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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3

       “언니! 언니! 언니이이!!”

       

       쿠당탕탕!

       

       로즈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방으로 들어왔다. 성현과 과외를 하고 있었던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내가 조용히 좀 하고 있으라고 말했지?”

       “언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뭐?”

       “인간들이… 인간들이…!”

       

       로즈마리는 자초지총을 설명했다. 사정을 들은 내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수업도 막 끝난 참이다. 장장 9시간에 걸쳐 고생 꽤 했지. 나도 한 텀 쉬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사고를 쳐?

       

       “배운 데까지 연습문제 풀고 있어.”

       

       성현에게는 그리 말해두었다. 성현은 피곤한 기색으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대에 가는 길은 험난했다.

       

       나는 발발 떨고 있는 로즈마리를 데리고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게 뭐냐.”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커피캔.

       

       어째서인지 박살이 난 책상과 웹캠.

       

       정신없는 속도로 올라오고 있는 채팅창까지.

       

       방 풍경은 살풍경이나 마찬가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의자에 앉아 채팅창을 확인했다. 읽기만 해도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채팅이 촤라락 올라오고 있다.

       

       대충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불특정 다수에게 얼굴 공개를 했다는 거 아니야. 그것도 실수로.”

       “넹….”

       “그런데 다들 너를 로즈마리 본인으로 알아봤고, 이제 자세한 신상까지 털리게 생겼다 이거지?”

       “벌써 인터넷에 소문이 다 난 것 같아요. 저 이제 어떻게 해요?”

       

       나는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신상 공개라.

       

       일반인이 당해도 기분 더러운데, 하물며 다른 세계 사람인 나와 로즈마리야 오죽할까.

       

       이걸 성현에게 수습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그는 무관하다.

       

       더욱이 성현은 수험생 신분이기도 하다. 수험생에게 심적인 부담을 짊어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네가 알아서 해결해.”

       “언니이….”

       

       로즈마리가 눈망울을 적셨다. 그러더니 옷소매로 눈가를 찍기까지 한다.

       

       하는 짓이 길가에 버려진 고양이 같았다.

       

       내 입에서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둘이서 해결해 보자.”

       

       로즈마리의 입꼬리가 빵끗 올라간다.

       

       “정말요? 도와주시는 거예요?”

       “하아, 그래.”

       

       동생이 사고치면 언니도 연대 책임이지. 방임한 대가도 있고 말이다.

       

       어차피 이 세상에 오래 있기 위해선 이걸 수습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차원의 균열이 심해지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해결하죠?”

       “일단 문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지.”

       

       누구나 아는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 만약 내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1시간이 주어진다면, 그중 55분을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데 사용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머지 5분을 쓰겠다.

       

       그만큼 문제 규정은 중요하다.

       

       현재 로즈마리가 맞닥뜨린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개인정보 침해 문제겠고, 다른 하나는 차원 간의 균열 문제겠지.”

       

       다행히 아직 여신으로부터의 전언은 없었다. 이 정도로는 균열 축에도 못 든다는 소리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 로즈마리가 스마트폰이라도 씹어먹는 장면이 생중계된다면…….

       

       “어후.”

       

       상상만 해도 난리겠군.

       

       “이제 사람들 반응부터 확인하자.”

       “…꼭 봐야 하나요?”

       “사람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찾아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 아니야.”

       

       로즈마리는 내 등 뒤로 쏙 숨었다. 그녀답지 않게 소극적이었다.

       

       뭐지, 심연이라도 보고 온 건가.

       

       대체 어떤 또라이들이 내 동생을 단기간에 이렇게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동했다.

       

       나는 곧장 인터넷을 켜고 검색창에 로즈마리를 검색했다.

       

       [연관 검색어 : 블루베리 / 블루베리스무디 / BubbleMellow / 로즈마리 얼공 / 블루베리 얼공 / 허접베리 / 라즈베리 / 스트로베리 / 말간하늘 / 다키스트 아카데미아 / 닼아 진엔딩 스피드런 / 바보베리]

       

       “연관 검색어에 허접베리도 있네.”

       “이, 이, 이 인간들이…!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대중에게 놀림받는 전(前) 왕녀님 현(現) 집정관이라. 이런 그림 흔치 않은데.

       

       “기다려 봐. 얼마나 까발려졌나 한번 보자고.”

       

       평생 안 들어가던 커뮤니티 사이트까지 뒤적거리며 동생의 신상이 어디까지 털렸는지를 확인했다.

       

       [제목 : 오늘 BubbleMellow 얼공함 ㅋㅋㅋㅋㅋㅋ]

       

       [(이미지 첨부)]

       

       [설마 여자였을 줄은 몰랐지 ㄹㅇㅋㅋㅋㅋ]

       

       일단 이 정도는 알고 있었던 거고.

       

       [제목 : BubbleMellow = 로즈마리 확정 ㄷㄷㄷㄷ]

       

       [(동영상 첨부)]

       

       [어쩐지 손가락 움직이는 게 기계 같다 했음 ㅇㅇ 사람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님]

       

       심지어 동영상으로 키보드 타건하는 것까지 박제해 놓았다. 하필이면 캠 화질도 좋아서 또렷하게 보인다.

       

       [제목 : 내가 볼 땐 저거 로즈마리 아님]

       

       “이거 클릭해 봐요.”

       

       로즈마리가 기대에 부푼 얼굴을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상 정보와 큰 상관이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빨리 눌러보라는 동생의 권유에 클릭해 봤다.

