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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4

       타닥, 타닥.

       

       [(공지) 오늘 오후 7시에 블루베리 님과 합방합니다!]

       

       “후우….”

       

       드디어 오늘이다.

       

       유하늘은 몇 번이고 시계를 확인했다. 다섯시 반. 합방까지 채 두 시간이 안 남았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로즈마리 코스프레를 한 랭킹 1등과 합방하게 된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합방 일정이 성사된 이후로 유하늘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하늘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마치 부정맥이라도 온 것처럼 몸속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왔다.

       

       “다과, 준비됐고. 음료수, 준비됐고.”

       

       파자마 파티라도 준비하는 양 이것저것 사다 놓았다. 오랜만에 벌이는 합방이다 보니 더욱더 철저했다.

       

       띵동!

       

       “네 갑니다!”

       

       부리나케 현관으로 달려간 하늘이 문을 열어주자 고스 스타일 드레스를 차려입은 요조숙녀가 코앞에 서 있다.

       

       쌀가루처럼 뽀얀 피부. 앵두 같은 입술. 밤하늘에 뜬 달처럼 창연하게 빛나는 금색 눈동자.

       

       올곧게 뻗은 군청색 머리카락과, 바다처럼 드넓은 마빡… 이 아니라, 이마까지.

       

       누가 봐도 게임에서 튀어나온 로즈마리였다.

       

       “핫,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블루베리 님 맞으신가요?”

       “맞아요.”

       

       로즈마리는 고개를 까딱였다. 절대로 고개를 깊게 숙이지 않겠다는 단아함. 그리고 무뚝뚝한 말투까지.

       

       닼아에 등장하는 마수 그 자체였다. 

       

       “어서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가죽 단화를 벗고 들어오는 로즈마리. 프릴이 달린 하얀 양말이 하늘의 시선에 들어왔다.

       

       실제로 게임 속 로즈마리도 흰색 양말이나 스타킹을 즐겨 신는다.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다.

       

       이 사람이 다키스트 아카데미아를 그렇게나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놀라운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로즈마리를 방 안으로 안내하려던 하늘의 눈동자가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동그랗게 커진다.

       

       “세상에…. 바이올린까지 들고 오셨어요?”

       “네. 좋아하실 것 같아서.”

       “와…. 컨셉 진짜 대박이다.”

       

       하늘은 엄지를 치켜올리며 로즈마리를 연달아 칭찬했다.

       

       느낌이 좋다. 이대로라면 오늘 방송은 대성할 것 같았다.

       

       

       **

       

       

       자리를 잡고 앉은 두 사람.

       

       하늘은 능숙한 솜씨로 방송 세팅을 끝마쳤다. 로즈마리는 그 곁에 앉아서 콜라를 호로록 마시고 있었다.

       

       “됐어요, 이제 시작할게요?”

       “넹.”

       “넹?”

       

       크흠! 로즈마리가 목을 가다듬었다.

       

       “…네. 그러세요.”

       

       뭔가 귀여운 소리가 순간 들려왔지만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다. 하늘은 심호흡을 하며 오프닝 곡을 선정했다.

       

       [CewhY – Calibration]

       

       무난하고도 대중적인 노래.

       

       잔잔한 감성과 조화로운 운율감이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데 적절하다. 곡의 길이도 3분 정도로 적당한 편.

       

       하늘은 가사를 흥얼거리며 채팅창을 살폈다.

       

       [금안족눈알핥짝 : 방장 문열어!!!!]

       [블루베리쪽쪽 : 오]

       [로즈마리스무디 : 왔다 ㅋㅋㅋㅋㅋ]

       

       어째 보이는 닉네임들이 하나같이 이상하다.

       

       콜라를 마시던 로즈마리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닉네임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척수반사로 전신이 전율했다.

       

       [허접베리2호기 : 캬 ㅋㅋㅋㅋㅋㅋ]

       [베리in믹서기 : 오늘 개꿀잼 예약이다 ㅋㅋㅋㅋㅋㅋ]

       [에테르비밀친구 : 코스프레 개잘된거보소 ㅋㅋㅋㅋㅋ (미리 연습하는 중)]

       [응애베리응애앳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메세지─]

       [◇싹둑이 : 떽]

       

       대중적이고 잔잔한 노래.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대중적인 닉네임도 아니고 잔잔하지도 못한 시청자들.

