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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5

       “안녕하세요. 화령님. 그리고 엔리님. 아피스 프로게이머인 파이스 스코비아라고 합니다.”

       

       방 안으로 들어온 녀석은 처음 보았을 때처럼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상태였다.

       

       손끝이 부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애써 평정을 유지한다는 티가 절로 난다만 뭐 어떠냐. 제 발로 여기에 올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을 터.

       

       “방금 전에는 실례를… 아. 잠시. 영어 모르시죠? 어. 그러면.”

       “필요 없다.”

       

       곤란해 하는 녀석에게 가벼이 대답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문이 닫힘과 동시에 이 방과 바깥의 공간이 차단되었다.

       

       이로써 이 안에서 나도는 이야기는 바깥으로 전해지지 못할 터.

       

       내 한서우가 떠나기 전에 개인실에는 따로 영상이나 소리를 기록하는 도구가 있지 않음을 확인받은 뒤이니 그 부분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네 놈이 무슨 언어로 떠들든 간에 알아들을 수 있으니.”

       “…대단하십니다마는. 그걸 다 이야기하셔도 괜찮은 겁니까?”

       

       파이스가 조심스레 살피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엔리였다. 일반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냐는 것이겠지.

       

       “괜찮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녀석이니까.”

       “다 안 지 얼마 안 되기는 했지만요.”

       

       평소와 달리 어색한 웃음을 짓는 엔리를 보고 있자니 이 녀석이 파이스라는 녀석을 아낀다는 걸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여느 때와 같았더라면 지금쯤 잔뜩 호들갑을 떨어대는 중일 터인데 지금은 언제 사인용지를 내밀지 틈만을 보고 있으니.

       

       저래서야 파이스 이 놈이 떠나갈 때까지 종이 한 번 내밀지 못하겠군.

       

       “언제까지 서 있을 생각이더냐. 일단 앉거라.”

       “…넵.”

       

       내 명령에 따라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은 녀석은 먹잇감 앞에 머무르는 동물마냥 자꾸만 내 눈치를 보았다.

       

       “무얼 보았느냐.”

       

       본인의 경지에서 무얼 보았기에 이토록 겁에 질린 것이냐.

       

       그 검은 것의 원본을 상대한 인간이라면 분명 막대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공포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 가.

       

       그것이 궁금하여 물어보았더니 파이스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마는 굳이 비유하자면 끝이 없는 낭떠러지와 같았습니다.”

       “흠?”

       “아무리 눈을 여겨서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라보고 있다보면 어느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영원히 낙하를 반복하게 될 낭떠러지.”

       

       생물에게 존재하는 원초적인 공포를 건드리는 그 어둠의 앞에 짓눌려버렸노라고 파이스는 답했다.

       

       “지금도 그걸 떠올리면 좀 섬뜩합니다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지금도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공포스러웠던 모양이구나.

       

       흐음. 어둠인가. 본인이 여러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저런 식으로 본인을 표현하는 사람은 처음이구나.

       

       신선하단 생각을 하며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으려니 옆에서 엔리가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우리 화령 씨가 무서운 사람이라.”

       “…네? 아뇨! 전혀요! 이번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입니다.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화령님의 경지를 짐작하려고 한 것도 모자라 감추어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소란을 일으키기까지 했으니. 이곳이 현대가 아니었더라면 목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죄입니다. 오히려 화령님의 관대함을 칭송해 마땅하지요.”

       

       자기를 생각해서라도 부디 사과하지 말아달라는 파이스의 말에 엔리가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이번에는 파이스가 또 다시 기겁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미 본인에 대한 공포가 마음 속 깊이 각인 된 녀석이다. 나와 가까워 보이는 엔리를 불편하게 했다가 내 심기를 건드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쓰잘데기 없이 정중한 사내구나. 보통 막대한 힘을 손에 넣은 이라면 티를 내지 않더라도 몸에 거만함이 묻어나기 마련이거늘.

       

       이 녀석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한 엔리를 상대할 때에도 언제나 부드러움을 잃지 않아.

       

       원래 본성이 이런 사내인가. 과연. 용사라는 단어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작자구나.

       

       “죄송합니다!”

       “제발 죄송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더 죄송합니다!”

       

       두 녀석이 서로를 배려하느라고 땅을 파고 들어가는 꼴이 썩 재밌기는 하다만. 이래서야 본론으로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중간에 중재를 해주어야겠지.

       

       여태까지 중간에 지워버렸던 연기를 일부러 둘 사이로 보내자 녀석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모여 들었다.

       

       “엔리. 그쯤하면 됐으니까 물러나요.”

       “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도 그만하고.”

       “네! 죄… 합!”

       

       또 다시 죄송하다는 말을 하려다 다급히 입을 틀어막는 엔리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여간에. 아피스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동경하던 사람이라더니 오늘 꼴이 말이 아니구나.

       

       평소 누구를 만나더라도 활달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리 긴장해서 난리인지 원.

       

       일단 저 녀석은 이대로 진정하게 내버려 두고.

       

       “파이스.”

       “넵!”

       “오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은 그대로 진행이 되는가?”

       “네. 그렇게 이야기를 해두었습니다. 아마 30분 정도 있으면 예정대로 시작할 겁니다.”

