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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1

   야수왕, 베르도.

   그는 태어나기를 왕족이었다.

     

   풍족한 환경, 좋은 집안, 왕실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삶과 별개로.

   이러한 세상을 막연히 용납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참, 썩을 이야기지만.

   그런 이가 바로 베르도의 동생이었다.

     

   형에 비해 부족한 동생.

   베르도의 동생에게 늘 붙어 있던 이명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저, 황족으로 태어났기에 살 뿐인 인생.

   이를 견디지 못한 동생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황을 타파하려 들기보다 극단적 선택하고 만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부수겠다.

   그런 이기적인 마음가짐을 지닌 동생은 왕국이 지금껏 숨겨왔던 비밀을 풀고 만다.

     

   야수족에게 품어져 있던 본성이자.

   그들이 절대 깨어나지 않도록 분리하여 숨겨 놓은 본성.

     

   야수화.

     

   이성을 버리고, 오직 야성만으로 주위에 살의를 보이는 극단적 형태.

     

   본래 대현자가 야수족들을 모아 그들에게 분리하여 봉인시켜 놓은 야성이었으나.

   이런 야성이 풀려난 순간 세계는 한순간에 뒤집혔다.

     

   1000년 가까이 봉인된 야성은 그동안 억눌러졌음을 증명하듯 터무니없는 폭주를 일으켰다.

     

   1000년 전에는 주기적으로 야수화가 일어난 야수족을 격리하거나, 야수화를 잠재울 수 있도록 마을 제일의 전사가 나서거나 했지만.

     

   1000년간 잠재워졌던 야성과 야수족 전원 야수화라는 결과는 세계를 끝장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야성에 당하지 않은 강인한 이들도 드물게 있긴 했다.

   그러나 그들조차 야수화에 빠진 이들을 막지 못한 채 결국 그들의 손에 죽어 나갔다.

     

   베르도 또한 이런 강인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제정신인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키고자 궁전을 달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때려죽인 동생이었다.

   동생은 결국 형인 자신에게까지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결국 베르도는 동생을 제 주먹으로 때려 죽었다.

     

   그는 허망한 눈으로 멸망해 가는 왕국을 보았다.

   처음부터 자기 종족은 잘못된 종족이었던 걸까.

     

   야수족의 부흥을 위해 자연에서 비롯된 야성을 절제한 게 문제였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왕국은 무너져 세계 저편으로 사라졌다.

   베르도는 떠돌이 신세가 되어 야수화가 된 전 백성들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던 도중 그는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되었다.

   어차피 자기 세계는 더는 희망이 없다.

     

   1000년이나 봉인되었던 야성은 봉인되어 있던 기간만큼 거세게 타오르겠다는 듯 몇 년이 지나도 야성이 줄어들 생각을 안 했으니까.

     

   결국 자기 세계에서 방법을 찾지 못하고, 도망친 베르도는 지금에 이른다.

     

   온갖 방법을 고안해 자기 몸에 깃든 야성을 잠재우기 위해 착용한 야성절제.

   그러나 이러한 야성절제를 오늘 제 손으로 풀어 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금색으로 물든 눈으로 베르도가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언뜻 이성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크라슈는 그 실상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한 줌의 이성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이윽고, 베르도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

     

   그리고 터져 나온 소리는 순간 귀고막이 찢기는 감각을 느끼게 했다.

     

   크라슈가 귀를 울리는 통증에 견디지 못하고, 두 걸음 물러섰다.

   그 정도로 베르도가 내지른 소리는 인 외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크라슈는 베르도에게서 눈 하나 떼지 않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절대로 잠시도 그를 놓쳐서는 안 된다.

     

   긴장된 순간 베르도의 오른쪽 다리 근육이 미약하게 움직였다.

     

   온다.

   그것을 직감했을 때 이미 베르도의 주먹이 크라슈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콰앙!

     

   순식간에 크라슈의 몸이 튕겨 나가며 공중에 떴다.

   그 순간 그의 주먹을 막아냈던 우뢰성의 검날이 금이 가며 깨져 버렸다.

   동시에 베르도가 이동하며 생겨난 광풍이 크라슈를 거세게 때렸다.

     

   “큭!”

     

   분명 예측했음에도 몸이 따라가는 속도가 한 박자 늦다.

     

   크라슈는 이를 아득 부딪쳤다.

   모자라다.

     

   세이블 내부에 들어 있는 백염을 더욱 끌어 올려야 한다.

     

   크라슈의 입에서 달띤 숨이 나왔다.

   하지만 채 힘이 들어 오기도 전에 베르도가 크라슈의 머리 위에 도달해 있었다.