       

       채팅창은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채팅을 관리하는 매니저봇이 떽떽거리며 선을 넘는 시청자들을 자동으로 잘라냈다.

       

       […….]

       

       어느덧 3분짜리 노래가 끝나고.

       

       “카메라 킬게요?”

       

       하늘은 마이크와 카메라를 조율하며 방송 화면을 분할했다.

       

       듀얼 모니터 한쪽에는 OBS와 채팅창을 띄워놓고, 다른 한쪽에는 인터넷 사이트와 게임 창을 올려놓는다.

       

       마지막으로 모든 세팅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캠 화면을 띄웠다.

       

       [dls0017 : 늘하]

       [이응피읖시옷 : ㄴㅎ]

       [여스트리머만찾아봄 : 늘하~(하늘이하이라는뜻 ㅎ)]

       

       하늘은 시청자들을 위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로즈마리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미르미리 : 와 합방!]

       [호프바에이스 : 이궈거든 ㅋㅋㅋㅋㅋㅋ]

       [플스갖고싶다 : 이걸 진짜 하네 ㅋㅋㅋㅋ]

       [에테르비밀친구 : 코스픜ㅋㅋㅋ캿캌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즈마리의 입꼬리가 내려간다. 영업 스마일을 지으려 했지만 잘 안 된다.

       

       “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시던 게스트를 모셔 봤어요. 바로 블루베리 님이에요!”

       

       [clcld93 : 블루베리?]

       [나람코파 : 버멜님 컨셉 제대로 잡으셨네 ㅋㅋ]

       [okao016 : 버멜 = 로즈마리 공식 성립 ㄷㄷㄷㄷㄷ]

       

       “블루베리 님,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한번 해 주세요.”

       

       하늘의 요청에 로즈마리는 정신을 차리고 여상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로즈마리의 미소란, 고압적인 귀족을 떠올리게 하는 고압적이고 잔망스러운 웃음을 뜻한다.

       

       “로즈마리 타르케닐입니다. 잘 부탁할게요?”

       

       [크쿠크쿠쿠 : 캬 ㅋㅋㅋㅋㅋㅋㅋㅋ]

       [적분당한미분상수 : 진짜 로즈마리 같네 ㄷ]

       [알리올리올리오 : 컨셉에 잡아먹힌 것 보소 ㅋㅋㅋㅋㅋㅋ]

       [Luriel : 혼혈 같은데 진짜 정체가 머임;]

       

       폭발적인 반응. 예상했던 상황이다. 로즈마리의 입가에 더 큰 조소가 걸린다.

       

       “제 정체요? 후후, 글쎄요.”

       

       우선 이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 잘 들어, 동생. 거기 가서 너를 버멜이 아닌 로즈마리라고 소개하고 와. 그러면서 닉네임은 블루베리를 쓰는 거지.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네 행동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못할 거야. 컨셉에 잡아먹힌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로즈마리는 에테르의 그런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지금, 그 말을 따라 컨셉에 잡아먹힌 척을 하고 있다.

       

       사실 연기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우선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네요. 여기 계신 분은 닼아 랭킹 1등이 맞아요. 하지만 버멜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은 아니랍니다.”

       

       [내림피아드 : ?]

       [떢뽀끼쪼아 : ?]

       [kjmsf5980 : 뭔 소리임?]

       

       “이 사람은 버멜 닉네임을 쓰는 분의 조카예요. 삼촌분이 닼아 아이디를 빌려 주셔서 게임했대요.”

       

       하늘은 로즈마리가 미리 말해준 내용에 따라 멘트를 쳤다. 그러자 물음표로 도배되는 채팅창.

       

       [kl086 : 진짜임?]

       [카랑카랑 : ㄹㅇ?]

       [금안족눈알핥짝 : 오히려 좋아]

       

       “네. 그래서 버멜이라는 사람과 여기 있는 블루베리 님은 다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블루베리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괜찮죠?”

       

       그 말을 들은 로즈마리가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블루베리라고 불러도 괜찮다는 신호였다.

