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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4

    <394 – 변명은 역효과>

     

    레드마운틴 교수의 면전에서 자신들의 실책을 보고해야 하는 실습교관들은 얼굴을 들 낯이 없었다.

     

    “조교야. 지나가던 4학년이 밤길에 불시의 습격을 가해서 카드키를 털렸다는 그 변명이 정말이니?”

    “정말입니다. 그 무지막지한 강함은 틀림없는 4학년의 것이었습니다.”

    “너 생산학부라서 전투력은 약하잖아.”

    “…”

    “교관들은 꿀 먹은 병아리처럼 입만 다물 생각?”

     

    교관들은 최선을 다해서 변명했다.

    물론 변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혼자 귀가하던 조교는 카드키를 털렸고 교관들은 자기들이 만든 카드키에 보안이 뚫린 줄도 몰랐고 약초밭의 약초는 깡그리 털렸다?”

    “면목 없습니다 교수님…”

    “당연히 없어야지. 벌로 하나씩 마셔.”

     

    레드마운틴 교수는 서랍장의 가장 윗칸이 아닌 중간칸을 꼬리로 열었다.

    아래로 갈수록 위험한 약들이 나오는 것을 아는 교관들의 눈이 불안에 떨렸다.

    이름표라도 달린 서랍장 위 칸과 달리 중간 칸에는 무슨 효과가 있는 병인지 적혀있지도 않다.

     

    ‘교수님도 저것들 뭐가 뭔지 모르는 거 아니야?’

    ‘왜 그딴 카드키를 만들어가지고.’

    ‘조교 저새낀 1학년한테 져서 카드키를 왜 털려가지고. 하다못해 카드키라도 주지 말걸.’

     

    물론 조교에게 귀찮은 일을 짬처리할 생각에 카드키를 덥썩 안겨주었던 교관들이 카드키를 주지 않을 일은 없었다.

    모든 교관들이 약병을 하나씩 마시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레드마운틴 교수는 서랍장을 닫았다.

     

    “어라? 조교한테는 왜 안 먹이십니까?”

    “1학년한테 얻어맞고 기절까지 해놓고는 쪽팔려서 4학년한테 얻어맞았다고 변명하다가 걸린 녀석한테 무슨 벌이 더 필요하니?”

    “아…”

     

    조교는 정말로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난리도 아니었다. 망신살을 뻗쳐도 제대로 뻗쳤다.

    무엇보다도 부끄러운 것은 교관들이 그렇듯이 조교도 남몰래 흠모하던 레드마운틴 교수 앞에서 제대로 체면을 구겼다는 사실이었다.

     

    “교수님, 제발 만회의 기회를 주십시오. 이대로는 쪽팔려서 살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어딜 가더라도 1학년한테 얻어맞은 3학년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닐 거란 말입니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니? 1학년한테 얻어맞은 3학년을 조교로 둔 교수 소리를 듣고 다녀야 할 교수 앞에서. 쪽팔린 줄이나 아니 다행이구나.”

    “저 때문에 교수님의 체면까지…!”

     

    교관들은 망신만 당했지만 레드마운틴 교수는 이번 사태로 많은 정보를 얻었다.

     

    ‘꽤 노련한 꼬맹이야. 우리 연구실의 교관들이 벌인 짓을 몰래 감시하고는 카드키라는 약점을 단숨에 파악했어. 가장 약한 조교의 귀갓길마저 간파했고.’

     

    심지어 2학년 학생들보다 더욱 값진 4학년 학생들이 키우는 비닐하우스를 털어볼 생각도 하건만 그쪽은 발길조차 향하지 않았다.

    실력이 좋으니 딴 마음을 품을 법도 한데 목표로 한 성과만 거두고 깔끔하게 손을 털고 이탈할 정도로 정신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심지어 무지개초까지 뽑아갔어. 대지에 남은 흔적을 보아 상태이상이 23종이나 연이어 발동했는데도 모조리 일정거리 내에서 막아내었고.’

     

    각기 다른 상태이상의 발현을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방어술을 펼칠 정도의 안목과 반사신경, 다재다능한 속성방어술을 구사할 수 있다.

    이래서야 조교가 손도 못 쓰고 발려버리는 것도 당연하다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너무 유능한 실력은 때때로 예기치 못한 실수를 야기한다.

     

    ‘그 유능함 때문에 잠복술식이 작동하게 되었구나.’

     

    레드마운틴 교수가 무지개초와 쌍이 되는 마나보드의 제어술식을 작동시켰다.

    이로써 무지개초에 숨겨둔 잠복술식은 제어술식의 소유자에게 항상 위치를 발각당하며 도청마저 강제로 허용 당한다.

