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

        

       리세가 절을 하고 몸을 추스를 때까지 켄지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의 귓가에 씌워진 헤드폰에서는 연신 삑-삑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고, 이윽고 그 소리가 끝날 때가 돼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우웩!”

         

       켄지 역시 일어나자마자 토악질부터 해댔다. 오래 눈을 감고 있었던 만큼 리세보다도 더 심하게 토악질을 해댔는데, 어찌나 격렬하게 토를 하는지 위액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입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고 한참을 토악질하던 켄지는 헤까닥 돌아버린 눈으로 다시 헤드폰을 쓰고 누웠다. 눈을 감고 삑삑거리는 소리에 켄지는 다시 한번 그때의 감각을 맛보고 싶다는 듯 안간힘을 썼으나, 안타깝게도 켄지의 발버둥은 헛수고로 끝났다.

         

       “왜, 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야!”

         

       헤드폰에서는 삑-삑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너무 커다래서 저 멀리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리세조차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했지만, 정작 그것을 쓰고 있는 켄지는 들을 수가 없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켄지는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가 필요하다며 난동을 부렸고, 그러기를 한참 자신의 입으로 삑-삑 거리는 소리를 흉내를 내려 했다. 하지만….

         

       “왜! 왜! 이것만! 이것마아아아안!”

         

       켄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격렬한지 뿌드득 소리와 함께 그가 쥐고 있는 머리털이 뽑혀 나왔고, 그 끝에는 피가 송골송골 맺혀서 켄지의 이마로 주르륵 흐를 정도였다. 하지만 켄지는 제 이마에 흐르는 뜨거운 피가 주는 간지러운 느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절규, 오직 절규만을 할 뿐이었다.

         

       “다시! 다시 소리가 필요해애애애액!”

         

       그는 소리쳤다.

       목청이 찢어지라 소리쳤다.

       혀뿌리가 바싹바싹 마르고 입에 거품이 하얗게 맺히는 와중에도, 오직 소리만을 갈망하여 미친 듯 소리치고 또 소리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러기를 한참.

         

       그는 네발로 기어와 진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다시, 다시 그 황홀경을 맛보고 싶네!”

         

       하지만 진성은 잔잔하게 미소지을 뿐, 결코 켄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켄지는 진성을 붙잡고 한참이나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회유를 하기도 하다가, 헤드폰을 다시 쓰고 소리를 들으려 했다가, 진성에게 다시 머리를 처박고 빌기도 하고, 종국에는 리세를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리세! 저 요귀, 아니! 저 귀인분께 부탁해다오! 소리를 들려달라고, 소리를 듣게 해 달라고 말을 좀 해달란 말이다!”

       “…부탁이요?”

       “그래! 너는 미인이지 않으냐! 너 같은 미인이 부탁하면 필시 듣는 척이라도 하지 않겠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나 있을까?

         

       켄지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리세의 시선이 점점 차갑게 변했다.

       안쓰러움과 연민이 가득했던 따뜻한 시선이, 점차 북극의 빙산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굳었다.

         

       “…지금 그게 아버지가 딸에게 할 말이에요?”

         

       미인이니까 부탁을 하면 먹힐 거라고?

         

       그 말은 마치….

       마치….

         

       리세는 차마 그 뒤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리고 더없이 슬픈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성은 입을 열었다.

         

       “내가 복을 주러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네 아비가 미래에 반드시 보였을 모습이니라.”

         

       리세는 그의 말에 반감이라도 들었는지 고개를 홱 하고 쳐들며 진성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아까 자신이 했던 맹세가 떠올랐는지 다시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녀를 위로하듯 다가가 어깨를 잡으며 속삭였다.

         

       “네 아비의 방 안에서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나 아느냐?”

       “…모르겠어요.”

       “LSD, 메스암페타민, 아야와스카까지 있더구나.”

       “메스암페타민이면…. 필로폰이요?”

       “그러하다.”

       “나머지는 뭔지 모르겠어요….”

         

       하나하나가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 환각제라는 것.

         

       “개중에 가장 많이 쓰인 것이 메스암페타민이니, 반드시 파국이 찾아왔을 것이야.”

         

       진성은 도게자(土下座) 자세로 자신에게 소리를 구걸하는 켄지를 쳐다보았다.

