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4

   크라슈와 아벨라가 정지한 시각.

     

   쿠구구구구궁!

     

   하늘에서는 사룡이 몸 전체를 이끌며 내려오고 있었다.

   아래에 있던 그동안 거인의 숲을 막고 있었던 제국의 군과 이카루스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방금까지 거인의 숲과 맞섰더니.

   하늘에서는 사룡이 나타나 브레스를 쏘다가 실패로 돌아가 이제는 직접 몸으로 부딪쳐 오고 있었다.

     

   이미 거인의 숲에서 익시온과 침식종과의 전투로 피로해질 대로 피로해진 그들이다.

     

   사룡에게 대처할 방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다들 진정해라.”

     

   그 순간 그들을 진정시킨 것은 천황 달피론 쥬논이었다.

   그는 이카루스를 노린 거인을 막고자 대신 한 번 정면에서 공격을 막은 탓에 오른팔이 거의 박살 나 있었다.

     

   신관들이 달라붙어 어떻게든 회복시켜 놓긴 했지만, 아직 운용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마법사들은 부상자부터 챙겨라. 저 괴물은 마법 면역이다. 이카루스를 포함한 모두는 지금부터 전원 대피한다.”

     

   어차피 사룡은 마법이 통하지 않는 존재다.

   마법사들의 능력은 전부 도주에 쓰는 게 나았다.

     

   달피론 또한 이번 거인의 숲 공략대의 지휘관이다.

   그의 명령은 곧바로 전원에게 뻗어 나갔다.

     

   “흐음, 이렇게 빠져나가도 되겠나.”

     

   그러는 순간 패황, 글라이시스 락테아가 뻐근한 몸을 풀며 물어왔다.

   그녀의 질문을 들은 달피론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했다.

     

   “여기 있어봤자 우리는 방해가 될 뿐일세.”

   “뭔가 들은 게 있는 모양이군.”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신 황녀님이 한 분 계시네. 그분께서 말해주더군. 서쪽 끝에 용의 무덤에서 악룡의 시체가 사라졌다고 말일세.”

     

   글라이시스가 묘한 눈을 했다.

   설마하니 그 유명한 천재 황녀가 여기까지 예상했냐는 반응이었다.

     

   “적어도 악룡이 사룡이 되어 돌아왔을 때 대처법을 지닌 이가 있다더군.”

   “저만한 괴물을? 저건 못해도 거인급일 텐데.”

     

   방금전까지 거인을 상대했던 두 사람이다.

   사룡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두 사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저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하지 않나.”

     

   그는 조금은 씁쓸한 듯 웃었다.

     

   “우리가 할 일은 마친 셈이겠지.”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전성기는 존재하고, 더불어 그러한 전성기가 저무는 시대도 존재하는 법이다.

     

   달피론과 글라이시스는 오랜 기간을 천상사강으로서 살아왔다.

     

   글라이시스가 매번 입버릇처럼 은퇴를 내뱉었던 것처럼.

   달피론 또한 직감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는 이제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떠오르고 있음을 말이다.

     

   새 시대에는 새 시대에 맞는 이들이 나아가는 법.

   퇴장해줘야 하는 이도 있어야 한다.

     

   “나도 늙었군. 슬슬 은퇴할 시기인 모양일세.”

   “하, 꼬맹이가 뭐라 말하는 건지. 한참 더 해 먹어도 된다.”

     

   글라이시스는 달피론에게 아직 한참 멀었다며 핀잔을 줬다.

   그 말을 들은 달피론은 헛웃음을 삼킨 채 고개를 들었다.

     

   사룡이 내려오는 곳 위.

     

   그곳을 향해 얼어붙은 새 한 마리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소녀가 있었다.

     

   비앙카 하덴하르츠다.

     

   더불어 그녀의 등 뒤에는 하링 라그렌이 그녀를 등 뒤에서 안고 있었다.

     

   거기의 한 명 더.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과 주홍빛의 투톤이 섞인 머리칼을 흩날리는 이가 있었다.

     

   그를 본 달피론은 고개를 내렸다.

     

   저마다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나아가고 있다.

   영웅들이 탄생하고자 그 빛을 거세게 빛냈다.

     

   ‘4황녀님다우시군.’

     

   어디까지 내다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달피론은 그리 생각한 채 인원들을 이끌고, 프레이야 산맥을 빠져나가고자 할 뿐이었다.

     

   그 시각, 크림슨가든이 이카루스의 대피를 눈으로 흘기며 고개를 슥하니 돌렸다.

