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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2

   불어온 바람이 모래를 흩날렸다.

   두 초인의 전투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장소 위.

     

   야수화를 사용한 베르도는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베르도는 전에 없던 극심한 긴장감에 빠져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저히, 무슨 짓을 해도 이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대를 마주한 탓이다.

     

   무려, 야수화까지 발동시킨 그를 이토록 긴장시킨 이가 누군가.

     

   그는 용왕.

   크라슈 발하임이라는 이름을 지닌 자였다.

     

   백색의 눈동자로 타오르고 있는 크라슈 발하임.

   그를 마주한 순간 베르도의 본능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러서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 야성에게 잡아 먹혔던 베르도의 정신이 되돌아왔다.

     

   본능이 두려움에 빠져 도망쳐 버리자.

   그 자리를 메꾼 것이 바로 베르도의 이성이었던 덕분이다.

     

   이는 베르도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비록, 팔이 잘리긴 했지만.

   베르도는 전에 없던 힘이 전신에서 치솟고 있음을 깨달았다.

     

   야수화를 통해 본연의 힘을 끌어낸 야수족의 진정한 힘이었다.

     

   마치,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무궁무진한 힘.

   하지만 지금 눈앞에 크라슈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것도 허튼 생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있는 크라슈는 힘의 집약체 그 자체였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은 괴물.

   그게 바로 크라슈였다.

     

   그러나 본능은 도망칠지언정 그의 이성은 도망칠 수 없었다.

   도망치고, 도망쳐 도달한 이곳이다.

     

   베르도에게 더는 도망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눈앞에 적을 쓰러트리고, 승리를 쟁취한다.’

     

   야수족의 왕으로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를 쏟아낼 뿐이다.

     

   우득!

     

   베르도의 잘린 팔 근육이 한껏 응축됐다.

   동시에 그는 잘린 팔 그대로 크라슈를 향해 휘둘렀다.

     

   그의 몸에는 폭발적인 세계 침식의 힘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렇기에 팔 따위 없어도 좋았다.

     

   휘두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권이 된다.

     

   휘두른 팔에서 뻗어 나온 금색의 권이 크라슈를 향해 뻗어 나갔다.

     

   파각!

     

   그리고 들려온 것은 베르도의 권격이 막히는 소리였다.

   뒤이은 후폭풍이 베르도의 털을 휘날렸다.

     

   크라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곧이어 베르도는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기류를 알아차렸다.

   칼날 같이 휘날리고 있는 기류.

     

   이 기류는 분명 백룡왕의 기류다.

   하지만 아무리 백룡왕의 기류가 있다고 한들, 현재의 자기 주먹을 막을 수 있을 턱이 없다.

     

   ‘무슨 술수를.’

     

   베르도는 멈추지 않고, 다음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베르도의 주먹이 뻗어 나갈 때마다 크라슈의 주위에 기류가 일렁였다.

     

   베르도는 끊임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난타에 가까울 정도로 퍼부은 주먹 속에서 베르도는 서서히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크라슈는 처음과 같이 오롯이 베르도를 노려만 보고 있었다.

   우뢰성도 길게 늘어뜨린 채 묵묵히 베르도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베르도가 주먹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그의 주먹은 상처 나고, 부서져 갔다.

     

   베르도가 눈을 부릅뜨며 이를 바득 부딪쳤다.

     

   ‘설마.’

     

   이 내가 고작해야 기류조차 뚫지 못한다는 건가?

     

   베르도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크림슨가든의 보호막이라도 야수화 상태라면 부숴버릴 자신이 있다.

     

   천상사강이라도 야수화를 발동시키고, 정신까지 차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기류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베르도의 입에 헛웃음이 그려졌다.

   이건 대체 무슨 괴물인지 모르겠다.

     

   “베르도.”

     

   서서히 베르도의 눈에 절망감이 깃든 순간.

   크라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신이 새하얗게 물든 크라슈는 우뢰성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있었다.

     

   “차라리 도망치지, 그랬냐.”

     

   그의 목소리를 듣고, 베르도는 깨달았다.