     

   크라슈가 급히 우뢰성을 휘둘렀다.

     

   콰앙!

     

   그러나 이번에도 모자란 힘과 함께 그대로 밀려나 땅바닥에 처박혔다.

     

   “커헉!”

     

   땅에 부딪힌 충격으로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베르도는 땅바닥에 처박힌 크라슈를 향해 양손을 모아 둔기처럼 내려 찍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닥을 겨우 박찬 크라슈가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쩌적, 콰아아아아앙!

     

   그러나 곧 이어진 충격과 함께 땅이 완전히 박살이 나며 그 파편에 휘말렸다.

     

   ‘썩을.’

     

   무려, 크라슈의 아버지인 무황마저 야수화에 빠진 베르도를 쓰러트리지 못했다는 시점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저건 상상보다 더한 무력의 괴물이다.

     

   “후우, 후.”

     

   그러니 크라슈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예전에 검존에게 맞설 당시.

   자기 육체를 그릇으로 만들어 검귀의 거합술의 묘리를 적용해 한 단계 더 다음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크라슈는 이 수를 무수히 많은 금역을 흡수한 이후 직접 사용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그조차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단, 이를 실행하려면 적어도 3분은 필요하다는 것.

     

   ‘3분.’

     

   크라슈는 피어난 먼지 연기 속에 드러난 붉은 금색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가능할까.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베르도는 쓰러트리지 못한다.

     

   훅!

     

   그 순간 연기가 한점으로 일그러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크라슈의 검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카아앙!

     

   우뢰성의 검날에서 울려 퍼진 검명과 함께 크라슈가 바로 새로운 검날을 갈며 왼쪽 아래를 향해 검을 내려그었다.

     

   카아앙!

     

   베르도가 내지른 무릎을 아슬하게 막아낸 크라슈가 이를 까득 부딪쳤다.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몸으로 오는 부담이 터무니없었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흘러 낼 수 있는 한 전부 흘려 낸다!’

     

   자주 사용하던 검황의 비기, 검광도 쓸 틈이 없다.

   그런 짓을 했다간 충격을 감당 못해 예전에 시그린 꼴이 나고 말 것이다.

     

   그러니 크라슈는 제 육감이 강화된 형태인 벽력에 모든 정신을 쏟았다.

     

   카앙, 카앙, 카앙, 카앙, 카앙!

     

   미친 듯이 뻗어오는 베르도의 주먹에 맞서 크라슈도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근육이 떨린다.

   뼈가 저릿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폐부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절대 멈춰서는 안된다.

     

   한 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당하는 건 크라슈 본인이다.

     

   ‘30초.’

     

   문제는 이런 공방 속에 지나간 시간이 고작 30초라는 것이다.

     

   까드드득!

     

   크라슈가 이를 부서져라. 부딪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 크라슈의 감각은 점점 더 살아나고 있었다.

     

   지난날, 크라슈는 금역을 전전하며 전력을 내본 적이 드물었다.

     

   반복된 금역의 흡수로 육체가 지치긴 했으나.

   생사를 건 전투는 거의 없었던 게 현실이다.

     

   이는 그만큼 크라슈가 강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했으나.

   반대로 그의 감이 녹슬어 가고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이기기만 하는 전투에서 자신의 전력을 쏟아내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은 이 정도만 하면 이긴다는 선에서 그친다.

     

   천재들이 종종 약자를 상대로 패배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실수를 자각하지 못한 점이다.

     

   다행히 크라슈는 평생을 반푼이로 살아온 적이 있기에 이러한 실수에 예민했다.

   그렇기에 꾸준히 이점을 상기했으나 크라슈도 사람이다.

     

   강자와의 싸움이 적어지면 질수록 자신의 전심전력을 낼 수 없다는 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크라슈는 목숨을 위협받을 강자와 마주했다.

     

   이 말은 즉, 그동안 파묻혔던 강자를 이기는 법을 일깨움과 같았다.

     

   크라슈의 눈빛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이 더더욱 예리해져 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한 번의 모든 것을 집중하고 깎는 심정을 담아.

   크라슈가 베르도의 난투에 맞서 나갔다.

     

   이 변화는 베르도 또한 알아차렸다.

   이성은 야성에 잡아 먹혔으나 본성의 감은 크라슈에게 생긴 변화와 위화감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 순간 본능적으로 크라슈를 빨리 끝장내지 않는다면 위험함을 상기했다.

     

   이 상기는 그의 행동으로 즉각 반영되었다.

     

   베르도의 몸 위 금빛의 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자기 몸에 담긴 힘을 더 방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의 주먹이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빛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0.1초.

