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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3

       지금까지 그녀는 그리 생각했다.

         

       백우진.

         

       고작 이십 대 중반을 가까스로 넘긴 사내인데도 의젓하고, 기세가 남달라 무슨 일이 생겨도 의지할 수 있는 사내라고.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닥쳐와도 넘어질지언정 쓰러지지 않고, 휠지언정 꺾이지는 않는 이.

         

       ‘그리 생각했건만….’

         

       그런데 지금.

         

       그 생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그는 강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이미 더 이상 새로 새길 상처가 없을 만큼 다치고 찢긴 인간일지도.’

         

       그렇기에 어떤 상처를 입어도 이미 겪은 아픔인 것처럼 초연하고,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으레 겪는 일인 것처럼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대체….’

         

       그녀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가 겪은 수많은 고난과 시련들.

         

       그 모든 것에서 초연해질 정도면 대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아로새겨야만 가능하단 말인가.

         

       저 나이에 그렇게 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이 녀석.’

         

       그를 향해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측은지심이 밀려온다.

         

       그러한 감정을 애써 숨기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본녀에게 조금만 시간을 다오.”

       “시간이라면….”

       “네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느냐.”

         

       백우진은 지금보다 더 험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혈교와 혈교주.

         

       그들 또한 중원 무림사에 거룩하게 기록될 만큼 지독히도 강하고, 악랄한 이들이었으나.

         

       ‘천마는 놈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가 마지막 목표로 삼은 천마는 혈교주보다 몇 배는 더 강하기에.

         

       그런 그녀를 도모한다는 것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큰 고난이 예정되어 있음은 명백한 일.

         

       “일이 전부 끝난 뒤에…, 그때 다시 이야기 나누자꾸나.”

         

       백우진은 그녀의 눈을 보았다.

         

       한층 더 애정이 짙어진 눈빛.

         

       그러나 그 속에 담긴 것만은 애정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새로이 깨닫기라도 한 듯, 애정보다 짙은 측은함이 깃들어 있다.

         

       “그게 편하다면 누이 뜻대로 해요.”

         

       백우진은 웃는 얼굴로 그리 대답했다.

         

       측은지심 따위의 감정으로 서로에게 원치 않은 선택이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하기에.

         

         

       * * *

         

         

       제법 깊은 상처를 온전히 회복하고 마침내 병상을 털고 일어났을 때.

         

       세상은 빠르게 회복되어 가는 중이었다.

         

       혈교주는 죽었고, 중원 침공의 첨병이었던 팔혈귀들도 전부 목숨을 잃었다.

         

       중간에서 혈교를 운영하던 두 호법 또한 며칠 전에 하나는 죽고, 하나는 생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들의 목을 베어낸 것은 다름 아닌 흑사패황 도굉이었다.

         

       혈교주와의 일전을 기대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들려온 사망 소식에 실망한 그가 친히 정예를 이끌고 나가 도망 중인 두 호법을 잡아 한 놈을 단칼에 죽이고, 다른 한 놈은 어떻게든 살겠다고 그대로 항복을 선언했다던가.

         

       ‘참 대단한 양반이야.’

         

       그야말로 천상 무인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패배하는 순간 목숨을 잃게 될 싸움마저도 고대하고 있었다니.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지금껏 숱하게 목숨을 건 싸움을 겪어오긴 했으나, 그걸 기대해본 적 따위는 없었기에.

         

       “상황은 나쁘지 않네.”

         

       하오문을 통해 받아본 정보를 토대로 확인한 중원의 상황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제는 잔당이 되어버린 혈교도들의 토벌도 수월하고, 절망에 시름하던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중원 전역을 깊게 할퀴고 지나간 흔적을 완전하게 회복하기 위해선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래도 희망만 있으면 일단 살아가는 게 인간 아니던가.

         

       ‘결국엔 전부 회복하겠지.’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

         

       제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고, 삶의 터전이 무너져내려도 새로이 쌓아 올리는 존재들.

         

       작은 희망 속에서 움튼 씨앗이 싹을 틔우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아왔기에, 백우진은 이번에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다만 그 싹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려면 큰 산 하나를 넘어야만 했다.

         

       ‘천마….’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그녀에게서 한 번 더 세상을 지켜내야만 한다.

         

       이세계에서 이곳까지 넘어온 그녀의 목표가 오롯이 자신인지, 아니면 이 세상 전부를 부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평화로운 해결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겠지….”

         

       혈교주의 심장을 꿰뚫고서 자신을 노려보는 천마의 표정이 어제 겪은 일인 것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짙은 원망과 애정.

         

       사랑한 만큼 미워하게 되어버린 여인의 애증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눈동자.

         

       “…….”

         

       떠올리는 것조차 죄스러워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눈앞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정사 연합의 무인들이 보인다.

         

       여전히 바쁜데도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 있다.

         

       지금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새로이 살기 위해 바쁜 것이기에.

         

       “천광검신이다!”

       “저분이 바로 백우진 대협…!”

       “어쩜 저리도 멋있으실까.”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의 소음이 뒤따른다.

         

       연합에서 일하는 사용인부터 무인들까지.

