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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3

        

       포청의 감옥은 사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해봐야 짚을 깐 벽돌집에다 나무로 창살 만들어 구역을 나눠놓은 정도이니, 작정하고 탈출하려 하면 고수 아니라 건장한 성인 남성도 탈출할 수 있을 정도다.

       나무 창살의 한계야, 체중을 담아 들이받다보면 언젠간 우지끈 부러지고 말 테니까.

       그러니 무공 조금 익히면 탈출이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물론, 포청이기에 그렇다.

       포청의 감옥은 청의 고향 식으로 유치장에 해당하는 임시 구금 시설이니까.

       형부의 진짜 뇌옥은 만만하지 않지만.

         

       그러니 사파 무인들도 잠자코 기다렸다.

       심판(재판)이 열리지 않았으니 형이 떨어진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형부로 이송되는 것도 아니니 중형을 판결하려는 것도 아닌 모양이라고.

       옥리가 깐족거리지도 않고, 깐족거리기는 커녕 사파인들 기세에 짓눌려 코빼기도 안 보이는 참이다.

       부실한 식사라도 제때 나오기는 한다.

         

       그러니 일단은 인내, 또 인내.

         

       게다가, 큰소리 뻥뻥 치는 놈이 있었다.

       염방주 요환철이었다.

         

       “크흠. 남녕의 관리들 중에 제게 금은을 받지 않은 자는 단 한 명도 없다오. 얼마 잡아두지 않을 것이오. 바로 풀어주기에는 관부의 체면이 있으니 조금 눈치를 보는 중이 아니겠소이까. ”

         

       그러나 조광앙은 영 믿음이 안 간다.

         

       “벌써 사흘째가 아닌가. 확실하오? 금방 풀려날 수 있다며?”

         

       하지만 염방주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제 가슴을 땅땅 두드린다.

         

       “나만 믿으시라니까. 게다가 여기 포두가 내게 형님형님 하고 따른다오. 아마 지금 당장이라도 들이쳐 나오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끼기기긱! 철문이 바닥을 긁는 지저분한 소리가 요환철의 말을 끊는다.

       그리고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

         

       “죄인 요환철. 밖으로 나오시오.”

         

       그에 요환철의 광대가 위로 치솟는다.

         

       “거 보시오. 내가 이렇다니까.”

         

       “그런데 왜 자네만? 이보시오, 우리 사도건아 합종연합회의 정예무사들은 언제쯤 풀려나게 되는 것이오?”

         

       “모른다. 판관께서 결정하실 일이지.”

         

       “자자, 걱정 마시오. 유 판관 역시 나와 거의 친형제에 가까운 오랜 친구라오. 내 최대한 빠르게 꺼내 드리리다.”

         

       그에 옥리가 옥문을 열고, 요환철이 건들건들 여유롭게 빠져나온다.

         

       “아, 그래. 우리 옥리가 나랏일 하는데 영 딱딱하신걸. 내가 대우가 좀 서운했나? 혹시 염방까지 날 좀 데려다주겠나? 그럼 더는 섭섭하지 않게 해줄 터이니. 그 대신 여기 옥에서 고생하시는 우리 사도 건아 대협분들께 술이라도 대접하고자 하는데. 응? 어때?”

         

       요환철이 대놓고 뇌물을 제안했다.

         

       뒤편에서 조광앙이 피식.

       그래, 술 한 병이면 하루 정도는 더 참아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좌우로 펼쳐진 감옥에서도 꿀꺽 침 삼키는 소리며, 일부는 경박하게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자식들은 애비가 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있는데 어째 한 놈 찾아오는 놈이 없어? 이보게, 혹시 면회가 금지되어 있던가? 아니면 진짜 아무도 안 왔어?”

         

       그에 옥리가 고개를 젓는다.

       대단히 딱하다는 표정이라서, 요환철의 가슴 속에 울화가 확 치민다.

       하루에 겨우 몇 푼 받는 천한 옥리 주제에 감히 대 요가세가의 가주를 동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화가 치솟을 수밖에는.

