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1

    <391 – 지름길보다 빠른 길>

     

    배드엔딩루트의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 시절의 나를 능가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상 세계가 이미 망해버린 루트.

    정상적인 성장궤도를 밟지 않고 제멋대로 탈선하며 마구잡이로 커버린 세계선.

    세계가 세계로서 마땅히 존재하는데 필요한 요소마저 성장재료로 써먹고 혼란을 틈타 온갖 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며 성장치를 펌핑한다.

    결과로서 도달하는 강함은 노멀엔딩보다도 훨씬 더할 수밖에 없다.

     

    ‘평범한 성장으로는 배드엔딩의 나를 이길 수 없다는 말씀! 나 정말 굉장해!’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끼기도 잠시.

    그런 과거의 자신을 적이자 목표로 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도전인지도 실감했다.

     

    “으음.”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뚝 꺾어서 미스릴테인을 만든다거나 대광산의 바닥을 이루는 광석을 캐서 불멸갑옷을 만드는 짓은 할 수 없다.

    엘프나 드워프, 해당 아인종족의 신기나 신물을 건드리는 행위는 한 종족과의 관계가 파탄 나게 된다.

    궁지에 처한 종족은 자동적으로 종족퀘스트가 앞당겨지며 멸망을 부를 수 있는 이벤트가 플레이어 모르게 째깍째깍 시계바늘을 돌리고.

     

    어느 날 시간이 되면?

    억까라는 이름의 악몽이 되어 빵 하고 터진다.

     

    ‘이래서 나쁘게 살기는 쉽고 착하게 살기는 어렵다는 걸까? 착한아이가 되기는 참 힘드네!’

     

    도비한테도 그렇게 잘해줬는데 무서운아이만 잔뜩 올라버렸지.

    흥이다, 흥.

     

    “으으음.”

     

    그러면 착한아이 오크노디는 나쁜아이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을 이길 방법이 없는가?

    막상 그렇지만도 않다.

    방법은 있다.

    아주 어렵고 고되고 힘든 길이지만 고점만큼은 이쪽 가능성이 명백하게 높다.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은 여러 가지 반칙성 플레이로 근력 능력치 하나를 어마어마하게 펌핑하고 공격력 계수에 영향을 주는 기능을 얻었을 뿐.

    모든 능력치가 고루 발달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대단한 근력을 지니고도 단 일격에 목숨을 거는 빌드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

     

    ‘일격에 죽지 않을 성장치를 쌓으면 근력경험점은 반으로 깎이고 내 역습을 받아야하지!’

     

    그렇다고 절대무적철벽방어가좋아 해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뭐든지 뚫는 창과 뭐든지 막는 방패의 대결이 되어서는 부정한 방법으로 힘을 올린 창을 막아낼 수가 없으니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왕도.

    때로는 지름길이 빠르게 보이지만 멀리 돌아가는 정석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이라는 답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이 게임에서의 정석이란?

    육각형 능력치!

    몸이 튼튼하니까 더 강한 힘을 여러 번 발휘할 수 있고, 몸이 더욱 민첩하니까 힘의 효율이 오른다.

     

    ‘역시 모든 능력치를 다 올리려면 도감수집이지!’

     

    벌떡 일어서며 주먹을 불끈 움켜쥔 나와 창턱에 걸터앉아있던 즈앙의 눈이 마주쳤다.

     

    “안녕?”

    “응 안녕!”

    “오크노디는 오늘도 고민이 많구나.”

    “고민? 해결됐어!”

    “그래? 잘됐네. 그럼 네 옆방 친구의 고민도 들어줄 수 있겠지?”

    “옆방?”

    “헤스티아.”

    “헤스티아가 왜?”

    “네 모자친구와 대화를 못해서 우울하대. 너랑 제일 친한 건 나니까 특별히 나한테 부탁을 한다지 머야? 제일 친한? 절친?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르니까 일단은 도와주러 왔지만, 실제로는 어때?”

