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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5

       오늘 방송은 짧게 끝냈다. 아무리 이사가 오후 2시 정도라는 이른 시간에 끝났어도 노동은 노동이었고, 미아는 아직도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도 지금 당장은 괜찮아도 내일쯤에는 몸 여기저기가 엄청나게 당길 것 같기도 했고.

        

       그래도 다들 이사한 뒤 몸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주었기에, 그럭저럭 큰 반발 없이 방송을 끝낼 수 있었다.

        

       방송을 끝내고 방에서 나와보니, 새삼 우리가 지내던 곳이 얼마나 좁은 곳이었는지 확실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내던 곳이 서울의 원룸 치고는 그럭저럭 넓은 곳이었지만, 방이 세 개씩이나 있는 이 아파트의 거실은 그것보다 더 넓게 느껴졌다. 부엌도 거실에 딱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구분된 공간에 있었고.

        

       집이 더 넓어져서 좋은 점은 단순히 생활하는 인원의 숫자에서 오는 공간의 압박이 낮아졌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짐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 있었고, 그래서 외관상 보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어떤 물건에도 가려지지 않은 널따란 벽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거기 커다란 TV를 하나 달 수 있었으니까.

        

       사실 나는 평소에 TV를 자주 보는 성격은 아니었다. 보통은 인터넷 OTT 서비스로 영화를 보았고,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화면 크기에서 오는 감동 같은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감성의 소유자라서 굳이 영화관에 갈 생각도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커다란 TV가 하나 있다는 것에는 큰 장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다 같이 모여서 뭔가를 보기 좋다는 것이다.

        

       원룸에 있을 때는 다 같이 뭔가를 들여다보기가 매우 애매했다. 영화 같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컴퓨터 모니터로 봐야만 했는데, 내가 가진 모니터는 혼자 쓸 때는 그럭저럭 크게 느껴지는 사이즈이긴 했지만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영 작았다.

        

       그래서 보통 우리가 시간을 보낼 때는 각자 스마트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커다란 TV에 영화를 틀어두고 다 같이 거실에 모여 여유롭게 영화를 보다니, 여러모로 그림이 되는 광경이 아닌가.

        

       “소파를 사고서도 굳이 바닥에 앉는 이유가 뭔가요?”

        

       그런 생각을 하며 소파 앞에 이불을 깔고 바닥에 앉았더니 샤를로트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참고로 샤를로트는 소파 자리에 제대로 앉아있었다.

        

       “꽤 오랫동안 바닥에 앉아서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알겠는데, 그러면 소파를 굳이 사다 놓은 이유가 있나요?”

        

       “……가끔은 소파에 앉고 싶을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바닥에서 다리를 쭉 펴고 반쯤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잠깐 앉을 일이 있다면 소파에 앉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와는 다르게 좌식 생활을 하지 않았던 나머지 아이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쪽에 와서 이제 막 적응해가는 중인 샤를로트와 미아는 집 안에 소파를 들여놓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앨리스는 소파에 앉았고, 클레어는 나랑 같이 바닥에 앉았다.

        

       어차피 바닥에는 이불을 깔아두기도 했고, 덮을 수 있는 담요도 가져다 둔 지라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뭐,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 사람들의 방식이 있는 거니까.”

        

       “그건 그렇지만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원래는 좌식 생활을 하던 우리나라에 해외에서 소파나 식탁 같은 것이 들어와 정착했기에 그렇게 된 거겠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이렇게 앉아있으려니 심신이 안정되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역시 이 집이 ‘내 집’이라서 그런 것이 가장 컸다. 전셋집은…… 아무리 집주인이 재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기에 그런 ‘내 집 마련’을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집은 물론이고 돈 걱정도 크게 할 필요는 없게 되었으니까.

        

       “…….”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운전면허를 따볼 생각 있으십니까?”

        

       “운전면허?”

        

       이야기를 들은 클레어가 곧장 눈을 반짝였다.

        

       “주민등록증이 진짜라는 것은 이미 확인했죠. 여러분이 원한다면 언제든 운전면허를 딸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면허 따는 데 드는 비용도 생각해야 했고, 따더라도 쓸모가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제는 면허를 딸 돈도 자동차를 살 돈도 있으니까요.”

        

       내가 설명하자, 샤를로트도, 앨리스도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뭐, 두 사람의 의도는 순수하게 운전을 해보고 싶다는 클레어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제국에는 아직 적기조례가 남아있었고, 벨부르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자동차들이 들어가지 않아 관련 법률이 미비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안을 하나하나 다 만들고 고쳐나가야 했다.