     

    ‘네가 내게서 훔쳐간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훔쳐가주마. 건방진 새내기 도둑아!’

     

    그런데 이 마나보드, 작동상태가 이상했다.

     

    [SIGNAL LOST]

    [현재 대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NO SOUND]

    [현재 어떤 소리도 포착되지 않습니다.]

     

    위치불명.

    음성무음.

    모든 반응이 전부 두절되어있다.

    제조에 아주 많이 손이 가는 무지개초를 그 짧은 사이에 먹어치웠을 리도 없으니 이는 무지개초의 잠복술식이 외부에 전송될 수 없는 환경에 보관되었음을 의미했다.

    가령 자체적으로 마나를 발산하는 유물등급 이상의 아티펙트라던가.

    무지개초의 가치를 생각하면 특별한 보관함을 사용하는 것이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의적의 수제자가 이 정도의 뒤처리도 생각하지 못했다면 실망스러웠겠지.

     

    “쯧. 김만 샜구나.”

     

    이걸로 추적은 끊겼다.

    훔친 물건을 꺼내기 전까지는 손 쓸 도리도 없다.

     

    ‘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지.’

     

    교관들 앞에서는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들을 돌려보낸 레드마운틴 교수였지만 1학년에게 엉망진창으로 두들겨맞은 조교만큼은 내보내지 않았다.

     

    “불쌍한 녀석. 서랍장의 아래 칸에 잠든 약이라도 먹이려는 걸까?”

    “너무 끔찍한 광경이라서 차마 우리한텐 보여주시지도 못하나봐.”

    “물벼룩이 되는 저주가 담긴 약이라도 먹으면 불쌍해서 어떡하냐 진짜?”

     

    교관들이 펼치는 끔찍한 상상들은 조교의 머릿속에도 똑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엄마아빠 미안. 출세해서 고향에 돌아가기로 했는데 그냥 3학년이 된 걸로 만족할 걸 그랬나봐.’

     

    오들오들 떠는 조교의 팔을 교수의 꼬리가 찰싹 때렸다.

     

    “뭘 그리 떨고 있어? 사내자식이. 맞은 게 그렇게 분했으면 반격이라도 좀 하지 그랬냐?”

    “교수님…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지 마세요… 자꾸 그러면 저 착각하게 되잖아요…”

     

    약을 안 먹이는 척 하면서 먹이면 더 슬플 것 같아!

    괴로워하는 조교의 모습에 교수가 멈칫했다.

     

    “흐응. 조교는 그런 눈으로 이 교수님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죄, 죄송해요!”

    “아니다. 내 비록 브론즈 교수에게 당해 전성기만큼은 아닌 몸이라도 나름 교수직을 차지한 몸. 그리 착각하게 되어도 무리는 아니지.”

     

    교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색기를 도둑맞아도 아직 자신을 저런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남자가 있구나!

     

    “네 마음은 기특하지만 나는 교수, 너는 조교란다. 선을 넘어서는 안 돼.”

    “정말로 죄송해요!!”

    “사과할 것 없단다. 그저 작은 부탁이나 하나 들어주려무나.”

     

    레드마운틴 교수는 그 자리에서 초소형 토템 하나를 제작하였다.

    언뜻 보기에는 배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상이 소지한 아티팩트의 마력반응을 중화하여 교신성능을 강화시키는 첩보용 아티팩트!

     

    “이걸 오크노디 1년생의 몸에 붙이렴.”

    “제, 제, 제가요!?”

    “훗. 그리 감격할 필요 없단다. 손이 닿을라 부담스럽다면 내 이리 건네주마.”

     

    숫기 없는 조교의 손 위로 손수 집은 아티펙트를 떨어뜨려 올려놓아주니 조교가 아주 심사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는 사랑에 빠진 아해의 풋내 나는 얼굴이라 여겼지만 실제로는 겁에 질리다 못해 모든 걸 체념한 남자의 끄덕거림이었다.

    오크노디와 함께 나타난 학생에게도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 심지어 그보다 더 강할지도 모를 오크노디에게 토템을 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보다 더한 난이도였다.

    그래도 교수가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조교의 운명!

     

     

    * * *

     

     

    ‘흑흑. 교수님이 날 죽이려고 하시는구나!’

     

    속으로 서럽게 울면서 조교는 오크노디 학생이 강의를 마치는 시간에 강의실을 찾아갔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빠르게 해치울 셈으로 찾아갔지만 사방에 친구들을 둔 오크노디를 보며 몹시 당황했다.

     

    ‘저렇게 친구가 많은 아이한테 접근해서 말을 걸었다가는…’

     

    -앗, 저보다 약한 친구한테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맞은 선배님 안녕하세요!

