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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0

       

       

       

       

       정오를 막 넘었을 시점이다. 

       구양천은 동굴에서 한참 수련을 하던 시간이다.

       

       그즈음에 구가의 안주인이자 중원의 유명 상단의 주인 백화주 미효란은. 자신의 남편을 마주하고 있었다.

       

       드르륵 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뒤편에서는 물레방아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다.

       

       총 세 개가 놓인 찻잔.

       그중 두 개의 찻잔에서 은은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미효란은 하얀 손길을 흔들림 없이 뻗어 자신의 찻잔을 올려든다.

       

       소리 없이 차를 한 모금 삼킨 미효란은 목을 축인 직후 자신의 남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얘기는 잘 나누셨나요.”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미효란의 표정은 싸늘하리만큼 차가웠다.

       

       그걸 알고 있는 구철운은 딱히 대답하지 않고 은근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미효란은 그런 구철운을 보며 말을 덧붙인다.

       

       “얼마나 잘 나누셨는지, 아이의 눈을 파랗게 멍들게 만드셨더군요.”

       “…”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일단 변명이라도 들어보겠다는 듯 차분하게 묻는 말은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진다.

       

       내기를 하나도 가지지 않은 일반인인 미효란이 내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오죽하면 구철운이 은은히 뿜어내는 열기가 있음에도 방 온도가 차갑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구철운은 보기 드물게 헛기침을 잠깐 뱉어내더니 미효란을 향해 말한다.

       

       “일이 좀 있었소.”

       “당연히 있으셔야지요. 없으셨더라면 큰일이 났을 겁니다.”

       “…”

       

       무슨 큰일일까. 뭔지 모르겠지만, 절대 좋은 쪽은 아니란 걸 구철운은 알 수 있었다.

       

       미효란은 그런 구철운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쉰다.

       

       “아이의 표정을 보니 잘 풀린 것 같아 별말씀 드리진 않겠으나…. 귀한 얼굴을 그리 만드신 건 좀 실망이네요.”

       

       귀한 얼굴?

       

       구철운은 묘한 표정으로 미효란을 쳐다본다. 

       

       구양천이 제 아들이라지만 귀하다 싶은 얼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소.”

       

       어쩔 수 없었다. 그 말이 맞으리라.

       

       구양천이 당시 내뿜던 기운은 내기의 탈을 쓴 투기에 가까웠다.

       

       과거 패존에게서 느껴지던 기운임을 구철운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고. 

       구양천이 두 가지 기운을 쓰는 것도 모자라 언제 터져도 모자랄 힘을 몸에 담은 걸 보고 몸부터 나가버린 것이다.

       

       그대로 자식이 죽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다만, 이걸 미효란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그걸 들은 미효란이 구철운에게 말한다.

       

       “당신께선 어쩔 수 없지 않은 이유라는 게 있나요?”

       “…이번 일은 정녕 어쩔 수 없었소.”

       

       구철운의 말에 미효란의 고운 이마에 주름이 생긴다.

       

       “상처는 안 내신다고 저와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대련으로 임했기에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얘기를 하러 간다고 했지 대련을 하신다는 말씀은 없으셨지요. 그 대화라는 게 혹 몸의 대화였나요?”

       “큼.”

       

       구철운이 결국 헛기침을 뱉어내며 차를 한 모금 마신다.

       그걸 보는 미효란은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조금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었다.

       

       구철운이 두르고 있던 무게감이 조금 줄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조금은 가벼워졌구나.’

       

       그걸 느끼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화는 내지 않는 중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의 눈에 파랗게 멍을 만들어 낸 건 미효란으로 선 다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아이에게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럼에도 이 분노를 온전히 표하지 않는 것은.

       

       이에 대해 말해 봐야 죄책감과 두려움에 아이를 멀리하던 자신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기에 제 얼굴에 침 뱉기를 참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의 상태를 보며 발끈하듯 일어나던 여인들의 태도였다.

