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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1

        

        * * *

         

         

         

       외교관.

       외교사절과 재외공간의 관원을 지칭하는 단어.

         

       하지만 이는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고, 실제로 외교관은 더 중요하면서도 음험한 임무를 하는 존재였다.

         

       합법적인 스파이.

         

       ‘화이트(White)’로 분류되는 요원.

         

       이들은 소속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보낸 합법적인 스파이였으며, 남의 땅에 틀어박혀 그들의 정보를 합법적으로 긁어모은다. 물론 이 합법적이라는 것은 그들의 주장일 뿐이며, 실제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올라가 있다거나 비밀리에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긁어모은 정보는…당연하겠지만 유사시에 무기로 사용된다.

       외교, 경제, 정치, 군사…심지어는 전쟁까지.

         

       하지만 이렇게 거슬리는 짓거리를 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건드릴 수는 없다.

         

       왜?

       이들은 서로가 공인한 스파이였으니까.

       건드린다면 국가 간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정말로 전쟁의 빌미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실제로도 역사를 살펴보면 외교관이 습격당한 것을 명분으로 삼아 전쟁을 시작하는 예도 많았으니, 외교관이라는 존재는 상식이 있다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들의 뒤에 있는 것은 국가였으니까.

       국가와 전쟁을 하기 싫다면 당연히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전쟁을 일으키고 싶다면.

       국가 간의 마찰을 일으키고 싶다면.

         

       그렇다면 외교관을 건드리는 것만큼 효율적인 일이 어디에 있을까?

         

         

         

        * * *

         

         

         

       그런 날이 있다.

       평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상황인데도 묘하게 오한이 드는 그런 날.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상 속의 어둠이 끔찍하고 두렵게 느껴지고, 괜스레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한 괴이쩍은 느낌이 드는 날. 가끔 귀신이 차가운 숨결을 내뱉는 것처럼 몸에 오한이 달리고, 소름이 돋는 그런 날.

         

       그런 날이 있다.

         

       사람의 공포심이 배가 되고, 경계심이 곤두서 있으며, 긴장이 온몸에 자리를 잡게 되는 날.

       그런 날에는 괜스레 별것 아닌 것에도 놀라곤 한다.

       주차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에 기절초풍하며 주저앉을 수도 있었고, 나무 위에서 떨어진 나뭇잎이나 벌레를 보고 심장이 내려앉은 듯한 기분을 맛보기도 한다. 주차장에 갔다가 깜깜한 어둠을 보고 멈칫거리기도 하고, 전기를 아낀답시고 불을 끈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침을 꿀꺽 삼키기도 한다.

         

       주한 일본국 대사관 특명전권대사 키요미치에겐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조금만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도 괜히 섬찟해져서 뒤를 돌아보게 되는 날.

       스산할 정도로 침묵이 가라앉아 있는 방 안에 괜히 도청 장치나 카메라가 있나 뒤져보게 되고, 장비를 이용해서 훑어봤음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괜히 머쓱해져서 헛기침하게 되는 그런 날. 취기 때문에 온몸이 나른해서 잠을 청하고 싶은데도 잠은 오지 않고, 당장이라도 나른한 몸에 힘을 불어넣어서 이 장소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드는 그런 날.

         

       그런…. 묘하게 불안한 날이었다.

         

       ‘끄응. 이런 날에 운전기사도 없고….’

         

       게다가 안 좋은 일은 겹쳐서 들어온다고 했던가?

         

       당장 이 오싹한 곳에서 벗어나서 기분 전환을 하려고 해도 갈 수가 없었다.

       항상 그를 보좌하던 운전사는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한 상태였으며, 그를 따라다니던 통역사는 얼마 전 성대 결절이 일어난 것을 발견한 뒤 수술받고 병상에 누워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나기는 했지만, 아직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상황이었다.

         

       다른 통역사?

       대타를 구하려고 해도 이상하게 구해지지를 않았다.

       통번역대학원(Graduate School of Interpretation and Translation)에 연락해서 사람을 구하려고 했지만,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스케쥴이 꽉 차 있는 상황이었으며, 그나마 스케쥴이 여유 있는 사람들은 공식 선상에서 말을 절거나 오역을 하는 등의 전적이 있어 도저히 믿고 맡길 수가 없었다.

         

       어조 하나, 단어 하나가 중요한 외교무대에서 오역이라?

         

       그런 리스크를 안고 통역사를 쓴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막말로 단어 하나 잘못 번역했다가 국가 간 긴장감이 조성된다거나, 전쟁이 터지게 만들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

         

       키요미치는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생각이 없었다.

