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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0

    <390 –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

     

    도비는 방향을 바꾸어 접근했다.

     

    “왜 그렇게까지 한방에 집착하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제약을 달지 않았어도 충분히 강하고 그 강함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았을 텐데.”

    “물론 엔딩분기를 빠르게 보기 위해서다.”

    “엔딩분기…?”

    “한 세계가 끝나는 방식. 최후까지 살아남은 승자가 되어 이를 목격하는 순간,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주지. 다음 유희를 더 강하고 유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다음 유희라니,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이런 폐허가 된 세계에서 어디에 다음이 있단 말인가.

    문명이 재건되고 인류가 다시 부흥한 뒤?

    만일 그렇다면 그 다음이라는 것은 대체 몇 만 년 뒤의 세상인가!

     

    무섭다.

    이 잔인한 드래곤이 무섭다.

    인간의 마음.

    인간의 시간.

    인간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눈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존재가 너무나도 무섭다.

     

    “역시 잘못됐어. 세계도 당신도.”

    “이번 DLC 캐릭터는 조금 빡치게 하는군. 외골수적인 성격데이터가 들어갔나?”

     

    근력해병의 거대한 몸체 저 위에 달린 눈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섬뜩하게 번뜩였다.

     

    카앙!

     

    검이 토막 났다.

    누군가, 내 앞을 막아주었다.

    그 사실을 바람이 몰아친 뒤에야 깨달았다.

     

    “어, 째서…?”

    “도로시를 기억하던 내가 보낸 사람이라면 분명 올곧음이 무엇인지를 알겠지. 해병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무리 어리석은 짓이라도 이 길이 올곧지 않음을 일컬어주었다면 그 길을 따를 뿐이다.”

     

    하반신이 사라진 남자, 록펠이 유언을 남긴 채 숨이 멎었다.

     

    “하. 골 때리네. 호감도는 더럽게 안 오르는 NPC들 부려먹겠다고 복종도를 100까지 어떻게 올려놨는데 이게 순식간에 깨져? 억까 미쳤네.”

     

    결사대원을 제 손으로 일격에 짓뭉갠 근력해병에게 제국황제 야요이가 소리쳤다.

     

    “동료를 죽이다니 무슨 생각이죠? 이제 우리의 쓸모는 다했다 이건가요!”

    “알고 있을 텐데? 일격에 죽이지 못하면 힘의 절반을 상실하는 제약을. 그걸 알면서도 앞을 막아섰다면 일격에 살해당할 각오를 한 것 아닌가?”

     

    내분이 일어났다.

    변화를 주고 싶었지만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작은 균열이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듯이 모두가 근력해병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당신은 미쳤어.”

    “그 미친놈의 힘을 빌려서라도 복수를 하려던 것이 너희 아니었냐? 귀한 시간 들여서 사이드스토리까지 밀어줬더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래서 여기까진 함께 했지. 더는 아니야.”

     

    아이린의 대마법이, 야요이의 성창이, 만델라의 천음이, 모두의 공세가 이미 시작되어버린 핵전쟁처럼 종말의 스위치를 눌렀다.

    서로가 서로를 일격에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공세가 빗발쳤다.

     

    “으아악!”

     

    도비는 데굴데굴 돌바닥 위를 구르며 커다란 바위등치에 등을 쾅 부딪치고 나서야 충격파에 밀려나기를 멈출 수 있었다.

    근력해병은 대단했다.

    저 모든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기어이 모든 결사대원을 제 손으로 해치웠다.

    물론 결사대는 망했다.

    근력해병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 진짜 개억까 미쳤네.”

    “억까?”

    “억지로 깐다고. 억울하다고.”

    “억울은 무슨. 전부 당신이 자초한 결과잖아!”

    “신들의 눈도 겨우 막아놨더니 어디서 이런 선악의 저울대 같은 녀석이 또 나타났지? 미치겠네. 안 듣고 쨌던 강의에서 시간여행 떡밥이 있었나?”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같은 사람의 형상을 해도 저것은 사람의 마음을 지니지 않았으니까.

    방법을 바꾸자.

    저 괴물 같은 남자를 죽일 방법을 찾아야해.

    내게는 <다음> 기회가 있다.

    도비는 마나장막을 해제했다.

    그리고 근력해병은 강제로 마나장막을 불어넣었다.

     

    “너 지금 뭐하냐?”

    “어어?”

    “개판만 쳐놓고 지 혼자 죽어서 튀려고?”

     

    다음 시작을 하려면 죽어야하는데.