   왜냐하면 그녀의 옆에 세 사람이 빙환수를 타고 날아올라 온 탓이다.

     

   “가슴이.”

     

   크림슨가든은 빙환수 위에 올라타 있는 한 여성을 부르며 씩하니 웃었다.

     

   “네 지방 좀 쓸 시간이다.”

   “가, 가슴이 같은 걸로 부르지 말라니까!”

     

   그러자 상체를 움찔거린 여성이 소리쳤다.

     

   세계 유일한 네크로맨서 에벨아스크 베나포치.

   사령과 시체에 관련해서는 스페셜 리스트인 그녀였다.

     

   “크림.”

     

   코앞까지 다가온 사룡을 보며 비앙카가 크림슨가든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째선지 비앙카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용이네요.”

     

   과거부터 그녀의 까마귀와 지내 온 시간이 있는 덕분인지.

   비앙카는 크림슨가든을 굉장히 마음에 드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몸만 컸지. 하얀 병아리 그대로구나.”

     

   크림슨가든은 어린 시절부터 봐온 비앙카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이야기한 채 에벨아스크를 돌아봤다.

   에벨아스크는 한껏 긴장된 얼굴로 사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으, 이런 규모는 처음인데!”

   “앓는 소리 말아라. 도움 되고 싶다면서.”

     

   크림슨가든의 말대로 그녀는 크라슈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기에 이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의 최선을 다해 도움 될 작정이다.

     

   그 순간 크림슨가든은 재차 물었다.

     

   “그래서 저걸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더냐.”

     

   크림슨가든의 마법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룡이다.

   그러니 질문하자 에벨아스크는 심호흡하며 고했다.

     

   “아무리 악룡이라 한들 결국 이미 죽은 시체야. 내 네크로맨서술이 내부에 닿기만 하면 장악할 수 있어. 문제는 닿는 건데.”

     

   에벨아스크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도.

   자기 분야답게 이 부분에 관해서는 에벨아스크 또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내가 도울게요.”

     

   그러자 비앙카가 그녀를 돕고자 나섰다.

     

   이곳까지 그녀를 직접 운반해준 것도 비앙카다.

   사룡에게 특급으로 데려가 줄 자신이 있었다.

     

   “나도.”

     

   더불어 그녀의 등 뒤에는 하링 또한 있었다.

   하링의 인비저블이 있다면 사룡이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 파고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크림슨가든에게 남은 일은 사룡이 산맥에 닿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것뿐이다.

     

   “살면서 해온 일 중 가장 쉬운 일이군.”

     

   크림슨가든의 손이 가볍게 움직이며 여러 마법진을 동시에 그렸다.

   그 광경은 비앙카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엄청난 양의 마력을 품고 있었다.

     

   “시간은 충분히 벌어 줄 테니.”

     

   비앙카의 빙환수가 날개를 거칠게 펼쳤다.

   동시에 세 사람의 모습이 하링의 인비저블에 의해 자취를 감추었다.

     

   “마음껏 해보거라.”

     

   살 만큼 다 살고 간 놈, 다시 한번 죽일 차례다.

     

     

   * * *

     

     

   번쩍!

     

   새까만 암흑 공간 속.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섬광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붉은 머리카락의 작은 체구의 소녀였다.

     

   겉보기에는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어린 소녀지만.

   그녀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마법의 향연을 눈앞에서 목도 한다면 대마법사조차 고개를 숙일 만큼 터무니없는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의 폭거 앞에 질주하고 있는 이.

   크라슈 발하임의 눈동자가 백색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카앙!

     

   그의 검이 빛줄기를 받아침과 동시에 아벨라의 방어 마법에 참격을 가했다.

     

   그러나 아벨라의 방어 마법을 한 번 흔들어 놓았을 뿐.

   그녀의 방어 마법을 뚫을 수는 없었다.

     

   아벨라는 방어 마법 너머 스산한 눈빛으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초월석을 확장 시킨 영혼의 감옥이다.

   더불어 아벨라는 지금 초월석을 그야말로 활짝 열어 놓았다.

     

   그의 육체에 듬뿍 담겨 있는 힘을 역으로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크라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백염은 흡수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몸에서 흘러나갔다가 전부 다시금 되돌아가고 있었다.

     

   이를 게슴츠레 뜬 눈으로 보던 아벨라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크림슨가든의 불사.’

     

   크림슨가든의 불사는 영혼이 다른 곳에 빠져나가지 않도록 족쇄처럼 묶어두는 형태다.