       

       당장 검이라도 뽑아 들 듯 보여주던 모습은 미효란이 보기에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무희라는 여인은 미효란이 보기에 애당초 약혼을 이미 한 상태니 크게 점수를 주고 있었고.

       그 외에 주변 여인들은 편차가 좀 다른 편이다.

       

       여러 여인이 머릿속에 떠오르나. 

       

       우선 가장 점수를 많이 받고 있는 건 모용세가의 여식이다. 설봉이라 했던가.

       

       들려오는 소문과 더불어 잘 모르게 뒤에서 수를 쓰고 있는 부분이 미효란의 마음에 들었다.

       

       적으로 두면 위험할 터였으나, 미효란은 그녀의 행동이 대부분 자신의 아들의 앞날에 도움이 되리란 걸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자신과 닮아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기에 그 ‘모용가’의 딸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과거 구철운을 졸졸 쫓아다니던 여인 중에서 도 모용세가의 여식이 있었으니까. 

       물론, 미효란이 보는 모용희아와는 딴판인 여인이었지만 말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자신의 딸인 구희비와 비슷한 느낌이리라.

       

       ‘여러 여인이라….’

       

       미효란은 순간 떠올린 말에 속으로 작게 웃음을 내 짓는다.

       

       구양천이 잘 못 지내는 듯 보여 걱정했었는데. 나름 잘 지내는 듯 보였고.

       여복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다만.

       

       ‘이 부분은…. 제 아비를 너무 닮았구나.’

       

       그게 또 다른 걱정이라면 걱정이었다. 

       여복이 너무 많은 것도 훗날 고생길의 포함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부분에서 구양천은 고생길이 훤한 편이다.

       

       구철운은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구양천은 그게 아닌 듯 보였고.

       

       하물며 엮인 여인들이 한 명 한 명 말도 안 되는 배경을 지닌 이들이었으니 그걸 생각하며 미효란이 할 수 있는 건 뒤에서 조금씩 수를 써두는 것뿐이리라.

       

       “…그래서.”

       

       미효란의 말에 구철운의 고개가 움직인다.

       

       “아이는 편해 보였나요?”

       

       가장 중요한 물음이었다.

       그 아이가 그로서 조금이라도 편해졌을까.

       

       미효란이 덤덤히 구철운의 눈을 들여다본다. 구철운의 눈은 여전히 묵직하게 보였으나, 미세한 차이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미효란의 시선을 받아들이던 구철운이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는다.

       

       “모르겠소.”

       

       굵고 무거운 목소리에는 모순되게 은은한 무언가가 뒤섞여있다.

       

       “고작 이런 작은 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소.”

       “아이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나요.”

       

       조금은 나아졌는지. 물어보지는 않은 건가. 미효란의 말에 구철운은 고개를 젓는다.

       

       “물어보지 않았소.”

       “왜죠?”

       “그 또한 모르겠소. 하지만.”

       

       구철운의 말에 미효란이 귀를 기울인다. 한참 망설이는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셋째가. 날 보며 아버지라 하더군.”

       “…!”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아버지라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연한 일은 알고 보면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미효란이 구철운의 얼굴을 살핀다. 

       표정의 변화는 여전히 보이질 않았지만,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미효란은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어떤가요.”

       “모르겠소. 그걸 모두 알기에는 나는 아직 무능한 인간이오.”

       “…”

       

       부정하지 않았다.

       미효란이 보기에는 구철운은 가주로서는 뛰어난 인물이나. 부모라 하기엔 많이 부족한 인물이었으니까.

       

       물론, 이는 미효란 또한 다를 바가 없으리라.

       

       “어렵군.”

       

       작게 뱉어낸 구철운의 말에 미효란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구철운을 보며 말한다.

       

       “늦었어요.”

       “…”

       “많이 늦었어요. 어렵다는 걸 아는 건 조금 더 빨랐어야 했어요.”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빨랐어야 했다. 그녀도 구철운도 말이다.

       미효란의 후회는 이것이었다.

       

       이를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다면, 더 나았을 터인데…. 그러지 못한 것.

