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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0

       

       

       『당신이 들어간 뒤로 바로 따라들어가려고 했지만, 옷을 갈아입느라 몇 분 늦었습니다.』 

       

       내가 이곳에 5일동안 머물러 있었으니, 렌까는 대략 5분 뒤에 바로 따라들어온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움막 안에 들어온 렌까는 지푸라기 깔개 위에 다소곳이 앉으며 말을 이었다.  

       

       『후훗. 그 표정을 보니, 묻고싶은 것이 많은 모양이군요?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죠. 물론, 시험의 정답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지만요.』

       『그래. 물어볼 게 많은데…….』 

       

       도대체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너, 여기 들어와도 되는 거야?』 

       『……라고 하심은?』

       『아니, 넌 시마즈 당주의 딸이잖아. 회장과 더불어 대동아공영회의 수장 중 한 명인, 시마즈 당주의 딸.』 

       『그렇지요.』 

       『그것만으로도 너는 이곳의 공적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부족민들도 대동아공영회를 「다이토아」라는 악마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어.』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변장을 한 것이죠! 후훗. 그럴듯하지 않나요?』 

       

       머리카락을 감춘 까만 방공두건. 전신을 두른 허름한 기모노. 얼굴에는 검댕이라도 묻혔는지 서민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아닌게 아니라 긴 히메컷 장발이나 희고 고운 피부, 그리고 무엇보다 귀족 특유의 고귀한 풍모가 가려지자 ‘시마즈 렌까’라는 인물의 특징적인 부분이 많이 감춰져 있었다. 고작 5분 사이에 이런 변장(?)을 한 것은 대단하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는, 렌까를 아는 사람이라면 몰라볼 수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은 대동아공영회의 수감시설. 부족민들은 모를까, 수감자는 한때 대동아공영회에 몸 담은 사람이었다. 시마즈 렌까를 모를 리가 없을 터.

       

       『고작 그 정도 변장으로 괜찮겠어? 너도 이곳에 들어왔으니 수감자와 얘기를 나누게 될텐데, 수감자는 너를 알아볼 걸.』  

       『못 알아볼 걸요.』

       『아니, 자신감이 넘치는 것은 좋지만—』

       『그는 저를 몰라요. 제 이름이나 들어봤을지는 모르겠지만.』

       

       렌까는 말을 이었다. 

       

       『제가 알아본 바, 현 수감자는 어느 작은 섬의 연구소의 말단에 있던 연구원이었어요. 당연, 저를 본 적도 없죠.』 

       『그렇다고 해도…… 아.』 

       

       하긴, 지금은 미래같은 시대는 아니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이 대동아공영회에 몸담고 있어도, 렌까를 실물로 가까이에서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 인물이라면 중요 인물이지만, 엽사조합 시마즈구미 활동 이외로는 대동아공영회 내에서의 활동은 많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수감자가 렌까를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조악한 흑백 사진이라도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명한 사진이나 영상을, 사방에 있는 미디어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만약 수감자가 렌까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고 확실하게 얼굴을 알았다고 해도, 그에게는 60여년 전의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가물가물할텐데,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변장하고 있으면 쉽게 알아볼 수 없으리라…… 

       

       라고, 나도 납득하긴 했는데,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렌까에게 물었다.

       

       『아니, 그래도 알아보면?』

       『후훗! 시라바야시 상이 지켜주겠지요? 그럴 줄 알고 무기를 일체 안 가져왔답니다.』

       『……뭐, 좋아. 그리고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혹시, 「시라바야시 하스꼬(蓮子)」라는, 제 가명에 대해서 묻고 싶은가요? 마음에 드는 가명이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도 어처구니없긴 했다. 성씨만 시라바야시로 바꾸고, 이름은 렌까(蓮花)에서 하스꼬(蓮子)로 한 글자만 고치고 독음이 아닌 훈음으로 읽었을 뿐이잖아. 이게…… 가명? 

       

       뭐 그 정도의 가명이라도, 어설픈 변장과 마찬가지로 정체 숨기기는 통할지도 모르니 뭐라 할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다른건 몰라도, 이건 도무지 어처구니가 없네.

       

       『이름이야 어쨌건, 내 아내라고 둘러댄 것은 뭔데.』  

       『그것 역시, 저의 정체를 숨기려는 일환이지요. 그럼 뭐라고 하면 좋았을까요?』 

       『차라리 여동생이라고 해도 되지 않냐.』 

       『푸훗! 저와 당신은 전연 닮지 않았잖아요?』

       

       ……그렇게까지 말하면 할 말이 없네. 

       

       아무튼, 정말 중요한 부분을 물어볼 때가 되었다. 이렇게 변장을 하고 가명까지 만들고 가짜 신분까지 써가면서, 굳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나저나 여긴 왜 들어온 거야? 너도 시험 요소야?』

       『시험 요소라는 것은?』

       『그러니까, 음. 내가 너에게 하는 행동이 시험 평가에 영향이 있냐는 거지.』

       

       내 질문에, 렌까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시험과는 무관해요. 저는 다만, 당신이 걱정되어서 따라들어온 것 뿐이랍니다. 당신이 올바른 정답을 찾았는지, 그리고 정답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요.』

       

       일종의 감독관 또는 관전자 자격으로 들어온 것일까. 아무튼 렌까가 시험 요소가 아니라는 것은 다행이긴 한데.   

       

       『그래서 저도 물어봐도 되겠지요? 당신은 명민한 사람이니, 슬슬 이 시험의 정답을 깨달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정답이 뭔지는 안다고 생각해.』 

       

       시험의 정답은, 수감자를 죽이고 이곳을 탈출하는 것. 