     

   즉, 0.1초 안에 그의 전력이 이전보다 상승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

   크라슈는 검날이 박살 나고, 그의 주먹에 강타당해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금빛의 섬광이 베르도의 앞에 뻗어 나갔다.

     

   이윽고, 엄청난 후폭풍과 함께 바람이 거세게 휘날리는 사이.

   베로드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눈앞.

   백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이 천천히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먹에는 명백히 크라슈의 검날이 똑똑히 막아서고 있었다.

     

   금이 가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올라간 출력의 힘에 크라슈가 대응한 것이다.

     

   3분이라는 시간을 벌어야만 하는 크라슈다.

   최대한 힘 배분을 하고 있던 그가 이를 막았다는 건 곧 베르도의 움직임을 예측하였다는 말이 된다.

     

   크라슈의 눈동자가 검붉게 빛났다.

   가쁜 호흡 속에서도 크라슈의 눈은 한시도 베르도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찌나 집중력을 한계까지 올린 것인지.

   이 순간 크라슈는 눈꺼풀조차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오싹-

     

   야수화를 일으킨 베르도가 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이는 공포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에게서 분출하고 있는 야성이 호적수를 만나 기쁨을 표출한 것과 같다.

     

   크라슈의 전력이 베르도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 자극은 베르도의 전력을 더 끌어내는 최악의 수가 되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일격이 크라슈를 향해 날아들었다.

     

   경치가 초토화되고, 나무와 산이 무너져 내렸다.

   어느새 주위는 금빛과 백색의 빛만이 끊임없이 난무했다.

     

   베르도는 멈출 줄을 몰랐다.

   그의 야성은 호적수를 상대하느라 즐거워 미칠 것만 같았다.

     

   먼저 반응이 온 것은 크라슈였다.

   아무리 그라도 모든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는 것은 무리다.

     

   그 증거로 크라슈의 팔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덜덜 떨렸다.

     

   결국 회피를 더 하기 시작한 크라슈가 아슬하게 베르도의 권격을 피하기를 반복했다.

   베르도의 권격 마다 뒤따르는 후폭풍까지 계산해서 회피하는 크라슈의 모습은 가히 기예에 가까웠다.

     

   흘려 낼 수 있는 건 악착같이 흘려 낸다.

   피해야만 하는 것은 무조건 피한다.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집중력 속에 크라슈의 정신력은 끊임없이 깎여 나갔다.

     

   그러나 그의 정신력은 끊길 줄을 몰랐다.

     

   독종이라고 불려왔던 지난날의 삶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크라슈는 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내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육체적 한계를 고려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베르도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소비된 육체는 회피까지 더한 결과.

   결국 임박 전에 더 빠르게 다다르고 말았다.

     

   정말 딱 한 번.

   사소한 실수였다.

     

   발을 뒤로 내딛어야만 하는 타이밍.

   그러나 어느새 그의 다리 근육은 한계를 맞이하며 조금 늦게 뻗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을 눈치채지 못할 베르도가 아니었다.

     

   베르도는 이미 크라슈의 머리를 향해 뻗어지고 있는 주먹의 궤도를 수정했다.

   그의 팔꿈치에서 터져 나온 금빛의 섬광이 폭발하며 한 타이밍 더 앞으로 나아갔다.

     

   이는 본래 발을 뒤로 내디뎌 고개를 젖혀야 할 크라슈의 가슴팍까지 뻗어지고 말았다.

     

   베르도는 이 상태에서 한 번 더 팔의 궤도를 수정했다.

     

   자기 팔에 부하가 오건 말건.

   그는 전력으로 내지른 팔에 한 번 더 금빛의 섬광을 폭발시켰다.

     

   베르도의 팔이 꺾이며 크라슈를 향해 떨어졌다.

   이대로 몸이 뒤로 젖혀진 크라슈를 내려찍어 박살 내 버릴 작정이었다.

     

   이 순간 베르도는 승리를 확신했다.

     

   크라슈의 눈동자마저 새하얀 백색으로 물들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쿵-

     

   베르도의 귀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무엇인지 몰라 베르도가 눈을 끔뻑인 순간.

     

   그는 곧 바닥에 구르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팔이었다.

   금빛의 털로 뒤덮인 팔.

   점차 금빛을 잃은 털은 백색으로 변하였다.

     

   베르도가 그것을 자기 팔이라 자각했을 때.

   그는 텅 빈 오른팔을 발견했다.

     

   그리고 곧 자기 팔 아래 검을 휘두른 자세로 서있는 크라슈를 마주했다.

     

   “……3분.”

     

   타이머가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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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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