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3

   카리아에게 자칼을 넘긴 나는 친구들을 이끌고 내가 목표로 한 던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곳은 솔라딘 왕국에 속한 남작령의 영지였다.

   

   역사가 그리 길지도 않고 그렇다 하여 권력이 큰 것도 아닌 남작령은 중형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우리들을 거부하지 못했다.

   

   왕자님에 공작 영애에 백작 영애에 교회의 고위직까지.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남작 가문 하나쯤은 가뿐히 지워버릴 수 있는 전력이 한 곳에 모여 있는데 그들이 어찌하겠는가.

   

   “바라시는 게 있다면 무엇이라도 말씀하시지요! 최선을 다해 협력하겠습니다!”

   

   리즈 남작은 인사차 방문한 우리를 보면서 식은땀을 멈추지 못했다. 우리가 딱히 뭐라 위협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위의 차이라는 게 이토록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거구나. 실시간으로 수명이 줄어가는 듯한 리즈 남작을 불쌍하게 바라보고 있으려니 할아버지가 헛웃음과 함께 목소리를 냈다.

   

   <너와 네 친구들의 외견을 봐라. 누구라도 겁을 먹지 않겠느냐.>

   

   …음. 그것도 그렇네.

   

   나야 따로 말할 필요도 없고.

   

   조이도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성격 더러운 악역영애로 보이는데다가.

   

   프레이는 입 다물고 있으면 냉혈한 같고.

   

   아서는 시종 딱딱한 표정밖에 지을 줄 모르는 인간이니.

   

   리즈 남작이 자꾸만 페이비 쪽에 시선을 보낸 게 이해가 된다.

   

   그거 제발 좀 살려달라는 의도였구나.

   

   이 이상 리즈 남작과 대화하면 진짜 혼절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가보겠단 말을 꺼냈더니 남작이 비굴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저희 아들이 여러분과 함께할 테니 필요한 게 있다면 부디 저희 아들에게 이야길 해주십시오.”

   

   아니. 야. 너도 위장에 구멍이 날 듯한 인선인데 여기에 네 아들을 보내겠다고? 네가 그러고도 아버지냐?

   

   <저건 오히려 자기 아들을 위한 선택이다. 높은 사람들과는 이런 식으로라도 면면을 쌓아두는 게 좋거든.>

   ‘짬처리를 한 게 아니었군요?’

   

   하마터면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떠넘기려는 나쁜 아빠라고 착각할 뻔 했네.

   

   <글쎄다.>

   ‘…저 사람 대변해 주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저 자의 속을 어찌 알겠느냐. 난 카리아가 아니다.>

   

   좋게 해석했을 때 이럴 뿐이란 할배의 이야기에 그게 뭐냐 투정을 부리던 나는 우리를 안내하러 온 리즈 가문의 장남을 보고 고갤 갸웃했다.

   

   어라? 얘 어디선가 본 적 있는데?

   

   분명 아카데미 입학 시험에서 나랑 함께 했던 애야.

   

   그러니까 이름이…

   

   생각 안 나.

   

   메스가키 스킬이 부르던 조무래기란 별명 밖에 기억이 안 난다고!

   

   그게 너무 뇌리에 강하게 박혔어!

   

   “리즈 영식. 여기서 다시 뵙네요.”

   

   내가 머뭇머뭇 거리고 있으려니 조이가 앞에 나서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파트란 영애께서 절 기억 해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너무 겸손한 것도 좋지 않다. 제이콥 리즈. 무난한 성적으로 2학년에 진급하는 데 성공한 자네는 기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

   

   아! 그래! 제이콥! 제이콥이었어! 아서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기억을 떠올린 나는 환히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안녕~ 허접한 조무래기~”

   “알른 영애.”

   

   앞서 두 사람의 칭찬을 들은 탓일까. 제이콥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나도 자기를 칭찬해줄 거라 생각하는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절로 장난기가 생겨났다.

   

   “왜 이렇게 눈이 징그러워?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걸까?”

   “저어. 그.”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줄지도 몰라.”

