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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4

       집을 보러 갈 때마다 우리를 보고 놀라는 것이 조금 재미있었다.

        

       인터넷 방송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는 중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팬덤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길 가다가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을 마주친 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아니면 알아봤더라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우릴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외국에서 온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백인 소녀 다섯 명이 부동산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면 한번 놀라고, 우리가 입을 열어서 말을 하면 한 번 더 놀란다.

        

       보통은 내가 클레어와 앨리스와 함께 여의도 공원에 처음 나갔을 때 말을 걸었던 할머니처럼 ‘한국어 잘하시네요’라는 반응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 잠깐 할 말을 잊어버린다.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영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보는 것이 굉장한 인종차별이듯, 이 나라에서도 ‘한국인’한테 한국어 잘하냐고 물어보는 것은 충분히 인종차별로 보일 만하다.

        

       게다가 이 나이에 주민등록증까지 가지고 있다면 보통은 혼혈이라고 생각하겠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상대방을 보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그런 상황을 즐기는 걸 보니, 아직도 나는 이쪽 세상에 있던 시절에 사이트에서 분탕 치고 돌아다니던 버릇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때요? 이 정도면 가격이 아주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이 사람과 만나는 건 이번이 두 번째.

        

       진땀은 이미 지난번에 다 빼놔서 그런지, 이번에는 크게 놀라진 않았다. 아니, 사실 얼굴이 아주 밝았다. 우리가 다시 오기 전에 미리 전화해 두었고, 사실상 여기 온 건 집을 사겠다는 의미였으니까.

        

       다른 곳도 꽤 둘러보았지만, 가장 조건이 좋은 곳은 여기였다. 본 곳 중에서는 비교적 넓었고,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도 근처였다. 주변에 시장도 있어서 여러모로 편의적인 접근성이 좋았다.

        

       “음…….”

        

       내가 뒤를 돌아보니, 나와 함께 지낼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오기 전에 이미 대화를 끝마쳐놨으니 당연하긴 했지만.

        

       지난번에 와서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대조해보고, 나름대로 신중하게 골랐다. 뭐, 그렇다고 년 단위로 지내기야 하겠냐마는, 짧게 지내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지내다가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럼, 계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

        

       이사에 그렇게 큰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리 오타쿠라고 하더라도 직장생활을 하며 이것저것 사다 모으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자취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돈이 많이 들어갔고, 게임을 사거나 만화를 사거나 하는 것도 내 생활비를 아껴서 할 수밖에 없었다.

        

       각종 생활 집기와 옷을 제외하면 내 짐은 대부분 책이나 게임이었다.

        

       하긴, 원룸 안에 물건을 꽉꽉 채워 넣는다고 해도 얼마나 되겠는가. 이삿짐센터 사람들과 우리 다섯 명이 힘을 합치니 미아와 샤를로트 방에 넣을 가구를 새로 사고 거실에 소파와 새 TV를 들여놓고도 이사 자체는 오후 2시쯤 완료할 수 있었다.

        

       “이건…… 여기 두면 될 것 같습니다.”

        

       둘 장소를 찾는 것이 가장 까다롭던 물건을 마지막으로 전시하며, 나는 중얼거렸다.

        

       그건 다름 아닌 피규어였다.

        

       내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주 구매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도서류나 게임류는 어떻게든 생활비 내에서 커버할 수 있었지만, 순전히 장식품이면서도 가격은 풀 프라이스 게임 몇 개를 합친 수준인 피규어는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거실 TV 앞 선반에는 앨리스와 나의 모습을 본뜬 피규어가 올라왔다.

        

       “솔직히 보고 있으면 조금…… 그렇지 않나요?”

        

       “응? 조금 그렇다니? 뭐가?”

        

       뿌듯하게 그 피규어들을 바라보고 있던 앨리스가 되물어보자, 샤를로트는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그거잖아요. 완전히 자기 모습도 아니고, 엄밀히 따지면 그림으로 그려진 모습을 다시 입체화시킨…… 여러모로 성적인 부분이 강조된 형태 아닌가요?”

