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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1

       에테르가 아카데미 코앞의 술집에 있었다. 그것도 손님이 아닌 알바생의 입장으로.

       

       “뭐야 이거…?”

       

       처음 보는 패턴이다.

       

       하늘이 알기로, 에테르는 입학식 이후에서나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전까진 수도를 제아무리 싸돌아 다녀도 볼 수 없다. 이것은 유저 공략집에도 나온 지고불변의 진리였다.

       

       그런데 지금 보는 이 광경을 대체 뭐란 말인가?

       

       [─어서오세요, 손님. 10번 테이블로 모시겠습니다.]

       

       무덤덤한 스크립트가 떠오른다. 형형한 금빛 눈동자는 일러스트로 봐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첫인상이 무서워서 사람들이 잘 다가가지 못한다는 설정이었지.’

       

       어느덧 플레이어의 앞으로 몇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1. 단순히 주문만 한다. (체력 및 마력 회복 효과)]

       [2. 사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거부 가능성 높음)]

       [3. 팁을 준다. (‘에테르’와의 호감도 미세 증가)]

       [4. 눈동자가 예쁘다고 칭찬한다. (상세 정보 알 수 없음)]

       [5. 프러포즈한다. (거부 가능성 매우 높음)]

       

       고인물에 랭커인 하늘도 난생 처음 보는 선택지들.

       

       원래 이런 게 있었구나 싶었다.

       

       버멜이 마우스 클릭을 멈추고는 채팅창에 몇 줄 적었다.

       

       [■블루베리스무디 : 여기서 퀴즈]

       [■블루베리스무디 : 몇 번을 선택해야 에테르 언니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3번… 아닌가?”

       

       하늘이라면 3번을 눌렀다. 돈을 대가로 호감도를, 그것도 에테르의 호감도를 취한다면 그야말로 최고였다.

       

       “아니, 아니야. 이건 너무 뻔해. 2번…? 2번도 나쁘지 않은데?”

       

       2번, 3번, 4번. 채팅창도 의견이 분분하게 들어왔다.

       

       “5번 고르자는 변태들은 뭐야?”

       

       [■블루베리스무디 : 자, 그러면 선택할게요.]

       

       버멜은 그리 말하고는 1번을 선택했다.

       

       [─주문할게요.]

       

       그냥 정말로 주문만 하고 만 것이다.

       

       [미르미리 : 아니 방장 모함???]

       [여스트리머만찾아봄 : 아]

       [플스갖고싶다 : 체력 마력 만땅인데 1을 왜함?]

       

       에테르는 로테 앞으로 술잔과 음식을 내어 왔다. 돈은 돈대로 빠져나가는데 이렇다 할 메리트는 없었다.

       

       채팅창이 순식간에 도배와 훈수로 가득 찼다.

       

       버멜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과정을 진행했다.

       

       [==식사 중에 추가로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십시오.]

       

       “어?”

       

       하늘이 목을 길게 내뺐다.

       

       [3. 배낭을 꺼낸다.]

       

       버멜은 다짜고짜 배낭을 꺼내게 했다. 인벤토리에는 유효기간이 지난 틸레트 필기 시험지가 있었다.

       

       ‘저걸 안 버리고 가지고 있었어?’

       

       필기 시험지는 현실성을 위한 더미 아이템이다. 쓸 곳도 없어서 보통 시험이 끝나면 폐기 처분한다.

       

       버멜은 시험지에 커서를 가져갔다.

       

       [로테는 꼼꼼한 성격입니다.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죠. 틀린 문제를 끝까지 고민하는 건 그녀의 오랜 습관입니다.]

       

       스트립트가 떠오르고, 로테가 그에 맞춰 시험지를 꺼내 읽는다. 당연히 하늘에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미분적분이차함수 : 와 뭐임?]

       [tcpip06 : 필기시험지에 이런 기능이 있었네 ㄷㄷ]

       

       시험지를 보고 있자 에테르가 다가왔다. 그녀는 로테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4. 팁을 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지 물어본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하자 은화 두 닢 분량의 소지금이 빠져나간다. 에테르가 화폐를 주머니에 꽂아넣었다.

       

       그러고는 플레이어와 가까이 붙더니….

       

       [─이 마석은 스위치 작용과 증폭 작용을 합니다. 관련 그래프는 이렇게 그려집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기서 그래프 개형을 그릴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난데없이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기계처럼 딱딱한 스크립트였지만 알 수 있었다. 에테르는 말이 길어질수록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마수라는 떡밥을 뿌려 두었구나…!’

       

       하늘은 내심 감탄했다.

       

       [알림 : ‘에테르’와의 호감도가 20 증가했습니다.]

       

       ‘20이면 엄청 큰 수치잖아.’

       

       호감도가 10이면 지인, 20이면 아는 친구 정도로 인식한다. 에테르는 조금 전 대화로 로테를 친구로 받아들인 것이다.

       

       [코랑코랑 : ? 머임?]

       [플레플레리 : 아니 이게 가능함?]

       [secx/c : 에테르면 대화 한번에 호감도 2씩일 텐데 ㅋㅋㅋㅋㅋ]

       [등산왕등애256 : 않이 진짜 뭐임????]

       [흠냐흥냐 : ㅈ버그 발견 ㄷㄷㄷㄷㄷㄷㄷ]

       

       믿을 수 없었다.

       

       [==입학식==]

       

       이윽고 입학식 챕터까지 왔다.

       

       여기가 고비였다.

       

       입학식에선 로즈마리가 본격적으로 공세를 가한다. 어떻게든 에테르를 마왕군으로 복귀시키기 위함이었다.

       

       낮은 난이도에선 간단히 깰 수 있었다. 심지어 광휘 난이도는 이 습격 이벤트도 뜨지 않는다.

