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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그렇게 힌드라스타에게 아카데미생이 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힌드라스타는 훌쩍거리면서 지원자 숙소로 돌아갔고 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폴리모프한 드래곤을 아카데미생으로 받을 수 있게 되다니, 참 운이 좋다.

       

       기분 좋게 집에 들어가자마자 본 것은 이미 차갑게 식은 식탁에 잔뜩 심통이 나서 앉아 있는 올리시아.

       

       “디안 님! 도대체 왜 이렇게 늦게 오신 거세요?! 또 어디 디저트 카페 같은 곳에서 시간을 흥청망청 보내신 건가요?”

       

       올리시아가 와다닥 나를 다그쳤다.

       

       “미안미안. 지원자 중에 진로 상담을 희망하는 사람이 있어서.”

       “흐음…. 그렇군요.”

       

       내가 아카데미 업무 때문에 늦었다는 것에 올리시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시아가 요즘 들어 가장 무서워 하는 건 행여나 내가 브룬스웰에서처럼 농땡이를 피우다 쫓겨나 도로 브룬스웰로 돌아가는 거니까.

       

       “좋아요. 식사를 다시 데워 올게요. 그 동안 씻고 오세요.”

       

       올리시아는 화로에 냄비를 올리는 동안 나는 씻고 옷을 갈아입고 왔다.

       

       오늘 저녁은 와인에 소고기를 푹 익힌 브루기뇽.

       

       맛을 보니 굉장히 부드러운 게 아주 좋은 등급의 고기를 쓴 모양이다.

       

       최근 내가 특기생 선발 때문에 야근을 몇 번 했더니 올리시아가 기력보충을 해야겠다고 하더니, 그게 이거였나 보네.

       

       “정말 맛있다.”

       “하루종일 정성을 다해 만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큰 탈없이 잘 마무리하신 건가요?”

       “당연하지. 내가 누구냐? 디안이야.”

       “그렇게 너무 자만하시다가 실수하시는 거라고요.”

       

       낄낄 웃으며 올리시아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온갖 종족들이 몰려와 시장통이 된 아카데미 정문. 치열했던 평가와 가을철 추수하듯 썰려나가는 탈락자들.

       

       다만 ‘오크’와 ‘늑대인간’에 대한 것은 절대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오크들의 싸움에 끼어든 거나 늑대인간의 난동을 제압한 것을 말했다간 아마 올리시아는 왜 위험한 일을 했냐며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뒤집어 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대단해요. 고작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용병대에서 일하고 또 아카데미에 지원까지 하다니요.”

       

       어느덧 이야기가 레블랑 용병대에서 온 소녀 ‘소피에’에 이르자 올리시아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두 손을 맞잡았다.

       

       “뭐, 대단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확히는 대단한 드래곤이 아니지.

       

       세상에 어떤 드래곤이 분탕이나 치려고 참전했다가 거기서 털려서는 창피하다고 일족에게 추방당해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냐고.

       

       

       # # # # #

       

       

       다음날 평가가 시작되기 전.

       

       지원자 숙소 앞에서 기다렸다가 힌드라스타를 따로 불러냈다.

       

       “뭐, 뭐!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닥치고. 너 말이야.”

       

       악악대는 힌드라스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하게 말했다.

       

       “행여나 일부러 탈락할 생각은 하지 마라.”

       “실력이 안 되면 떨어질 수도 있는 거지.”

       “호오, 그래?”

       

       팔짱을 끼고 힌드라스타를 내려다 봤다.

       

       “만약에 떨어지면 그 즉시 황성에 네 행방을 찾았다고 보고할 거야. 그럼 어떻게 될까?”

       “이 미친 새끼가?!”

       “못 찾아서 까먹고 있던 힌드라스타가 나타났으니 응당 다시 잡아야겠지? 누가 잡으러 오겠어? 예전처럼 나랑 라이너스가 오겠지? 이번에는 본체로 변신도 못하고….”

       “안 떨어지면 되잖아!”

       

       핏기가 싸악 가진 창백한 얼굴로 힌드라스타가 악다구니를 썼다.

       

       “떨어지지 않는 게 다가 아니다. 수석해라. 수석을 해야 특기생이 될 수 있다.”

       “그건 무리야. 노력은 해보겠지만….”

       “만약 수석이 되지 않으면 그 즉시 황성에 네 행방을 찾았다고 보고할 거야. 그럼 어떻게….”

       “으아아아아앙! 알았어! 한다고!”

       

       결국 힌드라스타가 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거 예전에 귀족군 후방에서 두들겨 팰 때도 울던 것이 싸가지 없는 거랑은 별개로 눈물이 많은 성격인가 보다.

       

       드래곤의 눈물은 과학적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법재료로 좋다고 해서 몇 방울 받아다 팔아서 제법 쏠쏠했는데.

       

       지금은 폴리모프 상태라 어디 써먹을 데도 없고.

       

       “조장님! 안 가십니까?”

       

       그때 저쪽에서 아카데미를 떠날 준비를 마친 레블랑 용병들이 손을 흔들었다.

       

       “용병대로 안 돌아간다고 말 안 했냐?”

       “안 했어. 안 그래도 지금 말하려고 했어.”

       “그럼 빨리 가.”

       

       교내순찰할 때 쓰는 실습용 목검으로 엉덩이를 찰싹 때리자 힌드라스타가 질색팔색하면서 저쪽으로 도망쳤다.

       

       “출발하시죠, 조장님.”

       “안 가!”

       “예?”