         

       켄지의 흐트러져 있는 옷깃 사이로 보이는 가슴팍에는 긁어서 난 듯한 상처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벌레에 물린 곳을 심하게 긁어서 생긴 상처와 모습이 같았다.

         

       “보아라, 저것을 메스 버그(Meth bug)라고 하느니라.”

         

       메스 버그.

       메스암페타민의 대표적인 증상이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약쟁이에게서 보이는 상처이기도 했다. 메스암페타민은 섭취 시 피부 아래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간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약효에 취해서 벅벅 긁어 저런 상처가 생긴다.

       저기서 더 나아가면 몸이 빼빼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며, 치아 상태가 개판이 된다. 그리고 약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치광이가 되어버린다. 완전히 뇌가 망가져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약쟁이들도 메스암페타민은 피하거늘, 저 치는 무슨 생각에 저것을 먹었는지 모르겠구나. 어디 환각제를 저렇게 퍼마셔서 원하는 꿈이라도 꾸려 했다더냐?”

       “원하는 꿈….”

         

       리세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다는 듯 켄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잠시나마 다시 품었던 연민도 발광하며 추하게 날뛰는 켄지의 모습에 금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녀는 간절한 얼굴로 그리 물었다.

         

       앞서 몽중몽에서 겪었던 공포, 진성에 대한 경외감과 복종심, 그리고 제 아비가 보이는 추한 꼴까지.

       이미 리세의 정신은 한계에 가까웠다.

         

       그리고 진성은 바닥을 보일락말락 한 리세의 정신을 외면하지 않았다.

         

       “가능하니라.”

         

       그는 토끼 같은 얼굴로 웃으며 켄지를 손가락질했다.

         

       “저 치가 눈을 감고 무엇을 보았을 것 같으냐?”

         

       리세는 무의식 속에서 삼매의 경지를 맛보았다.

       거기서 거대한 우주를 보았고, 별을 보았고, 문답했으며, 깨달음의 조각을 맛보았다.

         

       이는 분명한 정신의 향상.

       비록 어리고 단련되지 않은 리세에게 있어 감당하지 못할 일이기는 했으나, 이는 분명한 기연이었다.

         

       그렇다면 켄지는 무엇을 보았을까?

       진성이 직접 녹음한 소리가 아닌, 사이버 드러그(Cyber Drug)를 들었던 켄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었을까?

         

       그것은 모른다.

       제 무의식을 탐구하는 것도 미지의 영역인데, 남의 무의식을 엿보는 것이 가능할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디메틸트립타민과 사이버 드러그로 분비된 엔도르핀 범벅 속에서 켄지는 더없는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혹시 모른다.

       환각제에 손을 댈 정도로 간절히 보고 싶었던 것을 보았을지도.

         

       하지만 그 잠깐의 행복은 이제는 없다.

       치료를 위한 발판이자 진성의 손에 들린 목줄로 변했기 때문이다.

         

       “저 치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허락이 없다면 그것을 절대로 다시 재현하지는 못할 것이니라.”

         

       진성은 켄지의 몸에 심어진 스파르가눔(spirometra plerocercoid larva)을 떠올리며 웃었다.

         

       리세는 자신만만하게 웃는 진성을 한참 쳐다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것은 바닥에 꿇어있는 켄지와는 다른 형식의 복종이었다.

         

         

         

        * * *

         

         

         

       악몽의 날.

       그 날 이후로 신사는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신사의 문이 잠겼다.

       참배객들을 반갑게 맞아주던 토리이에는 접근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고, 새빨간 빛을 띠고 있던 토리이의 색상이 좀 더 어둡게,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대신에 토리이의 양옆에는 커다란 초가 놓여서 문을 밝히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신사의 부지가 보였다.

       빗자루로 쓸어서 먼지를 치우는 게 아니라 먼지를 지워버리기라도 하는 듯 부지 전체에는 먼지 한 톨 찾아볼 수가 없었고, 마찬가지로 낙엽이나 쓰레기 같은 것 역시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본전으로 들어가면 한때 애지중지 모셨던 신체(神體)가 핏물에 담겨서 보글보글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고, 신체가 모셔져야 할 위치에는 하얗게 빛나는 빛으로 만들어진 구체가 있었다.