     

   그 탓에 육체는 영원히 잠들어버린다는 대가가 있긴 하나.

   영혼에 걸리는 족쇄는 막중하다.

     

   ‘여기는 영혼 세계니까.’

     

   아벨라가 크라슈를 강제로 끌고 온 영혼 세계.

   크라슈가 몸에서 내뿜고 있는 백염 또한 본질은 크라슈의 영혼과 유사하다.

     

   그 결과, 불사의 족쇄는 크라슈가 소모하는 백염마저 전부 고스란히 회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불사의 족쇄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처음부터 이걸 노렸던 건가.’

     

   아벨라는 크라슈가 불사를 얻는다 한들 그걸 백염으로 지워버릴 거로 생각했다.

     

   육체가 잠이 드는 것부터 시작해 불사란 여러모로 제약이 덕지덕지 붙는 힘이다.

   오죽하면 아벨라도 구태여 불사가 아니라 환생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크라슈는 그러한 제약은 아무래도 좋은지 불사를 흡수해서 그 힘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거세게 타오르고 있는 양초 같았다.

   그 끝은 모든 게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지만, 지금만큼은 거세게 타오르는 양초.

     

   “재밌네.”

     

   영혼 감옥을 예상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그릇으로 쓰려고 했던 것을 예상했던 것인지.

     

   어찌 되었든 크라슈는 거기에 대응할 방법을 알아 왔다.

   그러나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무리 영혼을 이용해 자신을 묶어 두고 있다고 해도.

   결국 묶어두지 못할 만큼 힘을 쏟아 내게 만들면 그만이다.

     

   게다가.

     

   “크라슈, 너도 알 텐데.”

     

   아벨라의 지팡이가 천천히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원을 그릴 때마다 무수히 많은 마법진이 만들어지며 주변에 새겨져 나갔다.

     

   그 광경은 마법을 목표로 목표로 하는 이들이 경악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광경이었다.

     

   “그 정도로는 날 어쩌지 못해.”

     

   아벨라의 방어 마법은 지금 크라슈가 내는 출력으로는 뚫을 수 없다.

   그가 모든 힘을 풀로 전개하는 것 말고는 아벨라를 쓰러트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벨라는 이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크라슈를 몰아넣어 주기로 했다.

     

   땅이 부서진다.

   하늘에 신의 벼락이 친다.

   지옥의 용암이 치솟는다.

   대기가 요동친다.

   설한의 폭풍이 불어온다.

     

   아벨라에게서 발동된 각양각색의 마법들이 저마다 힘을 과시했다.

     

   그 광경은 마치, 세계의 천재지변을 모두 모아놓은 것 같았다.

   하나하나가 마법의 정점에 도달하여 자연 그 자체를 바꿔버릴 힘.

   금역조차 그녀의 마법 앞에서는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한 힘의 폭거 앞에 크라슈는 조용히 아벨라를 바라보았다.

     

   아벨라는 감정 없는 눈동자로 크라슈를 직시하고 있었다.

   주변을 초토화하고 있는 천재지변 속에서도 그녀의 주위 공간은 고요할 정도로 조용했다.

     

   크라슈가 힘을 쏟아 내지 않는다면 그를 죽여 아서 때와 같이 그의 육체를 갈아 버리면 그만이다.

     

   검은 공간 전체를 메꾼 아벨라의 마법을 바라보며 크라슈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더럽게 잘 알지.”

     

   아벨라는 마법의 정점이다.

     

   회귀 전, 창공의 세대 위에 혼자 마법의 정점으로 우뚝 서 있던 그녀는 늘 전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느긋이 상황을 관망하고, 적재적소에 맞춰 마법을 발동했다.

     

   겉보기에는 아서밖에 모르는 소심한 소녀였을지라도.

   마법을 다룰 때 그녀의 눈동자는 범인이 보는 세상과 한참 먼 세상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크라슈가 아벨라를 계속 위험인물로 꼽았던 것은 은연중에 그녀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치가 좋은 크라슈였으니까.

   아벨라가 숨겨 놓았던 위화감을 홀로 눈치챈 것이다.

     

   그러니 지금에 이르러 말할 수 있다.

     

   먼 고대부터 지금까지 환생을 반복하며 살아온 저 망할 여자는.

     

   세계의 정점이다.

     

   그러니 크라슈는 그 세계의 정점에 엿을 먹여주기로 했다.

     

   이윽고, 크라슈의 성검에 거센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피날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