    “응?”

    “오크노디랑 제일 친한 친구는 나야 티토소가야?”

     

    헉.

    갑자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난이도의 문제를!?

     

    “당연히 즈앙이 제일 친하지!”

    “믿고 있었어.”

     

    인형처럼 어여쁘게 미소 짓는 즈앙.

    그녀의 등 뒤로 암기를 집어넣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이번에 할 도감수집은 헤스티아랑 같이 하면 되겠다!

     

    “정말 신경줄도 굵은 아가씨네요.”

     

    2대 모자씨가 기가 막힌다며 중얼거렸다.

     

     

    * * *

     

    한때 선배들이 진지한 인간관계 대신 그저 힘만 보고 자신과 교류를 지니던건 아닌지 의심하며 <페이퍼 던전 탐사대> 동아리의 퇴부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헤스티아.

    그녀는 자신보다 강한 오크노디가 모험에 어울리는 모습에서 오크노디라면 성능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오크노디와 함께라면 이 동아리에서도 좀 더 잘 해나갈 자신이 있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크노디의 식물에 영혼이 깃든 친구는 그냥 응애만드라고라이고 밤새 대화를 나누었던 상대는 2대모자씨였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산타클로스가 실존하는 존재인지도 믿을 수 없을 지경!

     

    ‘앞으로도 오크노디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무리 굳은 믿음에도 더는 오크노디가 착한아이라는 생각이 흐려진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믿음을 가지고 싶다.

     

    “헤스티아~ 이번주 동아리는 땡땡이쳐요!”

     

    그런 헤스티아에게 동아리실 앞에서 오크노디가 당돌한 제안을 건넸다.

     

    “그래도 돼? 동아리활동은 보통 멋대로 불참하면 벌금을 내도록 수칙으로 정해져있는데.”

    “부장한테 물어보죠 머!”

     

    드르륵!

     

    오크노디가 힘차게 문을 열자 입구 근처에 모여서 귀를 기울이던 선배들이 급히 엄마 앞에서 공부하는 척 하는 학생마냥 딴청을 부렸다.

     

    “페이퍼콤파니 부장님 계세요?”

    “부장님 안 계셔.”

    “네? 그럴 리가요. 공부도 못하고 진급도 포기해서 동아리에서 나오는 포인트에 목숨 걸고 노는 분이 동아리에 나오질 않았다니요!”

     

    오크노디의 아이다운 무자비한 팩트에 선배 몇 명이 몸을 크게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이야. 부장님 오늘도 교수님 실험실 출근하러 가서 돌아오질 않았어.”

    “실험체로요?”

    “…적어도 연구조교라고 불러주지 그러냐? 쯧. 멍청한 인간이 왜 갑자기 신들린 것마냥 만점을 따가지고 교수님한테 덥석 끌려가는지 원.”

    “그럼 나중에 저희 놀러갔다고 전해주세요!”

    “아 응. 그래. 잘 놀다와.”

     

    동아리에 드문드문 출석하던 선배 한 명이 혀를 차며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세상 참 요지경이네. 1학년이 대놓고 농땡이를 까겠다는데 그걸 그냥 보내? 니들은 2학년 배지달 자격도 없꾸엑”

     

    이를 본 2학년 선배 한 명이 옆구리에 제트킥을 먹이고 쓰러진 선배를 모두가 달려가서 발로 마구 짓밟으며 외쳤다.

     

    “미친 새끼야 그 입 닥쳐!!”

    “니가 뭘 안다고 지랄이야! 지도 동아리에는 심심하면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주제에!”

    “이 녀석의 의견은 저희 2학년 일동의 공식의견이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 후배님.”

    “만델라도 건드리지 말라는 1학년을 지가 뭔데 자극하냐고 진짜. 미친 녀석.”

     

    2학년 학년수석 만델라 카스테라 선배가 언질을 남겨둔 영향이었다.

