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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2

    그날 밤.

     

    라함은 꿈에서 어느 숲에서 눈을 떴다.

     

    모든 것이 따사롭고, 충만한 숲.

    각양각색의 나비가 꽃들 사이를 날고, 푸른 하늘이 높이 펼쳐져 아름답다.

    바람을 맞으면 마치 생명이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며, 숨을 쉬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선천적으로 코가 약하여 숨을 이토록 상쾌하게 쉬어본 적이 없는 그였기에, 이 숲에 대한 인상은 점점 더 좋아질 뿐이었다.

     

    깨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면 평생 깨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가족들을 데려와서 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악-.

     

    주변이 크게 밝아지며, 하늘의 구름이 치워지며 빛의 길이 내려온다.

    분명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었으나, 지금 그의 눈은 그렇게 부시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평안하다.

     

    그리고 그 빛의 끝에는 어떤 형체가 날개를 펼친 채 천천히, 고고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누, 누구……?”

     

    라함은 그 형체를 향해 더듬더듬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그것으로부터 머리를 울리는 듯 강렬한 정보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라함, 나의 사도여. 들리는가?

     

    그것은 마치 거대한 나팔소리가 수십개 뭉쳐져 나온 것 같은 소음처럼 들렸으나, 동시에 그가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칭하는 것에 라함은 어안이 벙벙했다.

    사도라니, 별안간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저 존재는 대체 무엇이길래 자신의 꿈에 나타나 저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이게 말이기는 한 건가?

     

    혼란스러운 와중, 그것이 다시 ‘말했다’.

     

     

    -네가 정녕, 나를 믿느냐? 내게 가진 믿음이 아직 확고하느냐?

     

     

    믿음.

     

    그것이 건넨 그 단어가 갑자기 신경이 쓰이기 시작해 그것을 곰곰히 생각하던 그는, 이내 깨달았다.

     

    이건, 그저 단순한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 서, 설마 당신은!”

     

     

    그래, 처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 않은가.

    그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며 입을 열었다.

     

     

    “처, 천사님이십니까?”

     

     

    천사.

    자신이 그토록 믿고 기도해온 대상이, 바로 자신의 눈 앞에 존재를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자, 그것이 그에 답하듯 다시 한번 그 웅장한 소리를 내었다.

     

    -‘천사’가 바로 너의 신을 칭하는 말이라면, 그렇다.

     

    틀림없는 긍정의 말. 

    그에 라함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ㅇ, 예!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을 믿고 있습니다!”

    -좋다.

     

    그것은 굉장히 만족했다는 듯 말했다.

    빛에 감싸인 탓에 그것의 얼굴을 비롯한 표정은 전혀 알아볼 수 없었으나, 라함에게는 그것이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라함, 나의 말을 들으라.

    “예!”

     

    ‘이건, 설마……. 계시?’

     

    신이 없는 세계, 계시가 어떤 식으로 내려오는 것인지도 잊혀진 세상이지만, 그는 스스로 믿음을 갖고 지켜온 덕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는, 그분께서 내리는 계시가 분명하다고.

     

    그렇다면 과연, 자신을 향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천사는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것일까.

    라함은 하늘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들려온 계시는 충격적이었다.

     

    -네 막내아들의 목숨을 내게 바치거라.

     

    “예?”

     

    막내아들의 목숨을 바치라니?

    대체 그건 무슨 말인가?

     

    -내가 너를 죽음에서 되살렸으니, 너 또한 내게 생명을 바치는 것이 이치가 아니겠느냐. 내 명령하였으니, 너는 응당 그리해야 할 것이다. 아들의 목을, 그대가 나를 처음 보았던 그 숲에서 잘라 나에게 제물로 바쳐라. 그리하면 너는 온전한 신앙으로 진정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

     

    라함은 그렇게 계시를 받았다.

     

    ——

     

    계시를 받은 라함은 자신의 방, 침대에서 깨어났다.

     

    자신의 곁에는 자기 전까지 동화책을 읽어주었던 아들이 새근새근 귀여운 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잠들기 전과 동일했다.

    단 한가지 달라진 사실은, 자신의 신께서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셨다는 것이다.

     

    “…….”

     

    그리고 라함은 자고 있는 아들을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신이 내린 명령이므로,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큰 뜻이 있을 것이다.

    그래, 이는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려는 것임이 분명했다.

    어쩌면 이 일이 끝나면 자신을 죽음에서 되살렸던 것처럼, 다시 살려주실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일단 준비를 해야했다.

     

    아들의 목을 베어낼 칼과, 아들을 데리고 리엔느 숲을 향해 갈 차키, 그리고 나갈 때 입을 외출복.

