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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0

        

       총리는 궁을 나서며 생각했다.

         

       ‘멍청하다는 감상밖에 나오지를 않는군.’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초식동물이 풀을 수없이 되새김질하듯이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였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결론.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능력자들을 보내? 그나마 성공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죄다 행방불명? 이해할 수가 없군, 이해할 수가 없어.’

         

       어린애들이 그랬다면 이해라도 하겠다.

       아직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피 끓는 나이의 청년들이었다면 납득했으리라.

       온갖 욕망은 소용돌이치는데 능력은 한없이 낮은 그런 시기이니 실수를 할 수 있겠다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관이다.

         

       어린애?

       청년?

         

       그런 게 아니다.

         

       화족들이 했다고 한다.

       그것도 기업을 운영하는 인간들이 말이다.

         

       기업가라는 인간들이 어떤 족속들인가?

       돈을 아낄 수 있다면 사람 목숨은 파리처럼 날려버릴 수 있는 냉혈한들이고,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밤낮 할 것 없이 그 생각만 하고 살아가는 것이 그 인간들이다. 손익계산이 밝은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에 뼛속까지 잠식된 이들이라는 이야기다.

       그 말이 무슨 이야기냐?

         

       적어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으며, 기본적인 머리와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기업가 중에서도 사업을 제 손으로 말아먹는 멍청이들이 넘쳐나는 것이니 속단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애새끼보다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어야 정상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낸 결론이 뭐라고?

         

       한국을 공격하자고?

       협박해서 물건을 빼앗아 오자고?

       능력자들을 잠입시켜서 물건을 훔쳐 오자고?

         

       이게 뭔….

         

       ‘영화나 만화도 아니고.’

         

       매너리즘에 빠진 영화감독조차도 생각해내지 않을 발상이다.

       무슨 몇십 년 전 유행하던 첩보 영화나 만화도 아니고,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 이 말이다.

         

       아니, 그래. 생각까지는 할 수 있다.

       생각을 하는 것 정도야 뭐 자유니까.

         

       그런데 그걸 실행했단다.

         

       ‘아무리 멍청해도 그걸 저것들이 단독으로 행했을 리가 없어. 이건 분명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에 행한 일이다.’

         

       성공해도 얻을 것이 거의 없고,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까지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들이 이런 미친 거래를 받아들일 리가 있겠는가?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 정신 나간 거래를 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총리의 상식선에서 지금 이 사건은….

         

       ‘이건 무조건 천황이 연관되어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됐다.

       이득에 민감한 기업가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하지 않은 이상에야,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된다.

         

       ‘빌어먹을. 상징이면 상징답게 그냥 얌전히 있을 것이지, 궁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나. 이딴 짓을 벌이고 말이야….’

         

       총리는 궁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도저히 그러지 않고서야 참을 수가 없었다.

         

       나라의 일인자인 자신이, 이 나이를 먹고, 멍청한 천황의 뒤치다꺼리나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짜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천황, 각오하시오. 이번 일이 끝나면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궁내청 예산을 대폭 줄여버릴 테니까. 그리고 댁은 물론이고 댁 가족들도 망신당할 준비나 하고.’

         

       행사에 초대시켜놓고 드레스 코드(Dress Code)를 미리 알려주지 않게 해서 붕 뜨게 만든다거나, 예산을 대폭 줄여버리고 의상 몇 개를 망가뜨려서 같은 옷을 여러 번 입게 만든다거나, 무례한 성격의 기자를 붙인다거나….

         

       티가 나지 않게 괴롭힐 방법이야 무궁무진했다.

         

       총리는 마음속에 앙심을 품은 채,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 빌어먹을 일을 어떻게든 주워 담기 위해서.

         

       앞서 일어났던 ‘멍청한 방법’이 아니라, 세련된 방법을 사용해서 해결하기 위해서.

         

       그렇게 총리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비공식 외교채널을 통해 항의했으며, 공식적인 외교 채널을 통해 유감을 표했다. 그리고 무역을 이용해서 압박을 보냈으며, 정부에 충실하게 따르는 언론들을 사용해 한국을 공격했다.

       총리의 항의는 직설적인 방법이 아닌 아주 고상하게 돌려 말하는 수법이었으며, 그 덕분에 한국은 일본이 갑자기 왜 난리를 치는 것인지도 알지도 못한 채 난리가 나게 되었다. 외교 채널을 통해 물어보아도 ‘그건 당신네가 더 잘 알지 않는가.’라는 뜻을 우회적으로만 표현할 뿐 왜 그러는지 직접적으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당하는 사람 처지에서는 그야말로 환장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유라도 알고 얻어맞으면 나은데, 이유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그 이유를 물으면 ‘너희가 잘못한 걸 몰라? 진짜 몰라?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반응만 보인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저놈이 잘못해서 쟤를 패는 거니까 나를 욕하지 말고 저놈을 욕하라고 주변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닌가.

         

       게다가 총리의 치고 빠지는 솜씨 또한 기가 막혔다.

       당하는 사람의 눈이 돌아가기 딱 직전에 공격하는 것을 멈춘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어지간한 요청은 들어줄 수밖에 없지.’

         

       이것이 바로 세련된 방법이었다.

