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2

       그런데 어차피 이런 일은 개연성 없이 일어나는 법이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처음에는 조금 멍했던 머리가 한순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1등? 진짜 1등이야?”

        

       앨리스가 재차 물어왔다.

        

       “몇 번을 확인해봐도 1등입니다.”

        

       그것도 2개가 1등이다.

        

       이번 1등 당첨금은 20억가량.

        

       그중 절반 정도가 세금으로 나간다고 해도, 2개가 당첨되었으니 여전히 20억가량이다.

        

       이 정도면 서울에 아파트를 살 수 있지 않나? 너무 비싼 곳을 찾아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히 이 동네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사고도 한참 남는 금액이었다.

        

       “어, 어,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해?”

        

       “딱히 어떻게 할 건 없잖아요. 일단 당첨금 수령이 우선이죠.”

        

       조금 당황한 클레어에게 샤를로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 금액이면 뭘 할 수 있죠?”

        

       미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아직은 본인 돈으로 사본 것이 없어서 그런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지, 그보다는 순수하게 이 정도 금액이 어느 정도로 큰지 모르는 것이다. 똑같이 화폐경제라고 하더라도 아제르나와 이 세상의 물가는 현저하게 다르니까. 같은 공산품이라고 해도 이쪽 물건이 더 싸고 상태도 괜찮을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땅값은 아제르나 쪽이 아직은 더 쌀지 모른다.

        

       뭐,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괜찮은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습니다.”

        

       “…….”

        

       나의 대답에 다들 잠깐 침묵했다.

        

       너무 놀라서 침묵한 건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나의 말이 의미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떠올리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한 달 넘게 지낸 앨리스와 클레어는 조금은 이해하는 모양이었지만, 샤를로트와 미아는…… ‘그래야 하나?’하는 표정이었다.

        

       “각자 방을 쓰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 몇 사람씩 방을 공유하면 나름대로 개인공간 비슷한 것이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마 거실만으로도 이 방보다 넓을 수도 있고요. 그러면 잘 때 훨씬 편하게 잘 수 있겠죠.”

        

       “나는 지금처럼 언니랑 지내는 게 좋은데.”

        

       “……이사 간다고 해서 따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앨리스가 물었다.

        

       “이사하고 싶어? 조금 더 넓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간다기보다는……”

        

       나는 잠깐 생각했다.

        

       “아파트 자체가 이 나라에서는 생활하기 가장 좋은 형태니까요.”

        

       층간소음이니 뭐니 하지만, 그건 빌라도 마찬가지로 겪는 이야기다. 그냥 이웃이 좀 멀쩡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

        

       굳이 빌라가 아니더라도, 나는 집에 엘리베이터는 조금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장봐서 돌아올 때 엄청 피곤했으니까.

        

       “…….”

        

       여전히 주변 애들이 조용해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나의 질문에, 다들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쭈뼛거리면서도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클레어였다.

        

       “아니, 우리가 언니한테 너무 기대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번에도 대답했습니다만.”

        

       내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하자, 다들 다소 민망한 표정이 되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불편한 것에서 탈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편한 곳으로 가자는 말이었습니다. 기왕 지내는 거 더 넓은 곳에서 쾌적하게 지내면 좋죠.”

        

       나는 복권을 팔랑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외에는 크게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20억으로 또 뭘 하는데?

        

       이것저것 물건 새로 사고, 가구도 바꾸고 뭐 그럴 수는 있겠다. 하지만 20억이라는 돈이 주머니에 다 들어갈 만큼 적은 돈도 아니고, ‘한꺼번에’ 지를만한 것은 딱 그 정도뿐이다.

        

       “그 외에는 자동차 살 돈 정도일까요.”

        

       물론 새로 생긴 것은 주민등록증뿐이고, 내가 가지고 있던 다른 면허와 자격증들은 전부 사라졌다.

