라고 생각하게끔 유도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마도.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유도해놓고 사실 아르테 이시스가 범인이었다. 그런 이야기도 가능하니까.”

       

       “으, 골치 아프군요.”

       

       “그러게 말이다.”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연기를 바라보며 복잡한 머리를 진정시켰다.

       

       이 망할 놈의 세상은 더럽게 복잡하다. 아주 옛날, 500년 정도 이전의 세상에는 마나가 없었다던데.

       

       각자 능력이 없는 세상이었다면 범죄자를 추적하기 정말 편하겠지. 그 시절의 형사들이 부러워졌다.

       

       마나가 들어찬 뒤로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심증이 깊어도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살해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체포했더니 사실 타인의 몸을 조종하는 능력자의 짓이었다. 그런 사건이 워낙 많으니까.

       

       CCTV 따위는 없는 거라는 듯 전기 능력자가 전자기기를 모두 먹통으로 만든 뒤 여유롭게 강도질하거나.

       

       알리바이가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사실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복제 능력자라던가.

       

       살해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걸 보고 신고해서 잡았더니 사실 변신 능력자가 모르는 사람으로 변신한 상태라던가.

       

       변수가 너무 많았다.

       

       물론 협회에서도 능력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정확히 모르니까.

       

       컵 한 잔의 물을 다룰 수 있다던 능력자가 갑자기 연못의 물을 전부 조종한다든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은신, 투명화, 변신, 소형화, 능력 복제 등등.

       

       누명 씌우기 딱 좋은 능력들이 널려있는 마당에, 섣불리 범인을 단정 지었다가는 뒤통수를 얻어맞기 십상이지.

       

       평범한 범죄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협회로 이관된 이상 확실한 초인범죄. 가능성은 언제나 열어두어야만 했다.

       

       

       “그래도 최우선 용의자인 건 변함 없다. 지켜봐야 해.”

       

       “사람을 붙일까요?”

       

       “아니.”

       

       

       다 타들어 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가 간다.”

       

       

       마침 아는 녀석이 학교에 있었으니까.

       

       선물 좀 바리바리 싸들고 가면 되겠지.

       

       

       

       ***

       

       

       

       “설마 아카데미 데이터베이스에 아무것도 없었다니···.”

       

       [헤, 헤헤. 깜빡해서···.]

       

       

       평소 같았다면 잔뜩 화냈어야 할 타이밍이다.

       

       아카데미에 이렇게 정보가 없는 학생이 입학했다면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그렇게 화를 내야 하는데.

       

       ···아직 그때의 일을 담아두고 있지는 않을까.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님을 크게 타박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 넣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예, 뭐. 그렇겠죠.”

       

       

       그리고 내 배경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그나저나, 한 달 동안 어떻게 하실 건가요?”

       

       [우음, 글쎄요. 무슨 사건을 터트려야 할까···.]

       

       

       훨씬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기말고사까지 시간이 비었어.

       

       기말고사가 끝나면 여름방학 이벤트, 2학기 시작 이벤트 등 여유가 있지만···.

       

       이 붕 떠버린 시간을 어찌해야 할까.

       

       한 달 가까이 되는 시간을 작가님이 그냥 스킵하기도 애매하지 않을까?

       

       무언가 사건을 터트려야 할 텐데, 중요한 소재를 당장 쓰기에는 애매하다고 느껴져서 말이지.

       

       앞으로의 전개를 작가님과 고민하던 중, 클레어 선생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여기 있었군. 아르테, 지금 시간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요?”

       

       “옛 친구가 너를 찾아서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던데.”

       

       “옛 친구?”

       

       “···조금 꺼림칙할 수도 있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별일 없을 테니까.”

       

       [오오, 사건의 예감···!]

       

       

       작가님이 기뻐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옛 친구? 클레어 선생님의?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클레어 선생님은 은퇴한 유명 영웅이라는 설정이었을 터.

       

       그런 사람의 옛 친구라니. 뭔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었다.

       

       분명 무언가 사건이 터진다면 좋아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

       

       

       

       “반가워요, 학생. 협회에서 초인범죄를 담당하고 있는 이하율이라고 합니다.”

       

       “아르테 이시스입니다.”

       

       “좋아. ···편하게 말해도 되겠지?”

       

       “네. 편하신 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그 산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그럼 그렇지.

       

       어쩐지 불안하다 싶었다.

       

       초인범죄니 뭐니, 이야기 나올 때부터 그러려니 했어.

       

       올 게 왔구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시면, 믿으실까요?”

       

       “하하. 재미있는 농담이구나. 믿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요.”

       

       “그래. 그럼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도 알겠구나.”

       

       

       알다마다.

       

       솔직히 조금 늦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은신처에서 급하게 빠져나가느라 챙기지 못한 실들.

       

       탐험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산장에 올라간 멤버 중 한 명.

       

       위버멘쉬의 은신처에 그려진 거미 그림과 내 능력.

       

       이 정도의 단서를 가지고도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 세계 공권력의 무능함을 의심했을 거야.

       

       ···개인적으로는 조금 무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하율. 지금 학생에게 협박하는 건가? 얌전히 대화만 나누겠다고 했을 텐데.”

       

       “그래서 대화만 나누고 있잖아. 협박은 아니야. 네 그 과보호는 변하질 않는구나, 클레어.”

       

       “아르테는 내 학생이다. 조심하도록.”

       

       “네이, 네이.”

       

       

       클레어 선생님이 황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으음. 신경 써주는 건 고맙긴 한데, 이 사람 은신처 큐브 스테이크 사건 조사하러 온 것 같단 말이지.

       

       내가 한 행동이 맞아서 약간 미안해졌다.

       

       

       “그래서, 아르테 학생. 협회는 너를 용의자로 보고 있어.”

       

       “···그걸 저에게 말씀해주시는 이유가?”

       

       “경고지. 만약 허튼 행동을 했다가는 위험할 거라는 경고. 오늘은 그걸 말해주러 온 거야.”

       

       “이하율!”

       

       “알았어, 알았어. 이제 일어난다니까.”

       

       

       클레어 선생님에게 쫓겨나듯 자리를 일어난 그녀에게 살며시 웃어주었다.

       

       

       “걱정은 감사하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않겠네요.”

       

       “···그래?”

       

       “네에. 저는 범인이 아니니까요.”

       

       “아, 아르테···. 그래! 내 학생은 범인이 아니야! 빨리 나가라! 어서!”

       

       

       떨떠름한 얼굴로 클레어 선생님께 등을 떠밀려 방을 나서고, 학교를 벗어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범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오늘 밤 그녀도 알 수 있겠지.

       

       

       

       ***

       

       

       

       “다음 뉴스입니다. 최근 빌런 조직의 은신처에서 수백 명의 빌런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죠. 그 사건의 용의자가 구속되었습니다. 용의자는···.”

       

       “뭐야, 씨발.”

       

       

       이하율은 멍하니 TV를 바라보았다.

       

       ···잡혔다고?

       

       범인이?

       

       문득, 오늘 만난 학생의 웃음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TV에서 범인이라고 소개된 사람은 그녀와 전혀 다르게 생긴 3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설을 쓰고있는걸 지인에게 들켰습니다.

    그냥 들킨것도 아니고, 무슨 소설인지까지 전부.

    심지어 일주일 전부터 읽고있었다더군요.

    지금도 보고있겠죠.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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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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