     

    따위의 인사 한 번만 해도 전교에 소문이 싹 퍼지고 981기 공인 호구선배로 전락하겠지.

    그럼 아카데미 생활도 오늘부로 끝장이다.

     

    ‘미행하자.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 나타나서 말을 거는 거야!’

     

    그런다고 오크노디가 자신의 수치스러운 비밀을 지켜주리란 보장은 없지만 제 3자의 시선에 목격당해 겉잡을 수 없이 소문이 퍼지는 것보단 낫겠지!

    그런데… 이 아이, 강의가 많다.

    조금 많은 정도를 넘어서 해가 저물고 달이 뜰 시각이 되었는데도 강의를 듣고 있다.

     

    ‘3학년도 안 된 아이의 시간표가 이 따위라고?’

     

    레드마운틴 교수의 게으름을 위해 새벽 2시까지 꼬박 일하다가 퇴근하는 조교도 오크노디의 부지런함을 보고는 조교일을 시키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 늦게까지 강의를 들었으면 새벽까지 과제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모든 강의가 끝난 뒤에도 오크노디는 혼자가 되질 않았다.

     

    “오늘은 늦으셨군요, 아가씨.”

    “강의시간이 길어져서요!”

     

    아카데미 곳곳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메이드가 오크노디를 반겼다.

    그렇지만 꼬리 달린 수인메이드들과 달리, 엉덩이 뒤로 꼬리가 보이지 않는 메이드라는 사실에 조교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꼬리가 없으면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메이드가 아닌데.

    저건 뭐지?

     

    “메이드용 마나연공법도 성취가 높아지셨군요. 몸가짐이 반듯하고 발소리가 나지 않으니 이제 피와 내장이 즐비한 가장 참혹한 전장에서 찻잔에서 차 한 방울 흘리지 않도록 만드는 절대균형감각을 익히셔도 되겠습니다.”

    “와아, 신난다!”

    “그런데 뒤에 달고 온 분은 친구 분이십니까?”

    “!?”

    “아뇨? 모르는 사람이요!”

     

    듣기만 해도 섬뜩한 대화에 놀란 나머지 경계를 소홀히 한 탓일까.

    기척을 감지한 메이드의 반응에 급히 은신에 더욱 신경을 쓴 조교였지만 메이드의 두 눈은 명백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문답무용으로 또 공격을 당할까봐 조교는 급히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고, 공격하지 마십시오! 나쁜 의도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야심한 시각에 홀로 메이드를 만나러 온 아가씨를 미행했지만 나쁜 의도가 아니라면 무슨 꿍꿍이로 아가씨의 뒤를 밟은 건지 모르겠군요.”

     

    대답이 궁해진 그가 망설이며 배지를 만지작거리자 메이드가 예리한 눈으로 이를 알아차렸다.

     

    “그 배지는 아가씨에게 드릴 선물입니까?”

    “앗, 그게… 네에, 맞습니다…”

    “이 더러운 소아성애자 새끼.”

    “아, 아닛!? 그런 의도로 가져온 선물은 절대로 아닌…!”

    “그럼 무슨 의도입니까. 역시 아가씨를 해치려는 의도입니까?”

     

    밤바람보다 차가운 눈에 스산한 기색이 어렸다.

    메이드의 손에 어느새 날카로운 비수가 들렸다.

     

    ‘교수님의 부탁 아닌 협박을 받고 첩보용 아티펙트를 몸에 부착시키러 왔는데요. 한 번만 달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던 조교는 해탈한 얼굴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고백이 맞습니다… 어흐흑. 고백은 안 받아도 되니 제발 이 배지만이라도 받아주십시오. 그러면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메이드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그 꼴을 쳐다보다가 오크노디에게 말했다.

     

    “아가씨. 울면서 선물을 드리려고 할 정도로 마음만큼은 큰 사내입니다.”

    “음, 그래 보이네요!”

    “괘씸하기는 해도 가엾으니 이번 한 번만 죽이지는 말고 봐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고백 좀 한다고 덜컥 사람을 죽이면 어떡해요? 뭔가 징그럽고 기분 나쁘고 벌레가 피부 위를 기어 다니는 것처럼 혐오감이 들기는 해도 그게 죽을죄는 아니잖아요!”

     

    차라리 죽여.

    강제고백 1차임을 당한 조교가 진짜로 서러워서 눈물을 흘렸다.

     

    “근데 제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밤늦게까지 학업에 열심인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취향 진짜 이상하시다.”

     

    오크노디가 사탕 줄테니 따라오라는 아저씨를 발견한 것처럼 그를 아주 수상한 사람 대하듯이 쳐다봤다.

    세상에서 제일 수상한 아이에게 받는 시선에 조교의 억울함은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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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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