        

       그러니 운전면허도 새로 따야겠지만, 그거야 뭐 어렵지도 않다. 돈과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지고 돌아갈 돈이 아니니, 그냥 시원하게 쓸 생각입니다. 어차피 그러고도 여유자금이 남아서 적어도 생활비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게 될 테고요.”

        

       내가 거기까지 설명하고 나서야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하여간에 걱정을 사서 한다니까.

        

       다들 이쪽으로 넘어오고 나서 확실하게 소심해지긴 한 것 같다.

        

       가진 게 많다가 갑자기 줄어서 그런가?

        

       *

        

       그 다음 주 월요일.

        

       내 통장에 수십억 단위의 숫자가 박히는 걸 볼 줄이야.

        

       처음으로 천만 원을 넘게 모았을 때도 묘하게 현실감이 들지 않았는데, 그보다 스무 배는 많은 돈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더 그랬다.

        

       복권 비용 받는 곳 바깥에는 돈 달라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우리 외모가 대놓고 외국인이라 그랬는지 말 거는 사람이 없었다.

        

       외국인이라고 1등 당첨이 되지 않을 거라는 이유도 없고, 법적으로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지만…… 이렇게 어린 여자애들끼리 우르르 몰려들어 가는 것이, 복권 당첨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야 좋지.

        

       그게 우연의 일치였건,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건 상관없다. 누구 참견 없이 돈을 받을 수 있었으니 편하고 좋지, 뭐.

        

       어제 방송에서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정말 큰 노력을 했다.

        

       그래도 시청자들이 ‘복권 당첨됐냐?’고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라도 그렇겠지만.

        

       “오늘은 조금 비싼 걸 먹을까요?”

        

       통장에 돈도 많고, 우리가 벌어둔 돈까지 있으니 무서운 것이 없었다.

        

       “오, 그래? 어떤 거?”

        

       내가 기분 좋은 모습을 보고 자기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앨리스도 웃으며 물었다.

        

       “글쎄요…….”

        

       비싼 음식이라.

        

       보통 무작정 ‘비싼 음식’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건 역시 해산물이다.

        

       뭐, 따지자면 고급 초밥집이나 고깃집, 호텔 식당 같은 곳도 있지만, 뭐랄까, 그냥 ‘오늘 가자!’라고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대충 그렇다고 할까.

        

       “게는 어떻습니까?”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다행히 다들 입에 맞는 건지, 깨작거리는 애들은 없었다.

        

       하긴 게가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나도 어릴 때는 게맛살 참 좋아했는데. 실제로 게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직장생활 하며 돈을 벌던 때에도 함부로 먹지 못하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로웠다.

        

       “우선은 이사할 집부터 구할 생각입니다.”

        

       열심히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젓가락으로 사이드로 나온 회 한 점을 집었다.

        

       아무래도 음식을 생으로 먹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는지, 회를 건드리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궁금하다는 듯 집어먹었던 애들은 그다음부터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이렇게 맛있는데.

        

       그럼 초밥집에 가지 않은 건 다행인 건가.

        

       “하지만 그 전에,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지 미리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나의 말에 열심히 먹던 아이 중 두 사람이 손을 멈췄다.

        

       클레어와 앨리스였다.

        

       미아와 샤를로트는 먹는 속도를 조금 늦추긴 했지만, 흥미롭다는 듯 클레어와 앨리스, 그리고 나를 번갈아 보았다.

        

       왜?

        

       “난 언니랑 같은 방.”

        

       앨리스가 입을 열기도 전에 클레어가 먼저 그렇게 말했다.

        

       “……일단 방이 몇 개일지부터 생각하는 게 좋지 않겠어?”

        

       앨리스가 클레어에게 나무라듯 말했다.

        

       “방이 몇 개건 상관없지 않아? 어차피 한 사람당 방 하나씩 쓰기에는 어려울 거 아냐. 그러니까 나는 언니랑 같은 방.”

        

       “방이 세 개일 수도 있잖아?”