         

       절대로.

         

       차라리 어설프게나마 익혔던 한국어를 사용해서 직접 대화를 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하지도 않은 일로 책임을 짊어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자극하는 말을 해도 ‘한국어가 서툴러서….’라는 핑계를 대면 넘어갈 수 있으니, 그건 그것대로 이득이었다.

         

       ‘그래…. 주인의 등에 칼을 꽂을 그림자는 필요가 없지.’

         

       통역사를 연사(演士)의 그림자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번역을 잘못해서 연사에게 피해를 주는 그림자는 주인을 배반하는 그림자일 것이다.

         

       그런 못 믿을 존재를 데리고 다닐 바에야, 그냥 그가 한국어를 구사하는 게 훨씬 나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았다.

         

       이성적인 판단이었으며,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분위기에서는, 그런 결정이 후회되기도 한다.

         

       미덥지 않은 통역사라도 근처에 있었다면 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정은 내려졌고, 지금 주위에 없는 것은 모두 우연의 일치인 것을.

         

       ‘쯧. 나도 나이를 먹으니 이런 것도 무서워지는군.’

         

       소싯적 키요미치는 혈기가 넘쳤었다.

       혈기가 너무 넘친 나머지, 사케를 거나하게 취할 때까지 마시곤 요괴를 잡자면서 동기들을 데리고 산을 뒤적거리는 일까지 벌였더란다. 그때 사람들은 간이 얼마나 부었으면 그런 일을 하냐면서 키요미치를 나무랐었는데….

         

       그런 용맹함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풍화가 되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이런 분위기에 겁을 집어먹을 리가 없다.

         

       ‘쯧. 술을 마셔서 운전대를 잡을 수는 없는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생각 같아서는 차를 직접 몰고 싶지만, 아까 전 술을 마셨기에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물론 평소라면 그냥 어차피 외교관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마인드로 운전대를 잡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술을 마셨다가 잡힌다면, 절대로 조용히 넘어갈 수 없으리라.

         

       한국은 일본을 망신시키기 위해 외교관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렸다는 뉴스를 고래고래 떠들고 다니게 할 것이고, 일본에서는 이런 분위기에서도 술에 취한 채 자기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외교관을 질타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그의 커리어는 끝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그의 커리어가, 그렇게 끝이 나게 되는 것이다.

         

       키요미치는 그런 일을 원치 않았다.

         

       커리어가 끝나는 것도 바라지 않았고, 기자들 앞에서 사과를 내뱉고 싶지도 않았고, 이 나이에 모양 빠지게 도게자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들에게 우러름 받으면서 승승장구해도 모자랄 판에, 불미스러운 일에 얽혀서 도게자로 사과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도게자를 해서 망신당하고, 키요미치의 가족은 일본 망신을 줬다면서 음습한 괴롭힘을 당하게 되리라. 그나마 자식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자식이 있었다면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할 수도 있었겠지.

         

       ‘그래. 지금만 참으면 되지….’

         

       그래도 뭐…괜찮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가지는 않을 테니까.

         

       그가 보아온 한국인은 열정적인 만큼이나 빠르게 식는 사람들이다.

       어딘가 몸 안에 화를 가득 품고 있어서 주체를 못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화가 풀리면 친근하고 쾌활하게 사람을 대하는 이들. 나쁘게 말하면 냄비 근성이고, 좋게 말하면 뒤끝이 그리 길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이 냉각된 분위기 역시 얼마 지나지 않으리라.

         

       오래 지나지 않아 곧 예전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리라.

       일이 있어 일본으로 건너간 운전사가 돌아올 것이고, 그가 믿음을 주던 통역사 역시 수술을 마치고 그의 곁에 오게 되겠지.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다.

       커리어도.

       인생도.

       잘 풀릴 것이다.

         

       그러니 참으면 된다.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 같은 이 노골적인 시선도 그의 착각일 것이고, 전기를 아낀답시고 끈 조명 속의 어둠이 꿈틀거리는 것 역시 착각일 것이며, 묘하게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 역시 술을 너무 마셨기에 그런 것이며, 왠지 모르게 울렁거리고 소름이 돋는 것 역시 취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하나도 이상한 것이 없다.

         

       그냥 참으면…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다.

         

       [ 실례합니다. ]

         

       저 어둠이 꿈틀대며 모양을 만드는 것도.

         

       팔다리가 뒤틀린 빼빼 마른 이상한 형체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 제가 귀하의 몸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그 괴물이 입을 귀까지 찢으며 말하는 것도.

         

       그냥…착각이고, 술 때문이겠지.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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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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