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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5

    루크 이루시.

    자신에게 제피르의 새로운 관점을 알려주고, 마계를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론을 깨닫게 해 준 아이.

    그렇게 중요한 인연이었음에도, 제임스는 그 소녀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마지막 기억 속에서의 루크는 단지 10살배기 여자아이에 불과했으니까.

     

    새로운 것을 신기해하고, 컴퓨터로 고양이 영상을 보기 좋아하는 작은 어린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은 어떤가?

    이미 귀엽다는 말 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고 있으며, 행동 하나하나가 단정하고 우아하다.

    게다가 이 아이는 벌써 몸조차 어느정도 성숙한 여성의 태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수인의 성장이 빠르다고 해도, 이건 너무 빠르다.

    당연히 못 알아보지.

     

    제임스는 루크가 가져온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루크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내려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해서. 네가 벌써 이렇게나 컸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거든……. 그나저나, 정말 몰라보게 예쁘게 자랐구나. 수인족이 워낙 빠르게 자란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이해하겠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이미 지난 일이니 그건 너무 신경쓰지 말게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에겐 약간 서운하다는 감정이 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전에는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는데, 자신에겐 탐사에서 돌아왔다는 말도 없이 연락하자는 약속도 잊어버리다니.

    아마 그래서 곧바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심술을 부리고 있었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는 제임스를 향해 옅게 웃어보인 루크는 차가 담긴 종이컵을 조심스레 한 손으로 받쳐 들고는 입가에 가져갔다.

    그 모습은 마치 루크가 들고 있는 것이 종이컵이 아니라 고급 찻잔이라도 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후후, 이 차는 과자와 함께 먹으면 좋았을 텐데, 급하게 오느라 생각을 못 했지 뭔가. 나중에 달콤한 것과 곁들여 마셔보게.”

    “아, 알겠다. 그렇구나…….”

    제임스는 다시 한번 식은땀을 흘렸다.

     

    루크는 어린아이의 모습일 때에도 저런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몸이 자라고 나니 그 분위기가 너무 다르게 보인다.

    그 어릴 때에는 단지 아이가 어른인 척 흉내내는 귀여운 행동 처럼만 보였는데, 몸이 저토록 자라니 이제는 완전히 단정하고 우아한 귀족가문의 숙녀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임스는 루크의 맞은편의 의자를 빼 앉으며 생각했다.

     

    ‘이 아이가 아직 10살밖에 되지 않았다니……?’

     

    제임스는 루크가 여러모로 고민되기 시작했다.

    도무지 10살이 풍길 수 있는 느낌이나 분위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루크의 도도한 모습을 보면 벌써부터 저 아이가 장래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아이들에게 시달릴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제임스가 루크의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조심스럽게 할 말을 고르고 있는 사이, 루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아까 살짝 들어보니 제피르 이론이라고 하던데, 그대는 동료들과 그걸 이야기하고 있었던 건가? 그건 뭐지?”

    “아, 그것 말이지.”

     

    제임스는 루크에 의해 만들어진 그 이론을 루크에게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제피르 이론은 너도 알다시피, 네가 내게 말해 주었던 그 이론을 바탕으로 내가 정리해 낸 이론이란다. 간단히말해 마계를 현 차원의 생태계와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보고, 새로운 분류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뭐. 그런 얘기지.”

     

    제임스의 말을 들은 루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렇군. 아직 논의되는 단계였나. 그래서 내게 연락을 보내지 않았던 거군. 그럼, 논의는 잘 되어가나?”

     

    루크의 눈빛은 묘한 흥미를 갖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드랙상과 관련 된 이야기이니 흥미가 갈 수 밖에 없겠지.

    그에 제임스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하다, 루크. 탐사작업이 한 기업에 의해 방해받는 바람에, 그래서 연락을 보내지 않았던 거야. 신경을 써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았거든.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네 드랙상은 기약없이 미뤄질 것 같구나. 탐사를 할 수 없게 된 지금은 이론을 다듬는 것 외엔 마땅히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하지만 드랙상이 기약없이 미뤄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음에도 루크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뭐, 그런 걸로 미안해 할 것 없네. 이제 드랙상은 신경 안 쓰니까. 그러니 그 이론은 그대가 알아서 하게. 논문에 내 이름을 올리지 않아도 좋아. 드랙상은 포기하겠네.”

     

    하지만 오히려 그 덤덤한 루크의 말에 당황한 제임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드랙상을 포기한다니?”

     

    그에 루크는 변함없는 표정과 몸짓으로 종이컵을 들어 입가에 갖다대며 대꾸했다.