       

       그게 미효란의 후회였다.

       

       “…그러니. 이제라도 알아가려고 해보세요.”

       “노력해보겠소.”

       

       구철운은 짧게 망설이고선 이리 대답했다.

       저 말이면 우선은 괜찮으리라. 

       

       구철운의 노력하겠다는 말은 도망치기 위해 꺼내는 게 아닌 정말 그 뜻 그대로 일 테니까.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미효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가지 바람이 있더라면.

       

       -아버지라 하더군.

       

       구양천이 구철운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뱉어냈듯. 

       

       ‘언젠가는.’

       

       언젠가는 자신도….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미효란은 눈을 감는다. 다소 오만한 생각이란 마음이 스쳐서다.

       

       미련 아닌 미련을 깔끔히 지워낸 미효란은 남편에게 티 나지 않게 인사를 건넨 뒤 방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구철운은 남은 차를 마시며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사무쳤기 때문이지만, 다 모아놓고 보면 결국 고민은 하나였다.

       

       ‘어렵구나.’

       

       관계라는 것. 

       무겁게 짓누르는 죄가 너무나 묵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결국, 외면해오던 또 하나의 업이지 않을까.

       구철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속을 달랜다.

       

       -늦었어요.

       

       미효란의 말처럼 너무나 늦은 고민이었다. 

       지금은 어려워하기보단 다른 걸 택해야 했다.

       

       “…”

       

       이내 조심히 눈을 뜬 구철운은 미효란이 나간 문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쪼르륵.

       

       찻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먼저 채우고는, 이내 건너편에 있는 찻잔도 채우기 시작한다.

       

       이상한 일이었다. 

       미효란은 이미 방 밖을 나가고 없는데 말이다.

       

       그런 찻잔을 채운 다음 구철운은 말했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허공에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나 갑작스럽다.

       하지만.

       

       드르륵. 

       

       구철운의 말이 떨어지자 미효란이 나갔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온다.

       검은 무복을 입고 있는 중년 사내다.

       

       저 사내는 구철운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서안에 있는 유명한 세가.

       

       서안비가의 가주 비적이라 불리는 무인이었다.

       

       그를 확인하며 구철운이 몸을 일으킨다. 인사를 건네기 위함이다.

       

       단. 비적을 향한 인사는 아니었다.

       

       구철운은 기다리고 있었다. 

       저 뒤에 들어올 인물을 말이다.

       

       이를 확인한 비적이 멋쩍은 표정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몸을 비켜낸다.

       다른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도록, 그러자 구철운이 기다리던 인물이 비적을 넘어 방으로 들어온다.

       

       구철운이 들어온 인물을 살폈다.

       

       젊은 무인이다. 

       

       나이로 보면 자신의 자식과 같은 또래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약관을 넘었을까 싶은 느낌.

       

       입고 있는 무복으로 하여금 비가의 혈족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마, 옆에 있는 비 가주의 자식이리라.

       

       그렇기에 본래였다면 비적에게 먼저 예를 갖췄을 테지만.

       구철운의 고개는 앞선 젊은 사내에게 먼저 숙였다.

       

       앞선 인물은 비 가주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 태도에 청년의 눈빛에는 묘한 감정이 스치는 게 보였다.

       

       “놀랍소. 아직 소개도 안 하였거늘.”

       “다소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런…. 이렇게 나오면 놀릴 맛도 없겠어.”

       

       원래였다면 좀 놀려먹으며 시작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픽 웃은 패존이 구철운의 앞으로 다가가 상 건너편에 털썩 주저앉는다.

       

       “오랜만에 뵙소. 구 가주. 얼마 만인지 세기는 다소 어렵군. 그 김에 소개를 다시 해보자면.”

       

       미리 따라져 있는 찻잔을 들며 패존이 말했다.

       

       “패존 비주라 하오. 그리고.”

       

       패존의 눈이 구철운을 향했고 구철운은 이미 그 전부터 패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 아들의 스승이오.”

       

       말과 동시에, 방 안에서는 묵직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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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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