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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5

   세계의 규칙마저 바꿔버릴 마법의 폭우 속.

   아벨라는 그러한 마법의 표적이 된 크라슈에게서 한순간에 쏟아 나온 섬광을 보았다.

     

   그리고 그 섬광은 아벨라의 기억 속에도 존재했다.

     

   더 이상 세상이 묵시록의 4기사를 상대로 대응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아서가 꺼내 들었던 마지막 카드.

     

   성검의 개안.

     

   아벨라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크라슈가 성검을 쥐고 있던 것이야 아벨라도 직접 보아 알고 있었다.

     

   더불어 그가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도 모르지는 않았다.

   크라슈는 아벨라에게 있어서도 상당한 변수를 가진 인물이다.

     

   블랙 후드라는 특이한 스킬을 지닌 그는 아벨라와 같이 회귀의 기억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아벨라도 크라슈에 관해서는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어야 했다.

     

   무엇보다 크라슈의 독종 같은 성격은 극단적 선택 또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이거였구나.”

     

   아벨라는 기어코, 성검의 개안을 발동시키며 자신의 신기를 태워 버리고 있는 크라슈를 어이없다는 듯이 보았다.

     

   성검의 개안은 신기를 돌이킬 수 없도록 태워 버리며 한순간이지만 한계선을 돌파할 수 있는 막대한 힘을 지니게 해준다.

     

   이는 크라슈를 그릇으로 쓰려했던 아벨라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는 일이다.

   크라슈가 태우고 있는 신기는 다름 아닌 세계 침식의 힘을 신기로 치환 시킨 거니까.

     

   크라슈의 몸에 담긴 세계 침식의 힘이 필요한 아벨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아벨라는 크라슈를 별 감정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왜?”

     

   크라슈가 의도한 바는 알았다.

     

   자신의 신기를 태워 성검을 완전히 개안시킨 뒤.

   그 틈에 자신을 쓰러트릴 생각이었겠지.

     

   불사를 응용해 힘을 빼앗기지 않도록 묶어둔 것부터 시작해.

   빼앗기지 않은 힘을 모조리 불사르는 성검의 개안까지.

     

   확실히 잘 짜놓은 계획이다.

   크라슈다운 참으로 독종스러운 계획이다.

     

   성검을 개안하게 되어 버린다면 크라슈는 자신이 지닌 힘을 상당수 잃게 된다.

   크라슈 본인으로서는 자신의 힘을 전부 잃을 각오까지 했겠지.

     

   이는 크라슈가 아니면 감히 결심할 수도 없는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애초부터 어그러져 있었다.

     

   “성검의 개안은 강력한 수긴 한데.”

     

   아벨라는 조금은 안타까운 눈으로 크라슈에게 고했다.

     

   “성검이 수용하는 힘은 결국 한계점이 있는걸.”

     

   휘몰아치는 마법의 폭거 속.

   성검의 섬광으로 마법을 견뎌내던 크라슈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것이 보였다.

     

   분명 자신의 모든 힘을 태워야 할 성검이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아벨라는 아서의 회귀 기억을 녹여내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엿보았다.

     

   그중 성검의 성능에 관한 것도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을 깎아내어 만들었다는 성검.

     

   이러한 성검은 신기를 흡수하기에 최적화 되어 있고, 개안이라는 필살의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검은 검이다.

   성검은 신기를 무한하게 흡수하여 태울 수 없다.

     

   성검에게도 허용 한계치라는 게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성검이 그런 게 가능했다면 아서는 성검에 모든 신들을 죽여 담아내어 묵시록의 4기사를 상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서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한다 한들 결국 힘을 감당하지 못한 성검이 부서질 뿐이니까.

     

   그리고 크라슈는 이 사실을 몰랐다.

   그는 성검을 직접 다뤄본 것도 아니고, 개안을 경험해본 것도 아니니까.

     

   여기에서 경험과 지식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고 말았다.

     

   섬광 속 크라슈의 얼굴이 굳는 것이 보였다.

     

   신기를 태우며 터져 나온 성검의 섬광은 일순간 아벨라의 마법까지 밀어냈다.

     

   하지만 그것뿐.

   결국 크라슈의 몸속에 잔류한 세계 침식의 힘은 전부 태워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마저도 성검의 개안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쿠구구구궁!

     

   성검의 섬광에 밀려났던 마법들이 휘몰아치며 크라슈를 더더욱 거세게 조이기 시작했다.

     

   쿵!

     

   그에 따라 아벨라의 지팡이도 바닥을 찍었다.

     

   어찌 되었든 크라슈의 계획은 절반은 성공했다.

   실제로 그는 성검의 개안을 통해 세계 침식의 힘을 태우고 있긴 했으니까.