        

       샤를로트가 의외로 핵심을 찔렀다.

        

       ……앨리스의 피규어를 샀다는 걸, 그 피규어의 원본인 앨리스에게 들킨 나는 차마 대놓고 설명하지는 못한 부분이지만, 사실 피규어는 소위 말하는 ‘꼴리는 것’이 잘 팔린다. 물론 무난한 복장의 피규어도 많다. 하지만 복장이 무난하다고 해서 자세까지 무난하다거나, 일상복보다 얌전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교복만 해도 일반적으로 입고 다니는 교복 치마보다 짧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고, 보통 몸을 많이 가린 캐릭터들은 설정상 거유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마 아래까지 전부 구현되어있는 피규어를, ‘무조건 건전하다’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안 그래도 파손 방지를 위해 피규어는 분해해서 뽁뽁이로 싸 집에 남는 신발 상자에 넣어왔다. 그 과정을 모두 본 샤를로트였으니 피규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한 것도 당연했다.

        

       정작 앨리스는 황실 복도에 있는 대리석 조각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응? 실비아나 나의 몸매는 이거랑 비슷한데? 성적이라면 성적이지만, 우리가 입고 다니던 교복도 딱 이 정도 아니었어?”

        

       “…….”

        

       앨리스의 말에 샤를로트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샤를로트한테 게임이나 만화 캐릭터를 이용한 2차 창작 중에는 그렇고 그런 것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어떨까, 하고 잠깐 생각하다 말았다.

        

       얘네가 정말로 성인이라도 성추행의 범주에 들어가는 짓인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들은 주민등록증에만 성인이라고 되어있지, 실제로는 한참 어린 미성년자가 아닌가.

        

       “…….”

        

       미아는 소파 위에 뻗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미 오전에 중노동을 해서 방전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래도 내 체력이 미아보다는 나아서 다행이다. 다음에는 꼭 미아한테 체력 단련 방송을 시키자. 그럼 내 체력에 대한 평가도 조금은 올라가겠지.

        

       참고로 클레어도 우리 근처에 서서 그 피규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뭔가 분해.”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연 클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랑 앨리스만 사놓은 거 아니야.”

        

       …….

        

       음.

        

       사실 클레어 피규어도 사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응?”

        

       나의 물음에 클레어가 고개를 들었다.

        

       “괜찮다니? 뭐가?”

        

       “당신의 모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피규어는 최신작이 아니라 전작들을 기준으로 할 텐데요.”

        

       “…….”

        

       뭐, 좀 얌전한 복장을 한 클레어의 피규어가 나올 수 있기는 하지. 하지만 내가 찾아보니 아직 예정은 없었다.

        

       실비아 팬그리폰 피규어는 게임 발매 전부터 이미 발매 예정이 잡혀있다가 발매된 거고.

        

       애초에 무슨 애니메이션 같은 걸로 나와서 대단히 많은 사람이 본 작품도 아니었기에, 발매된 피규어의 종류 자체가 매우 적다. 그나마 전작쯤 되어서야 겨우 피규어화가 되는 중인 게임 시리즈다.

        

       당장 오늘 발매 예정이라도 떠도 보통 발표부터 발매까지 수년은 예사로 걸리는 피규어 시장을 감안하면 얌전한 클레어의 피규어는 한참 뒤에야 나오겠지.

        

       “생각해보니 그냥 안 사도 될 것 같아.”

        

       “대체 어떤 복장이길래 그런 반응을 하는 거죠?”

        

       “윗가슴이 다 드러나는 복장이었지.”

        

       “앨리스!”

        

       앨리스가 입가에 웃음을 띤 채 말하자, 클레어가 발끈해서 외쳤다.

        

       “뭐……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일이 끝났으니, 슬슬 식사라도 할까요?”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미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자는 거 아니었냐고.

        

       하긴, 식사도 하지 않고 일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안 그래도 배고파서 비실거리는 미아에게 ‘조금만 더 하면 된다’라는 말을 한 건 우리였으니까.