       

       [로즈마리라면 저렇게 멍청할 수가 없음 ㅇㅇ]

       

       [아무리 1천만원이라도 그렇지, 누가 도네 쏘는 소리에 놀라서 헤드셋을 집어던지고 그걸 또 캠에 맞춰서 강제 얼공을 함?] 

       

       [고의일까 생각도 했는데 허둥지둥거리는 거 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고]

       

       [내 생각엔 그냥 바보 멍청이 빡대가리인 듯 ㅇㅇ 이게 맞다]

       

       “이 개새끼가!!”

       

       로즈마리는 노발대발하며 모니터에 정권을 내지르려 했다. 내가 막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컴퓨터를 부쉈을 것이다.

       

       “입만 산 딱따구리 새끼! 이딴 글 쓰면 다야? 아이피 뭐야? 너 아이피 뭐냐고!!”

       “진정해 동생. 아이피 안다고 달라지는 것 없어.”

       

       여기서는 스코프도 못 쓴다. 정령도 없고 마력도 없는데 무슨 마법을 쓴다고.

       

       로즈마리를 겨우 진정시키고는 혼자서 탐색을 계속했다. 어디 사는지 추측하는 놈들. 여장한 거 아니냐고 의문을 가지는 놈들. ‘말간하늘’이라는 스트리머와는 무슨 관계냐며 온갖 가십거리를 만드는 놈들까지.

       

       온갖 억측과 의혹의 중심에 내 동생이 있었다.

       

       이 정도면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겠는걸.

       

       “자, 로즈마리.”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동생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이 없어. 코스프레라고 시치미를 떼는 거야.”

       “…코스프레요?”

       

       로즈마리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렌스 대륙에는 코스프레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 세상이 한참 전쟁통이었는데 그런 문화가 있을 리가.

       

       하는 수 없이 천천히 알려주기로 했다.

       

       “잘 들어. 코스프레라는 건 말이야. 변장 같은 거야. 우리가 마수였던 시절 인간들 틈에 안 들키고 섞였던 것처럼 하자는 소리지.”

       “그렇다는 말은…….”

       “지금부터 너는 로즈마리가 아닌 거야. 분장은 로즈마리처럼 하되, 로즈마리 흉내를 내면 안 되는 거지.”

       

       로즈마리가 손바닥을 탁 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를 저로 인식하는 인간들에게 혼선을 주자는 말이죠?”

       “그래. 괜히 숨는 것보다 당당하게 나서는 게 더 좋을 때도 있어.”

       

       머리카락은 염색이 되니까 바꾸지 않아도 된다. 눈동자는 컬러렌즈를 착용했다고 거짓말하면 되는 거고.

       

       “게다가 우린 이 나라 말도 유창하게 할 수 있잖아? 누구라도 너를 분장한 한국인이라고 생각할 거야.”

       

       물론 외모가 동양보다는 서양 스타일에 가깝지만, 이건 혼혈이라고 하고 넘어가면 되는 문제다.

       

       “인간 상대로 걱정할 거 없어. 평소대로 하면 되는 거야. 누가 진지하게 너를 게임에서 튀어나온 캐릭터라고 생각하겠어?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렇네요. 오히려 그런 쇼를 벌이면 언론을 장악하기 더 쉽겠어요.”

       “아니, 언론 장악할 생각은 하지 말고.”

       

       기계마수의 정복 본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알겠어? 즐기더라도 적당히 즐기고, 나나 집주인에게 방해가 될 만한 행동은 절대로…….”

       

       띠링!

       

       “응?”

       

       메시지가 왔다.

       

       여신이 보낸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말간하늘’이라는 닉네임을 지닌 게임 유저가 보냈다.

       

       [말간하늘 : 안녕하세요! 오늘 방송 잘 봤어요! ㅎㅎ]

       

       [말간하늘 : 오늘 코스프레하신거 정말 예뻤어요! 마지막에 모습 딱 보여주는 것까지… 최고였습니다!]

       

       [말간하늘 : 이렇게 연락드리는 건 다름이 아니라, 합방 제의를 하고 싶어서 그래요! 다들 버멜 님의 모습에 궁금증을 느끼더라구요. 벌써 유튜브에 관련 소식 영상도 뜨고 그랬어요!]

       

       “뭐?”

       

       [말간하늘 : 실례가 안 된다면 제 방송에 나와 주셔서 이야기를 나눠 주셨으면 해요.]

       

       스트리머와의 합방 제의라.

       

       이건 또 신박한데.

       

       “이 사람이 너랑 같이 얼굴 보고 방송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어, 저는….”

       “내 생각에 나쁜 제안은 아니거든.”

       

       다행히 이 사람은 로즈마리의 모습이 코스프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더불어 캠을 보여준 것도 이벤트성이라고 믿고 있었다. 역시 방송하는 사람은 마인드셋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이거라면 호기였다.

       

       “아예 방송에 출연해서 유명세를 얻고 와. 그러면 진짜 바캉스를 즐길 만큼 돈도 벌 수 있겠지.”

       “아뇨, 돈이라면 코인 마이닝을 해서 벌 수 있…….”

       “바보야. 코인 많이 하면 나라에서 여기 문 따고 들어올 수도 있어. 그러느니 방송 후원으로 벌어. 알겠어?”

       “하아…….”

       

       이건 해야 한다. 아니, 하지 않으면 성현에게 민폐를 끼치는 꼴이 된다.

       

       애먼 남자를 여장하는 놈으로 만들 수는 없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지구에서 로즈마리의 신분을 만들어 놓는 것이 상책이다.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내가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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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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