     

   막대한 힘을 쏟아낸 크라슈는 지금 자신의 힘에 도리어 눌려 움직이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니 처음 베르도의 팔을 벤 이후 아무런 동작도 하지 못했던 게 그 증거였다.

     

   베르도는 이 사실을 분명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도망쳤다.

   그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이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의 이성은 남았다.

   오히려 지금만이 그를 쓰러트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곧이어 그는 이것이 자신의 고집이자 아집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늘 도망치기만을 해야 했던 자신이니까.

   이 순간 자신의 힘을 믿고 크라슈를 쓰러트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작 그의 기류 앞에 막혔다.

     

   크라슈는 이런 베르도조차 자각하지 못한 것을 꿰뚫어 보고 말한 것이었다.

     

   “하.”

     

   베르도가 입에서 웃음을 흘렸다.

     

   “나는 야수왕이다. 내가 적 앞에서 도망치는 일이 있을 것 같나.”

     

   그리고 마지막만큼은 허세를 가득 담아 그리 고했다.

     

   자신은 야수왕.

   야수족을 대표하는 최강의 전사다.

     

   베르도의 금색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동시에 그가 텅 빈 오른팔을 당기며 왼손으로 감쌌다.

     

   그러자 그의 빈 오른팔이 주변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며 힘이 집중되었다.

   그 막대한 힘 앞에 공간마저 일그러져 가며 태양보다도 더한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베르도를 마주한 채 크라슈는 우뢰성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완전한 신기에 도달한 크라슈는 움직임 하나만으로 세상을 떨리게 했다.

   

   

   

   

     

   용 앞에 개미도 이것보다는 승산이 있겠건만.

   베르도가 선택할 수 있는 수는 자신의 전력을 쏟아내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완성된 베르도 최고의 권을.

   이윽고, 크라슈를 향해 내질렀다.

     

   야수신권(野獸神拳)

   오의(奧義)

   박살(撲殺)

     

   하나로 완성된 권이 주위 대기를 전부 찢어발기며 크라슈에게 뻗어 들어왔다.

   험악한 이름답게 어느 것이든 박살 낼 권은 최강이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권의 앞에는 더한 최강이 도사리고 있었다.

     

   뒤로 빠진 뒷발과 함께 크라슈가 숨을 가득 당겼다.

   그의 힘이 우뢰성을 향해 밀어 넣어지자 우뢰성이 달달 떨렸다.

     

   그동안 크라슈와 함께했던 우뢰성 조차 감당하지 못할 백염이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권격, 박살 앞.

   크라슈는 그저, 검날에 담긴 거센 백염을 앞을 향해 휘두를 뿐이었다.

     

   그리고 백염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박살을 집어삼킨 백염은 결국 베르도의 앞에 도달했다.

     

   그런 백염을 눈앞에서 마주한 베르도는 조용히 생각했다.

     

   ‘동생아, 내가 조금 더 잘했다면 너와 난 괜찮았을까.’

     

   한 번도 불평을 내보이지 않던 자기 동생.

   어쩌면 그것은 형으로서 동생의 진짜 속내를 줄곧 외면했던 걸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베르도는 씁쓸히 웃었다.

     

   ‘참 부질없는 생각이군.’

     

   이미 멸망해버린 세계를 떠올리며 후회를 해봤자 무엇을 이룰 수 있으리.

   베르도는 눈을 감고, 그렇게 백염 속에서 사라졌다.

     

     

   * * *

     

     

   베르도가 완전히 소멸한 이후.

   크라슈는 목구멍이 탈것 같은 열기를 입 밖으로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최흉의 씨앗이 완전히 뿌리 내려 자신의 전력을 힘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 증거로 최흉의 씨앗 위에는 두꺼운 형태의 보호막이 처져 있었다.

   위협을 인식하고, 자기 나름대로 보호 조치를 한 것이다.

     

   터무니없이 강한 힘으로 압축시킨 보호막이다.

   크라슈의 백염이 옆에서 이토록 타오르고 있음에도 멀쩡한 것이 그 증거였다.