        

       그 ‘조금만 더’가 2시간이 되었으니, 기다리다 지쳐 쓰러질 만도 했지.

        

       “굳이 식기를 꺼내기는 번거로우니 배달시키기로 하죠. 마침 이럴 때 먹기 좋은 음식을 알고 있습니다.”

        

       역시 이사한 뒤에는 짜장면이지.

        

       ……어, 그런데 요즘에도 그렇던가? 잘 모르겠네.

        

       *

        

       내 친구들이 음식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앨리스는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겠다는 듯, 나에게 먹는 법을 세세하게 물어보곤 했다. 젓가락을 정석대로 쥐고 놀리는 것이 이제는 꽤 익숙해 보였다.

        

       클레어는 앨리스보다는 조금 서투르긴 했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젓가락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마찬가지로, 다소 이상하게 보이기는 해도 음식을 놓치는 일은 없다.

        

       비교적 늦게 온 샤를로트와 미아는, 아직 포크를 썼다.

        

       뭐, 두 사람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전의 예절이 너무 엄격하게 몸에 새겨졌기 때문인지, 포크 사용이 훨씬 익숙한 모양이다.

        

       그래도 일회용 용기에 담겨 온 짜장면을 포크로 찍어 스파게티 먹듯 돌려먹는 것을 보니 뭔가 기이하긴 했지만.

        

       다들 맛있게 잘 먹네.

        

       “…….”

        

       “왜 그러시나요, 미아?”

        

       “혹시 그거, 맛있나요?”

        

       나의 그릇을 빤히 보는 미아에게 물었더니, 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역시 먹을 것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였다.

        

       “……척 봐도 매워 보이는데요.”

        

       샤를로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참고로 메뉴는 내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여주고, 맛을 설명해준 뒤 골랐으므로, 내가 먹는 짬뽕이 맵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정 궁금하시다면, 조금 드릴 수 있습니다.”

        

       내 말에 미아가 눈을 반짝이길래, 나는 쓰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부엌에서 작은 공기그릇 하나를 가지고 와 면을 조금 덜고, 조개와 오징어, 국물을 조금 덜어주었다.

        

       “고맙습니다!”

        

       매운 것은 제대로 먹지 못하니 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맛은 궁금했던 모양이다.

        

       클레어, 앨리스 샤를로트의 눈이 그릇을 받은 미아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미아는 짜장면을 먹던 포크를 입으로 한 번 빨아 깨끗하게 만든 뒤, 조심스럽게 짬뽕 면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입에 넣은 뒤—

        

       “으읏!”

        

       곧장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그러니까 맵다니까.

        

       정작 진짜로 매운 짬뽕은 아니고, 그냥 동네 중국집 짬뽕인데도 저렇게 매워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김없이 다 먹는 모습을 보니 조금 뿌듯하기도 했고.

        

       “콜록.”

        

       “여기요.”

        

       샤를로트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물컵을 건넸다.

        

       “…….”

        

       뭐랄까, 가족 같네.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다가는 괜히 웃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내가 먹던 음식에 집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클라우드링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편이 끝나고 이렇게 외전을 쓰게 된 것은 독자 여러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댓글을 모아두었다가 한번에 모아서 보는 편인데, 종종 독자 여러분께서 저도 보고 싶은 아이디어를 내주시는 경우가 있어서요. 그런 것 중에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은 이렇게 쓰게 되더라고요. 저도 여러분 덕분에 쓰는 내내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 외전이 정확하게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느긋하게, 충분히 보여드릴 수 있는 만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쿨라다이아몬드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소설을 쓸때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 주인공이 할 대사들 몇 개를 생각해낼 때입니다. 모든 소설에는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 따로 있는 법이고, 당연히 쓰는 것도 그런 재미있는 순간을 쓸 때가 가장 즐겁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설 하나를 완전히 끝맺는 것에 비하지는 못합니다. 종종 막히기도 하고, 글이 나오지 않아서 힘들때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지나서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몇 번을 해봐도 감동이네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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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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