    마나장막을 해제하면 블러디 슈퍼 문에 피가 빨려서 죽을 수 있는데.

    이제는 죽을 수가 없었다.

     

    “그 머릿속에 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있나 어디 좀 뜯어보자.”

    “아, 안 돼. 다가오지 마!”

     

    부질없는 저항은 근력해병의 한 손에 머리를 붙잡힌 채 허공에 대롱대롱 들리며 끝났다.

     

    “메모리스캐닝.”

     

    꿰뚫린다.

    오늘까지 쌓아온 모든 기억이.

    자신의 과거가.

    절망감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도비.

    근력해병은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얻었다, 라면서 손에 힘을 주어 그의 머리를 터뜨리지 않았다.

     

    “오크노디? 괜찮아 안 죽어?”

    “…?”

    “뭐야 이거. 설마 저게…?”

     

    남자가 갑자기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가. 저 공략은 분명 내 것이었지.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은 나만의 것. 틀림없어. 내 눈은 속일 수 없어.”

    “다, 당신은 기억동조의 부산물일 뿐이야… 오크노디에게는 손끝하나 건드릴 수 없어!”

    “이런 말을 알고 있나? 관측당한 미래는 어떤 식으로는 강림할 가능성을 얻는다.”

    “거짓말!”

    “기대되는군. 오크노디, 저 새로운 가능성이 루트분기나 파먹는 내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지. 아, 이건 선물이다. 좋은 걸 보여줬으니 나도 답례로 선물을 주지.”

     

    몸이 얼어붙는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다.

    기억 속의 세계인데.

    동조로 불려온 가짜인데.

    현실이 아닌데.

    앎의 깊이가 충분치 못하여 비롯된 격의 차이가 상식을 뒤엎었다.

    도비의 몸이 산 채로 석화되었다.

     

    “특별히 지켜보는 것을 허락해주지. 내 수련을.”

     

    근력괴물이 동조된 기억의 파편으로 그칠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불길한 연구를 시작했다.

    막을 수 없었다.

    도비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지켜보는 것뿐.

    남자는 집요했다.

    석화의 마나가 줄어들 때마다 주기적으로 힘을 다시 불어넣었다.

    그의 피는 신체를 벗어날 수 없었고, 의식만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실마리를 찾았다.”

     

    근력괴물은 끝내 그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려주었다.

    저것이 동조의 공간 너머로 벗어난다.

    현실에 강림할 가능성을 얻었다.

     

    “‘밖’에 나가거든 분명히 전해라. 이번이 첫 번째. 세 번째가 되면 그때는 확실하게 내가 찾아간다고.”

     

    괜한 호기심을 품는 것이 아니었어.

    오지랖을 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 때문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어.

    그런가.

    사람들이 예지와 예언을 두려워하는 이유.

    그건 이런 순간을 경계하기 때문이었나.

    미안하다.

    면목이 없다.

    자신에게 기회를 제공해주었던 오크노디에게.

    함께 피해를 볼 모든 인간들에게.

    섣불리 종말을 재단하려 든 대가는 현실로 역류하는 거대한 폭력이었으니.

    어쩌면 언젠가 현실에 닥칠 재앙이 이번에는 더욱 빠르게 찾아올지도 모른다.

     

    ‘막아야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내가 해내야만 해. 어떤 수를 써서라도.’

     

    파멸처럼 메아리치던 목소리는 남자의 손이 도비의 석화된 몸을 파괴한 뒤에야 비로소 끝을 맺었다.

     

    [동조의 문이 파괴되었습니다.]

     

    도비의 마지막 기억은 자신이 열어야 할 문을 넘어서며 섬뜩한 미소를 짓는 근력해병이었다.

     

     

    * * *

     

     

    “도비야. 괜찮아?”

     

    눈을 뜨자 뽀얀 피부에 앳된 얼굴이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헉!”

    “왜 그렇게 식은땀을 흘려?”

    “아,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다??”

    “아, 아닙니다. 잠시 기억에 혼선이 와서 그만.”

    “흐응~ 그래애?”

     

    오크노디가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도비야. 너 이상한 거 봤지?”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묻고 싶은 말도 많았다.

    동조로 전해진 종말의 파편은 대체 무엇이었냐고.

    그 세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당신에게 대체 누가 기억을 전해주었냐고.

    그러나 섣부른 태도가 불러온 화를 기억하는 그는 함부로 입을 놀리는 대신, 스스로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에 대해 아십니까?”

    “응? 알죠. 카시아 친구.”

    “카시아?”

    “상급반 C그룹 대장!”

