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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1

       한식은 거금을 들여 샀지만 정작 쓴 횟수는 채 열 번이 되지 않는 빔 프로젝터의 전원을 켰다.

       

       다행이다. 고장은 안 났네. 오래 안 켜서 맛이 갔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늘 여기에서 다같이 화령님 복귀 방송을 보기로 했는데 이게 날아가면 곤란하잖아.

       

       이 일의 발단은 화령이었다.

       

       복귀를 하기로 한 전 날. 갑자기 단톡방에 모습을 드러낸 화령이 재미난 걸 준비했으니 꼭 방송을 보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문자로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설령 연락을 하더라도 일 이야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던 화령이 갑자기 재미난 걸 준비했다 이야기 한 것이다.

       

       한식을 제한 다른 편집자 두 명. 아직 이십대 초중반밖에 되지 않은 여자 편집자들은 그 문구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 대체 뭐길래 저런 말씀을 꺼내신 걸까요?

       – 분명 무협 쪽으로 대단한 거겠죠. 화령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 하셨으니까요. 천마신공의 극을 보여주시려는 거 아닐까요?

       

       평소 무림인 화령을 좋아하는 설아는 이번에 또 경이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시는 것이라 확신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번 슬쩍 화산에 찾아와 척박한 돌산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장소로 만들어 낸 화령이다.

       

       그 때에 펼친 것은 화령님의 무공이 아닌 화산의 무공.

       

       이번에는 자신의 무공으로 더 한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이리라.

       

       한식은 설아의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설아가 개인적으로 녹화해 둔 화령의 매화검법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대단한 거라.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화령님이라면 가능하겠지.

       

       허나 하린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 에이. 그럼 대단한거라 그러지 재미는 거라고는 안 하시죠.

       

       하린은 재밌는 거라는 단어에 중점을 뒀다.

       

       화령님께서 새로운 무의 경지를 보여주신다면 재밌는 것이라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분명 시청자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웃을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얼마 전 등장한 바루 컨셉의 유저와 화령의 합방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이야기를 했다.

       

       이 또한 한식이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바루와 다른 게임을 함께하는 것이다. 화령님께서 분명 재밌어할 게 분명하지. 시청자들이 좋아할 것도 분명하고 말이다.

       

       – 으음. 분명 그림은 괜찮지만 화령님이 저런 말씀을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이번에는 설아가 날 선 반응을 드러냈다.

       

       그런 거면 화령님께서 직접 보라고 이야기할 리가 없지 않으냐면서 말이다.

       

       평소부터 티격거리는 일이 잦은 두 사람은 오늘도 서로의 말이 옳다 주장을 하면서 톡방을 가득 채워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저러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에 적당히 탈출할 기회만을 살피던 한식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두 사람의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니고 있기에 이런 사소한 일로 말을 걸기 어려운 화령과는 달리 한식은 별 부담 없이 말을 걸 수 있는 상대였으니까.

       

       – 한식 씨한테 물어보죠! 방송 업계에서 오래 일한 한식씨라면 어느 쪽 말이 설득력 있는지 잘 아실 테니까!

       – 그거 좋네요! 한식 씨! 누구 말이 맞다고 생각하세요?!

       – …어느 쪽이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 그런 대답 말고요!

       – 제대로 판단해 주세요!

       

       어느 한 사람의 편을 드는 순간 문제가 생길 것임을 직감한 한식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중립국을 외쳤다.

       

       덕분에 두 사람은 한식에게 캐묻는 것을 포기한 채 서로의 의견을 드높였고 마지막에는 이 내용을 가지고 내기까지 하기로 했다.

       

       – 두 사람 중에서 진 쪽이 화령냥이 영상의 편집을 포기하는 거에요!

       – 직관도 마찬가지! 둘 중에 한 사람은 쓸쓸히 화령냥이 방송 편본만 구경해야 할 겁니다!

       

       그 내용은 엔리가 이미 방송에서 공언해 둔 상태인 현실 화령냥이 방송의 편집권한이었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걸 걸고 내기한다는 듯 비장한 모습에 한식은 드디어 이 무의미한 논쟁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 발뺌 못하게 화령님 복귀 방송 날에 모여서 같이 보죠?!

       –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애매할 때 판단해 줄 분이 있어야 하니까 오랜만에 편집자 세 명이 모이죠.

       – 그럼 어디서 볼까요?

       – 글쎄요.

       – 아! 그러고 보면 한식 씨 집에 프로젝터 있다 그러지 않으셨어요?

       – 맞아요. 좋은 거 샀는데 쓰질 못해서 방치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해요!

       

       방금 전까지 치열하게 논쟁하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해서 함께 한식을 공격했고.

       

       예상치 못한 기습에 어버버거리던 한식은 결국 두 사람이 자신의 집에 방문하는 걸 허락하고야 말았다.

       

       어쩌겠는가. 직장 동료 두 사람이 먹을 음식에 집들이 선물까지 들고 와서는 상사가 시키는 것을 따르겠다는데 거절할 명분이 없지 않나.

       

       덕분에 한식은 어젯밤부터 개판이 나 있던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엄청 깔끔하네요. 설아 씨 집처럼 개판일까봐 걱정했는데.”

       “거기서 제 집 이야기가 왜 나와요.”

       “그야 설아 씨네 집은 더러움의 대명사인 걸요. 그 때 영상 편집 배우러 갔다가 얼마나 기겁한 줄 아세요?”

