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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0

       가만 보면 이쪽 세상에 와서도 아이들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클레어는 이곳에 있는 상황 자체를 언제나 즐겼다. 아제르나에 있을 때 레오와 새벽부터 의뢰를 나가던 것도 그저 의무감에 그랬던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즐기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클레어는 이곳에서도 이곳의 문화를 빠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화장품에 가장 먼저 손을 댄 것도 클레어였고, 아이돌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패턴을 분석하거나, 숏폼 영상에 대해서 알려준 것도 클레어였다.

        

       까놓고 말해, 30대가 되면서 어느 정도 취향이 고정되어버린 나보다 이쪽 세상에서 최근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실하게 취향을 받아들인 결과, 지금은 한국 어디에 떨어뜨려 놓더라도 잘 먹고 잘살 것 같았다.

        

       앨리스도 성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에서 영상을 보고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꽤 빨랐다. 하지만 그 방향성은 ‘공부’에 더 가까웠다.

        

       어린 시절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던 것을 봤을 때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이쪽으로 넘어온 뒤 한동안은 정말 마음 편하게 지내던 앨리스였지만 그 이후에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학습 쪽으로 취미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공부 강도 자체는 아제르나에 있을 때에 비하면 매우 느슨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향상심을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로 보는 영상이 과학 상식 영상이나 헬스 영상인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그에 비해 아직 샤를로트와 미아는 그 두 사람처럼 캐릭터가 ‘정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편린 자체는 언뜻 보이고 있었다.

        

       샤를로트는 이 세상의 문화에 대해 여러모로 공부 중이다. 특히 근대화를 겪으며 사라져버린 이 나라의 왕조에도 꽤 관심을 보였는데, 그게 자기네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기서 교훈을 얻어간다면 그것도 좋겠지. 그리고 ‘이미 겪어본 나라의 입장’ 같은 건 의외로 매우 소중한 것이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 비슷한 사건의 전조를 알아보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아의 경우는…… 아무래도,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다시 찾고 싶다는 느낌이 강한 것 같았다.

        

       “다들 안 드세요……?”

        

       저녁 식사 뒤, 우리는 호텔로 돌아오면서 주전부리를 몇 가지 사 왔다. 아직 미아와 샤를로트는 맛보지 못한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점에 가서 가장 큰 사이즈의 아이스크림을 샀고, 편의점에 들러서 과자와 음료수를 잔뜩 샀다.

        

       사실 그 과정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돌아가서 아무것도 씹지 않고 있기에는 입이 심심할 것 같았다. 이 아이들과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여행하러 오면 하는 행동을 그대로 했던 것에 가까웠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샤를로트와 미아의 반응을 즐겼다. 이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한국의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쪽 세상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느낌이다.

        

       여러 가지 맛이 있는데, 그 맛의 대부분은 아직 아제르나에서는 흔한 맛은 아니었다. 일부는 아직 발매된 적도 없는 맛이었고.

        

       샤를로트도 아직 소녀인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을 때마다 눈을 빛냈다.

        

       하지만 미아의 반응은, 그것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눈을 반짝이면서 연신 숟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안쓰럽다고 해야 할까.

        

       이전에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보아서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는데.

        

       새로운 과자를 뜯을 때마다 눈을 반짝이면서 활짝 웃는 것을 보고, 나는 그 반응이 정말로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제야 미아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 것이다.

        

       오로지 복수를 위해 키워지던 어린 시절의 미아. 그리고 당연히 그랬기에 미아는 어린 시절을 어린아이답게 보내지 못했다.

        

       나야 원래 내용물이 어린아이는 아니었고, 앨리스에게는 내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천진난만함을 지킬 수 있었다. 클레어는 아주 좋은 집안에 입양되어서 밝은 성격으로 자랄 수 있었고.

        

       그에 비해 미아는…… 가정환경이 좀 그랬으니까.

        

       “아뇨, 먹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면서 과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이전에도 이미 떠올린 적 있는 생각이었지만, 이쪽 세상에 대한 반응을 보기 위해 또다시 세세하게 관찰하니 미아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보이는 것도 어린 시절의 그 모습을 너무 억누르고 살았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미아는 마법소녀물을 보고 있다고 했지.

        

       그거에 대해서는 괜히 건드리지 말도록 하자.

        

       “그래서 내일은 어디로 갈 거야?”

        

       내가 과자를 다시 먹기 시작한 시점에서 괜히 나 따라 미아를 보고 있던 아이들의 분위기도 풀렸다.

        

       클레어의 그런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놀이공원에 갈 겁니다.”

