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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0

   거인의 숲에 있는 최흉의 씨앗 앞.

     

   한쪽 얼굴에 가면을 쓴 지옥 선녀가 그곳에 홀로 서 있었다.

   최흉의 씨앗 주위에는 수많은 마법진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는 최흉의 씨앗을 더 빠르게 피우기 위해 지옥 선녀가 가속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녀의 마법의 효력을 보여주듯 최흉의 씨앗은 본래 씨앗의 형태에서 어느새 거대한 나무가 되어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바닥 깊숙이 내려진 뿌리는 끊임없이 내려가 결국에는 세계 안쪽까지 파고들 것이다.

   그때부터 세계 침식의 영역 안이라는 제한이 풀리고, 전 세계에 세계 침식의 힘이 덮친다.

     

   ‘앞으로 조금인가.’

     

   지옥 선녀는 최흉의 씨앗이 전부 피어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더불어 이러한 최흉을 누가 삼켜야 할지 또한 잘 알고 있었으며.

   최흉이 피어나면 그 여파로 가장 먼저 죽게 될 것이 자기라는 것 또한 알았다.

     

   ‘곧이다.’

     

   이제는 숫자를 세기에도 너무 오래전.

   아벨라의 이전 모습을 만난 그 날, 그녀는 아벨라에게 평생의 충성을 맹세했다.

     

   지옥 선녀에게 있어 아벨라는 은인이자 스승이다.

   그런 그녀를 위해서라면 세계 따위 파멸마저 시킬 수 있었다.

     

   오래전 세계 침식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에게 잡혀 얼굴의 절반이 태워져 버리고, 노예처럼 부려 먹히던 시절.

   그들을 불살라 버리고, 자신을 거두어준 아벨라를 위해서 말이다.

     

   설령, 그것이 지옥 선녀가 지닌 고유 특성을 이용해 아벨라가 환생 마법을 완성 시키고자 그녀의 주인을 죽이고 데려온 것이라도.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준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었다.

     

   지옥 선녀가 목숨을 불사를 굳은 결심과 함께 더욱 마법진을 견고하게 만들었을 때였다.

     

   카아아아앙!

     

   지옥 선녀가 쳐놓은 반구의 방어 마법이 금이 가며 부서졌다.

     

   “아주, 난리를 쳐놨네.”

     

   곧이어 그녀의 등 뒤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가 접근하고 있음을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저쪽도 그걸 알고, 구태여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최흉의 씨앗 주변에 쳐놓은 모든 함정 마법들이 돌파당하고 있었으니까.

   함정 마법은 고작 시간 벌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자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크라슈 발하임.

   용왕이라 불리는 이이자 아벨라가 세계 침식 신의 그릇으로서 택한 이였다.

     

   지옥 선녀는 딱히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그에게 죽든 최흉이 번져 죽든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미 최흉을 일깨울 준비는 사실상 마쳤다.

     

   ‘문제는.’

     

   아직은 조금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

     

   발동시켜둔 마법을 두고, 지옥 선녀가 몸을 뒤로 돌렸다.

   그녀의 손아귀에는 어느새 마법의 발동이 쥐어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번다.

   그리 판단한 그녀가 마법을 발동시키려는 그 순간 크라슈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지옥 선녀의 눈앞의 새하얀 백염의 광원이 가득 메웠다.

     

   빠르다.

     

   지금까지 금역을 삼켜온 일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그의 움직임은 예전에 흑조와 그를 마주했을 때보다 몇십 배는 더 빨라져 있었다.

     

   그때조차 대응하지 못했던 속도였다.

     

   지금 와서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새하얗게 물든 크라슈의 머리카락이 휘날림과 동시에 그의 검이 뻗어왔다.

     

   꽈드드득!

     

   지옥 선녀가 최후의 보루로 지니고 있던 방어 마법 펜던트가 한순간에 박살이 났다.

   그만큼 그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지옥 선녀의 힘보다 압도적이라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 잠시의 틈을 이용해 지옥 선녀는 기어코 마법을 발동시켰다.

     

   지옥나찰(地獄羅刹)

     

   구천에 떨어짐을 거스르는 그녀의 고유 특성 낙무(落無).

   그러한 낙무를 이용해 지옥에서 데려온 나찰이다.

     

   그녀의 발아래에서 솟아오른 뿔이 난 지옥나찰이 크라슈를 향해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세계 침식의 힘을 듬뿍 머금은 검기가 크라슈를 양단하고자 뻗어진 순간.

     

   툭-

     

   크라슈는 손을 들어 대검을 그냥 잡아 버렸다.