       “그래서 고생한 만큼 잘 알려 드렸잖아요!”

       

       다행히 한식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었다. 누가 보기에도 말끔해 보이는 집의 모습에 두 사람이 감탄사를 내뱉었으니까.

       

       “우와아. 빔 프로젝터 진짜 좋네요. 완전 영화관 같아요.”

       “이걸로 화령님의 무공을 보는 건가요. 장난 아니겠다.”

       “아니거든요. 바루님의 귀여운 모습이거든요.”

       “화룡무인이라면 바루님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그 말이 아니잖아요!”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쉴새없이 티격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한식이 쓴웃음을 흘렸다.

       

       한식은 저 두 사람의 의견 중 뭐가 나오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간에 분명 재미와 볼거리를 보장할 테고. 그 영상은 입소문을 타고 커뮤니티로 퍼져 언젠가 마이튜브의 조회수로 돌아올 게 분명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방송의 시청자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마는.

       

       “방송 시간이 영 좋지 않네요.”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의 일이다.

       

       현 아피스 프로 리그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을 거머쥔 QZ게이밍에서 깜짝 발표 한 가지를 했다.

       

       바로 외국의 명문 게임단이자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중인 아피스의 전설 프로게이머 파이스 스코비아가 소속된 팀 파일과 QZ게이밍이 이벤트전이 예정되었다고 말이다.

       

       아피스컵이 열릴 때마다 명경기를 만들어내던 한서우와 파이스의 대결이다.

       

       미리 보는 아피스컵 결승이라는 말과 함께 커뮤니티는 빠르게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방송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문제는 화령이 방송을 켜기로 한 시간이 저 이벤트 전이 벌어지는 시간과 겹친다는 점이었다.

       

       이런 거대 이벤트가 일어날 때면 그 방송으로 사람들이 집중되다 보니 다른 방송의 시청자들은 줄 수밖에 없다.

       

       아무리 화령의 복귀라는 거대한 이벤트라 할지라도 그 수가 평소처럼 많을 순 없을 터.

       

       “뭘 걱정하세요. 화령님인데.”

       “맞아요. 평소처럼 커뮤니티를 불태워 버리실 텐데요. 뭐.”

       

       한식의 이야기에 다른 편집자 두 사람은 괜한 걱정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장작의 여왕인 화령이 화제성에서 묻힐 리가 있냐고. 화령이 준비한 것을 보며 감탄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릴 거라고.

       

       “애초에 말이 잘못 됐어요. QZ게이밍이 일정을 잘못 잡은 거죠.”

       “그래요. 파이스와 한서우의 대결조차 화령님한테 잡아 먹힐 걸요?”

       

       두 사람의 확신 어린 말에 한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네요.”

       

       둘의 말이 옳다. 화령이 언제 화제성이란 점에서 누구에게 밀린 적이 있었던가.

       

       “치킨이나 뜯으면서 방송이 켜지길 기다릴까요.”

       

       빔 프로젝터의 화면에 화령의 방송을 켜둔 채 식사를 즐기던 중. 오프라인으로 되어 있던 화령의 방송이 갑작스럽게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뭐지? 방송 하시기로 한 것보다 이른 시간인데?

       

       – 드디어 왔다!

       – 나.

       – 천세천세 만만세!

       – 락

       – 나

       – 나 화령 믿고 있었어!

       – 락

       – (불꽃 이모티콘)(불꽃 이모티콘)…

       – 그래서 오늘 벌칙은 뭐가 될까?

       – 룰렛! 룰레에에엣!

       – 화면 켜!

       – 방송사고야?

       – 키랏☆ 마법소녀 화령땅!☆ 대기중!☆

       – 문 열어어어어!

       

       방송이 켜지기 무섭게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화령을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엔리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이 켜지고 모습을 드러낸 건 화령이 아닌 엔리였다.

       

       그녀는 바깥에서 셀프로 촬영을 하는 중인 듯 살짝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손을 흔들었다.

       

       – ???

       – 뭐임?

       – 화령님 어디 가써!

       – 우린 화령보러 온 거야!

       – (불타는 엔리콘)

       – (불타는 엔리콘)

       

       ‘화령님이 아니라 제가 나와서 놀라셨죠? 걱정마세요! 전 오늘 촬영인! 주인공은 저 앞에 있거든요!’

       

       엔리는 그리 이야기를 하고서 카메라로 자신의 앞을 비추었다.

       

       그것은 여성의 뒷모습이었다.

       

       거칠게 디자인 되어 있는 청바지. 그 위에 걸쳐진 가죽 잠바.

       

       비녀로 묶어 올린 머리카락과 그에 따라 드러나는 새하얀 목덜미.

       

       여성의 복장은 전체적으로 강하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기이하게도 그녀의 뒷모습에서는 고풍스러움이 절로 느껴졌다.

       

       그래서 한식은. 하린은. 설아는.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금새 여성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저것은 분명.

       

       화령의 뒷모습이었다.

       

       “…야외 방송?”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컨텐츠에 한식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 때.

       

       채팅창의 한 사람이 이런 채팅을 쳤다.

       

       – 저 뒤에 있는 거 QZ게이밍 건물 아님?

       

       ‘맞아요!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저희는 오늘 QZ게이밍을 찾아갈 거랍니다!’

       

       오늘 화령님과 파이스 스코비아 선수가 이벤트 전을 하기로 했거든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태우지 못하도록 재밌는 걸 준비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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