    “상급반이라면… 설마 그가 우리와 같은 981기수입니까?”

    “응. 맞는데요?”

     

    이로서 확실해졌다.

    동조의 기억에서 보았던 광경은 허황된 거짓이 아니다.

    참사의 주범마저 분명하게 현실에 존재한다.

     

    “로지니, 샌드쿠커, 록펠. 그들도 알고 있습니까?”

    “록펠은 같은 상급반이고 둘은 내 조직의 조직원이에요! 물론 록펠도 조직에 들어있고. 카시아도 출석은 잘 안 해도 조직에 이름은 올려뒀고!”

    “그렇습니까… 당신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참극을 막고자 했던 것입니까…”

    “응??”

    “사과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그저 놀기 좋아하는 재능 넘치는 부러운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단의 배경이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라며 질투한 적도 있습니다.”

    “갑자기?? 머 저한테 피해를 주거나 기분 나쁘게 한 적은 없으니까 용서해주겠지만요. 사과할 마음은 왜 생긴 건데요?”

    “당신의 기억을, 그 기억에 각인된 종말의 파편을 엿보았기 때문입니다.”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이는 오크노디.

    그 모습에 악마 같던 사내의 모습은 없다.

    비로소 도비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렇다면 근력해병에 대해서도 아십니까?”

    “…몰루!”

     

    알고 있군.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아.

    그는 역시 재단과 관련된 인물인가.

    도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그에게 종말의 파편을 보여준 당사자의 뜻을 존중하고 싶었다.

    그래도 전언만큼은 잊어서는 안 되겠지.

     

    “그가 제게 경고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첫 번째. 세 번째가 되면 그가 당신을 찾아가겠다고.”

     

     

    * * *

     

     

    이건 진짜 놀랐다.

    기억동조를 그리 오래 한 것도 아닌데 그 잠깐 사이에 그렇게나 깊은 정보까지 파헤쳤다니.

    도비 이 사람.

    동조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곤란해졌다.

    내 기억을, 미래의 종말을 보았다는 말은 다르게 해석하자면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시절의 나를 보았다는 말.

    만일 2m30cm의 거한이 133cm의 응애노디가 되었음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나타나고, 이 소문이 교내에 퍼진다면…?

     

    ‘아카디아 언니도 아이린도 다른 모두도 지금까지처럼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지도 몰라!’

     

    강제로 기억을 소각시킬까?

    아니, 동조마법의 천재라면 어디서 트리거가 발동해서 멋대로 기억을 수복할지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비밀은 무덤에서 지켜지는 법.

    죽일까?

    본능적으로 떠오른 나쁜 생각에 화들짝 놀랐다.

    뉴비를 죽이다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그렇다면 근력해병에 대해서도 아십니까?”

    “…몰루!”

     

    시치미를 떼어도 눈치껏 장단을 맞춰주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너그러이 먹었다.

    사람도 천차만별이라 잘해줘도 난장판을 치는 괘씸한 뉴비가 있는가 하면 박하게 대해도 힝잉잉 울면서 따라오는 티토소가처럼 기특한 뉴비도 있다.

    2학년도 아닌데 사고사를 가장해서 이렇게 기특한 아이를 해칠 수는 없지!

     

    “전 모르는 일이에요!”

    “그렇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기꺼이 비밀로 해두겠습니다.”

     

    도비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을 했다.

     

    “그가 제게 경고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첫 번째. 세 번째가 되면 그가 당신을 찾아가겠다고.”

     

    기억의 파편에 불과할 내가 진짜 나를 향해서 전언을 남겼다.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동조마법을 세 번만 더 열면 플레이어 시절의 나와 마주칠 수 있다는 건가?

     

    ‘세계의 비밀이 다른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것을 금지하는 치트 방지 시스템이구나!’

     

    그런데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고인물 심보다.

    블라디미르를 언급한 걸 보아 도비가 목도한 종말의 순간은 블러디 슈퍼 문 디재스터Bloody Super moon disaster.

    뱀파이어의 혈마법이 온 세상을 장악하여 저항력 없는 생명체들을 피의 달로 흡수하는 배드엔딩루트를 일격에 클리어 할 스펙의 나.

    그런 나를 현실에 강림시켜 상대한다.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닌가.

    마침 아카데미 졸업생에게는 졸업과제를 달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과거의 나를 이기기로 졸업과제를 정하면 되겠다!’

     

    졸업까지의 목표가 정해졌다.

    목표는 배드엔딩 루트의 나를 능가하는 스펙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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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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