   

   히죽거리면서 제이콥을 올려다봤더니 그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반응 재밌네. 평소 내 주변에 있는 애들은 이런 어투에 너무 익숙해져서 잘 안 당해주는데 얘는 내성이 부족해서 그런가 툭 건드리면 그대로 반응이 나와.

   

   좀 더 가지고 놀아 볼까 생각하던 나의 목소리는 조이의 손에 의해서 가로 막혔다.

   

   “영애! 표정 관리!”

   

   저택에 있을 때는 별 말 하지도 않더니 왜 이제 와서 난리야? 반응 좋은 장난감 좀 가지고 놀면 안 돼?

   

   나는 눈빛으로 불만을 표시했지만 조이는 입을 틀어막은 손을 풀어주지 않았다.

   

   “…하하. 아. 그게. 일단 던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뒤늦게 평정을 되찾은 제이콥은 재빠르게 등을 돌려 벌개진 얼굴을 숨긴 후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느끼던 미간을 찌푸리다가 나는 조이의 손바닥에 숨을 내뱉었다.

   

   “히약?!”

   

   외모에서 상상할 수 없는 비명소리를 낸 조이는 자신을 향하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에 다급히 부채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 위로 드러난 시선만으로 날 노려봤고 그걸 본 나는 보라는 듯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영애!”

   “흥이다.”

   

   후흫. 그러게 왜 구경이나 하고 있지 내 입을 가로막고 난리람?

   

   이번 건 네 잘못이야. 얼빵아.

   

   *

   

   알새틴이 일전에 와서 미리 협력을 구해둔 덕분일까.

   

   리즈 영지의 중형 던전 인근에는 이미 그럴 듯한 숙소가 만들어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시종이나 경비, 요리를 해줄 사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가문에 있을 때보다도 황송한 대응에 난 부담스러움을 느꼈지만 내 친구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런 반응에 익숙한 듯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늘어놓았다.

   

   <당연한 일 아니냐? 저만한 지위가 있는데 떠받들어지는 데 익숙한 게 정상이지.>

   ‘전 안 그런데요.’

   

   대접은커녕 욕지거리나 안 들으면 다행인 삶을 보내다 보니 이런 대접이 어색해.

   

   <그건… 크흠.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지. 내가 알려주도록 하마. 어찌해야 하느냐면…>

   

   리즈 가문 사람들의 배려 속에서 준비를 끝마치고 나니 가문에 속한 기사 중 하나가 나와서 우리에게 던전에 대한 설명을 하려 했다.

   

   “던전 공략에 들어가시기 전에 미리 던전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되도록 별 말 하지 않고 설명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는 던전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아냐는 말에 대답하기 귀찮았으니까.

   

   “이 던전은 총 8가지 패턴으로 되어 있고.”

   

   아냐. 특수 변형까지 합치면 총 14개야.

   

   “함정의 구별 같은 경우에는 표식으로 구분을.”

   

   이것도 아냐. 표식은 함정이랑 아무 상관없어. 함정을 구분하려면 바닥을 살펴야 한다고.

   

   “보스의 패턴 같은 경우에는…”

   

   …아니. 이것도 엉망이고 저것도 엉망이고. 너네 진짜 이 던전을 관리하는 놈들 맞냐?!

   

   하. 씨이이바. 도저히 못 참겠다. 변명이고 나발이고 한 번 엎어야겠어.

   

   “야. 멍청한 쓰레기 기사.”

   “…예?”

   “닥쳐. 네가 하는 병신 같은 설명을 듣고 있으니까 귀가 오물로 범벅이 되는 느낌이 들잖아.”

   

   참다참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기사가 들고 있는 교본을 뺏어서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수정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내 진심을 담긴 온갖 매도가 기사에게 날아들었지만 난 자그마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 따위 병신 같은 공략법을 믿고 있는 놈한테는 한 소리를 해주는 게 맞아!

   

   씩씩거리며 교본을 완성시킨 나는 옛 선현의 말씀이 옳았음을 떠올렸다.