        

       “그럼 남는 방은 네가 혼자 써. 제국을 이어 나갈 황녀잖아?”

        

       “……황녀인 건 실비아도 마찬가지야. 게다가 그 집을 사는 것도 실비아고. 만약 방을 혼자 쓰는 사람이 있다면 실비아여야지.”

        

       “하지만 나는 실비아 동생인걸.”

        

       “나는 실비아 언니야.”

        

       “실비아가 널 언니라고 인정한 적은 있고?”

        

       “…….”

        

       나는 그냥 중간에 끼어드는 것을 포기한 채 밥이나 먹기로 했다.

        

       방은 기왕이면 세 개 정도인 곳으로 보고 있지만, 이래서야 한 방은 세 사람이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남은 한 곳은 방송 방으로 쓰든가 해야지.

        

       생전 인기가 없던 나였는데, 저쪽 세상에서는 이렇게 인기가 많다니, 이것도 복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인기라는 것이 피를 나눈 거나 다름없는 자매들에게서 오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보통 자매가 이 정도로 사이 좋은가? 오히려 클레어와 앨리스의 관계가 실제 자매와 훨씬 비슷하지 않나?

        

       아, 맞다. 얘네들 친자매였지.

        

       속으로 나름대로 정답을 찾아내고,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도 뭐라고 한마디 해 봐.”

        

       “그래, 실비아. 네가 결정권자이니 네가 결정해야지.”

        

       음.

        

       “다시 생각해보니,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조금 더 생각을 해보고 결정하기로 하죠.”

        

       마음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렸지만, 이 둘이 이렇게 말싸움 하는 게 꽤 재미있으니 오늘은 그냥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

        

       한편, 그런 우리 세 사람을 말없이 보고 있던 샤를로트는, 미아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리고 말했다.

        

       “미아, 우리는 같은 방을 쓰도록 하죠.”

        

       샤를로트의 말에 미아는 입안 가득 대게 다리 살을 넣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에도크로우 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해주신다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처음 여기 소설을 쓰는 순간부터 오늘까지, 쭉 독자 여러분 덕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글을 쓰면 조회수가 계속 나오는 것에, 읽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상상만 했던 일이니까요. 제가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기왕이면 오래오래 여러분과 글을 쓰며 소통하고 싶습니다. 아직 쓰고 싶은 내용은 꽤 있는 게 다행이네요. 당장 다음에 쓸 소설은 판타지 배경의 암타물, 그 다음은 아마 현대 판타지 노맨스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마법소녀물이나 메이드들이 주축인 소설, 혹은 수녀원을 배경으로 한 백합 일상물도 써보고 싶구요. 이전에 썼던 소설 중 하나를 이번에는 유료로 재연재 해보거나, 아니면 현대 배경의 소설을 중세 판타지로 바꾸어 별개의 외전처럼 써보는 것도 일단은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새로운 소설을 언제나 구상할 수 있는 것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죠. 정말 언제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화려한비밀 님, 후원 감사합니다!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랄까, 글을 쓰다보니 제 글을 언제나 따라와주시는 분들이 생긴 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역시 예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죠. 매번 구상만 하고, 초반만 잠깐 쓰고, 올리지는 않고…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이제 더 늦으면 영영 도전하지 못하겠구나 싶어 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솔직히, 이미 저는 제 인생의 목표 하나는 이루었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아직 소소한 목표들은 많이 남아있긴 합니다. 어릴때부터 서코같은 데 부스를 내보고 싶었어요. 제가 동인지를 그리거나 하지는 못하지만, 짤막한 단편 소설을 써서 얇은 책으로 만들어 판매하거나, 제가 쓴 글의 캐릭터들을 굿즈로 만들어 팔거나… 물론 유료 연재한 소설보다는 그런 쪽으로 자유로운 무료 소설중에 고르게 되겠죠.

    아직 생각만 할 뿐이지만, 조금 늦은 나이에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겁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서 꾸준히 즐거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