    바깥은 쌀쌀하니까, 따듯하게 입히는 것이 좋으려나, 사람의 목은 생각보다 질기다고 하던데, 아무리 아이라고해도 제대로 베어낼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준비를 하나씩 해가던 그의 손이 돌연, 그 손이 멈춘다.

     

    ‘하지만, 정말로?’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정말로 아들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라면?

    그래서 일이 끝난 뒤에서 아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최악인 것은 따로 있다.

    자신이 받은 것이 만약 계시가 아니라 그냥 꿈이었다면 어떡하지?

    그 날 이후로 자신은 단 한번도 천사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이것이 계시라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도 없고, 이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야말로 개죽음이 아닌가?

     

    그런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 그 다음으로 그를 덮쳐오는 것은 커다란 자괴감이었다.

     

    ‘난, 대체 무슨 끔찍한 짓을 하려고 한 것이지?’

     

    자신은 살인을 준비했다.

    그것도, 아들을 죽일 칼과, 아들을 살해장소로 데려갈 방법을 생각했다.

    평생을 단 한번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끔찍한 짓을, ‘그 분’ 께서 원하신다는 생각에 서스럼없이, 하고 만 것이다.

     

    “허억, 헉……!”

     

    끔찍했다.

    맙소사,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이려 했다니!

     

    이제야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 라함은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했다.

    난산으로 정말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다.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인 자신이 자식을 죽일 생각을 한 순간이라도 품었다는 사실에 자신이 굉장히 역겹다.

     

    이성을 찾으니 떠오르는 각종 생각.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꿈 때문에? 나는 대체 왜 그런 꿈을 꿨지?’

     

    아주 혼란스러웠다.

    이딴 건 계시도, 믿음도 아니었다.

     

    그래, 단순한 미친 짓.

     

    아들이 죽느니,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것이 맞다.

    라함은 자식을 죽이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그러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과연 내가 믿고 따랐던 그 분은 정말로 선한 존재가 맞는가?’

     

    의심을 품은 라함의 머리카락이 서서히 이전의 회백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

     

    그 광경을 건너편 건물의 옥상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던 루크는 자신의 머리 위에 떠오른 헤일로를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처음 내려본 계시인데……. 제대로 통해서 다행이로군.”

     

    그래, 라함이 꿈으로 보았던 것은 단순한 환상이나 기억조작으로 이뤄진 가짜 계시가 아니라 진짜 계시였다.

     

    마법을 썼다간 의심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라함이 아무리 사람을 잘 믿는다고 해도 클래스의 영향으로 환상과 마법에 익숙한 현대인이 아닌가?

    진짜 계시가 아니라면 오히려 들통날 가능성이 높았다.

    요즘은 집에서 기르는 개도 환상과 현실을 구분한다고 하니까.

     

    그리고 다행히, 자신의 자연스러운 계시는 아직 신앙심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그의 가슴 속에 불신을 피워내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방법이 조금 신사답지 못했다.

    아이를 볼모로 잡다니…….

    특히나 아이들을 좋아하던 그였기에 더욱 탁월한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떠올린 방법이기는 한데, 죄책감이 꽤 심하다.

     

    하지만 한 켠으론, 아쉽기도 하다.

     

    정말 그가 믿음이 확고하여 아들의 목을 리엔느 숲에서 베어내려고 했다면 물론 자신이 어떻게든 막거나 되살려내려고 생각하고 있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막 침대에서 나오기도 전에 신앙심이 바닥나다니 말이다.

     

    ‘그래도 나름 나의 첫번째 사도였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이 시대는 신에 대한 증거와 믿음이 그만큼 부족하고, 희미한 시대다.

    의심이 저렇게 빨리 생겨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뭐, 신이 직접 내린 교리도 없고, 그의 믿음생활도 그리 길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겠지만.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아쉽다는 이 모순적인 감정이, 참으로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루크는 그에게서 회수한 신성력으로 자라난 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신성력을 보면 믿음은 꽤나 깊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쓸데 없이 말이다.”

     

    성장을 대비하여 새로 사 둔 옷이었는데도 왠지 몸이 답답한 것이, 전보다 더 커진 게 아닌가 불안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가슴쪽의 단추가 터질 것 같달까, 마법으로 내구성을 높이는 인챈트를 걸지 않았다면 뜯어져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치마도 너무 짧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말이다.

    하지만 분명 신성력과 가슴 크기엔 어떤 관계도 없을 텐데…….

    설마, 지금도 이 몸일 때에 맞는 속옷을 찾기가 어려운데 그건 아니겠지.

     

    자꾸 이러다간 정말로 폴리모프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말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라함이라는 네이밍은 사실 아브라함에서 따왔습니다.
    이건 진짜 못 믿으면 못 할 짓이죠.

    어린이날이니까 연참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루 기다려서 나오는 편이 이거면 좀 그럴 것 같아서 연참입니다.
    댓글이 다들 너무 꽃밭이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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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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