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392

       막 한서우에게 참여의사를 표했을 때의 일이다.

       

       그 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던 나였지만 한서우와 일정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

       

       바로 나와 파이스라는 작자의 전투로 시청자들의 분노를 짓누르는 방법이 말이다.

       

       내 가끔씩 본인 방송에 존재하는 게시판을 둘러보고 있다.

       

       본인이 방송을 안 킨지 며칠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게시판에는 시청자들의 활동이 활발하더구나.

       

       그 놈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본인에게 무엇을 시킬지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으으.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곳의 풍광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어찌하면 본인이 치욕을 느낄지에 관해 떠들어대면서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꼴이라니.

       

       얼마 전 엔리가 자신의 방송에서 화령냥이를 시키겠노라 공언했거늘 그걸로는 모자라다는 듯한 그 태도에 내 얼마나 치를 떨었던가.

       

       대체가 말이다. ‘마법소녀☆ 화령땅☆ 마와 패도의 이름으로 널 지옥에 처박아주겠다!☆’ 는 뭐고.

       

       ‘본인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지. 네 놈의 마음을 가져가는 것도 말이다.’는 무어냐!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지껄이는 것들 중에서는 이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종류도 있었으니.

       

       그를 구경할 때면 어떻게든 룰렛을 돌리는 것만큼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구나.

       

       생각해둔 것은 몇 가지가 있었다.

       

       바루를 끌어들여서 귀여움으로 짓눌러 버린다거나.

       

       아예 경이롭고 경외로운 것을 보여 말문을 막게 만든다거나.

       

       최악의 경우. 화령냥이를 자처하는 것으로 명분을 없애버릴 각오까지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파이스라는 현대의 거물이 굴러들어왔으니 탈출구가 간절한 본인의 입장에서 이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일정 상의 문제가 있다면 어쩔 수 없을 터이다만 다행스럽게도 내 방송 복귀 날에 맞추어 파이스를 만나는 일이 가능했다.

       

       본인의 일정에 맞추겠노라는 저들의 이야기에는 허언이 없었던 것이다.

       

       한서우와의 이야기를 끝마친 후. 나는 엔리에게 연락을 보냈다. 복귀 방송을 진행할 때에 카메라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엔리는 내 부탁을 듣자마자 그 날 방송 취소하고 뛰어가겠다면서 의욕을 보였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오래 전부터 파이스 스코비아의 팬이었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나 뭐라나.

       

       그래서 내가 그 좋아하는 사람이 박살나는 풍경을 보아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더니 엔리가 오히려 환영이라면서 목소리를 드높였다.

       

       ‘패배를 모르던 사람이 더 높은 벽을 만났을 때의 표정! 이게 또 맛있거든요!’

       

       …내 되도록 엔리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을 하고 싶었다만 그 때에 한해서는 아니었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만 이 녀석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음. 아니고 말고.

       

       그렇게 파이스 스코비아를 만나러 온 당일이 되었을 때 엔리는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에 찾아왔다.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까지는 반나절이 넘게 남아 있었거늘 그녀는 이 시간에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눈치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일찍이지 않나요? 따로 할 일도 없을 텐데?”

       

       바루와 뒹굴면서 놀러 온 것이라며는 내 친히 바루에게 안내를 해주겠다만서도 그게 아니라면 굳이 저와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없을 터인데?

       

       그리 생각해서 물음을 던졌더니 엔리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그야 이 시간에 찾아와서 코디하는 게 아니면 아라님 또 괴상한 옷 입으실 거잖아요.”

       “…괴상한 옷이라뇨.”

       

       본인이 움직이는 데에 있어 극한의 편함을 추구하는 그 옷의 어디에 괴상함이 있다는 소리더냐!

       

       잘 듣거라! 엔리! 본인을 모욕하는 일은 허락해도 본인의 후드티와 고무줄 바지를 모욕하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그래. 엔리. 괴상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엔리에게 그리 항변을 하고 있으려니 뒤편에 있던 바루가 나를 항변하고 나섰다.