       

       다행스러운 일이구나. 오늘 재밌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입을 다물게 할 생각이었거늘. 아예 취소가 되어버리면 여러모로 일이 귀찮아지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내 특별이 그대에게 나의 부탁을 들을 권리를 주도록 하마.”

       “…네?”

       “내 이번 일의 죄과를 물을 생각은 없었다만 그래서야 괜히 그대의 마음만 불편해질 뿐이지 않은가.”

       간단하게 말을 하자면 속죄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나처럼 위험한 자에게 원한을 사는 것보다야 단순한 부탁 몇 가지를 듣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제가 가능한 한도에서라면요.”

       

       내 말 뜻을 어렵잖게 이해한 듯 파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 부탁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은 아피스가 아닌 현실에서의 대련.”

       

       아무래도 호기심이 생긴단 말이지.

       

       본인의 차려둔 장막을 거둘 정도의 능력이며 동시에 본인이 알지 못하는 종류의 능력이다. 그것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해.

       

       작금의 본인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한 번쯤은 눈에 새겨두고 싶구나.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을 터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그거라면 저도 어느 정도 바라던 일이라. 환영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다음이다.”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내기로 엔리의 몸을 움직여 녀석이 만지작거리고 있던 종이를 앞으로 내밀게 만들었다.

       

       “이 녀석에게 사인을 해줘라.”

       

       참. 오늘 이 곳에 오기 전부터 꼭 사인을 받을 거라면서 난리를 치던 녀석이 정작 본인을 만나자마자 굳어버리는 꼴이라니.

       

       “같이 사진도 찍고 싶다 그랬었지. 그것도 해주고. 아 참. 나중에 비싼 음식도 한 번 얻어먹어야겠군 그래. 대화의 자리를 만들기로 했으니.”

       

       부탁이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났지만 괜찮겠지? 그만큼 그대의 죄과가 줄어든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아라 씨.”

       

       내 태연히 말을 주절거리던 중 엔리가 갑자기 목소리를 냈다.

       

       무어냐. 본인의 배려심에 감동한 것이냐? 하하.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우리의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이 정도 쯤이야.

       

       “좀 팬심이란 걸 신경 써주시면 안 될까요?! 이 아저씨같은 사람아!”

       

       …어.

       

       음.

       

       이러는 게 아니었나?

       

       *

       

       자그마한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일 자체는 부드럽게 풀렸다.

       

       어쨌든 간에 엔리는 바라던대로 파이스에게 사인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다만 내 엔리에게 섬세함이 없다는 투덜거림을 잔뜩 들어야만 했지. 나름 배려해서 움직였다 생각했거늘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대략 삼사십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QZ게이밍의 직원이 우리를 찾아왔고 그렇게 오늘의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마는.

       

       카메라의 중심에 선 것은 두 구단의 프로게이머들이었다.

       

       어쨌든 간에 오늘의 중심이 되는 것은 국내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QZ게이밍과 해외에서 찾아온 팀 파일 간의 대결.

       

       본인과 파이스의 마지막 대결은 어디까지나 덤에 가까운 것인지라 슬쩍 빠져 있을 수밖에 없지.

       

       엔리를 데려온 데에는 이런 사유도 있었다. 본인이 여기에서 혼자 있어봐야 무얼 하겠느냐. 옆에 다른 사람이라도 있어야 심심함을 달랠 수 있지.

       

       허나 이런 내 생각은 쓸데없이 앞서나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해설이라니. 저 이런 얘기 못 들었는데요.”

       

       나의 손에 마이크가 쥐어졌으니.

       

       하아. 아직 내 차례가 오지도 않았거늘 직원이 날 호명했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은 눈치챘다만 설마 이런 것일 줄이야.

       

       “서우가 아무 말도 안 해주던가요?”

       

       마이크를 껄끄럽게 바라보며 투덜거렸더니 옆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엔리에게 듣자하니 현직 아피스 리그 해설 위원이라던가 하는 작자였을 것이다.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고.”

       

       내 이 이벤트로 방송의 겁화를 짓누를 생각을 했을 때부터 한서우 녀석의 이야기를 흘려들었으니.

       

       어쩌면 한서우가 이야기 했음에도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아하하. 괜찮을 겁니다. 저번에 데케이 대회에서 화령님이 해설하는 거 보니까 엄청 잘하시던 걸요.”

       “해설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니까요.”

       

       결국 해설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풍경을 말로 풀어 설명해주는 것.

       

       그러니만큼 많이 볼 수 있는 자라면 그만큼이나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지.

       

       그리고 본인은 무라는 분야에 한해서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니만큼 해설의 역에 잘 어울린다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잘 할 자신도 있고 말이다. 이런 걸 본인이 못하면 누가 잘하겠느냐.

       

       다만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은.

       

       “근데 공식적인 자리면 말을 골라야 하잖아요.”

       

       본인은 말이다. 못 하는 것은 못 하다고 말하고 한심한 것은 한심하다 말해야 속이 풀리는 사람이다.

       

       헌데 이렇게 마이크를 붙잡아버리면 그 모든 말을 할 수가 없지 않으냐.

       

       내 이리 이야기를 했더니 남자가 눈을 끔뻑거리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안 골라도 괜찮아요. 어지간한 건 제가 수습할 테니까.”

       “그래요?”

       호. 퍽이나 믿음직스럽군 그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설파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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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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