       

       소피에의 급작스러운 발언에 레블랑 용병들이 영문을 몰라 서로를 쳐다봤다.

       

       “안 가신다뇨?”

       “귓구멍이 처막혔냐? 그딴 똥구더기 같은 용병대는 안 돌아간다고!”

       “갑자기 왜…?”

       “나 같은 여리여리한 숙녀가 거기 어울린다고 생각해? 어?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버려!”

       

       힌드라스타는 괜히 애먼 용병들한테 화풀이를 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굳이 저렇게 했어냐 했나 싶지만 드래곤이니 또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드래곤은 다른 종족들을 벌레취급하니까.

       

       그래도 앞으로 아카데미에서 지내려면 저런 개쓰레기 같은 성격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서는 안 되겠지.

       

       사회화 교육이 좀 필요하겠어.

       

       여튼 그렇게 2일차 평가가 시작되었다.

       

       필기평가장에 들어가 보니 힌드라스타가 턱을 괸 채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지원자 여러분들께서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들으라고 크게 소리치자 나를 발견한 힌드라스타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박고 열심히 펜을 놀렸다.

       

       그래도 뭔가를 쓰긴 쓰는 게 고지능 마물인 드래곤이라 아주 꼴통은 아닌 모양.

       

       “자자, 여러분!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습니다! 모두 힘내세요!”

       “씨발씨발….”

       

       평가장마다 따라다니며 독려하자 힌드라스타가 나를 힐끔거리며 욕을 중얼거렸다.

       

       

       # # # # #

       

       

       모든 평가 종료 후 키르린을 비롯한 교수부 전원이 집합했다.

       

       가장 먼저 종합성적표를 확인하니 1등은 다행히도 힌드라스타.

       

       폴리모프한 드래곤인 만큼 무력이 위주인 전투학과 평가에서는 당연히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만족스러운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이론평가가 조금 부족하기는 했지만 전투분야가 터무니없이 압도적이라 총점에서는 이미 따라잡는 게 불가능할 정도.

       

       이미 교수들 사이에서는 힌드라스타가 최종 선발될 거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고 이스메라도 거기에 대해서는 딱히 이견이 없는듯.

       

       만약 나와 힌드라스타간에 모종의 연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극구 반대했겠지만 그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알았다 해도 딱히 부정행위도 아니니 문제될 것도 없다.

       

       폴리모프한 드래곤은 그 역량이 보통의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으니 힌드라스타가 1등이 된 것은 순전히 자기 능력.

       

       게다가 공고문에 늑대인간과 흡혈귀는 못 온다고 써도 폴리모프한 드래곤을 금지하는 항목은 없다.

       

       애초에 드래곤이 굳이 폴리모프까지 해서 일개 아카데미 시험을 치를 일 자체가 없잖아.

       

       그러니 이건 아무 문제도 없다. 대충 하다가 퇴소하려는 것을 내가 전력을 다하라고 채찍질한 것뿐이지.

       

       종합점수에 관찰평가점수를 모두 고려해 만장일치로 힌드라스타를 특기생으로 선발하기로 합의했다.

       

       2등과 3등도 상당히 뛰어나긴 했지만 힌드라스타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고, 또 이스메라의 제안으로 일부러 합격자를 1명으로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일부러 기준을 완화해서 합격자를 늘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명색이 제국의 황립 특수임무 아카데미인 만큼 선발에 엄격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지요.”

       

       이소당연 옳으신 말씀. 역시 이스메라는 성격 음흉한 거 빼고는 천상 유능한 엘리트 교수라니까.

       

       키르린이 최종결과를 발표하기로 하고 교수들과 함께 지원자들이 모여 있는 강당으로 이동했다.

       

       “다시 한번 우리 특수임무 아카데미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카데미의 내부기준에 따라 합격자는 한 명입니다.”

       

       단상에 오른 키르린의 말에 지원자들이 웅성거렸고 힌드라스타는 마치 기도하듯이 두 손을 꽉 모아쥐고 절박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선발되기를 바라는 건지 탈락하기를 바라는 건지 모르겠네. 어쨌든 둘 다 싫은 건 매한가지겠지.

       

       선발되면 나랑 같이 여기서 살아야 하고 탈락하면 라이너스와 삼자대면할 판이니.

       

       그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여신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분탕친 거 죄송합니다.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키르린이 뜸을 들이자 장내가 조용해진 가운데 힌드라스타의 기도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신을 찾는 드래곤이라니, 이거 진짜 여신님도 놀라 기절하실 희귀한 상황이네.

       

       “최종 합격자는 레블랑 용병대에서 온 소피에 양입니다.”

       “으아아악!”

       

       키르린의 발표에 힌드라스타가 비명인지 환호인지 모를 괴성을 내질렀다.

       

       “축하해요, 소피에 양. 그리고 아쉽게 탈락한 나머지 지원자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그러나 키르린의 말은 주저앉아 꺼이꺼이 우는 힌드라스타의 통곡소리에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선발되어 굉장히 기쁜가 봐요.”

       “우리가 어떤 아카데미인데. 당연히 기쁘겠지.”

       

       리나의 말에 그럴싸한 대답을 해주며 힌드라스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으아아아아아앙!”

       

       그것을 본 힌드라스타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구슬프게 울어댔다.

       

       그때 사각사각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교수부와 함께 배석한 마야 사제가 힌드라스타를 보면서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의무소에서 퇴원한 환자의 회복상태를 추적관찰하는 건가?

       

       참 성실하네. 역시 로르마네가 강력추천한 사제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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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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