   검으로 막은 것도 아니고, 지옥 대검을 맨손으로 잡아 버린 크라슈를 본 지옥 선녀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이미 지옥나찰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경지에 올라 있었다.

     

   결국 지옥나찰이라 한들 지옥의 신의 종.

   신의 영역에 도달하기 시작한 크라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꾸득!

     

   그 순간 크라슈가 힘을 준 지옥 대검 전체에 금이 갔다.

     

   쨍그랑!

     

   이윽고, 지옥 대검이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져 버렸다.

   크라슈는 그대로 손을 들어 지옥나찰의 머리 위에 솟은 뿔을 콱하니 잡았다.

     

   “나찰은 이미 초저녁에 졸업했어.”

     

   그의 손아귀에서 뻗어 나온 검이 지옥나찰의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동시에 꿰뚫린 머리에서 백염으로 불살랐다.

   시간이라도 벌 속셈으로 꺼냈던 지옥나찰은 무척이나 허무하게 불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지옥 선녀가 주춤거리는 자세로 뒷걸음질을 친 순간.

   지옥나찰을 태워 버린 백염을 뚫고 나타난 크라슈의 검이 쇄도했다.

     

   뒤늦게 펼친 방어 마법도 크라슈의 검 앞에서는 종잇장에 불과했다.

   잘려 버린 방어 마법과 함께 지옥 선녀의 배가 크라슈의 검에 꿰뚫렸다.

     

   “커흑!”

     

   그녀의 입에서 역류한 내장 찌꺼기와 핏물이 후두둑 쏟아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크라슈의 진가는 바로 백염이었으니까.

     

   화르르르르륵!

     

   그녀의 배에 박힌 검을 타고 피어오른 백염이 순식간에 지옥선녀의 몸 전체에 번져갔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열기에 그녀는 아득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아, 벨라 님.”

     

   그것을 끝으로 지옥 선녀의 몸이 무너졌다.

   크라슈가 지옥 선녀를 끝장내고자 양단하려는 순간 그가 섬찟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는 우뢰성의 검날을 지우며 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앙!

     

   순식간에 돋아난 우뢰성의 검날이 무언가와 거세게 부딪쳤다.

     

   쓰러진 지옥 선녀를 두고, 크라슈가 몇 걸음 물러났다.

     

   이제는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강자가 된 크라슈다.

   멸천화신과 백염을 자유자재로 다루게 되었건만 그가 걸음을 물러서야 할 충격이었다.

     

   크라슈는 이러한 충격을 선사한 이가 누구인지 눈치채고, 스산한 눈빛을 띄웠다.

     

   크라슈가 휘두른 검 너머.

   저 멀리서 주먹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걸어오고 있는 한 덩치 큰 사내가 있었다.

     

   몸 전반을 덮고 있는 백색의 털.

   이마를 두르고 있는 은고아와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귀.

     

   야수왕, 베르도.

     

   남은 익시온의 잔당 중 최강이라 일컫을 수 있는 사내.

     

   그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멀쩡한 꼴은 아니었다.

   본래라면 빛을 받아 반짝였을 그의 백색의 털이 여기저기 그을려 엉망인 탓이다.

     

   더불어 잘 보니 왼쪽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까 전 격전을 치르고 왔다는 증거였다.

     

   “오랜만이로군.”

     

   베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오른팔을 두둑 풀었다.

   왼팔이 불편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감추기 위함이었다.

     

   베르도를 잠시 바라본 크라슈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크림슨가든이 너한테 갔을 텐데.”

     

   그러자 베르도가 코웃음을 쳤다.

     

   “용 따위가 나를 막을 수 있을 턱이 있나.”

     

   허세다.

   크라슈는 베르도의 허세를 이미 눈치챘다.

     

   아무리 베르도라고 해도 크림슨가든을 이런 단시간에 쓰러트리고, 여기까지 도달할 수 없다.

   그 말은 즉, 베르도는 크림슨가든과의 싸움을 끝내는 걸 포기하고 이쪽으로 달렸다는 소리가 된다.

     

   “꽁지 빠지게 도망가기만 하는데. 야수왕이라니. 너무 안 어울리는 호칭 아닌가?”

   “남이 멋대로 부르는 호칭에 딱히 관심 없다.”

     

   크라슈의 도발에도 베르도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몸이 거의 다 불타버린 지옥 선녀를 바라본 그가 크라슈를 향해 주먹을 겨누며 자세를 잡았다.

     

   그는 지옥 선녀가 시간을 끌기 위해 발버둥 쳤음을 눈치챘다.

