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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3

       내가 여신과 직접 대화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여신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여신은 그 세상에서 나를 제외하려는 모양이다.

        

       그래야 여신이 다시 그 세상에서 활개 칠 수 있으니까.

        

       뭐, 내가 인간인 이상 당연히 수명도 인간의 수명을 벗어나지는 못할 거고, 여신도 결국 내 수명이 다한 다음에는 그 세상을 다시 움직이려고 들지 모르지만—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여신을 다시 막을 방법을 연구해서 남겨놓을 것 같긴 했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뒤에도 다시 나 같은 인간이 나타나 여신을 막을 수 있도록.

        

       과거에 팬그리폰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내가 이쪽 세상에 있도록 하는 게 좋은데, 그러는 김에 내가 아예 여기 눌러살도록 만들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쪽 세상에 미련을 가지지 못하도록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죄다 이쪽 세상으로 보내버리고, 내가 걱정할만한 부분들을 최대한 처리하고, 심지어 복권까지 되고.

        

       물론 이 모든 것이 우연이었는지 모른다.

        

       클레어는 앨리스와 나를 찾으러 넘어오기 위해 자기 힘을 썼을 뿐이고, 지난번에 돌아갈 준비를 했을 때는 조금 실수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내가 복권에 당첨된 것은 여신의 농간이 아니라 진짜로 그냥 우연일지도 모르고.

        

       …….

        

       그럴 리가 없잖아?

        

       이런 우연의 일치가 기막히게 연속해서 일어날 수는 없다. 내가 매주 복권을 사던 사람도 아니고, 이쪽 세상에 돌아와 처음 산 복권이 바로 1등이 된다? 그것도 수동과 자동 중에서 굳이 수동으로 뽑은 두 개의 번호가 중복으로 1등?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까놓고 말해서 ‘제발 그냥 거기 있어 줘’라는 거잖아.

        

       그쪽 세상을 통째로 이곳으로 끌고 오지 않는 이상, 나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다. 애초에 얘네들을 여기 보낸 게 잘못이다.

        

       내가 만약 혼자였다면, 돌아가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해서 포기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아이들이 넘어온 이상 얘네들 때문에라도 포기 못하지.

        

       겉으로는 속 편하게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겠냐고.

        

       “맛있어…….”

        

       …….

        

       아니, 뭐, 미아가 겉으로는 저렇게 행복해 보여도, 속으로는 분명히 걱정을—

        

       “그냥 여기서 쭉 살고 싶다…….”

        

       …….

        

       [헉]

       [설마 미아 쫓아낼 예정?]

        

       “그런 예정 없습니다.”

        

       사람이 많아진 김에 이사 가는 건데 쫓아내겠냐고.

        

       이제는 앞으로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데.

        

       아파트 가격을 알아보니, 너무 비싼 곳이 아니라면 10억 내외로 구입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10억 중에서 다시 5억을 한 사람당 1억씩 나누어 가져도 남는 돈은 5억.

        

       그런데 앞으로는 집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 돈은 대부분 생활비로 쓰일 것이다. 어디 놀러 다니더라도 각자 돈이 1억 원씩 있으니 걱정이 없다.

        

       그런데 굳이 쫓아낼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돈을 ‘진짜로’ 나누어 가질 생각은 없다. 증여세라는 게 있으니까. 한 번에 1억 원씩 되는 돈을 다른 사람 명의의 통장으로 옮겨버리면 국세청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다.

        

       차라리 조금씩 나누어서 용돈 주는 식으로 나누어주는 쪽이 훨씬 안전하겠지. 그렇게 하더라도 어차피 돌아갈 곳이 있는 애들이니 큰 욕심을 부리지는 않을 거다. 이쪽 세상의 돈을 남겨봐야 가지고 가도 쓸모가 없으니.

        

       애초에 돈 걱정 할 필요가 없는 애들이기도 했고.

        

       [미아쟝…… 대체 무슨 삶을 살아와서ㅠㅠ]

       [애 굶겼냐]

        

       아니, 애초에 서류상으로는 동갑이라고.

        

       내가 굶기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솔직히 우리 다섯 명 중에서 먹성으로 따지면 미아가 제일이었으니까.

        

       미아를 설득해 먹방을 시도해 본 것은 좋았지만, 뭐랄까, 덕분에 여러모로 오해받는 중이다. 키도 작고 마른 미아가 입안 가득 뭔가를 넣고 우물거리는 것이 여러모로 짠해 보인 탓이다.

        

       나는 정말로 미아를 굶긴 적이 없다.

        

       아니, 미아뿐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아이들 모두 굶긴 적 없다. 내가 먹일 수 있는 한 열심히 먹였지.

        

       미아 앞에 있는 것은 그냥 치킨이었다. 먹는 김에 다 같이 먹기 위해 순살 치킨을 꽤 많이 샀다.

        

       내가 아제르나로 가기 전에는 알고 지내던 다른 여자들이 없었기에, 나는 10대에서 20대 여성이 얼마나 먹는지 잘 모른다.

        

       그래도 아주 어렸던 시절 사촌 여자애들이 먹던 양을 어렴풋이 떠올려 보자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조금 미안하지만, 클레어, 미아, 앨리스, 샤를로트는 그 애들보다 훨씬 많이 먹는 편이었다.

        

       물론 내가 남자였을 때만큼 많이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해는 한다. 그만큼 쓰는 열량이 많은 애들이니까.