         

       “하. 이 새끼. 너 이름 뭐야? 내 좋게좋게 봐주려 했더니 아주 하늘 높을 줄 모르고 기어오르네? 내 말 한마디면 포두들도 설설 기어.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 만만해 보이드나? 하. 내 어이가 없어서.”

         

       “그리 친하다면 관아 지리는 훤히 알겠소이다? 마중은 필요 없을 것 같소. 그리고 당신은 석방이 아니라 임시 석방이오. 쯧.”

         

       옥리가 그리 말하고는 쌩하니 혼자 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감히 이 요환철 님에게 무슨 싸가지 없는 태도인가 분노가 치밀지만, 아무리 인맥이 좋다해도 관아 안에서 피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저 건방진 새끼, 부모자식 피를 보고 나서도 저리 뻗댈 수 있나 두고 보겠다고.

         

       그렇게 혼자 씩씩거리며 밖으로 향하고 있자니, 문득 의문이 든다.

         

       석방이면 석방이지, 임시 석방이라니?

       내 옥중에 상을 치르는 경우를 빼면 나왔다 들어가는 경우를 알질 못하는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요환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아니야, 아니겠지, 하고 거의 뛰는 듯한 속도로 관아를 가로질러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요환철의 다급한 귀가는 타의에 의해 멈추고 말았으니, 관아의 대문 밖에 진을 친 무인들 때문이었다.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시오?”

         

       계림검파 문주 강수양이 묻는다.

       그에 요환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놈들, 설마! 내 자식들! 네놈들이 그러고도 정파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러나 강수양이 고개를 젓는다.

         

       “내 사문과 조사님들, 그리고 작고하신 스승님과 내 명예를 걸고, 요가염방에 그 어떠한 수작도 부리지 않았소이다. 여기에 계신 천화검께서도 보증하실 것이오.”

         

       “맞아요, 맞아.”

         

       그 옆에서 얄밉게 면사가 끄덕끄덕.

         

       “그럼, 누가, 너!”

         

       요환철의 손가락이 이번엔 다른 이, 장산무관주를 향한다.

       장산무관주가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양 팔을 들어 어깨를 으쓱거린다.

         

       “우리 장산무관이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내 원하신다면 모든 관주님들과 내 명예, 내 자식들 다 걸고 맹세할 수 있지. 우리 장산무관도 아무것도 안 했다오. 천화검께서 보증해 주시겠습니까?”

         

       “그럼요. 맞아맞아.”

         

       청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끄덕.

         

       사파 무인도 저 정도로 걸 사람은 다 걸고서 거짓말을 하기는 좀 꺼린다.

       물론, 안 하지는 않는다.

         

       요환철이 일단은 안도했다.

       그리고 나니 마음이 급하다.

         

       저 둘이 아니더라도 생각해보니 그저 풀려나기만 하면 장땡인 상황이 아니다.

       형제들끼리 원수 보듯이 했으니 저들끼리 해쳤을수도 있고, 안 그래도 총관과 부총관이 둘째와 첫째 잡고 쑥덕거리지 않던가.

         

       “이보시오. 문주. 내 집안에 변고가 생겼다고 하여 서둘러 돌아가는 길이오. 아무리 사도와 정파 사이의 원이 있다고 해도, 제 가족 안위를 돌보러 돌아가는 가장을 막아서야 되겠소? 내 부탁드리리다.”

         

       “더는 돌볼 필요 없소. 그 가족은 이미 망했으니까. 그 망나니, 당신네 셋째가 사사의와 작당을 하고 아주 독심을 품고 극독을 썼다지. 그리고 나선 하인들이 돈 될 것들 죄다 들고 날랐다던데. 쯧쯧. 평소에 인심을 좀 썼어야지 주인집에 초상이 났는데도 도적떼로 돌변하는 하인들이라니.”

         

       요환철의 심장이 다시 철렁 내려앉는다.