       다짜고짜 무력을 동원하는 무식한 방법이 아닌, 정치로 단련된 솜씨로 행하는 예술이다.

         

       총리는 한국이 자기 말을 귀담아들을 것임을 확신했으며, 어지간해서는 저들이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리라 확신했다.

         

         

         

        * * *

         

         

         

       『 무슨 미친 소리인지 모르겠군. 일본 국민을 우리가 납치 감금했다고? 풀어주라고? 우리가 무슨 소말리아라도 되는 줄 아시오? 이상한 소리 그만 지껄이고 당장 이 미친 짓거리나 그만두시오. 』

         

       총리의 계획은 반쯤 성공했다.

       한국이 총리의 ‘요청’을 귀담아들은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한국은 일본 국민을 납치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으며, 되려 총리를 노망이 들기라도 한 것처럼 바라보았다.

         

       총리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한국으로 갔던 능력자들이 실종됐다.

       유일한 생존자는 작전 중에 그들이 실종되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면 누가 봐도 한국이 범인이 아닌가?

         

       그런데 그 범인은, 죽어도 자기가 아니라고 한다.

       도리어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기까지 한다.

         

       “허허허허.”

         

       사람이 염치가 있지.

       정황이 이렇게 확실한데 이렇게 잡아뗀다고?

         

       ‘한국이 참으로 많이 컸구나. 이렇게 뻔뻔하게….’

         

       하지만 총리가 황당한 만큼, 한국 역시 황당해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우리가 누굴 납치해서 데리고 있다는 건데? 이 미친 노인네가 머리가 돌아버리기라도 했나….’

         

       다짜고짜 온갖 음험한 수작은 다 동원해서 압박을 주더니,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무렵에 딱 나타나서 하는 말이 저거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일본 여행객들이 들어온 기록들은 있는데…그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그놈들이 우리나라에서 활개 친 기록도 없고, 요원들이 그들과 충돌한 기록도 없고…. 아니 애초에, 그놈들이 한국에는 왜 들어왔는데?’

         

       사정을 모르는 한국으로서는 저 미친 총리 놈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 압박을 넣고, 어떤 사건에 대한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딱 보니까 한국을 교두보로 삼아서 능력자들을 어디로 보낸 모양인데…중국 아니면 이북 지방이겠군. 그런 곳에 가서 뒈졌으면 그 녀석들 탓이고 제들 잘못이지, 왜 갑자기 엄한 우리한테 화풀이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능력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능력자 하나도 아니고, 능력자’들’이?

         

       그렇다면 그 목적은 십중팔구 한국의 국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음험한 목적으로 한국에 떨어뜨려 놓고, 그들이 실종되니까 책임을 져라?

         

       한국이 무슨 호구도 아니고,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게다가 실종 건도 그렇다.

       그 능력자들이 한국에서 활동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으니, 분명 해안을 통해 중국으로 이동했거나 이북 지방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인데….

         

       그 위험한 곳에 기어들어 갔다가 실종된 게 어째서 한국의 탓이란 말인가?

         

       멍청한 능력자들 탓이고, 무능력한 제들 탓이지.

         

       ‘실패했으면 부끄러운 줄 알고 조용히라도 할 것이지.’

         

       한국은 이 미친 개소리에 즉각 반응했다.

         

       한국의 반응은 격렬했다.

       이미 일본과 영토 분쟁을 비롯한 마찰이 일어나고 있기에 사이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얼마 전 전국의 산에 괴물이 출현하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정부에서는 이 빌어먹을 테러를 일본에서 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는데, 테러에 대해 항의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갑자기 하지도 않은 납치 감금을 들먹이면서 난리를 피우자 한국 정부로서는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들이 이러한 행위를 일본이 보통 국가로 회귀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판단했다.

         

       ‘우리가 모를 줄 아나? 미국에 돈 퍼부어가면서 로비하는 것도 알고, 중국이랑 우리 핑계 대면서 헌법 개정하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이번 일도 그 빌드업 중 하나겠지.’

         

       한국은 비공식 채널을 통해서는 ‘개소리 닥치고 당장 이 미친 짓거리를 멈추지 않으면 우리도 강경하게 나설 수밖에 없다. 긴장감 끌어올리면 너희가 더 손해일까? 우리가 더 손해일까? 군 동원할까? 엔화 가치 개판 되고 주식들이 휴지가 되는 거 보고 싶냐?’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며, 공식 채널을 통해서는 앞으로 무역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점잖게 항의를 하였고, 미국에도 중재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총리는 의구심을 품었다.

         

       ‘이상하군. 평소 한국의 반응이 아닌데…?’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다.

         

       너무 격렬하지 않은가….

       마치 최근에 악감정이 잔뜩 쌓였다가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뭔가 위화감이 든다. 잠시 물러나는 게 좋겠어.’

         

       총리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은 잠시 뒤로 물러나서 관망해야 할 때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총리는 본능이 보내는 경고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 주한 일본국 대사관 특명전권대사 사망. 』

         

       『 사인 : 교통사고. 』

         

       총리가 위험을 피하려 하자, 위험이 총리에게로 찾아왔다.

         

       소름 끼치는 악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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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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