     

   지금의 자신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긴 하나.

   그 뜻을 눈치챈 이상 자신도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궁금하군. 그때 애송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크라슈는 베르도에게 한 번 크게 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당했던 곳은 다름 아닌 이곳, 거인의 숲이었다.

     

   천황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분명히 자신은 그곳에서 베르도의 손에 끌려갔겠지.

     

   리벤지 전.

   이를 짐작한 크라슈가 우뢰성의 백염의 날을 거세게 피워 올렸다.

     

   ‘크림슨가든 녀석.’

     

   보아하니 베르도가 도망친 것을 알고, 그냥 풀어줘 버린 거겠지.

   그녀라면 아마 거인의 숲이 사라진 뒤 나타날 아벨라를 대비해 준비하고 있을 거다.

     

   그 말은 즉, 어차피 크라슈가 베르도를 꺾을 거라고 확신했다는 소리.

     

   ‘스승이라는 녀석이.’

     

   제자한테 짬이나 때리고 말이야.

     

   크라슈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기세를 점점 더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난 다른 사람들처럼 도망치게 안 둘 거다.”

   “도망갈 사람이 내가 아닐 수도 있는 법, 아니겠나.”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

     

   베르도의 말이 마친 순간 크라슈의 각력이 부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 더해진 엑셀과 함께 크라슈가 포탄처럼 쏘아졌다.

     

   크라슈의 등 뒤에 바람이 일렁였다.

   신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크라슈는 이제 터무니없는 강자다.

     

   이를 직접 마주한 베르도도 그 사실을 선명히 깨달았다.

     

   몸은 이미 앞선 전투로 만신창이다.

   여기서 전투를 속행했다간 아무리 베르도라도 크라슈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이걸 결국 나 스스로 꺼내게 될 줄이야.’

     

   설마하니 자신의 인생에서 또 한 번 이 정도로 위기에 몰릴 때가 올 줄은 몰랐다.

   베르도는 나름대로 감격하며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그의 얼굴에 서린 광기 섞인 웃음을 엿본 크라슈의 검이 베르도의 목을 향해 뻗어졌다.

     

   카아아아앙!

     

   크라슈의 검을 막은 것은 베르도의 오른팔이었다.

   그의 오른팔에 채워진 거대한 팔찌가 크라슈의 검과 맞부딪친 것이다.

     

   쩌적!

     

   크라슈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강철보다도 훨씬 단단해 보이는 팔찌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니다.’

     

   하지만 크라슈는 곧 그것이 자신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님을 눈치챘다.

     

   저 팔찌를 부순 건 크라슈의 힘이 아니다.

   베르도 본인이 여기 오기 전 이미 팔찌의 봉인을 풀어 놓은 것이다.

     

   ‘이 녀석.’

     

   크라슈는 베르도가 자기 팔에 둘린 팔지를 푼 것을 딱 한 번 본 적 있다.

   그리고 그때의 베르도는 혼자 단신으로 스타론을 박살을 내놓으며 무황 발록 발하임조차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미친 듯이 날뛰었다.

     

   베르도의 필살의 폭주였다.

     

   예상은 했지만, 베르도가 생각보다 더 빠르게 폭주라는 강수를 택했다.

     

   크라슈가 그의 팔찌가 마저 풀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기회를 보고자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고는 세이블을 열어 내부에 있던 백염을 자신의 검에다가 전부 불어 넣었다.

   백염에 엑셀까지 부여해 밀어 넣은 검날이 새하얗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크라슈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천살성의 힘 또한 크라슈의 백염에 힘을 더했다.

     

   이윽고, 한계까지 달아오른 검을 크라슈가 베르도를 향해 내질렀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십식(十式)

   멸화(滅火)

     

   모든 것을 멸하는 새하얀 불길이 베르도를 덮쳤다.

   그를 완전히 덮쳐 버린 불길 속에서도 크라슈는 멈추지 않고, 질주했다.

     

   그가 죽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검을 더 휘두르려는 순간.

     

   쿵!

     

   베르도의 팔에 둘러 있던 거대한 족쇄가 완전히 풀려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멸화를 정면에서 맞아 새하얗게 타버린 베르도가 희번덕거리는 눈동자와 함께 웃었다.

     

   “잘 해봐라.”

     

   베르도의 짧은 말과 함께 그의 백색의 털이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베르도의 근육과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며 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야수화(野獸化)

     

   베르도의 눈동자에는 더는 이채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육체 전체를 뒤덮은 살의가 포효하듯 쏟아 나왔다.

     

   야수왕, 베르도.

   그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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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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