       

       물론 이 별명은 에테르나 아카샤만 부를 수 있다. 로즈마리가 그렇게 정했다. 혹여라도 자신을 블루베리라고 부르는 개념 없는 인간이 있다면 목을 따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리가 없었다.

       

       로즈마리는 이를 꽉물며 헤실헤실 웃었다.

       

       [tt1tud : 와 로즈마리가 웃는 거 처음 보네 ㄷㄷ]

       [치킨엔치킨무 : ㄹㅇ 가짜인거 아는데 또 진짜인거 같기도 하고 ㅋㅋㅋ]

       [외않되T : 당연히 진짜는 아니겠지 ㅋㅋㅋㅋㅋ]

       

       이 뒤로 두 사람은 1시간 가까이 노가리를 깠다. 본방 전 열기를 띄우기 위한 잡담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1부로 정해 둔 게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시청자 수는 7천 명을 돌파했다.

       

       보는 눈이 많아질수록 행동거지가 더 신중해져야 한다.

       

       “아 참, 블루베리 님. 혹시 가져온 거 보여주실 수 있어요?”

       “뭐 말인가요?”

       “바이올린이요. 바이올린!”

       

       하늘이 똘망한 눈빛을 보내왔다.

       

       하늘은 블루베리가 진짜 로즈마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컨셉이 어느 정도로 정교한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건 로즈마리가 바이올린을 들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작심3초 : 오]

       [이것만보고공부함 : 바이올린도 들고 왔다고?]

       [ppApp : 코이츠ww 컨셉에 잡아먹힌 wwww]

       [베리킨라빈스 : 보여줘 (짝) 보여줘 (짝) 보여줘 (짝)]

       [lwd091 : 언니 한곡 뽑아줘ㅓㅓㅓ]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낸 로즈마리. 지구에선 마법을 쓸 수 없었기에 직접 새로 산 것이다.

       

       브랜드 있는 곳에서 구매해서 그런 걸까? 튜닝도 쉬웠고 어깨에 받쳤을 때 걸리는 느낌도 덜했다.

       

       송홧가루로 현을 부드럽게 한 뒤 본격적으로 찰현할 준비를 마쳤다.

       

       [알리올리올리오 : ((]

       [나는야뭐였지 : ))]

       [lwd081 : ((]

       [dlkfj34 : ))]

       [에테르남자친구 : ((]

       [에테르여자친구 : ))]

       

       채팅창은 벌써 난리였다.

       

       그리고.

       

       방음부스 안에 적적한 찰현의 소리가 떠다니기 시작했다.

       

       [티리엘우리엘 : 오]

       [미안하면단가요 : 오]

       [ww1111 : 오]

       [후후루탕 : 오]

       [okao016 : 오]

       

       로즈마리가 연주하는 것은 타르케닐 교향곡.

       

       틸레트 파트 4장에 있는 황궁 사교회에서 로즈마리가 처음으로 등장하여 연주하는 음악이다.

       

       느릿한 템포와 빠릿한 템포가 번갈아 연주되면서 지루함을 덜어준다.

       

       여기에 단조로 연주되면서 경쾌함을 살리는 리듬감은 연주를 듣는 이들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하늘도 넋을 읽고 예술을 감상했다. 게임 스토리를 다 알았는지라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만큼 로즈마리의 바이올린 다루는 솜씨는 아마추어라기보다는 전문가에 가까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에스더Esther 님, 314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스카이에 들어와서 에테르 교수님의 대학원생이 되고 싶다구요? 아, 대학원 좋죠! 이공학도를 위한 랩실은 언제든지 열려 있답니다! 열심히 공부하셔서 훗날 훌륭한 대학원생으로 전직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교수님, 이렇게 쓰면 되나요?

    익명의 후원자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앞으로 조금 있으면 완결 마크를 달아야 한다니 아쉽습니다 ㅠㅠ 언젠가 후원자님과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그날을 고대하곘습니다. 고맙습니다!

    sorka 님, 40코원 후원 감사합니다! 어느덧 마카물리가 400만 조회수가 되었네요. 이 모든 것이 독자님 덕분입니다. 첫 소설에 이만한 조회수를 누릴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마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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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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