   

   제대로 된 대답을 듣고 싶으면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열 받게 해서 입을 닫을 수 없게 만들어라.

   

   젠장. 이번에는 내가 당했지만 다음번엔 아냐. 나중에는 내가 이 방법으로 다른 사람 열불을 터지게 만들 거야! 반드시!

   

   그리 다짐한 나는 리즈의 기사를 내버려 둔 채 친구들을 이끌고 던전의 입구로 향했다.

   

   “루시 알른. 뭐 하는 거냐.”

   

   당연하다는 듯 던전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아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눈이 없으신 것도 아닌데 보면 알지 않나요?”

   “중형 던전의 제한은 네 명까지지 않나.”

   

   아. 맞다. 나 아직 얘네들한테 그거 안 알려줬었지.

   

   …근데 던전의 인원제한이 하나 늘어났단 걸 어떻게 납득시켜야 하지?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 거야?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그냥 말로 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낫다 싶어서 아서, 조이, 프레이 세 사람을 반 강제적으로 던전 안에 밀어 넣은 후 페이비와 함께 그들에게 합류했다.

   

   거의 던져지다시피 했던 아서는 짜증을 내려다 내 옆에 페이비가 있는 걸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어떻게 중형 던전 안에 다섯 명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불쌍왕자님. 제가 너~무 특별한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이니까. 불쌍왕자님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시면 된답니다?”

   “그건 뭔… 아니다. 됐다.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손쉽게 친구들을 납득시킨 나는 그들을 데리고서 빠른 속도로 던전을 진행했다.

   

   잡몹들을 하나하나 상대하고 있어봐야 시간낭비일 뿐이야. 최속으로 목표 장소에 도착해야 해.

   

   아카데미 던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썩은물 특유의 루트를 밟은 나는 채 10분이 지나기 전에 2층에 있는 함정 앞에 도착했다.

   

   “이게 기사가 이야기했던 함정인가.”

   “이걸 밟으면 마물들이 몰려온다고 했었죠.”

   

   기사단에서 훈련을 거듭해 온 덕분일까. 내가 꽤 진심을 담아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서와 조이는 상당히 여유로워보였다.

   

   프레이야 뭐 예전에도 내 속도를 따라잡던 애였으니 말할 필요가 없고. 페이비도 살짝 헥헥대긴 하지만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는 수준.

   

   모두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대뜸 함정에 발을 디뎠다.

   

   그러자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가 가로막힘과 동시에 방 안에 몇 개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이 던전 특유의 함정인 몬스터 웨이브가 발동된 것이다.

   

   “영애?!”

   “루시 알른!? 뭐 하는!…”

   “투덜댈 여유가 있으면 싸울 준비를 하는 게 어때?”

   

   느긋이 방패를 치켜 든 나는 마법진 위에 생겨나는 여러 마물들을 구경하며 신성을 끌어올렸다.

   

   “젠장!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하게 해달란 말이다!”

   “일단 광역 마법으로 준비해 둘 게요! 페이비! 축복은!”

   “준비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거 좀 재밌을 것 같네.”

   

   지금의 친구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 번 볼까.

   

   기왕이면 한 번 들어왔을 때 던전의 모든 함정을 발동시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야 효율적으로 노가다를 뛸 수 있을 테니까.

   

   <루시. 끊임없이 등장하는 적을 상대하며 경험을 쌓겠다는 의도는 알겠다만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지 않으냐?>

   ‘아그라의 개입을 말하는거죠? 그거라면 상관 없어요. 아니. 오히려 개입해주는 쪽이 더 좋아요.’

   <…뭐?>

   ‘이 던전에서 그 녀석이 일으킬 수 있는 변수라고 해봐야 뻔하거든요.’

   

   평상시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제발 끼어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늘어나지.

   

   할아버지에게 별 문제 없다는 답변을 돌려 준 나는 마물무리가 달려드는 걸 보고서 방패를 치켜 들었다.

   

   일단 가뿐하게 반나절 정도 노가다를 뛰어 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