     

    “뭐, 그런 상이 없어도 어차피 조기졸업은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구태여 드랙상으로까지 유명해지고 싶진 않네.”

     

    맙소사, 이제 필요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많은 학자들이 바라마지않는 그 명예로운 상을 포기한다니!

    제임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가 아까 전 루크가 한 말에서 마음에 걸린 부분은 그 뿐이 아니었다.

     

    “드랙상 ‘으로까지’? 또 무슨 상을 받는단 말이냐?”

    “라스상, 아마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 같다만. 그래서 양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드랙상 까지 받으면 그 상황이 감당이 안 될 테니.”

    “허!”

     

    라스상이라니, 그건 정말 위대한 마법적 증명을 해낸 마법사에게 주어지는 굉장히 영예로운 상이 아닌가!

    그렇기에 그 상의 위상은 드랙상 못지 않았다.

     

    헌데 그 상을 받을 것이 예정되어 있다니?

    고작 10살배기 여자아이가?

    그러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 정말 대단한 일이 있었나 보구나.”

     

    “뭐, 그렇지.”

     

    -후룹.

     

    그 경악스러운 소식을 이토록 태연하게 내뱉은 뒤 차를 음미하는 아이의 모습에 제임스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첫 만남부터 이 아이는 범상치 않다는 인상은 인상을 받기는 했지만, 이젠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그래, 네 말대로 드랙상과 라스상을 동시에 받으면 너무 유명해지기야 하겠어.”

    “내 말이 그 말일세.”

     

    루크에게 자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긴 하나, 언제 받을 수 있을 지 모르는 상은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기업이 탐사를 방해하고 있다면 아마, 근시일 내엔 증명될 길이 없을 수도 있는 법이고.

     

    “그런데, 기업이 그대의 탐사를 방해하다니. 별 일이군 그래.”

     

    보통 학자들의 탐사활동은 기업이 심하게 방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차피 둘은 충분히 함께 병행할 수도 있는 종류의 일이니 말이다.

     

    루크의 말에 제임스도 한숨을 쉬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후우, 나도 갑갑할 따름이다. 그 루체스트 녀석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루체스트? 그게 그대를 방해한 기업의 이름인가?”

     

    루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제임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한 말실수를 깨달았다.

     

    ‘아, 이런. 애 앞에서 무슨 말을.’

     

    저래 보여도 루크는 10살짜리 어린아이, 그 아이 앞에서 남을 욕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제시한 ‘기업명 발설 금지조약’도 있었고…….

     

    “하하, 아까 한 말은 잊어주거라. 그나저나, 내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었나?”

    “음, 그랬지.”

     

    루크는 그에게서 애써 주제를 돌리려는 모습이 보였기에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이제 슬슬 물어볼 이야기를 꺼낼 때도 되었고.

     

    “제임스, 그대는 마수학자이니 마계에 대해 잘 알겠지?”

    “음……. 아마,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일반적인 마법사나 학자 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계의 대기를 보관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마계의 재현이라고?”

     

    제임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런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구나. 처음 듣는 얘기야.”

    “흐음. 그렇군.”

    “갑자기 그건 왜 묻느냐? 마계에 대해 또 다른 관심이라도 생긴 게냐? 아니면, 새로운 이론이라던가…….”

     

    제임스는 루크를 향해 묘한 기대감이 섞인 눈빛을 보내었으나, 루크에게는 오로지 그때 보았던 안개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으로, 그와 토론할 새로운 이론이나 이야기 따위는 없었다.

     

    “뭐, 그냥 물어봤다. 그런 기술을 모른다니, 하는 수 없군.”

    “음……. 그러냐? 나도 참 아쉽구나.”

     

    제임스는 정말로 아쉬운 티를 내고 있었다.

    일전에 루크와 나눴던 제피르와 비슷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자아, 그럼 또 다른 질문인데, 괜찮을까?”

    “그래, 루크. 이번엔 뭐가 궁금하지?”

     

    루크의 목소리에 제임스는 이번에는 반드시 대답을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니드호그에 대해서 알고 있나?”

     

    하지만 루크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단어에 제임스는 즉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니드호그? 루크, 네가 그 이름은 어디서 들었지?”

     

    훌륭한 마수학자는 필연적으로 훌륭한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반인에게는 쉬이 공개되지 않는 역사에 대한 진실 역시 그들은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루크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는 굉장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니드호그.

     

    그 이름은 현재는 극비로 부쳐진, 끔찍한 전쟁 역사의 이면.

    세계수의 파괴자이자, 조소하는 학살자.

    그리고…….

     

    ‘신화시대의 마지막 대적자.’

     

    역사상 다시는 없을 치명적인 본 드래곤을 칭하는 말이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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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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