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5

   “예술 교단으로 향하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대놓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던 탓일까. 알새틴의 말에는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래야지. 이 변태새끼들이 병신짓을 하는 걸 두고 볼 순 없잖아.”

   “병신짓…입니까?”

   “그래. 병신짓.”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책상에 내던지면서 단언하자 알새틴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제 발로 뒤지러 가는 계획에 병신짓 말고 다른 표현을 쓸 수가 있나?”

   

   지금 예술 교단이 향하려는 장소는 분명한 함정이다. 그 곳에는 여러 악신의 추종자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지독한 것들이 존재하거든.

   

   거긴 발악하면 어떻게든 넘어설 수 있는 던전이 아냐. 함정에 빠진 자들을 죽이고야 말겠단 악의로 가득한 지옥이라고.

   

   거기에 자기 발로 들어가겠다는 게 병신같은 짓이 아니면 뭐가 병신 같은 짓이겠어?

   

   “이게 함정이라고요?”

   

   알새틴은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나크라드가 누설한 것을 기반으로 다른 악신의 추종자들을 추궁해 교차검증을 끝마친 정보입니다만.”

   “하아. 이렇게 지능이 낮아서야. 지금이라도 카리아 옆으로 가서 자칼이랑 같이 구르는 게 어때? 네 수준에는 그 정도가 어울릴 것 같은데.”

   

   나는 새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악신의 추종자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저들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안다면 악신을 모시는 미치광이들이 자기 세력을 팔아먹을 리 없단 걸 알 텐데.

   

   “잘 들어. 한심하기 그지없는 너한테 이 이상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소울 아카데미에서 악신 세력은 생각보다 촘촘하게 뭉쳐져 있는 이들이다.

   

   양지에서 각자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반목하는 여러 교회들과 달리 악신의 추종자들은 탄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을 모았다.

   

   각자가 모시는 신은 다를지언정 정체를 숨긴 채 살아야한다는 그 공통점이 그들을 결집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악신의 추종자들은 결코 다른 세력을 팔아먹지 않는다.

   

   악신의 부활이란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은 서로를 협력자라 생각하니까.

   

   자신이 현세에서 겪을 고통보다 악신의 부활로 이루어질 자신의 꿈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각자의 이유로 악신의 추종자가 된 광신도들은 자신이 죽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꿈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나크라드 또한 그렇다. 아내의 죽음 이후로 악신 세력에 투신한 그 자에게 아내가 없는 이 세상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 자가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죽음 이후에 마주할 아내 뿐.

   

   그런 녀석이 저 살겠다고 악신 세력을 배반했다고? 자기 아내를 만날 수 없게 될 것을 알면서 정보를 누설했다고?

   

   그럴 리가 있나. 그 녀석은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아내를 만날 기회를 포기하지 않을 거다.

   

   이런 내 설명을 끝까지 들은 알새틴은 눈을 끔뻑이다가 물음을 던졌다.

   

   “악신의 추종자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지녔는지에 대해선 이해했습니다. 헌데 어째서 나크라드와 다른 추종자들의 말이 일치하는 것이죠?”

   “금붕어야? 앞에서 말해줬는데 왜 이해를 못해? 병신을 따라다니는 병신들은 저들끼리 핥아대는 걸 좋아한다니까?”

   

   사로 잡혔을 경우 어떤 가짜 정보를 이야기할지에 대해서도 입을 맞춰뒀으니 당연히 같은 정보가 튀어 나오지.

   

   “…아! 과연!”

   

   그제서야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낸 알새틴은 이것저것을 확인한 끝에 탄성을 내질렀다.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참 이상하네. 게임 속의 알새틴은 정보가 이상할 정도로 일치하는 걸 보고 기이함을 알아차렸는데 왜 현실의 알새틴은 그러지 못하는 거야? 카리아가 돌아온 것에 대한 반동인가?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소식을 예술 교단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보팔이. 나대지 마.”

   

   내가 홀로 움직이겠다는 알새틴을 막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의 말이 지닌 공신력이 부족하니까.

   

   일개 정보원에 불과한 그가 계획이 잘못되었단 이야기 한들 예술 교단 측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다르다. 까마귀 여신이 총애하는 내가 예술교단에 직접 이야기를 전한다면 그들은 즉시 계획을 수정할 터.

   

   “건방지게 굴지 말고 그냥 내 뒤나 졸졸 따라와. 알겠어?”

   “그렇다면 미리 예술교단으로 이동할 준비만 해두겠습니다.”

   

   *

   

   알새틴과 헤어진 후 나는 친구들에게 해산을 이야기했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쉬다가 아카데미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이다.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휴식을 환영한다는 점은 모두 일치했다. 거의 한달 가까이 강행군을 거듭했으니 이게 정상이긴 하지.

   

   우리들의 해산을 반긴 건 리즈 영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어라 던전공략을 거듭하는 우리들에게 반강제로 맞춰야했던 이들은 우리가 떠나겠다는 말을 전하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저 사람들에게 너무 무신경했나 싶긴 하더라. 메스가키 스킬 때문에 사과도 감사도 전할 수는 없었지만.