         

       “그 말은, 누가, 누가 죽었나? 연이? 성이? 아현이?”

         

       “당신네 자식들 다 죽었다던데? 아, 그 셋째는 살았겠군. 누가 더 살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깟 하찮은 일을 알아보기에는 본 문도 그간 할 일이 많아서 바빴단 말이오. 연회도 열어야 했고.”

         

       강수양이 서늘한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죽은 제자들 상도 치러주어야 했고.”

         

       그에 계림과 장산의 무인들이 일제히 병기를 뽑아 든다.

         

       “미안하오. 제자들 제사상에 올릴 원수의 머리가 필요해서 말이오.”

         

       “이런 비겁한!”

         

       “억울하게 죽은 제자들의 원혼을 달래주려면, 내 비겁자 소리를 들어도 감내하겠소이다.”

         

       “놈! 아예 작정을 하고 죽이러 왔구나!”

         

       이제 가족이 아니라 제 목숨이 경각에 달한 때다.

       요환철이 다급히 등을 돌린다.

       일단 관아로 피신할 생각이었다.

       어느새 관아의 대문이 굳게 닫혀있지만 않았다면 좋은 생각이었겠지만.

         

       심지어 으레 좌우와 중문으로 지키고 있어야 할 세 명의 정문 위사도 자취를 감춘 상태다.

         

       그 뜻은 명백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보이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

         

       그야말로 관무불가침의 표본이었다.

         

         

         

       “죄인 조광앙. 밖으로 나오시오.”

         

       “아니, 벌써?”

         

       조광앙의 입꼬리가 좌우로 길쭉해진다.

         

       “거, 돈이 좋기는 좋구만. 이렇게 빨리 처리가 다 되고 말야. 그런데 내 형제들은? 아직이야?”

         

       “나도 모르오. 당신을 풀어주라는 명령을 들었을 뿐이오.”

         

       “거 사람 참 딱딱하긴. 염방주가 얼마나 챙겨주대? 아직 딱딱한 거 보니 그리 성에 차는 액수는 아니었나보지? 하긴, 하찮은 옥리가 뭐가 된다고 대우를 해? 먹여도 윗사람에게 먹이지. 안 그래?”

         

       화를 돋구는 시건방진 소리지만, 옥리는 묵묵부답이었다.

         

       “에이, 재미없게. 음. 그래. 얘들아, 나 먼저 간다. 늦지 않게 나올 수 있도록 해 줄 테니, 늦어도 내 진탕 먹고 취하게 잔칫상 넣어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예! 단주님!”

         

       “그래. 크큭, 잠깐만 고생하고 있어.”

         

       그렇게 조광앙이 기분 좋게 걸어 나간다.

       옥 밖으로, 대문 밖을 향해서.

         

         

       —-

         

         

       남녕요가, 거의 멸문.

       어쨌거나 멀쩡한 요씨가 남기는 했으니 완전 멸문은 아니다.

       하지만 그 멀쩡한 요씨는 가문의 족보를 모실 생각일랑 추호도 없으니 멸문과 그리 다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거의 멸문.

         

       사도련 세 개 전투단, 거의 전멸.

       관아 밖으로 나온 놈들 중 개중에 청의 손가락이 향하는 놈이 가끔 나왔기 때문이었다.

         

       “쟤는 살려주면 안 돼요?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고 해서요.”

         

       “감사, 감사합니다……!”

         

       “착하게 살아요. 다음에 나쁜 놈이라는 소리 들으면 팔다리 꺾어다 저자에 매달아 둘 거야.”

         

       “네, 넵! 착하게 살겠습니다!”

         

       주의 및 훈방 조치다.

         

       사실, 계림과 장산 제자들에게는 어이가 없는 일이기는 했다.

       뭐 어디서 정보를 들었다고.

       또 정보를 들었다고 해서 누군 나쁜 놈이고 누구는 또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니.

       무명의 일개 전투단원 하나하나 쟤는 살리고 누구는 칼을 뽑아 목을 친단 말인가.