     

   “의미 없는 짓을 하네.”

     

   그러나 크라슈는 이를 보며 코웃음 쳤다.

     

   그는 감기려는 눈을 애써 부릅뜬 채 손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그의 손아귀 안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빛의 힘은 다름 아닌 블랙후드였다.

     

   [ 대상 거인의 숲, 최흉의 씨앗 ]

     

   의지가 없는 존재에게 블랙 후드는 모든 방어적 요소를 뚫어 버리면 필살기와 같다.

     

   “이제 우리 땅에서 사라질 시간이다.”

     

   그리고 크라슈의 손아귀에 최흉의 씨앗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거인의 숲답게 최흉의 씨앗에 담긴 힘은 이제껏 중 제일이었다.

     

   거기다 익시온이 마지막 발버둥으로 최흉을 피우려했던 만큼.

   크라슈의 몸에 흘러 들어오는 최흉의 힘은 크라슈의 몸조차 박살 내놓을 것 같았다.

     

   까드득!

     

   그러나 크라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이를 힘껏 깨물었다.

   그리고 흘러 들어온 힘을 모조리 백염으로 태워 세이블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정신을 악착같이 붙잡았다.

   여기서 정신을 놓는 순간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된다.

     

   “——-!”

     

   그러니 크라슈는 비명을 악착같이 삼키며 최흉을 밀어 넣고, 또 밀어 넣었다.

     

   어느새 시간 감각이 박살이 났다.

   크라슈는 전신이 용암에 빠진 듯한 감각과 함께 혼미해진 정신만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최흉은 계속해서 타올랐다.

   타오르고, 타오르고, 또 타올랐다.

     

   억겁과도 같은 시간.

   그러나 우주에도 끝이 있듯.

   이 기나긴 시간조차 결국에는 끝이 왔다.

     

   쏴아아-

     

   바람이 불어왔다.

     

   다 타버린 최흉의 씨앗이 바람에 으스러져 잿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그 앞.

   프레이야 산 본래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본래 크기인 초목들이 나타나며 이전까지 존재했던 꺼림칙한 기운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대신 싱그러운 느낌만이 숲 안을 가득 채웠다.

     

   쿠구구구구-

     

   저 멀리 천상사강과 맞부딪치던 거인이 무너져 내렸다.

   이카루스와 싸우던 익시온들이 하나둘 두 손을 들며 항복했다.

     

   모든 게 종식되어 가는 와중.

   그곳에서 크라슈는 그렇게 서 있었다.

     

   오랜 기간이었다.

   묵시록의 기사라는 악몽을 탄생시키는 최흉을 드디어 완전히 종식했다.

     

   그의 눈에 환희와 성취감이 들어설 만도 했지만.

   크라슈의 눈은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크라슈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늘 위, 먹구름이 드리웠다.

     

   쿠궁!

     

   동시에 먹구름 사이로 치솟은 번개가 여기저기 떨어져 내렸다.

     

   그러한 먹구름 위.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용의 몸은 전부 뼈와 살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용의 크기는 무려 프레이야 산맥 전체를 아우르고도 남을 만큼 압도적인 크기였다.

     

   백골과 살점만 남은 용이 붉은색의 눈을 빛냈다.

   크라슈는 용의 정체를 알고 있다.

     

   서쪽 맨 끝의 땅.

   먼 과거 세상을 멸망 시킬 뻔했다고 전해지는 용왕족, 악룡 바라카.

     

   놈이 죽고 나서 그 땅은 죽음의 땅이 되어 악룡의 무덤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악룡이 사룡이 되어 이곳에 등장했다.

     

   사룡의 등장에 프레이야 산 일대가 흔들렸다.

   그 정도로 사룡은 인외의 존재였다.

     

   그러한 사룡의 위.

   자그마한 덩치의 한 소녀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느긋이 내려왔다.

     

   그녀는 크라슈도 무척이나 잘 아는 인물이었다.

     

   까득!

     

   “아벨라.”

     

   그녀가 그동안 목표가 된 바를 이루기 위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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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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