       

       절멸은 다르다. 처음부터 가차없다. 상급 마수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며 플레이어를 압박한다.

       

       [몰디브경제부장관 : 아이템 파밍도 안했는데 이거 깰수있음?]

       [pr3mmu : 초장부터 리셋하게 생겼네 ㅋㅋㅋㅋㅋㅋ]

       [빵캣0101 : 이거 못깸 ㅅㄱ]

       

       “하아… 이것들 진짜. 밴 못 때리나?”

       

       하늘은 답답함에 못 이겨 가슴을 팍팍 쳐댔다. 버멜은 여전히 채팅 금지를 걸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검지검지’를 시전하며 시청자들을 약올렸다. 뭔가 있겠거니 싶었다.

       

       [위험 경보 : 마수의 공세가 시작됩니다.]

       

       입학식이 한창이던 도중, 아카데미 뒷산에서 아이언 드레이크가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개중에는 강화형인 골든 드레이크도 있었다. 이들은 상급 마수다. 당장 전부 막아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일까?

       

       탁!

       

       버멜은 아예 손을 놓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치킨피자조아 : ?]

       [오크통나무 : 방잠 머함?]

       [알리올리올리오 : 게임 던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

       [okao016 : ? ㅋㅋㅋㅋㅋㅋ]

       

       가만히 있자 드레이크 몇 마리가 와서 로테를 때리기 시작한다. HP가 쭉쭉 달고 있었다.

       

       절멸에는 부활 찬스도 거의 없다. 이대로라면 1장부터 죽을 판이었다.

       

       [뿌요뽀요뿌 : 아 ㅋㅋㅋㅋㅋㅋㅋ]

       [닼아줫망겜 : 로테 주거욧]

       [ww1111 : 아니 어떻게 좀 해 보라고 ㅋㅋㅋㅋㅋㅋㅋ]

       [갈칼갈칼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도 버멜은 천하 태평하기만 했다.

       

       그러더니.

       

       [─여기서 뭐 합니까?]

       

       무미건조한 스크립트가 출력됐다.

       

       다음 순간, 한 소녀가 다가왔다. 시원하게 뻗은 검은 직모에 금빛 눈동자.

       

       에테르였다.

       

       에테르는 플레이어를 둘러싸던 드레이크를 단숨에 치워버렸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 반응이 맹렬하게 불탔다.

       

       이게 대체 무슨 이벤트냐. 처음 본다. 진짜 더럽게 고였다. 닼아 줫망겜. 기타 등등.

       

       이때부터 버멜이 다시 키보드를 잡았다. 그러고는 에테르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에테르는 다가오는 드레이크들을 가볍게 쳐내며 아카데미를 순회했다.

       

       [‘에테르’와의 호감도가 10 증가했습니다.]

       

       붙어 다니는 시간만큼 호감도가 쭉쭉 오른다. 이유도, 원리도 모른다. 그냥 미친 듯이 올라간다.

       

       [─이래서야 끝이 안 나겠군.]

       

       이때 플레이어가 아카데미 중앙의 분수대에 ‘핵’이 있다며 알려주었다.

       

       에테르는 로테의 말을 무조건으로 수용했다. 그녀가 분수대로 향했다. 말했던 대로 핵이 있었다.

       

       여기까진 하늘도, 다른 시청자도 아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핵을 누가 부수느냐가 관건이었지.

       

       보통 핵은 플레이어가 부순다. 핵을 부수면 명성이 200이나 오르기 때문이다. 명성은 동료 영입 및 장비 할인, 연구과제 달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단 1포인트라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척도였다.

       

       [‘에테르’가 축조진의 핵을 파괴했습니다.]

       

       [‘에테르’의 명성이 200만큼 증가합니다.]

       

       [‘에테르’와의 호감도가 15만큼 증가했습니다.]

       

       물론 다른 인물에게도 명성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인물과는 만나기 까다로워진다. 어떤 캐릭터의 명성이 100이라면, 플레이어도 100은 되어야 접견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사항이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다음 날. 반 배정을 마쳤을 때의 일이었다.

       

       [─당신은… 저번에 봤던 그 사람이군요.]

       

       [같은 반이 된 주요 인물들의 호감도가 5씩 증가했습니다.]

       

       [로테는 사교성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귀족다운 품행’,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타심’, ‘이해심’ 기질을 통해 추가 호감도를 획득합니다.]

       

       [당신에 대한 ‘에테르’의 호감도가 60이 되었습니다.]

       

       바로 ‘절친한 친구’의 조건인 호감도 60을 찍었을 경우.

       

       이렇게 되면 상대방이 제아무리 유명해져도 플레이어와의 관계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틸레트 아카데미에는 기숙사 배정이 있습니다. 배정은 등수과 같은 성별을 기준으로 합니다.]

       

       [당신은 ‘에테르’와 같은 방을 쓰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호감도를 대폭으로 올릴 수 있는 이벤트인 기숙사 배정까지.

       

       [클라리네레넷1 : 와 이걸 ㅋㅋㅋㅋㅋㅋㅋㅋ]

       [미르미리 : 이러다가 호감도 100 찍는거 아님?]

       [우웅웅5566 :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이쪽은 하늘도 아는 빌드였다.

       

       플레이어를 여성으로 선택하고 수석 혹은 차석을 먹으면 에테르와 같은 기숙사 방을 쓰게 된다. 

       

       이 때문에 진엔딩 스피드런 유저들이 여캐를 사용한다. 호감도를 올릴 방법이 이쪽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제 하늘은 멍한 표정으로 스트리밍을 보고 있었다.

       

       뭐라 해야 하나. 알게 모르게 푹 빠지는 느낌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타 검수는 작품 끝나고 할게요

    미안해요!!!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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