       

       역시 바루다!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그대밖에 없…

       

       “볼품이 없다고 해야지. 괴상하다 그러면 문제의 인식이 제대로 안 되지 않은가.”

       “그런가요? 그럼 정정할게요. 아라 씨가 즐겨 있는 옷은 볼품이 없어요!”

       

       저기에 대해서는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본인이 즐겨 입는 복장은 이상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고풍스럽거나 고귀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한 때 바지로나마 드높은 자리에 서 있어 보았던 본인이다. 공식적인 자리에 입어야하는 옷이 무엇인지 모르진 않는다.

       

       다만 그런 옷들은 움직이는 데에 여러 제약이 걸리는데다가 도저히 본인의 취향이라 할 수 없는 옷들인지라 입고 싶지 않아 할 뿐.

       

       그리하여 내 난색을 표했다마는 오늘따라 엔리의 고집이 완강했다.

       

       “아라 씨. 무언가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설명을 드릴게요.”

       “착각이요?”

       “언제부터 아라 씨에게 선택권이 있을 거라 생각하신거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허름한 차림을 한 사람에게 패하는 꼴은 볼 수 없다는 엔리의 말에서는 도저히 꺾을 수 없는 강한 열정이 느껴졌다.

       

       “걱정마세요. 이건 벌칙이 아니니까요. 아라 씨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드릴게요!”

       “설마 반나절을 일찍 온 게…”

       “네! 자. 바로 나가자구요! 파이스님을 볼 수 있게 해주셨으니까 옷은 제가 사드릴게요!”

       

       엔리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었다. 이는 본인이 스스로 불러 온 재앙이었으니 말이다.

       

       그 후로 엔리는 본인을 이끌고서 이 매장 저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았다.

       

       내 중간에 계속 이럴 것이라면 차라리 무복을 입고 가겠노라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음. 어쩔 수 없지만 이걸로 만족을 할까요.”

       

       결국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것은 파이스를 만나기로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갔을 무렵이었다.

       

       이것도 시간이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 시간이 충분했더라면 녀석은 하루 종일. 아니 어쩌면 며칠에 걸쳐서 본인을 괴롭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뭐 그리 옷을 고르는 데에 까탈스러운 것인지 원.

       

       – 키야아.

       – 가면을 써도 예쁜 게 티가 난다.

       – 엔리냥이 할 때랑은 분위기가 달라.

       – 몸에 군살이 없어서 라인이 장난 아니다.

       – 와. 엔리랑 같이 있는데 존재감 넘치기 어려운데.

       – ㄹㅇ. 평소 이미지가 개그라 그렇지 엔리도 엄청 예쁘니까.

       – 가면 써도 이 정도인데 얼굴까지 드러내면 ㄷㄷ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시청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단 것이겠구나.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파이스랑 붙는다는 거 찐임?]

       

       “네. 그 쪽에서 먼저 붙어보자 그러셔서요.”

       

       – ㅁㅊㄷ ㅁㅊㄷ

       – 현 아피스 리그 최강자랑 화령이 붙는다니.

       – 진짜 개꿀잼 매치업이네.

       – 파이스는 과연 천마를 토벌할 수 있을 것인가.

       – 그래도 세계 최강인데. 막상막하는 되지 않을까?

       – 되겠음?

       – 파이스는 과연 얼마만에 박살이 날까.

       

       채팅창의 반응을 살펴보던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계획한 대로 잘 흘러가고 있구나.

       

       처음 방송을 켰을 때만 하더라도 나락이니 뭐니 하면서 난리를 피워대던 녀석들이 파이스와 본인이 대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에 대한 이야기밖에 안 하고 있지 않나.

       

       좋아. 이대로 분위기를 굳히면 된다. 시청자들이란 언제나 파도에 잘 휩쓸리는 자들일지어니.

       

       내일 바루와 함께 방송을 하는 것으로 저들의 불만을 지워버리면 그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안않을 것이다.