         

       그 구체의 빛은 기본적으로 하얀색이었으나,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 하얀빛이 검게 느껴지며 정신이 빨려 들어갈 것 같았으며, 거기서 더 집중하면 점이 수축하고 팽창하며 점이 되었다가 구체가 되었다가를 반복하고 선의 형태로 비상하며 구체의 형태를 그리는 등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 끝에는 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 이는 리세가 마지막에 보았던 별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낸 것이었다.

         

       빛의 구체 아래에는 잘 닦인 청동거울이 있었는데 그것은 빛을 반사하는 대신에 리세의 정신과 연결이 되어 밖에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다.

         

       즉, 신체가 있을 곳에 있는 것은 리세가 현실에 투영해낸 영상.

       영시(靈視)로서 현실에 끄집어낸 기억이었다.

         

       그리고 빛의 구체 주변에는 경비라도 되는 듯 두 괴이가 얼쩡거리고 있었다.

         

       비틀리고 퀭한 모습을 한 어린아이 귀신은 빛의 구슬을 엄중히 지키겠다는 듯 일정 거리 내에서 쏘다니며 누군가 오지 않나 주위를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역할놀이를 하는 어린아이를 생각나게 만들어 얼핏 귀엽게 보였다.

         

       슬라임의 형태를 한 것은 신체 주변에 처져 있는 금줄을 경계로 얼쩡거리며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보호하고 있었다. 폭포처럼 벽을 만들기도 했고, 돔의 형태로 감싸기도 했고, 가시를 뽑아내 창살처럼 세우기도 하는 등 몽실몽실 움직이며 빛의 구체를 철저하게 보호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진성은 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준비는 되었느냐?”

         

       켄지의 눈 아래는 시꺼멓게 변해있었다. 몇 년을 족히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다크서클이 짙게 자리해 있었고, 퀭한 눈에는 도무지 생기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부두술사가 만든 좀비(Zombie)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였다.

         

       “무, 물론입니다!”

         

       그렇게 산송장처럼 변해버린 켄지의 눈에 총기가 돌아오는 순간은 오직 사이버 드러그를 떠올릴 때뿐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켄지에게 쾌락을 줄 생각이 없었고, 켄지에도 몇 번이고 그것을 주지시켰다.

         

       당연히 켄지는 발광했다.

       한 번 천국을 보여주고 그것을 빼앗는다니?

       그건 그에게 있어 파멸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빌었다.

       이마가 깨질 때까지 머리를 박았다.

       손바닥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빌었다.

       무릎이 제대로 펴지지 않을 정도로 꿇었고, 피를 토할 때까지 외치고 또 외쳤다.

         

       하지만 빌어도 빌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진성은 결코 자신의 의지를 꺾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반항을 하거나 협박을 해볼 법도 했지만, 켄지에겐 그조차 불가능했다.

       그가 앞서 겪었던 공포와 뇌 속에 있는 스파르가눔이 그의 몸과 마음을 단단히 속박하고 있었고, 그는 오직 꼬리를 내린 개처럼 몸을 낮추고 빌고 또 빌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는 오직 빌고 또 빌기만을 반복하다 결국 자신의 갈망을 원망으로 바꾸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그 원망은 항거할 수 없는 존재인 진성이 아닌, 수평적 관계에 있던 이들에게 향했다.

         

       “그놈들, 그놈들도! 그놈들도 저랑 똑같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은 맛볼 수 없는 쾌락을 지금 이 순간에도 맛보고 있을 사람들.

       그의 옛 약 동료들.

         

       켄지는 자신에게 약을 팔았던 사람, 같이 약을 즐겼던 사람. 그 모두가 자신과 똑같은 처지가 되기를 원했다. 자신이 맛볼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도 자신이 있는 위치로 끌어내려 지기를 원했고, 극락을 맛봤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이 끔찍한 현실을 그대로 겪기를 원했다.

         

       이는 여러 감정이 혼재되어 만들어진 원망이지만, 그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질투심이었다.

         

       질투심.

       오직 그 저열한 감정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만 이렇게….”

         

       어찌 보면 켄지는 참으로 훌륭한 마약중독 치료사일지도 모른다.

       이리도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약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하는데, 저걸 치료사가 아니라 무엇이라 말할까!

         

       “다른 놈들도 나랑 똑같이! 똑같이 되어야 해!”

         

       켄지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그에게서 결코 손이 닿지 않을 쾌락을 향한 갈망과 광기가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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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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