        

       “미아, 누가 빼앗지 않으니 조금 천천히 드십시오. 그러다 체합니다.”

        

       “으응?”

        

       평소에는 존댓말을 하던 미아였지만, 아무래도 입 안 가득 뭔가를 집어넣은 채 말을 하니 반말처럼 들렸다.

        

       채팅창은 귀엽다고 난리가 났다.

        

       이쪽 세상에서 지냈던 내가 저 나이 때 저런 식으로 음식을 먹었다면 귀여웠을까 생각해봤다가, 나는 금방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그렇게 잘 생겼으면 내가 여자친구라도 있었겠지.

        

       나는 말없이 미리 준비해두었던 냅킨을 들어 미아의 입가를 살짝 닦아주었다.

        

       [엄마다 엄마]

        

       그런 도네가 와서, 나는 그냥 말없이 꺼버렸다.

        

       “그런데, 정말로 이렇게 먹기만 하는데 사람들이 보는구나.”

        

       “그냥 먹어서가 아니라, 잘 먹는 사람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앨리스가 감탄하길래 그렇게 말해줬다.

        

       그리고 아마, 먹고 있는 다섯 명이 모두 미소녀이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그것도 한국어를 엄청나게 잘하는데 생긴 건 전형적인 유럽계 백인인 미소녀들.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 먹는 것을 보는 방송의 조회수가 수백만 회씩 찍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라도 보고 싶을 것 같다. 뭐, 먹으면서 정말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몇 번 보다가 질려서 보지 않게 되겠지만.

        

       *

        

       “…….”

        

       치킨은 한 조각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딱히 부족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 사람당 한 마리는 조금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바닥에 누워있으니 속이 더부룩해지는 걸 보면.

        

       그래도 내가 이쪽 세상에 살 때 쓰던 삼십 대의 몸이 아니라 십 대 청소년의 몸이라 다행이다. 너무 배불러서 느끼는 더부룩함은 금방 사라질 테니까.

        

       “여기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실감이 안 나.”

        

       “여기 오기 전에는 훨씬 넓은 곳에서 살았으면서?”

        

       문득 입을 연 클레어에게 앨리스가 딴지를 걸었다.

        

       “거기랑 여기는 다르지. 내가 원래 살던 집이랑…… 뭔가, 언니나 너, 미아랑 샤를로트하고 같이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라서.”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도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도 언젠가 돌아갈 테니까요. 여행이라고 하면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희는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요.”

        

       나의 대답에 샤를로트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즐거워요.”

        

       미아의 말이었다.

        

       “음…… 솔직하게 말하자면, 더 넓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건 좋아. 사실 다섯 명이 지내기에는 조금 불편하긴 하지.”

        

       앨리스가 말했다.

        

       “하지만, 음, 뭐랄까. 왠지 거기 가면 이렇게 다 같이 누워있던 때가 그리워질 것 같아. 나는 이렇게 지내본 적이 이번이 처음이니까.”

        

       “…….”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앨리스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큰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아련해지려는 그 순간에,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거기라고 거실이 없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차피 신발 벗고 들어가서 지내는 것은 똑같고, 다섯 명이 두 방에 나누어 들어가 산다고 하더라도 가장 자주 있는 곳은 거실일 테죠. 정 이렇게 누워있던 것이 그립다면 거실에 이불을 깔고 다 같이 누워서 자면 됩니다.”

        

       “…….”

        

       “저, 언니,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클레어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여기서 살다가 아제르나에 가게 되었다고 했었죠. 그렇다면, 역시 그 아파트는 집으로서는 꼭 살아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인가요?”

        

       샤를로트가 물었다.

        

       “꼭 살아보고 싶다기보다는…… 이 도시에서 살기 가장 최적화된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곳은 꿈조차 꾸지 못할 만큼 비싸고요.”

        

       물론, 아파트도 일반적으로는 꿈조차 꾸기 어려울 만큼 비싸지긴 했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

        

       그런가?

        

       내 집 마련이 꿈이긴 했는데. 뭔가……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곳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언니는 이번에도 우리를 생각했다는 소리네.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불안하다는 소리잖아.”

        

       “…….”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대답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었을 뿐.

        

       하지만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편안했다.

        

       ……클레어가 했던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조금 이해가 갈 정도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딩딩딩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단편을 하나씩 써서 회지를 내보려고 한 적은 있는데, 사실 그때 저 포함해 아무도 단 편 한 편을 완성하지 못해 그냥 흐지부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시도해도 소설을 완성해보지는 못했고요. 하지만, 여기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뒤 여러분을 만나 하나하나씩 소설에 마침표를 찍어나가고 있네요. 완결 낼때마다 그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을 위해 꾸준히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다해임다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전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전은 대부분 마음 편하게 쓸 수 있어서 좋습니다. 본편 설정을 따르면서도 일상적인 내용이 많아서 쓰는 저도 마음이 편해지네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이 완결난 뒤에도 그 소설 속의 캐릭터들이 확실하게 해피엔딩을 맞이했다는 증거가 되는 단편들을 좋아합니다. 종종 완결 후에도 이 캐릭터들은 이러이러하게 살고 있다, 그런 내용의 외전이 공개되는 소설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외전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물론 지금 쓰고 있는 이 부분은 후일담이라기보다는 IF스토리입니다만… 그래도 일단 본편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이 그대로 나오는 외전이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서 읽어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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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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