     

   그러니 아벨라는 더 이상 그가 세계 침식의 힘을 태우게 둘 생각이 없었다.

     

   “잃는 거 아까우니까.”

     

   아벨라의 발아래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마법진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이전의 마법들과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소멸의 마법.

     

   아담.

     

   대륙조차 소멸시킬 수 있는 마법의 극의.

     

   마법의 준비가 시작되자 크라슈 쪽에서도 반응이 왔다.

   악착같이 성검을 개안시키려던 그가 눈을 부릅뜬 것이다.

     

   그 또한 깨달은 것이다.

   아담이 발동되는 순간 모든 게 끝나버릴 것이란 걸.

     

   아담의 마법진에서 새어 나온 빛이 크라슈의 성검이 내뿜은 섬광마저 집어삼켜 가기 시작했다.

     

   점차 주변이 백색으로 물들어 가며 주위가 진동해 나갔다.

     

   아벨라의 몸에서 마력의 힘이 요동쳤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마력에 의해 거센 빛을 쏟아냈다.

     

   그러한 빛 속.

   아벨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로써, 크라슈는 소멸하고, 그에게 담긴 세계 침식의 힘은 고스란히 초월석이 집어삼킬 것이다.

     

   그러한 초월석을 통해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해낸 뒤 회귀 인형까지 창조하게 된다면.

     

   마법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있게 된다.

     

   붉은 마녀가 호기심과 지식욕을 채우기 위해 환하게 웃었다.

   한 줌의 악의조차 없는 웃음은 언뜻 어린아이의 순진한 웃음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 내막을 알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광란의 웃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봐, 크라슈.”

     

   회귀 뒤에 또 만나게 될 테니.

   그에게 인사를 남긴 아벨라의 지팡이가 마지막으로 마법진을 찍었다.

     

   “하.”

     

   그 순간 마법의 빛에 물든 크라슈가 기가 막힌다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 웃음소리에 아벨라가 채 의문을 가지기도 전.

   세계는 결국 백색으로 완전히 물들었다.

     

     

   * * *

     

     

   고요한 백색의 공간.

     

   그곳에서 아벨라는 홀로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여러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들려왔던 크라슈의 웃음이 거슬렸으니까.

     

   ‘뭘까.’

     

   묘한 위화감.

   평생토록 느껴본 적 없는 그 위화감이 아벨라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법사인 자신이 지금 본능에서 의거한 묘한 위화감에 휘감겨 있는 것이다.

     

   독종인 크라슈가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허탈한 웃음을 흘린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크라슈가 아벨라를 알듯이 아벨라도 크라슈를 줄곧 관찰해왔으니까.

     

   악을 쓰며 마지막까지 반항할지언정.

   크라슈가 덤덤히 죽음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럼 그 웃음은.’

     

   무언가 수가 있어 지은 웃음이라는 걸까.

     

   하지만 백색의 공간 속.

   지금 이곳에는 자신밖에 없다.

     

   크라슈는 완전히 소멸한 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벨라는 침묵했다.

   고요함만이 주위를 감돌았다.

     

   그러나 아벨라의 본능에 따른 위화감은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아벨라가 지팡이에 마법을 가미하려던 순간.

   그녀는 지팡이에 맺힌 마력의 흐름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흐름이 무언가 이상하다.

   마법이 제대로 발동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치, 마력 전체가 어떠한 힘에 억눌려 밀어내지 못하는 감각이 들었다.

     

   혹시 소멸의 마법, 아담을 사용한 탓에 주위 공간에 마력의 힘이 너무 가득 채워진 탓일까.

   혹은 크라슈의 몸에 깃들어 있던 세계 침식의 힘이 아담과 뒤섞이며 그 힘이 너무 강대해진 것일 수도 있다.

     

   공간 전체가 힘으로 가득 차 터지기 직전 상태인 것이다.

     

   이 공간은 영혼 세계.

   즉, 초월석의 내부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마법을 발동시키는 게 위험하다.

   괜히 가득 차 있는 힘이 뒤엉킬 수도 있었다.

     

   ‘아담을 취소하는 게 낫겠네.’

     

   어차피 크라슈는 아담으로 인해 완전히 소멸하여 버렸다.

   더 이상 그를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마력이 담긴 아벨라의 손이 자연스럽게 주변을 훑었다.

     

   그렇게 아벨라가 아담을 거둬 나가던 와중.

   그녀의 눈이 서서히 뜨여지기 시작했다.

     

   아담을 지워나가면 지워나갈수록 그녀는 기묘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주위에 가득 찬 힘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정확히는.

     

   그녀의 아담은 처음부터 이 공간에서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벨라의 눈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서렸다.