       

       완벽해! 이로써 본인은 룰렛의 위협에서 자연스레 빠져나왔구나!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앞으로 걸어 나가던 중 QZ게이밍 문 앞에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인파를 보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어냐. 왜 저 많은 사람들이 뭉쳐 입구를 막고 있는 것인가. 이런 내 물음에 답한 것은 엔리였다.

       

       “파이스님이 온다 그러셨으니까요. 다들 구경을 하러 온 거죠.”

       “파이스라는 분이 이렇게나 유명한가요?”

       “그럼요. 현 세대 최고의 인기 게임인 아피스 정상에 몇 년 동안 군림하신 분인 걸요. 거기에다가 잘 생겼지. 목소리 좋지. 성격도 좋은 걸로 유명하지. 아니 글쎄 파이스님께서…”

       

       엔리는 미리 대답을 준비해 놓기라도 한 것처럼 파이스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 녀석을 오랫 동안 좋아했다는 것이 티가 나는 구나. 이러다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고백이라도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그나저나 말이다. 저기에 저리 인파가 뭉쳐 있어서야 어찌 지나가야 할까. 현실에서 저들에게 위압을 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방송을 킨 상태에서 본인과 엔리의 존재감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도 없고. 흐음. 어찌하면 좋을는지.

       

       가만 그런 고민을 하던 나는 문득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기운에 고개를 들었다.

       

       이는 내기의 기운이 아니다.

       

       마력이다.

       

       본인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이들이 사용하는 기운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QZ게이밍 건물 인근에 자동차가 하나 멈추었다.

       

       커다란 검은 색의 차 안에서 먼저 두터운 양복을 입은 덩치들 몇이 내려 공간을 확보하고 그 후에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가벼운 복장을 입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꺄아아악!”

       “파이스님!”

       “형! 사인 좀 해주세요!”

       “내가 우리 형을 눈으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진짜 더럽게 잘 생겼네.”

       

       남자고 여자고 소리를 내지르는 광경의 한 가운데에서 본인은 본인이 감지했던 마력의 주인을 찾아냈다.

       

       그는 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녀석은 나름대로 자신의 기운을 숨기고 있었지만 본인의 눈을 속이기에는 부족했으니까.

       

       금색의 단발.

       

       여러 잔상처가 남아 있는 얼굴.

       

       짙으며 선명한 청색의 눈동자.

       

       여러 흠집에도 불구하고 위압적인보다는 부드러움을 먼저 느끼게 하는 남자는 맨 앞에 서서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와 준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저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니만큼 귀찮을 법도 하거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과연 용사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자로다.

       

       그리고 저 속에 담겨 있는 마력은 짙고 무겁구나.

       

       본인이 이전에 상대했던 대마법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야.

       

       대마법사 그 녀석의 마력은 무기질적이고 거슬린다는 감상을 선사했거늘 저 놈의 마력은 아니다.

       

       그저 따스하구나. 하늘의 태양이 따스함만을 품어 대지에 선사하면 저런 모양새이지 않을까.

       

       강한지 아닌지를 제쳐 두고서라도 마음에 드는 녀석이라 생각하고 있으려니 파이스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콰당!

       

       그리고 머지 않아 다리에 힘이 풀린 파이스가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벌벌 떨리는 이빨.

       

       갈 곳을 잃은 눈동자.

       

       일어나려 노력하지만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

       

       저 자가 느끼는 감정은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저는 공포였다.

       

       파이스는 본인이란 존재를 인지하자마자 공포에 짓눌려버린 것이다.

       

       “…아라 씨.”

       “네?”

       “대체 뭘 하신 건가요.”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진짜다! 아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저 놈이 본인을 보자마자 쓰러진 것을 왜 본인의 탓을 하는 것이냐!

       

       너무나도 억울하여 그리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엔리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럼 저 분이 왜 갑자기 쓰러져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는만큼 봐버린 용사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