         

       하지만 천화검이 하는 부탁이다.

         

       우리 천화검이 그러고 싶다고?

       그러면 그렇게 해야지!

       우리 천화검 하고 싶은 거 다 해!

         

       왕부와 무림이 얽혀서 좋은 소리를 못 듣는 판에, 하물며 우리 왕부도 아니고 다른 동네 왕부와 얽혀서야.

       그러니 청과 함께 후방을 쳤던 별동대, 왕부의 하인들은 청과 친분이 있는 재야의 고수쯤으로 포장이 되었더란다.

         

       그러니 사정 아는 일부를 제외하면, 남녕 무인들의 인식은 이러했다.

         

       가장 위험한 임무를 자처하여 사지로 나아가, 그러면서도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고수!

       심지어 초절정 후기로 알려진 복주제일검 문정역을 쓰러뜨리고 그 검을 취하지 않았던가.

         

       당대의 신룡, 무림 제일의 후기지수라는 수식은 어쨌거나 후배라는 뜻으로 지켜줘야 한다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는 천화검이다.

       후기지수도 아니고 청년 고수도 아닌 그저 천화검, 나이를 초월한 어엿한 정파 무림의 보배인 것이다!

         

       거기다 천하제일을 다투는 미인!

       심지어 친절하고 예의바르며 소탈함!

         

       남녕 정파의 은인 대접이 매우 융숭해졌으니 남은 시간 꽃길만 걷다, 아니 꽃침상에 누워 술이랑 요리 퍼먹다 복귀하면 되는 편안한 나날만이 남았다고 하겠으나.

         

       “형님! 초대장입니다!”

         

       “음. 이번엔 또 어딘데?”

         

       “정가장, 의주무관, 차가학당, 아, 영산사 주지께서 현판을 써 주실 수 있으시냐고 내방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연서입니다! 이건 안찰사 자제분이 보내셨고, 이건 광일상방주, 그리고 또 이건 저기 황현현 현령이……”

         

       “아씨. 귀찮게.”

         

       사태가 정리가 되고 나니, 밀려드는 초대장들이 문제다.

       안 가기도 뭐하고, 가면 남정네들이 아주 느끼한 눈빛 쏘면서 난리를 치는데, 어흐.

         

       게다가 남녕 땅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광서성 전역에서 초대장이 날아온다.

       이쯤 되면 거절하는 서신을 작성하는 일도 일이었다.

         

       그 답장의 글씨를 감탄하다 못해 까무러치는 이가 속출하였으니, 이제는 여기저기 글씨 좀 써달라는 놈들까지 꼬였다.

         

       청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안 되겠다.”

         

       “옙!?”

         

       “여기 더 있다간 쉬기는 개뿔 겨울 내내 인사만 드리다가 지칠 판이야. 튀자. 이제 계림검파에 머물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그런! 말씀을! 아닙니다! 형님은 영원히! 영원히 머물러 있어도 괜찮습니다! 계림의 은인이라 하면 천화검! 천화검 하면 계림의 은인! 제가 필사적으로 막아볼 터이니! 형님께서는 편히 칩거에 드시는 것입니닷!”

         

       우나람이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청도 생각해 둔 바가 있었으니.

         

       “무림맹 임무가 저 사파 놈들 수상하니까 자리 차지하고 있으라는 거였잖아. 남녕은 이제 안전하니까, 다른 험지에 가서 임무를 도와야지. 진가장, 진가장이 요즘 힘들다고 들었는데.”

         

       남녕에 머무르다 소문을 듣기로는, 지금 진가장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던가.

         

       극진한 대접도 좋고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맛난 미식회 즐기는 것도 나름 뭐 그렇게까지 꺼릴 일은 아니기는 하다.

         

       하지만 내 일 끝났다고 퍼져 있기보다는, 그래도 도움 되는 장소에 있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

       심지어 사파 놈들이 대놓고 수작질을 부려댔으니, 광동 땅이라고 다를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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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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