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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4

     

    다음 날, 루크는 컴퓨터로 라함의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어느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아, 그는 아직 충격에 빠져 집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듯 보인다.

    하긴, 그에게는 꽤나 충격이었으리라.

     

    신께서 아들을 죽이라고 했고, 자신은 그에 의심을 품고 말았다.

    사제로서도, 아비로서도 굉장히 큰 충격일 수밖에 없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굉장히 미안하기 짝이 없는 짓을 했다.

    마음 같아선 기억을 지워주고 싶지만, 그건 이미 너무 늦었다.

    그가 천사의 모습을 본 기억을 지우지 않는 이상 똑같은 역사가 반복될 터다.

     

    허나 천사의 모습을 드러냈던 기억은 이미 너무나 오래된 기억인지라, 많은 기억과 맞물려져 지우기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기억이라는 건, 원래 한 가지가 다른 기억에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종종 레니에가 좋아했던 것들, 또는 싫어했던 것 들을 떠올리며 현재에 투영하곤 하지 않던가?

    이처럼 생물에게는 행동의 근간이 되는 기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근간이 되는 기억을 제거하면, 사람은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라함은 이미 어떤 계시나 도움도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무려 사도가 되었을 정도로 깊은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억지로 끊어내면 기억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겠지.

     

    ‘앞으로는 ‘라함의 집’에도 신경을 좀 써야 겠어.’

     

    의심으로 타락해 신성력을 회수당한 사제인 라함이 나중에 자신의 시설에 어떤 반응을 보일 지, 또 어떤 일을 벌이게 될 지는 알 수 없기에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렇게 라함의 일은 일단 결론을 내렸다.

     

    그 말은 즉, 이제는 진정으로 자신이 알아야 할 것들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젠 정말 준비를 해야겠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전투를 말이다.

     

    하지만 루크는 준비를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이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되새기기 시작했다.

    적을 알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지 알 수 있으므로.

     

    ‘일단 크게 세가지를 알아내야한다.’

     

    첫째, 주변의 마나를 마계화시켜 서클을 틀어막는 그 안개의 정체.

    둘째, 그 안개와 도플갱어를 만들어낸 존재와, 그 세력.

    셋째, 니드호그라는 단어가 가진 진정한 의미.

     

    루크는 주머니에서 세이어에게서 빼앗은 약품통을 꺼내보았다.

     

    ‘이걸 지팡이에 장착해서 발사하는 것 같은데…….’

     

    척 봐도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물건은 아니었다.

    이런 물건이 필요한 이유는 아마 그 ‘마계화 가스’와 함께 운용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온갖 곳에서 마법이 사용되고, 도시 내의 마법을 저해하는 행동이 테러의 일종으로 규정되는 현대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그런 게 필요한 경우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곳에 그려진 이 작은 문양도.

    루크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단서로 보였다.

     

    그리고 이게 뭔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자신은 모르지만 딱 한 명, 알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

     

    서드.

     

    그 아이는 불법이나 뒷골목에 관한 거라면 어느정도 지식이 있으니까.

    서드가 모른다고 해도, 그 아이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인지 알 수도 있다.

     

    “좋아, 이건 서드에게 가지고 가봐야겠어.”

     

    한가지 문제라면, 지금의 서드는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고 있을 시간이라는 점일까?

    뭐, 급한 일이니 얼른 나와보라고 한다면 서드는 곧장 나오기야 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서드의 아카데미가 끝나기 전에 들러야 할 곳도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

     

    도심 속, 어느 연구실.

     

    그곳에서는 마수학의 권위자들이 한데모여 한차례 열띈 토론을 벌인 뒤, 그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임스. 당신의 말은, 현 체계의 분류학으로는 마수와 마계를 설명할 수 없고, 다른 시각을 가져야만 한다는 얘기군요?”

     

    한 마수학자의 말에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마수학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맞습니다.”

     

    제임스 타이너, 마수학자이자 연구자인 그는 현재 이 모임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루크의 ‘제피르’에 대한 설명으로 영감을 받아 마계의 환경을 설명할 수 있는 한가지 이론을 만들었다.

     

    제피르 이론.

     

    사실 마수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200년 정도로 굉장히 역사가 짧았다.

    그 전까지는 지원도 없었고, 화석을 제대로 연구하려는 시도도 그리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법과는 달리, 그런 연구는 쓸모가 없다는 인식이 컸으니까.

     

    그도 그럴게, 마수는 중간계의 환경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

    그저 갑자기 마계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떨어져나온 이방인과도 같은 존재일 뿐.

     

    게다가 마수는 역사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간이 너무 짧았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이 차원과 관계가 없어진 마계라는 환경에 대한 연구자체도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으므로 학계에서의 그 배척은 더욱 심했다.