   그렇다면 지금 이 공간을 가득 메운 힘은 뭐란 말인가.

     

   백색의 세계는 아담 특유의 부가 효과다.

   너무 강한 마력을 한 번에 폭발시키는 나머지 그 힘의 잔적으로 인해 세계가 새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아담의 효과라 생각했건만.

   지금 아벨라의 눈에 들어온 백색의 세계는 아벨라의 아담이 만들어낸 세계가 아니었다.

     

   곧이어 아벨라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백색의 세계가 되는 조건은 너무 강한 마력, 혹은 힘도 포함이다.

     

   그렇다는 건.

     

   ‘설마.’

     

   쩌적-

     

   아벨라의 귀에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눈치챈 그녀가 시선을 옮긴 백색 세계의 중심이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아벨라가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곧이어 일그러진 공간이 이내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적!

     

   다음 소리는 아벨라의 전신에 오싹하게 소름을 돋게 했다.

     

   그녀가 인생 처음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을 때는 늦었다.

     

   쨍그랑!

     

   깨져 나간 공간의 파편 안.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완전히 백발로 물들어 버린 머리카락과 백색의 눈동자를 지닌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화륵-

     

   동시에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백색의 불꽃은 아벨라가 보기에도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그는 한차례 숨을 기다랗게 내뱉고는 천천히 그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렸다.”

     

   기다렸다고?

   누가?

     

   아벨라의 눈에는 당혹감만이 잔뜩 서려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세계 침식의 신의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동안 방치해 뒀던 사내를 아벨라는 분명 조금 전에 수확했다.

     

   그런데 수확했던 사내가 왜 지금 저기 멀쩡한 꼴로 있단 말인가.

     

   “크라슈…….”

     

   아벨라가 크라슈를 향해 물었다.

   대체 어떻게 지금 살아 있는 거냐고 그녀가 질문했다.

     

   크라슈는 성검을 개안했다.

   그러나 이는 성검의 한계치에 의해 결국 그의 힘을 완전히 태우지 못했다.

     

   이 사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아벨라다.

   당연히 크라슈가 멀쩡한 꼴로 서 있는 것을 머리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벨라의 눈에 개안 된 성검이 들어왔다.

   그것을 멍하니 보던 아벨라는 곧 천천히 눈을 크게 뜨기 시작했다.

     

   성검의 개안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크라슈가 지닌 세계 침식의 힘을 태워낸 것이다.

   이는 분명 성검의 한계치로 인해 크라슈의 힘을 전부 태워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크라슈에게는 딱 하나.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

     

   ‘블랙 후드.’

     

   무엇이든 훔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스킬.

     

   아벨라의 눈이 서서히 부릅떠지기 시작했다.

     

   “……제정신이야?”

     

   아벨라는 크라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완전히 눈치챘다.

     

   그는 성검의 개안을 위해 힘을 불어넣고, 성검으로 그 힘을 완전히 불살라 버린 뒤.

   성검에게 블랙 후드를 발동시켜 그 힘을 빼냈다.

     

   그것도 지금까지 크라슈가 감당한 백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세게 타오르고 있는 힘의 결정을 말이다.

     

   문제는 크라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검의 개안에 깃든 힘을 자기 몸으로 옮겨 버렸으니.

   성검에 내부에는 또다시 힘이 텅 비어버렸다.

     

   크라슈는 여기에다가 망설임 없이 자기 몸에 남아 있던 세계 침식의 힘을 넣고 또 태웠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블랙 후드로 빼낸 뒤, 빈 곳에 다시금 힘을 불어넣었다.

     

   크라슈는 이것을 무한하게 반복했다.

   자기 육체가 결국 완전히 성검의 개안으로 태운 힘으로 가득 차 버릴 때까지.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한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독종이라는 개념 자체를 넘어선 미쳐버린 행위였다.

     

   이런 짓을 하면 필시 죽는다.

   힘이 소멸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릇과 육체가 완전히 녹아 버려 죽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크라슈에게는 크림슨가든에게 받아낸 불사가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순간에 이르기 위해.

     

   그는 자기 경험과 쌓아온 모든 것들을 모으고, 또 모아 자신까지 한계 그 이상을 깎아.

     

   이 순간에 도래했다.

     

   멸망을 멸하기 위해.

     

     

   멸신(滅神)

     

     

   그가 저 스스로 반신을 넘어 완전한 신의 영역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그 광경은 광란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아벨라조차 넋을 잃게 하였다.

   그러자 아벨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크라슈는 천천히 숨을 내뱉고는 검을 틀어쥐었다.

     

   “어, 아니야.”

     

   제정신이 아니니 여기까지 온 거다.

   썅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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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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