   

   하여튼 그렇게 리즈 영지에서 빠져나온 나는 바로 예술 교단으로 향하는 대신 먼저 알른 가문에 방문했다.

   

   휴식이 필요한 건 아냐. 내가 그 동안 해왔던 여러 훈련들에 비하면 얼마 전의 노가다는 아무것도 아니었거든. 친구들을 배려한다고 좀 설렁설렁 한 것도 있고.

   

   내가 알른 가문을 찾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예술 교단의 변태들을 억제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난 아직도 수정구를 통해 변태 사도에게 연락을 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다.

   

   온갖 괴상한 녀석들이 변태 사도 뒤편에서 나타나선 나를 만나러 오기 위해 대결을 벌였던 것을 말이다.

   

   예술 교단에 향한다는 것은 그 변태들의 한복판에 들어가게 된단 건데 난 혼자서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어!

   

   최소한 그 변태들이 내 옆에 다가오는 걸 막아줄 사람 정도는 필요하다고! 내가 바란 최적의 인선은 포셀이었다.

   

   베네딕보다는 못할 지언정 상당한 명성과 무력을 지닌 그라면 예술 교단의 변태들을 어렵잖게 억제해 줄 수 있으리라 판단했으니까.

   

   “죄송합니다. 아가씨. 저도 마음 같아서는 동행해드리고 싶습니다만 가주님께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저까지 영지를 떠날 순 없어서요.”

   

   허나 안타깝게도 내 바람은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젠장! 포셀이 있다면 그 징그러운 녀석들을 막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예술 교단의 본진에 나와 함께 가게 된 이들은 언제나와 비슷하게 됐다.

   

   내 호위기사인 칼. 세트 메뉴처럼 따라 오는 대머리 기사. 여러 자질구레한 것들을 처리해 줄 에린. 그리고 봄이 다가옴에 따라 기력을 되찾고 있는 얼빠 여우까지.

   

   “걱정하지 마라! 루시! 다른 변태놈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내 막아주도록 하겠다! 건방진 놈들! 루시 주변에 있을 변태는 나 하나로 충분하다!”

   

   얼빠여우가 지껄이는 헛소리를 듣고 있자니 할 말이 참 많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자기가 변태라는 걸 인정했단 거에 만족해야지. 안 그럼 나만 피곤해지잖아.

   

   그렇게 사람을 모은 나는 알새틴이 기다리고 있겠다 이야기한 곳으로 향했다.

   

   “알른 영애.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예술 교단 측에서 외부인의 순간이동을 받아들일 수 없답니다.”

   

   은근히 폐쇄적인 경향이 있는 곳이라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설명을 들은 난 별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정보팔이. 그 변태 새끼들한테 내 이름 말해봐.”

   “예?”

   “시키면 해. 네 낡고 허접한 머리보단 내 머리가 더 낫잖아.”

   

   알새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갤 갸웃거리면서도 내가 시킨 바를 따랐다.

   

   “…어. 허락이 떨어졌네요.”

   

   나는 순간이동진으로 먼저 다른 기사들과 알새틴을 보낸 후 예술 교단의 본진으로 향했다.

   

   주변에 푸른 빛이 피어오른 걸 보고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순간이동이 선사하는 어지러움이 나를 덮쳤다.

   

   예전에는 이를 버티지 못해 바닥에 널부러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쓰러질 정도는 아냐.

   

   숨을 몰아쉬며 평정을 되찾은 나는 조심스레 눈꺼풀을 들었다. 그리고 나서 칼과 대머리 기사가 만들어낸 장벽 너머에 우글거리는 예술 교단의 사람들을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상하다. 내가 뭔가를 잘못 본 거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로가 잔뜩 쌓여 있었나?

   

   그래서 기절을 하는 바람에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꺄아아악! 너무 예뻐!”

   “알른 영애! 손 한 번만 흔들어주세요옷!”

   “이런 예술품을 사도님 혼자 독점하고 있었단 말야!?”

   “하악. 오늘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여신님의 현신이 이런 건가.”

   “흐아앙. 너무 아름다우셔어어어.”

   

   귓가에 스며드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슬슬 이 곳에 온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니 이럴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것까지 예상하고 있었다면 그냥 알새틴한테 다 맡겨버리고 여기 올 생각조차 안 했을 텐데.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알새틴한테 다 짬처리해버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나를 향하는 무수한 시선 속 저욕한 욕망을 느끼고 있으려니 살짝 기분이 들떴다.

   

   생각해보면 굳이 저 변태들을 꺼려할 이유가 있나? 쟤네만큼이나 가지고 놀기 좋은 애들이 없잖아.

   

   얼빠여우나 변태사도처럼 내가 힘으로 못 이길 상대들도 아니고. 진짜 징그러워지면 그냥 쫓아버리면 그만이니까.

   

   생각을 바꾸고 나니 저 징그러운 변태들이 장난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흐응. 여태 다른 변태들한테 괴롭힘만 당해왔잖아.

   

   그 원한을 저 허접 쓰레기들한테 조금 되돌려 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