        

       그런데 아예 그런 부분을 직접 배울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기회가 없을 것이다.

        

       “저, 저는…….”

        

       “굳이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동할 때는 다 같이 이동하는 경우가 많을 테니까요.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주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맞아! 내가 얼마든지 태워줄게!”

        

       아직 면허도 따본 적 없는 클레어가 벌써 그렇게 말해서, 미아의 눈이 불안하다는 듯 조금 흔들렸다.

        

       괜찮겠지. 성격이 엄청나게 활발해서 사고를 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클레어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규칙은 확실하게 따르는 모범생이다.

        

       물론 그 규칙의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다가가기는 하겠지만.

        

       “너는? 따려고?”

        

       “원래 있던 면허가 사라진 셈이니, 다시 따야 합니다. 사실 면허를 따 두고도 실제로 써본 적은 거의 없었고, 아제르나에서 수년 동안 있으며 운전을 직접 한 적이 없으니 어차피 새로 배우는 편이 나았겠죠.”

        

       “그럼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자.”

        

       “맞아요. 지금 우리 영화 보려고 이렇게 모인 거 아니었나요?”

        

       아, 그렇지, 참.

        

       TV에는 아직 영화 선택 창에서 멈춘 OTT 프로그램이 떠 있었다.

        

       “앗! 잠깐만요!”

        

       내가 리모컨에 손을 뻗는데, 갑자기 미아가 그렇게 외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부엌으로 달려가 뭔가를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자그마한 몸으로 잔뜩 끌어안고 온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팝콘이었다.

        

       “영화 볼 때 먹기 좋다고 해서요…….”

        

       온갖 종류의 팝콘을 소파의 빈자리에 쏟아놓고 미아가 그렇게 말했다. 조금 민망했는지 얼굴이 조금 붉었다.

        

       “정석적인 선택이긴 하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

        

       “……여러분. 방으로 안 돌아가십니까?”

        

       영화가 끝나고,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거실에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가려고 했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영상을 커다란 TV로 보는 것도 꽤 괜찮았다. 특히 바닥에 거의 눕듯이 하여 앉아서도 눈에 화면이 들어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옛날에 집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 누워서 TV나 조금 보다가 잠들려고 했는데, 어째 방으로 들어가는 애들이 없었다.

        

       침대도 제대로 들여놨는데. 그것도 각자 쓰기 좋도록 전부 1인용 침대였다. 배달오신 분들이 엄청나게 힘들어했었지.

        

       덕분에 클레어, 앨리스, 그리고 내가 쓰는 방은 조금은 아슬아슬할 정도로 차버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간단한 생활을 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어? 언니는?”

        

       “저는 여기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도 상관없습니다만.”

        

       “그래? 그럼 나도 여기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도 괜찮은데.”

        

       나의 말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면서 클레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아직 자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서. 네가 보려는 거 같이 보다가 잘 생각이었는데.”

        

       “…….”

        

       앨리스까지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일단 복권으로 들어온 돈은 모두 내 통장에 들어있었고, 집도 내 명의로 되어있긴 했지만, 이 아이들에게 집주인으로서 행패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이 집은 어디까지나 다 같이 사는 집이고, 주인은 우리 모두라는 생각이다. 여기 있는 동안은 다섯 자매라는 느낌으로 지내고 있으니까.

        

       “여러분 세 분이 여기에 계신 데, 저와 미아만 들어가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나요?”

        

       음…….

        

       만약에 두 명만 남아있었다면 세 사람이 방으로 돌아가는 것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그것도 조금 애매한 것이, 나와 앨리스, 혹은 클레어 둘만 남으면 방으로 돌아가는 게 클레어나 앨리스 둘 중 한 명뿐이었고, 그렇다고 나와 미아, 혹은 샤를로트가 남으면 역시 방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미아나 샤를로트 둘 중 하나 뿐이 된다.

        

       내가 이 거실에 있는 이상, 그림이 영 이상하게 된다는 소리다.

        

       “저도, 그냥 이 소파에서 자도 괜찮아요.”

        

       어느새 샤를로트의 허벅지를 당당하게 베고 누운 미아가 그렇게 말했다.

        

       “……하다못해 바닥에 내려와 자는 것을 추천합니다.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그럼 그냥 이불 들고나올까? 어차피 다 여기서 자는 거지?”

        

       “…….”

        

       클레어의 말에 나는 차마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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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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