         

       백우진이란 이름 석 자는 그들 모두에게 동경 그 자체가 되어버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가는 곳마다 환대 아닌 환대를 받으며 백우진이 다다른 곳은 연합 내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시체 안치실.

         

       “어서오십시오, 백우진 대협.”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경비를 맡고 있던 무사들이 백우진을 향해 깍듯이 인사하며 길을 터주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한기가 온몸을 옥죈다.

         

       동시에 시큼한 약물 냄새과 시체 썩은 내가 코끝을 찌르고 들어왔다.

         

       인상이 절로 찡그려지는 곳.

         

       그곳에 구태여 발걸음을 한 이유는 혈교주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분명 천마는 혈교주의 심장에서 무언가를 빼내어 움켜쥐었다.’

         

       그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제 발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온 혈교주를 따라 이곳까지 온 이유.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혈교주의 심장에 무엇이 박혀 있었기에 그것을 가지러 이곳까지 친히 행차했을까.

         

       의문을 품은 채 마주하게 된 혈교주의 시체.

         

       여기저기 썩은 부분이 있기는 하나, 빠르게 얼린 덕분에 죽을 때의 모습이 제법 남아 있다.

         

       백우진은 미리 준비해 온 소도를 이용하여 그의 심장 부분을 파헤쳤다.

         

       연합과 미리 이야기가 끝난 사안인 만큼, 거침없는 손놀림이 이어졌다.

         

       그러기를 잠시.

         

       백우진은 마침내 찾았다.

         

       “…여긴가.”

         

       꿰뚫리고, 찢긴 그의 심장 안쪽.

         

       정확히 중간 부분에 자리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공간을.

         

       혈교주는 제 심장을 열어 저 안에다 무언가를 넣어두었으리라.

         

       그렇다면 대체 저것이 무엇인가인데….

         

       “형태는…, 작은 구슬인가.”

         

       심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형태가 원형이라는 것과 그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 정도.

         

       손으로 쥐면 완벽하게 가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

         

       문득 마기에 물들어 있다가 제 손에 죽음을 맞이한 태백호가 떠오른다.

         

       “분명 녀석도 천마에게서 지키고 있던 무언가를 빼앗겼다고 했지….”

         

       수백 년 묵은 영물이 지키고 있었다던 물건이라면 필히 그 쓰임새가 보통내기가 아닐 터.

         

       더군다나 다른 하나의 소유주가 혈교주였으니, 말 다 한 셈 아닌가.

         

       심상치 않은 물건임은 알겠다.

         

       그렇다면 이제 그것이 어떤 식으로 쓰일지가 관건인데.

         

       “알아볼 방법이….”

         

       확실치는 않으나, 한 가지 시도해볼 법한 방법이 남아 있다.

         

       이백 년간 중원을 도모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주었던 혈교의 땅속 낙원.

         

       그곳이라면 무언가가 남아 있지 않을까.

         

       시체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은 백우진은 곧장 연합의 두 우두머리, 사흑련주와 무림맹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난데없는 그의 등장에도 두 사람은 친히 반겨주었다.

         

       “오, 자네 왔는가. 부상은 다 회복되었나 보군.”

         

       무림맹주 현학의 걱정 어린 말투에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는 백우진.

         

       “연합의 의원들이 좋은 약을 아낌없이 써준 덕에 쾌차하였습니다.”

       “허허, 약으로 다스릴 수 있다면 얼마든 내어줘야지.”

         

       짧은 대화 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도굉도 무뚝뚝한 말투로 그를 반겼다.

         

       “어서 오게.”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백우진이 묻자, 도굉이 콧바람을 내뿜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네 덕에 너무 잘 지냈네. 그래서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야.”

       “……?”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우진.

         

       대체 잘 지냈다는 게 언제부터 문제가 되는 일이란 말인가.

         

       “혈교주, 그자의 무위는 어떻던가. 아주 대단했을 테지? 무엇을 사용하던가?”

       “어, 음.”

         

       아무래도 자신 혼자서 혈교주와 생사결을 벌인 것이 영 못마땅한 모양.

         

       은근히 좀스러운 그를 달래기 위해 백우진은 하나의 약속을 내걸었다.

         

       “조만간 비무라도…?”

       “음, 좋네.”

       “…….”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무는 모습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잠시 떠버린 분위기.

         

       현학이 그사이를 시의적절하게 파고들어 대화를 환기시켰다.

         

       “한데, 여기까지는 무슨 일인가? 본 맹주와 사흑련주에게 할 말이 있어 찾아온 듯한데.”

       “예. 두 분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됨을 느낀 백우진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목적을 토해냈다.

         

       “혈교의 은신처를 수색하고자 합니다.”

       “수색대를 꾸리고 싶다는 말인가?”

       “예.”

       “그거야 조만간 해야 할 일이니 어렵지 않네만…, 자네가 직접 갈 셈인가?”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 있다.

         

       백우진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읽은 도굉이 입을 열었다.

         

       “할 말이 그것으로 끝인가?”

         

       더 있지 않느냐는 듯한 물음에 백우진이 곧장 대답했다.

         

       “련주님께서 생포하신 호법과 조원들이 넘긴 일혈귀가 필요합니다.”

         

       이곳을 찾은 진짜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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