       

       물론 정답을 첫 날에 진작 깨닫고도 탈출 방법을 알아내지 못해 이곳에 며칠째 머물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그 탈출 방법이라는 것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탈출 수단은…… 있어.’

       

       그렇잖아도 이 마을에 머물며 어렴풋이 위화감이 느껴지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확신으로 변하는 데에는 의외로, 방금 모리꼬의 난입이 힌트가 되었다. 

       

       ‘모리꼬가 다짜고짜 찾아와서 아이만들기를 요구한 것은…… 분명 의도가 있는 거야. 모리꼬 본인이 아닌, 수감자의 의도가.’

       

       아깐 모리꼬가 갑자기 노골적으로 덮쳐와서 큰일이었지만 덕분에 확실해진 것이 있었다. 수감자가, 모종의 탈출 방법을 숨기고 있으리라는 것이—

       

       『그런데 혹시, 이곳에 여자가 들어왔었나요?』

       『어, 어?』 

       

       렌까는 지푸라기 깔개 위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긴 청록색 머리카락.

       

       ‘아차. 그 모리꼬라는 여자애가 이런 머리색이었지.’

       

       『흐-음. 제 것은 아닌데요. 누구의 것일까.』 

       『어? 아! 알겠다. 내가 이 움막을 받기 전에 살던 사람 머리카락이겠지.』 

       『그런가요? 기분 탓인지, 움막 안의 공기에서 묘하게 술 냄새와, 여성의 체취가 풍기는 것 같은데요.』

       『아아, 그거. 오늘 부족 잔치가 있었거든. 근데 부족민 한 명이 술에 엄청 취해서, 내 움막을 자기 움막으로 착각하고 잘못 들어왔다가 나갔었어.』

       『흐-음. 바닥의 지푸라기도 굉장히 흐트러져 있습니다만.』

       『그것도 그 술취한 사람이.』

       『흐-음……』

       

       내가 둘러댔음에도 렌까는 뭔가 수상한 흔적이 없는지, 지푸라기 깔개를 손바닥으로 툭툭 짚고 쓸어만져보았다. 

       

       그러더니 이제는 일어서서, 움막 구석구석의 잡동사니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사실이고,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 움막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렌까가 눈에 불을 켜고 구석구석 찾아봤자 지푸라기 틈에 숨어있던 벌레, 화덕 근처의 조그만 뼈, 나무열매 껍데기, 청동제 나사못 같은 쓰레기나 잡동사니만 나올 뿐이었다. ……지푸라기 사이에서 나사못이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비노기냐? 

       

       그렇게 한참 움막을 이잡듯 뒤지던 렌까는, 

       

       『…….』

       

       다시 바닥에 다소곳이 앉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마아—, 믿겠습니다. 당신을 제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어요?』

       

       ……믿는 거 맞냐고. 그런 사람이 마치 렌트카 반납할 때 기스랑 얼룩 찾아내려는 검사원마냥 눈에 불을 켜고 수상한 흔적을 찾아?

       

       뭐, 나로서야 진짜로 아무 일도 없었으니 캥길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맹세코 아무 일도 없었어.』 

       『후훗. 믿는다고 말했습니다만? 시험을 방해하는 도둑고양이가 있을까 다소 걱정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니 다행이네요.』 

       『다행일건 또 뭔데?』 

       『당신이 부족민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것은, 당신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반증이니까요.』 

       

       그래. 정답은 수감자를 죽이고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지. 나 역시 그런 정답을 알고 있으니, 수감자나 부족민들과 필요 이상으로 깊은 정을 쌓을 생각은 없었다. 정은 주지 않겠다. 

       

       『알고 있어. 나도 이곳 사람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으니까.』

       『후후! 잘 알고 있으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그런 마음이라면 지난 5일간 외롭지는 않으셨나요?』

       『불안하기는 해도 외로울 것까진 없었는데.』

       『제가 온 것은 그런 이유 때문도 있답니다.』 

       

       렌까는 붉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앉은 채 엉덩이를 들고 내 쪽으로 가까이 옮겨앉아 말을 이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사람은 마음 기댈 곳이 없다면 약해지는 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상체를 기울여오는 렌까. 어어, 얘는 또 왜 이래. 렌까 너는 시험요소 아니라며? 여기 들어오면 다들 마음이 달아오르기라도 하는 건가? 지금이야말로 승마채찍을 시험해볼 때인가?

       

       『그러니, 이곳에서 유일하게 당신과 사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인 제가, 당신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그렇게 렌까가 조금씩 가까워져오던 그 때, 

       

       『저기, 시라바야시 천인. 계십니까.』

       

       움막의 입구인 거적데기를 들추고 부족민 한 명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부족민은 차마 천인이 두 명이나 모인 이쪽을 마주 볼 수도 없다는 듯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밤 늦은 시간에 대단 죄송합니다만 부족장께서 찾으십니다. 그, 물론, 새로이 강림하신 아내분까지 함께……』

       

       부족장, 즉 수감자가 우리를 찾는다라. 하긴. 마을의 부족장으로서, 또한 한 명의 수감자로서, 수감자가 새로 들어왔으니 인사 겸 대화를 나눠보려는 것이겠지. 내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처럼 말이다. 

       

       마침 잘 됐다. 그렇잖아도 내 쪽에서도 그를 찾아가려고 했었으니까.

       

       『가자.』

       『……예.』

       

       렌까는 어쩐지 맥빠진 얼굴이 되어서는, 미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잠시 후 한편 더 올라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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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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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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