     

    하지만 200년 전, 이 세계의 역사의 페이지가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지워진 것이라는 것이 밝혀진 뒤에는 그 인식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이 이 세계에는 조금도 남지 않았기에, 마수를 연구하는 것 만이 역사를 알 수 있는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뒤늦게 발전한 마수학은 아직 현 생물학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제피르 이론’은 꽤 혁신적인 이야기였다.

    마계의 환경을 고려해, 완전히 새로운 분류체계와 연구방식을 고안한다니…….

     

    “확실히 ‘제피르 이론’은 아직 밝혀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많은 역사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기업에 밀려 탐색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죠.”

     

    두 마수학자의 말에 제임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 화석들과 사령술로 밝혀낸 지식을 활용한다면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증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언젠가 반드시 그리 되겠지.

     

    “이야기 잘 들었소, 타이너. 그럼, 이번 토론으로 나온 의견을 종합해서 이론을 보완하기로 하고……. 우리도 일이 있으니 슬슬 일어납시다.”

     

    한 마수학자가 그렇게 말하니, 다른 마수학자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타이너 박사님.”

    “제임스, 고생 많았어요. 이야기 감사해요.”

     

    마수학자들의 인사를 받던 제임스는 곧, 동료 마수학자들을 배웅하기 위해 자신도 몸을 일으켰다.

     

    “하하, 먼 길 와 주셔서 제가 감사하지요. 아, 나가는 길은 이 쪽…….”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 제임스 타이너 박사!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네!”

    “응?”

     

    그의 앞으로 튀어나온 사람은 단정한 차림새의 수인 여성.

    그녀는 풍성한 백금발을 부드럽게 양 쪽으로 빗어 내리고, 얼굴엔 은은한 미소를 띄고 있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앳되어 보이기도 하는 용모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은 채, 손에 든 종이가방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오랜만이지? 빈 손으로 오기는 뭐해서 손수 만든 찻잎을 좀 가져왔다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시면 되겠군.”

     

    그 모습에 제임스는 잠시 넋을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여성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떠오르질 않았기 때문이다.

     

    “……뭐? 나를?”

     

    대체 무슨 이유로?

     

    제임스가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머리 위로 솟은 큼지막한 동물 귀를 쫑긋거리며 말을 이었다.

     

    “역시 너무 갑작스러웠나? 그럴 만도 하지.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네. 연락을 해도 받질 않길래 일단은 무작정 찾아왔는데.”

    “……뭐?”

     

    연락을 했다니?

    이 젊은 여성은 대체 누군데 자신의 연락처를 알지?

     

    “흠, 제임스. 혹시 아는 여성입니까?”

    “아뇨, 전혀 모르겠습니다.”

     

    제임스가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그녀가 동료들과 나눈 대화를 들었는지 짐짓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임스, 벌써 날 잊어버린건가! 너무하군! 아니 애초에, 내게 연락을 먼저 주기로 한 건 그대가 아니었나?”

     

    그녀의 서운한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목소리에 그의 동료들은 곧바로 제임스를 향하는 따가운 시선들을 보냈다.

     

    “저게 무슨 말이죠, 타이너? 연락을 먼저 주기로 했다니?”

    “제임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당신은 저토록 젊은 여성한테 추파나 보내는 사람이었나.”

    “하아. 주책이십니다, 정말. 나잇값을 좀 하시죠.”

     

    그러자 제임스는 다급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외쳤다.

     

    “아뇨! 아닙니다! 무슨 소리를! 저는 저 여성을 정말 몰라요!”

     

    그에 여성은 더더욱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임스 타이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아무리 몸이 자랐기로서니, 그리 쉽게 잊어버릴 외모는 아니지 않나? 게다가 그동안 단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도 많았는데. 이렇게 연락처도 교환했고…….”

     

    맙소사, 그녀는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녀가 꺼내보인 휴대폰에는 정말로 자신의 번호가 저장이 되어 있었으므로.

    하지만, 자신이 이런 젊은 여성과 단 둘이 만난 사이라니, 그런 기억은 단연코 없었다!

     

    “……몸이 자라? 설마, 더 어릴 때에?”

    “……아주 단단히 미쳤군.”

     

    제임스는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경멸어린 시선이 더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이상은 정말로 버티기가 힘들다.

     

    제임스는 어쩌면, 그녀가 길거리에 버려진 자신의 명함을 주워서 번호를 저장한 뒤 자신을 찾아와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작당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그에 제임스는 기력을 짜내는 듯이 외쳤다.

     

    “하, 하지만 나는 정말 모르겠어! 너는 대체 누구지? 제발 제대로 설명을 해주게!”

    “제임스, 정말 나를 잊어버린 모양이군.”

     

    그녀는 한숨을 쉬며 목소리를 내었다.

     

    “하아, 루크 이루시일세.”

     

    그 대답에 제임스는 경악했다.

     

    “뭐? 네가 그 루크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릴때(?) 잠깐 본건데 대체 어케 알아보냐고 ㅋㅋㅋ

    Ps. 어린이날외전에 삽화가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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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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