    가끔 허접 2학년들이 덤비는 걸 때려잡는 재미가 쏠쏠했던 걸 떠올리며 오크노디는 그저 아쉬워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동아리시간에 뭘 하려고 땡땡이를 친 거야? 성실하기로는 아카데미 제일가는 네가.”

    “평소에 모으지 못하는 도감작을 하려구요!”

    “먹을 거?”

     

    헤스티아가 입맛을 다셨다.

     

    “아뇨!”

     

    아쉽게도 오크노디가 먹을 건 배낭에도 잔뜩 들었다.

    식품도감의 미래는 밝다.

     

    “곤충채집?”

    “아뇨!”

     

    요즘 날씨가 곤충이 돌아다닐 날씨도 아니다.

     

    “그럼 뭘 하자고?”

    “약초 수집이요!”

    “…이 겨울에?”

    “비닐하우스랑 온실이 있어요!”

    “뭐, 그런 곳이라면 약초도 잘 자라고 있겠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던 헤스티아가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채고 멈칫했다.

     

    “비닐하우스? 온실? 그건 누가 약초를 재배 중이라는 뜻이잖아.”

    “물론이죠? 약초는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시들거나 약효가 줄어드니까요.”

    “도둑질이잖아!”

     

    헤스티아의 지적은 정당했다.

    안 그래도 애가 삐뚤어진 나쁜아이가 될까 봐 걱정이 되는 마당에 대놓고 도둑질을 하겠다니!

    원래도 그녀가 안 보는 곳에서는 이런저런 손버릇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헤스티아는 광전사 클래스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핍박을 받고 자라온 몸.

    남의 평가나 소문 따위는 가볍게 흘려듣고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으로만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오크노디. 난 너를 믿었는데 어떻게 이런 못된 짓을 하자고 할 수가 있어!”

    “엣…? 채집을 하자고 했을 뿐인데 어째서 혼나고 있지…?”

    “어벙한 말투로 얼버무리지 마. 11살이면 다 큰 어른이야. 도둑질이 걸리면 손이 잘린다고!”

     

    오크노디가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치만.”

    “변명하지 마. 그래서 네가 잘했다는 거야? 재판장에 끌려가서 판사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나쁜 어른한테 걸리면 재판장까지 가지도 못하고 길거리에서 붙잡힌 채로 더 심한 짓을 당할 거야!”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서 꾸짖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오크노디가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약해진 헤스티아가 너그러이 타협안을 내놓았다.

     

    “브론즈 교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건 알아. 그래도 그분은 의적이잖아. 의로운 도둑질이라면 봐주더라도 정성들여 약초를 기른 약초꾼들은 무슨 죄야. 그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돼.”

    “힝…”

    “어른스럽게 대답해.”

    “힝 입니다.”

     

    입이 댓발로 나온 오크노디의 모습에서 헤스티아는 무언가를 느꼈다.

     

    “혹시 그 약초밭의 주인이 못된 사람이니?”

    “맞아요! 아주 못된 사람이에요!”

    “누군데 그래?”

    “약초를 잘 기르면 상을 준다고 해놓고 포인트 푼돈이나 던져주고 가져간 약초를 자기가 다 먹는 못된 교수님이요!”

    “진짜 나쁜새끼네. 아니, 잠깐만. 교수님?”

    “2학년 생산학부 <약초기르기에 도전해보자> 강의를 가르치는 레드마운틴 교수님이요!”

    “지금 교수님의 물건을 털자고?”

    “정확히는 수강생들이 제출할 기말과제지만요!”

    “…그럼 수강생들이 가엾어지잖아.”

    “모두가 공평하게 도둑질을 당하면 교수의 관리 부실이 인정되어서 학점을 더 높이 받을걸요?”

     

    어… 그 정도면 나쁜아이라고 단정 짓기는 그렇지 않나?

    아슬아슬하게 착한아이에 가까울 거라고 설득당한 헤스티아가 끝내 도둑질에 동참하게 되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