        

       “놀이공원!?”

        

       “예, 표도 이미 예약해두었습니다. 얼마 전에 할인 이벤트를 하더군요.”

        

       “와!”

        

       “그렇게 좋아?”

        

       클레어의 반응에 앨리스가 웃으며 물었다.

        

       “매번 영상으로 보면서 가보고 싶었으니까.”

        

       이쪽 세상의 먹거리가 아제르나에서 ‘보기 매우 드문 종류, 혹은 만들기 어려운 종류’의 음식이라면, 놀이공원은 그 기술력의 차이 때문에 재현하기 극히 어려운 종류였다.

        

       뭐, 증기기관으로 강화복까지 만들어 입는 세상이니 만들고자 한다면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안전’ 쪽에서는 여러모로 의문이 남는다. 게다가 ‘증기’기관이니 주변이 하얀 수증기로 가득할 거고.

        

       “놀이공원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아가 아주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을 뻔했지만, 꾹 참았다.

        

       아무래도 미아의 머리를 쓰다듬는 건 좀…… 너무 변태 같아 보일 것 같아서.

        

       사실 아제르나 전기의 히로인들은 그렇게 신체접촉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

        

       “여러 가지 기구들이 있고, 그걸 타면서 노는 곳입니다.”

        

       해외에서는 테마파크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놀이공원보다는 그 테마가 더 명확하다고는 하지만, 결국 거기서도 유명한 것들은 어쨌거나 ‘타는’ 기구들이다. 그 놀이기구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던가.

        

       “퍼레이드도 있고, 아무튼 가서 놀면 즐거울 겁니다. 기왕 이쪽 세상에 왔으니 이쪽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즐겁게 즐겨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혹시 나중에 시간이 나고 여유가 조금 더 생기면 반경을 더 넓힐 수도 있겠지.

        

       “아마 여기일 거야.”

        

       그 사이에 클레어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찾아 보여주자, 미아의 눈이 반짝였다.

        

       “저기, 실비아?”

        

       “예.”

        

       옆에서 샤를로트가 나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희한테 따로 돈을 내라고 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그 표도 전부 당신이 예약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왜?

        

       내가 너무 손해라고?

        

       “그저 제가 좋아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렇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내가 이쪽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잃었다는 상실감이었다. 아마 여신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굳이 나를 이쪽 세상으로 돌려보낸 거고.

        

       물론 이쪽 세상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찾아서 어떻게든 설득해 다시 관계를 회복시켜볼 수는 있겠지. 그게 가능할지 아닐지는 해 봐야 하는 것이지만, 나름대로 시도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시도하기 전에 클레어와 앨리스가 나를 찾기 위해 이쪽으로 와주었다.

        

       그리고, 이쪽 세상에서 이 두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너무나 즐거웠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것이다. 내가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요.”

        

       샤를로트가 나의 표정을 보고 뭔가 느낀 것이 있었는지, 그 뒤로는 굳이 더 물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 웃는 것을 보니 이 대화를 매우 흐뭇하게 보는 모양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조만간 두 분께도 스마트폰을 마련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모두 원하는 정보가 있겠죠. 필요하다면 스스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보다 그곳에서 읽는 게 더 정확할 수 있으니까요.”

        

       나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기쁜 표정이 떠올랐다.

        

       뭔가 해주는 보람이 있다니까.

        

       “앨리스와 클레어는 충분히 이쪽에 적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두 분은…… 그래도 아직 한 분씩 나가는 것은 조금 걱정되니, 여기 있는 사람 중 다른 한 사람과 함께 나가는 것 정도는 해도 될 것 같군요.”

        

       “정말!? ……아, 그런데, 나는 굳이 따로 다닐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처음에 표정이 확 밝아졌던 클레어가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 너는 그렇게 말할 거 같더라.

        

       “혹시 우리랑 운동 나가는 게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

        

       앨리스의 말에 나는 눈을 피했다.

        

       “좋아, 그럼 앞으로 언니랑 무조건 붙어 다녀야겠네.”

        

       아, 안 통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ᄂᄒ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전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사실 저도 일상물 좋아하는 입장에서 정말 마음 편하게 쓰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흘러가는 스토리 정도는 있고, 언젠가는 그 스토리도 끝이 나긴 해야겠지만, 설정 자체를 느슨하게 짜두어서 마음 놓고 느긋하게 쓸 수 있는 점이 정말 좋네요. 특히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본편에서 이미 제대로 정립되어있어서 더 편안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부디 마음 편하게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시는 점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읽으시며 써주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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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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